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27
127화.
도로시가 당한 건 물론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는 부분이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지금 왜 이곳에 왔는지를 잊어선 안 됐다.
폴탄 해안으로 온 건 전 학년 훈련을 위해서였으니까.
‘애초에 사람이 주변에 너무 많아.’
이제 하루 됐지만 계속 다른 생도들이랑 함께하다 보니 재소환 할 수 있는 기회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는 방에서도 베런이랑 같이 있고, 어제 저녁 같은 경우는 동아리 애들이 다 같이 밀려 왔다 보니 기회도 없었다.
톰이랑 엘빈은 역소환되지도 않았고 찾아오지도 않는 걸로 봐서는 큰 문제까지는 아닌 걸로 보였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으면 어떻게든 나한테 알렸겠지.’
와서 말해준다고 해도 폴탄 해안에서는 내가 따로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을 듯했지만.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빡빡한 일정과 더불어 전 학년이 함께한다는 게 아카데미에서 생활할 때보다는 훨씬 체감되는 중이었다.
지금도 해안가로 향하기 위해 호텔 앞에 줄을 서고 있는데 빽빽한 게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옆 사람과 어깨가 부딪치는 수준이었다.
“몸은 괜찮나?”
옆에 있는 베런이 걱정스레 물어온다.
어제 벌칙을 하도 당해서 애들한테 많이 얻어맞은지라 몸이 쑤시긴 했다.
“그냥 뻐근한 정도야. 괜찮아.”
“그렇게까지 맞았는데 뻐근한 걸로 끝나는 건가?”
“…….”
이불에 덮인 채로 신나게 맞긴 했다. 애들이 오늘 훈련하는 것도 잊고 흥분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뭐, 이게 리더의 역할이지.”
또 애들이 나한테 가지고 있던 불만을 자연스럽게 풀 수 있던 방법이지 않은가.
특히나 샬롯과 다이니는 아직도 다이어트 식단 사건 때문에 울분이 남아있었는지 어제 때리면서 식단 소리를 하기도 했다.
“뭐,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됐다. 다만 오늘 훈련 도중에 몸이 안 좋거나 부상당하면 바로 말해야 한다.”
“그래그래.”
어떻게 보면 나를 걱정해 주는 부원은 베런 혼자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제 애들이 나를 팰 때 유일하게 혼자 가만히 있기도 했으니까.
“자, 이동한다.”
헥토르 교수의 지시를 따라 전 학년이 걷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에 교수들과 더불어 선도부원들이 생도들을 인솔했는데 이런 것에서부터 이미 평범한 생도들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과 장소이기 때문일까. 선도부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선도부는 훈련 와서도 쉬질 않네.”
내가 한마디 툭 내뱉자 베런은 흠 소리를 내며 주변을 둘러본다.
“내 친구 중 선도부에 들어간 애가 말하기로는 훈련 때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일주일 전부터 교육을 받았다는군.”
“음?”
베런의 친구가 선도부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그것보단.
“뭘 하는데 일주일 전부터 교육을 받아?”
보통 이런 훈련에서 선도부의 역할은 단순히 교수 보조나 생도 관리 정도뿐이다.
따로 교육을 받아야 할 정도로 대단한 일은 없을 텐데?
“나도 모른다. 선도부의 일은 얘기해 주면 안 된다면서 말하지 않더군.”
그리 말하는 베런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자신의 친구가 선도부에 물들었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지난번 3학년과의 다툼 이후, 선도부는 선민의식 같은 게 생겼다 싶을 정도로 거만해졌다.
선도부원들의 숫자가 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도부가 아닌 생도와는 어울리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었다.
“학장이 의도적으로 차별을 종용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네.”
베런의 말에 어느 정도 동감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아직도 일주일 전이라는 게 거슬렸다.
베런은 잘 모르겠지만.
‘일부러 학장이 훈련 장소를 폴탄 해안으로 정했단 말이지.’
잎담배 유통책이 있는 폴탄 해안으로 반쯤 억지로 훈련 장소를 정한 것부터 시작해서.
일주일 전부터 선도부원들에게 뭔가 특별한 훈련을 시켰다는 것까지.
두 가지가 맞물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불안해졌다.
아무리 선도부라고 해도 일단은 생도니까.
