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쏴아.
쏴아.
익숙한 파도 소리였다.
어딜 가나 파도 소리는 똑같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바레타는 의외로 그 미세한 차이를 구분할 수 있었다.
방파제를 후려치는 파도 소리도, 방파제의 모양과 자제에 따라 다르고.
해안가에 치는 파도도 모래사장의 형태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
폴탄 해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
비가 많이 오면 그대로 물이 들어차서 위험하기 때문에 배도, 사람도 함부로 들어서지 않는 곳.
해적인 그녀였기에 종종 비밀리에 이곳에 배를 정박한 적이 있는 해안가라는 걸 소리만으로 알아차린다.
“끄, 으응.”
몸을 틀어 주변을 둘러본다.
왼쪽 어깨에 박혔던 화살 탓에 통증이 깊으며 짜디짠 바닷물이 눈을 찌르고 들어온다.
‘뭐지?’
분명 기사들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바다로 빠졌고, 심해의 마수들에게 잡아 먹혔다.
어째서 도시 정박장과 가까운 곳에 마수들이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썅.”
화살에 맞은 왼쪽 어깨와 손바닥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다.
일단 살아남았으니 어떻게든 발버둥 치며 다시금 후일을 도모할 생각이었으나.
“뭐야, 깼어?”
시야에 들어온 여인.
안경을 쓰고, 머리를 땋았던.
오늘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으나 딱 하나.
과수원 앞치마는 입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너……!”
왜 과수원장이 여기 있는가.
바레타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한 가지.
그녀의 손짓에 맞춰 몸에서 녹색 빛을 띄우는 주변의 마수들이 정갈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
“다시 보면 후회할 거라고 했었나?”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여인은 큭큭거리며 손으로 입가를 가린다.
침팬지와 비슷하게 생긴 마수들이 재빠르게 해안가에서 바레타의 선원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누더기처럼 쌓이기 시작한 선원들.
죽은 사람도 있고, 아직 죽지 않은 사람도 있음에도 고기완자라도 만들 듯 응축시킨다.
“하…… 지 마.”
“꼴에 해적여제라고 쓸모는 있어 보이네.”
“하, 지 말라고 이 개…….”
퍼억!
바레타의 머리를 짓누르는 과수원장을 발바닥.
모래사장에 얼굴이 처박히며 입에 모래가 한 움큼 들어온다.
“동료들한테 미리 가 있으라고 인사나 해.”
“웁! 으웁!”
느껴지진 않으나, 뭔가가 다가오고 있음이 분명했다. 모래를 통해 느껴지는 묘한 진동.
우드득!
곧이어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뭔가의 쩝쩝거리는 소음이 울려왔고.
“으으으읍!”
눈에 핏줄을 세운 채로, 바레타는 그 소리를 끝까지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위에서부터 흘러내린 핏물이, 그녀의 뺨을 적셨다.
* * *
“하아.”
로젤리아 학장은 생각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고 있음을 느꼈다.
폴탄 해안까지 굳이 훈련장소를 지정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잎담배를 판매했다는 저니라는 제조상을 찾기 위해서.
헥토르가 꽤나 귀한 정보를 얻어 왔고, 경비대나 다른 기사단에 알리지 않고 로젤리아는 굳이 강행해서 이곳까지 찾아왔다.
이유라 함은 뻔했다.
차이를 보이기 위해.
전 학장은 잎담배에 당했으나, 오히려 현 학장인 자신은 잎담배의 판매자를 체포한다.
그것도 생도를 동행시켜서 의도적으로 생도들에게 공을 넘길 생각이었다.
정확히는 선도부에게.
선도부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결국 아카데미의 실권을 장악하는 건 학장이 된다.
그 이후,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마음껏 펼칠 생각이었다.
기사가 된다는 건 제약이 생긴다는 것.
울타리에 방범용 전격 마법을 설치해 둔 것처럼 그녀는 지금의 허술한 교육을 일삼는 아카데미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지금은 일종의 지반다지기.
여러 성과를 통해 자신의 억척스러운 제도를 학부모들과 생도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것이 그녀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자니 로젤리아도 한숨이 나올 수밖에.
저니라는 판매상은 이미 사망했다.
그가 사용하던 건물과 판매하던 잎담배는 전부 타들어가 잿더미가 됐다.
그래서 저니를 살해하고 방화한 후, 도주한 해적여제 바레타와 그의 해적들이라도 잡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해결은 그녀가 데려온 측근들이 하고 선도부에는 공만 넘겨주면 된다.
해적들이라 할지라도 왕국 직속으로 일하던 로젤리아의 측근들을 상대할 순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했건만.
어젯밤.
해적여제 바레타의 해적선으로 추정되는 함선이 침몰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이쯤 되면 로젤리아조차 어지러울 지경.
‘치안 한번 참 좋기도 하네.’
마약제조상은 해적이 잡고, 해적은 또 의문의 존재에게 당해서 물고기밥이 됐다.
폴탄 해안이 이렇게까지 평화로운 장소인가 싶었다.
“하아아.”
그녀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쉰다. 잎담배에 대한 실마리가 끊겼다.
이제는 이번 훈련에서 생도들이 성장하는 것 정도밖에 기대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해안가에서 나오는 특수한 마수들을 상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외에는 시간과 거리 대비 성과는 꽝이지만.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겠지.
‘내일 과수원도 취소해 버릴까.’
