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교수님, 괜찮으세요?”
내상이 있는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헥토르 교수.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그는 억지로 심호흡하며 일어선다.
“이, 이안 아이넬.”
휘청거리면서도 꿋꿋이 서 있는 그.
“그 말은…….”
베히모스를 가리키며 의문을 가진 그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한다.
“멋지죠? 얻었어요.”
“그렇게 대강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군마가, 크윽!”
얻어맞은 통증 때문에 말하다 말고 인상을 팍 찌푸리는 헥토르.
기사단원들은 몰라도 베히모스까지 숨길 필요는 없었다.
소환마법으로 마수를 길들이는 건 일반적인 상식의 범주 안에 들어가니까.
“그, 그것보다 빨리 탈출해라! 이 연기를 흡입하면 위험해!”
“체내의 마나를 변형시켜서 신체를 약화시키는 연기라고 밖에서 들었어요.”
강당에서 뿜어져 나오는 초록연기가 이미 하늘을 가득 메웠다.
마나가 오염되는 연기니 조심하라고 밖에서도 경고하는 중이었다.
“근데 저는 상관없어요.”
무슨 방식인지 모르겠지만 마나를 오염시키는 건 잘 알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내 마나를 꽉 쥐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피가 순환하듯 마몬의 기운과 마나를 하나로 뒤섞어 전신으로 퍼트리자 녹색 연기는 제 역할도 하지 못하고 먹혀 사라질 뿐이었다.
손을 뻗어 헥토르에게 보조마법을 걸어준다.
통증은 여전하겠지만 움직이는 데는 도움이 됐는지 그는 어깨를 이리저리 돌려본다.
“이 안에서 마법을…….”
“놀라시는 건 알겠지만 일단 생도들부터 옮겨주세요. 저는 쟤부터 상대할게요.”
이미 몸을 추스른 가르덴은 경계하듯 이쪽을 노려보며 자세를 잡고 있었다.
달려들기 위해서 몸을 낮추고 바닥을 쿵쿵 내리찍으며 준비하는 도중이었다.
“위험하다!”
당연하게도 생도가 레지스탕스와 싸우는 걸 막으려는 헥토르였으나 내 눈이 지그시 그를 응시한다.
굳이 별말 할 필요 없었다.
헥토르도 지금 상황에서 내가 싸우는 게 옳다는 걸 알고 있다.
이 연기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우리 둘이었고, 헥토르는 부상당했다.
싸울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이놈도 있으니까 괜찮아요. 쉽게 밀리진 않아요.”
베히모스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그나마 받아들이는 헥토르.
푸르릉거리며 투레질하는 베히모스의 압박감에 조금 놀란 듯싶었다.
“밖에서 지원이 금방 올 거다. 마법사들이 해결법도 찾아낼 테고. 그러니 시간만 끌어라.”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알고 있을 텐데도 저렇게 걱정되나 싶었는데….
“교수는 원래 이런 종자들이다.”
아무리 내가 강하다는 걸 알아도 걱정할 수밖에 없다는 말.
피식 웃음을 흘리며 베히모스의 고삐를 잡고 그대로 당긴다.
그와 동시에 앞발을 크게 들어 올리며 앞으로 내달리는 베히모스.
마찬가지로 뿔을 내밀고 양손을 쭉 뻗은 채로 달려드는 가르덴.
“크아아아아악!”
베히모스와의 정면싸움에서 밀렸던 게 꽤나 치욕스러웠는지 다시금 시도하는 녀석.
쿵쿵하고 바닥을 울리며 달려드는 놈의 기세는 분명 대단했다.
불꽃의 구체처럼 분노와 증오를 태우며 저항하는 그였으나.
안타깝게도 이쪽은 수준이 다른 존재였다.
앞으로 달리면 달릴수록 점차 베히모스의 덩치가 커진다.
원래부터 덩치가 컸지만 내 소환수가 되면서 제약이 생겼던 녀석이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성장함에 따라 베히모스도 가지고 있는 힘을 더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으으음!”
분명 보통 군마 정도였던 덩치가 달리던 와중 두 배 가까이 불어난 걸 본 가르덴이 신음과 비슷한 비명을 토해낸다.
치킨게임을 하는 느낌이었다.
두 괴물이 서로를 들이받기 위해 달려들었으나 한쪽은 받기도 전에 공포를 느끼고 몸을 틀었다.
그렇다면 지는 거다.