특히나 방심했다고 해도 도로시가 역소환당할 정도의 적들이 엮여있으니 굳이 생도들이 분수도 모르고 휘말리지 않았으면 했다.
* * *
주점 사건 이후.
톰과 엘빈은 굳이 무리해서 움직이지 않았다.
주점 주인응 추궁해서 그녀가 해적여제 바레타라는 것도 알아냈다.
주점주인은 꽤나 괘씸했기에 바로 해적과 연관되어 있다며 경비대에 맡겼다.
그 이후, 단장인 이안에게 돌아가기보다는 다른 단원들에게 합류한 톰이었다.
“도로시가 역소환됐다고?”
한나의 물음에 톰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제 해적여제를 쫓다가 그대로 마나가 사라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한나에게 톰은 너무 걱정 말라 덧붙였다.
“직접 만나본 입장에서, 강자이긴 하지만 기사단원 수준은 아니야. 도로시가 방심했거나 아니며 예상치 못한 뭔가가 있었던 거겠지.”
해적여제의 수준을 파악한 톰이었기에 굳이 이안에게 돌아가서 위협을 알리기보다는 쫓기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해적여제를 찾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엘빈은요?”
쌍둥이인 켈빈의 질문에 톰은 부둣가 쪽을 가리킨다.
“일단 부둣가로 보냈다. 해적이니까 도망칠 생각이면 배를 타겠지.”
“그렇게 대놓고 정박할 수 있는 거야?”
한나의 물음에 켈빈 역시 동의한다며 톰을 바라본다.
해적인 그녀가 배를 대놓고 도시 부둣가에 정박하진 않았을 거란 의문이었으나.
톰도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렇다고 어디 다른 마땅한 장소가 있는 건 아니잖아. 해적이 정말 해적깃발 꽂고 항해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하지만 해적들도 자신이 해적임을 숨기면서 다닌다.
특히나 폴탄 같은 복잡한 도시는 그들이 자연스럽게 몸을 숨기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어차피 전투가 벌어졌을 때 전력이 부족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 사람씩 놈들이 올 만한 장소로 배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톰의 말에 한나는 동의하면서도 놓치지 않고 주점에 관해서 묻는다.
“주점 주인은 뭐였어? 갑자기 습격했다며.”
어제 바레타와 대화 도중 갑자기 단검을 휘두른 주점주인.
사실상 그 탓에 바레타를 놓쳤다고 볼 수도 있었다.
톰은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전직 해적이었다는군. 해적여제의 배에서 내린 후 주점을 연 거지.”
“해적 주제에 충성심은 참 높네요.”
어처구니없다며 켈빈이 한마디 했으나 어쨌든 상대의 성향에 대해서 대강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야기를 듣고는 잠시 고민하던 한나는 켈빈에게 지시했다.
“켈빈은 유치장 쪽에서 대기하고 있어.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꽤나 정이 많은 타입이야.”
“아! 구하러 올 수도 있다는 소리군요?”
“탈옥 같은 소란스러운 일은 불가능할 거고. 보석금이라도 지불할 생각은 하고 있겠지.”
손 씻은 해적.
사실상 지금은 주점 주인이나 다름없으니 보석금을 넉넉하게 준다면 경비대에서 풀어줄 가능성이 높았다.
그 말을 들은 켈빈이 곧장 유치장이 있는 곳으로 떠나갔고.
톰은 다시 한번 뒷머리를 긁적인다.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했군.”
“뭘 새삼스레.”
애초에 톰에게 그런 걸 바라지 않았다는 듯 말한 한나가 몸을 틀어 우뚝 솟은 첨탑을 하나를 가리킨다.
폴탄 해안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였다.
“나는 저쪽에서 대기하면서 네가 말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있나 확인할게.”
“그래.”
상대가 특정이 됐고 아직 이 도시에 있다면 기사단의 포위망에서 도망칠 수 없을 거다.
떠나가는 한나를 보며, 다음엔 넬슨과 윤 페어를 찾아 움직이는 톰이었다.
* * *
폴탄 해안가에서 오전부터 시작된 훈련은 자그마치 7시간 동안 이어졌다.
체력단련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모의대련은 생도들이 평소에도 해오던 것들이었으나.
모래사장이라는 배경 위에서는 평소와 다른 신선한 고난을 선사했다.
그나마 오후 4시라는 다소 이른 시간에 끝났다는 건 생도들에게 다행인 점이겠지.
“입맛이 없어.”
최소한으로만 점심을 먹은지라 조금 이른 호텔 저녁을 먹고 있는 생도들.
다이니는 한숨을 내쉬며 깨작깨작 식사를 이어나간다.
한나의 체력단련을 버틴 다이니라서 그나마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거였다.
다른 생도들은 포크도 제대로 쥐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 짜증나.”
그리고 아까부터 투덜거리고 있는 마리아. 왜 화가 났는지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왜 3학년만 실전을 하는 거야?”
이 시기에 폴탄 해안가에서는 해양마수들이 자주 출몰한다.
그런데 거기에 추가로 마수가 몰리는 먹이를 뿌려둔 덕분에 3학년은 마수를 상대로 원 없이 실전을 펼치고 있었다.
“내일은 2학년도 낀다며? 우리는 마지막 날에 딱 한 번 하고!”
쿵 식탁을 내리찍자, 옆에서 졸고 있던 샬롯이 깜짝 놀라며 깬다.
벨레스는 마리아랑 엮이고 싶지 않은지 허겁지겁 식사를 이어갔고, 베런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노려봤으나.
어차피 말로 해봤자 안 들을 거 아니까 나는 저녁 식사나 빠르게 하며 다이니에게 눈짓했다.
“음?”
다 먹고 밖에서 기다리라는 내 신호에 잠시 벙 찐 그녀였으나. 그 뒤로는 입을 꾹 다물고 후다닥 식사를 이어갔다.
다른 애들보다 빠르게 식사를 끝낸 나와 다이니는 같이 호텔 옥상으로 향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뭔가 기대하는 듯한 다이니를 뒤로한 채, 나는 마나를 끌어올렸다.
“워즈네 과수원? 거기 다녀오자.”
“아…….”
내 말에 실망한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소환마법진에서 나타난 베히모스의 외침에 묻혔다.
오랜만에 나와서 흥분한 놈을 진정시키며 위에 올라탔다.
도로시를 소환해서 상황을 묻고 싶기도 했으나, 일단은 과수원에 다녀온 뒤에 할 생각이었다.
“어디인지 알지?”
다이니에게 손을 뻗어 베히모스의 뒤에 앉힌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타는 걸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베히모스이지만.
다이니는 체내에 마몬의 기운이 뒤섞여 있어서 아슬아슬하게 괜찮아 보였다.
“일단 도시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굳이 지금 가야 해? 어차피 나중에 자유시간 있는데?”
“미리 갈 수 있을 때 가면 좋잖아.”
“……하긴.”
베히모스를 끌고 도시 밖으로 향한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소환수가 있다는 건 확실히 편했다.
“조, 좀 무섭네.”
다이니는 이색적인 경험에 떨며 내 허리에 손을 감싸고 들었다.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위치를 알려줬고 덕분에 사과나무가 잔뜩 심어진 과수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워즈…….’
새로운 기사단원을 다시 소환할 촉매를 얻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한나, 톰과 같은 기수였기에 실력 하나는 확실했다.
조금 기분 나쁠 때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분명 충성도가 높은 단원이었다.
과수원 근처에 착지한 베히모스를 역소환한 후, 다이니와 함께 입구로 향한다.
“땅을 밟으니까 좋네.”
몇 번이나 발바닥으로 땅을 두드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다이니.
돌아갈 때도 꽤나 고생하겠구나 생각하며 과수원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입구에는 두 여인이 서로를 마주본 채 서 있었다.
한 여인은 안경을 쓴 땋은 머리.
과수원 작업복을 입고 있으며 내가 알고 있는 워즈의 분위기와 비슷한 것이 과수원의 주인인 듯했다.
문제는 다른 한 여인이었다.
바다가 연상되는 시원한 청색 머리카락. 타들어간 구릿빛 피부와 더불어 허리춤에 매고 있는 커틀러스.
우연찮게도.
두 사람에게 향하던 내 귓가에 청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하는 말이 흘러 들어왔다.
“잎담배 원료. 여기서 재배 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