다급하게 가르덴이 몸을 틀었으나 이미 베히모스의 거대한 덩치가 그를 후려치고 있었다.
우드득! 우드드득!
말 그대로 가르덴을 짓밟으며 지나가는 베히모스.
그 밑에 깔린 가르덴의 몸에서는 들려선 안 되는 소리가 퍼져 갔다.
“끄어어어아악!”
끔찍한 고통에도 몸부림조차 치지 못하는 모습.
안쓰럽진 않았지만 그래도 좀 잔인했다.
“너무 과격한 거 아니야?”
죽이진 않을 생각이었는데 방금은 자칫 잘못하면 죽일 뻔했다.
한마디 하자 팽 하고 콧방귀 뀌며 고개를 획 돌리는 녀석.
칭찬해야 할 타이밍에 구박했다고 삐진 모습이 묘하게 웃겼다.
‘그것보다는 생도들이 문제네.’
안타깝지만 이 사태의 근원으로 보이는 팔레스 패거리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된 상태였다.
그나마 더 이상은 연기를 토해내지 않고 있다는 게 다행일까.
연기에 많이 노출된 생도들도 생명이 위험해 보였다.
‘언제 오는 거야.’
체내의 마나를 인체에 유해하게 변화시키는 방식의 독이지만 그게 먹히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다.
그를 불러오라고 샬롯에게 시켰는데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면식은 있으니 얼굴은 알 텐데.
“크흐으!”
그때 비틀거리면서 일어선 가르덴.
꽤 많은 부위의 뼈가 부러졌으니 그대로 누워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근성이 상당하다.
하지만 곧 근성 외에 다른 부분에서도 도움을 받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평범한 신체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우둑! 뚜둑!
은은한 녹색빛을 띠던 그의 몸이 이제는 마치 반딧불이와 같이 환하게 빛난다.
동시에 몸의 안쪽에서 뼈가 조립되듯 격한 소리가 울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를 회복한 그는 다시금 두 발로 굳건히 선 채 나와 베히모스를 노려봤다.
단순히 치료가 된 수준이 아니었다.
육체가 다시 맞춰지면서 골격이 커졌는데 덕분에 덩치가 1.5배 정도는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요즘 수인은 저런 것도 되는 거야?”
말은 이렇게 해도 수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녹색 연기 덕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자 베히모스도 따라서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마치 지긋지긋하다고 말하고 싶은 듯한 몸짓.
이제 세 번째 승부.
완전히 밟아주려는 생각인지 베히모스는 뜨거운 숨을 토해내며 가르덴을 노려봤다.
“끄으윽! 인간은, 다, 죽인다!”
살육을 향한 집착을 보며 문득, 저 남자가 어째서 저렇게까지 망가졌을까 의문이 들었다.
수인들이 안타까운 취급을 당하고 있는 건 알고 있다.
왕국 밖이라면 몰라도, 왕국 내에서 그들은 비극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 역시 평범한 인격체였다.
라인 레이먼드의 유년기 시절, 그는 쓰레기장을 전전하던 소년이었다.
그곳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버려진 아이들 몇몇을 만났었고, 그중에는 수인도 있었다.
외형이 조금 다를 뿐.
우리에게 없는 게 그들에게 있고, 그들에게 없는 게 우리에게 있을 뿐.
딱 그 정도의 차이.
작은 차이는 있었지만 우리는 굶주림과 싸우고,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함께하는 동지였다.
“안타깝네.”
포효하면서도 살기등등하게 나와 주변의 인간들을 노려보는 가르덴을 보며 이제는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가르덴이 보통의 수인이었다면 이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벨레스를 봤을 때, 딱히 안타깝다는 느낌을 받진 않았으니까.
자유를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투쟁하고 있는 그를 응원하긴 했지만, 전력을 다해 도울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하지만 가르덴을 보고 있자니.
광기와 집착이 버무려져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괴물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감정이 맞물렸다.
그가 처음부터 이토록 망가져 있던 건 아니었겠지.
어떠한 사건을 겪고, 경험을 하고, 슬픔과 고통을 통해서 이런 비틀린 성장을 해낸 거겠지.
‘왜 벨레스가 그런 방식을 취했는지 알 것도 같다.’
공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해.
수인 또한 평범한 인격체라는 걸 알리기 위해 위장 입학한 벨레스가 이해된다.
윙보드 소속이었던 그는 가르덴을 보고 자신의 방향성을 바꾸지 않았을까.
오로지 투쟁으로만 이어진 삶을 살아오며 망가진 그를 보며, 길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한 게 아닐까.
“크아아아아아!”
포효가 터져 나오고.
가르덴이 나를 향해 거칠게 내달린다.
녹색으로 흉흉하니 빛나는 눈동자는 자아를 잃은 괴물과 같이 보였다.
푸릉!
베히모스는 다시 한번 짓밟아주겠다며 투지를 불태웠으나.
“내가 할게.”
손바닥에서 마법진이 떠오른다.
곧이어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반토막 난 창, 아르가스.
아르가스가 손에 잡힘과 동시에 베히모스가 앞으로 달려들었다.
베히모스를 타고, 아르가스를 휘두른다.
일순 마몬이라도 된 기분이 들고, 우리가 지나온 곳에는 검은 기운이 안개처럼 퍼져 갔으나.
당장에는 눈앞의 남자, 윙보드의 리더이자 증오의 괴물이 된 남자에게 집중한다.
“크아아아아!”
정면 대결은 불가능하다 생각한 듯 가르덴은 일부러 달리던 도중에 위로 도약했다.
베히모스를 뛰어넘어 나를 직접적으로 타격하겠다는 속셈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그가 오늘 했던, 아니, 일평생 해온 선택을 통틀어 가장 큰 실수였다.
살기는 실로 맹렬했다.
수인이 아니라 오롯이 상대를 죽이기 위해 쏘아진 절대적인 파괴력을 지닌 마법처럼.
그는 바람과 녹색연기를 가르며 주먹을 크게 휘둘렀으나.
콰득!
묵직한 주먹이 내 바로 코앞에서 허공을 가른다.
어찌나 무게감 넘치는 일격이었는지, 후폭풍으로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뒤에 있는 녹색의 연기들도 밀려났으나.
놈의 심장에는 이미 아르가스가 꽂혀 들어간 상태였다.
“커, 헉!”
피를 토해내며 아르가스를 뽑아내려 양손으로 쥔 가르덴.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으나 생존의 욕구와는 그 의미가 좀 달랐다.
살아남아서 더 많은 인간을 죽이기 위해, 더욱 거대한 고통을 선사하기 위해.
타인의 목숨을 뺏기 위해 살기를 바라고 있는 가르덴.
나는 그대로 손을 크게 휘둘러 창을 뽑아낸다.
녹색이 뒤섞인 진한 핏물이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아르가스를 타고 내 손에 닿는다.
풀썩.
바닥에 나뒹굴 듯 쓰러진 가르덴.
이번만큼은 다시 서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나마 내 손에 죽은 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베히모스의 위에 그를 내려다본다.
적어도 나는 그를 수인이나 노예가 아닌, 하나의 전사로서 상대해 주었다.
그 마음이 그에게 닿았을지는 모른다. 높은 확률로 느끼지 못했겠지.
“크, 으!”
아까도 말했듯 원래는 죽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를 보고 있자니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상 투쟁과 분노로 얼룩진 괴물을 살려두어서는 안 되었다.
그게 우리를 위함이기도 했으며, 그를 위함이기도 했다.
희미하게 꺼져가는 가르덴의 녹색 눈동자.
점차 원래의 색을 되찾아 가는 그의 눈동자가 나를 담는다.
뭔가 말하고 싶어 보였으나 입에 피가 고이는지 부글부글 거리는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느낄 수 있었다.
살기.
증오.
분노.
원통함.
아쉬움.
자신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인간을 더 죽이지 못한다는 것에 한을 느끼며.
더 이상 이 손으로 인간을 때려죽일 수 없음이, 발로 그들을 찍어 누를 수 없음이.
너무나 안타까웠는지 가르덴은 그렇게 뜬 눈으로 투쟁이라는 이름의 삶을 마감했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여러 감정이 들었으나.
“들어가자!”
“구조! 구조!”
“아오, 인형 싫다니까!”
아이의 투정 같은 소란 때문에 감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수많은 인형들이 둥둥 떠다니며 강당 안으로 들어온다.
녹색 공기를 통해 마나가 신체를 망가트린다면.
반대로 인간의 육체를 지니지 않은 존재들이 들어오면 된다.
테르토나 샤이먼이 다루는 인형 소환수들.
그들이 헥토르를 도와 구조를 시작하며 오늘이란 하루가 끝났음을 알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