워즈 과수원도 훈련에 지친 생도들이 과일도 먹고 좀 쉼과 동시에 전설적인 기사 워즈에 대해 교육하는 시간.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 가는 시간도 좀 아깝게 느껴지는 로젤리아였으나.
‘됐어.’
생도들이 좀 쉴 필요도 있으니.
로젤리아는 찝찝한 마음을 다잡으며 몇 번이나 확인했던 훈련표를 다시 바라봤다.
* * *
다시 찾아온 과수원.
하지만 이번엔 개인적으로 온 게 아니라 나이트 아카데미에서 다 함께 왔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좋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전설의 기사 워즈의 후손이 운영하는 과수원이라고 해도 어차피 300년 전의 기사.
생도들은 과거 전설의 기사가 걸어온 발자취를 배우기보다는 훈련으로 쌓인 피로나 풀고 싶어 했다.
“뭐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네?”
사과를 한입 베어 물며 중얼거리는 마리아.
훈련이 고되긴 했는지 한참을 놀아줘서 지친 개처럼 얌전히 있는 모습이 어색하다.
“워즈가 쓰던 무기나 갑옷 같은 거 보여주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분명 지난번에 다이니와 왔을 때는 워즈와 관련된 물건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보여준 건 진짜 워즈의 것인지 모르겠는 목걸이와 팔찌 같은 장신구들뿐이었다.
촉매로도 쓸 수 없는 걸로 봐서는 품에 품고 다니던 것도 아니겠지.
“아쉽겠네?”
슬며시 옆으로 다가온 다이니.
워즈를 소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지라 확실히 아쉽긴 했다.
“뭐, 아직 모르지.”
물론, 아직 끝난 건 아니다.
과수원장의 오두막 지하에 뭔가가 있으며 거기에 워즈와 관련된 물건이 있을 수도 있다.
해적선을 침몰시킨 다른 단원들이랑 다르게, 넬슨을 따로 과수원에 배치해 두긴 했으니까.
조금 있다가 생도들이 자연스럽게 퍼지면 넬슨에게 한번 가볼 생각이었다.
“나도 가서 공이나 찰까.”
심심하다며 하품하는 마리아.
과수원 자체의 땅이 넓어서 생도들은 가져온 공을 차거나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놀아댄다.
과수원 자체에는 특별한 놀 것은 없지만 애초에 이 나이의 애들은 넓은 부지만 있으면 자기들끼리 어련히 재밌게 논다.
특히나 3학년들은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더욱 열심히 자기들끼리 떠들어대고 있었다.
대강 생도들이 퍼지기 시작하고.
은빛사자 연구회의 단원들도 자기들끼리 놀거나 혹은 공차는 곳에 합류해서는 헤집어 놓기 시작한다.
사과나 하나 따먹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슬슬 시간이 됐다는 생각에 오두막으로 향하려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으음?”
땅이 거칠게 울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뭔가가 굴러오는 건가 했으나 그게 아니라 상당한 숫자의 뭔가가 달려오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전쟁터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격렬한 난동.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고개를 획 돌렸고.
“저것들은 또 뭐야?”
그곳에는 침팬지처럼 생겼으나 크기는 인간 정도인…….
“마수?”
그래, 마수였다.
게다가 굉장히 익숙한 특징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윙보드의 수장이자, 나이트 아카데미를 테러했던 가르덴과 동일하게.
몸에서 은은한 녹색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 *
어째서 생도들에게 마수가 달려들게 되었느냐를 알기 위해선 넬슨을 볼 필요가 있었다.
이안의 명령으로 과수원을 조사하던 넬슨.
나이트 아카데미의 생도들이 왔기에 과수원장도 밖에서 그들을 맞이해야 됐고.
넬슨은 드디어 오두막 안으로 들어갈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어떻게 하루 종일 오두막 안에 있는 거야.’
창문도 워낙 높이 달려 있다 보니 내부를 확인하는 것도 어렵다.
정말로 안에 있는지도 모를 수준.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 안에 있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
과수원장이 밖으로 나간 틈을 타 바로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으음?”
뒤에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넬슨이 고개를 천천히 돌리자 그곳에는 자신과 똑같은 분홍색 머리를 가진 생도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여기서 뭐 하세요?”
이안의 소개와 더불어, 함께 훈련을 한 사이인지라 딱히 어색하거나 한 점은 없지만.
그렇다고 넬슨이 이곳에 있는 걸 샬롯이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왜…… 여기 계세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의 샬롯.
뭔가 설명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으나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일단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온 넬슨의 뒤를 따라온 샬롯.
“이안이 보내셨어요?”
“맞아.”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것보다 얼른 돌아가. 여기 있으면 괜히 네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
넬슨이야 역소환되면 그만이지만 샬롯은 아니다.
만약 이 아이가 자신 때문에 안 좋은 일에 휘말린다면?
넬슨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아니, 그런데 그냥 갈 수도 없잖아요. 이렇게 오신 걸 봤는데.”
“말 좀 들어라. 누굴 닮아서 이렇게 말을 안 듣는지!”
아마, 너겠지.
만약 이안이 옆에 있었다면 그렇게 말했을 거다. 샬롯은 볼을 팡 부풀리며 팔짱을 낀다.
보통 넬슨이 삐졌을 때 입을 꾹 다무는데, 샬롯은 거기에 추가로 볼까지 부풀리는 편이었다.
‘얘가 정말 내 후손이 맞긴 하구나.’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샬롯은 아직 넬슨이 과거에서 찾아온 자신의 조상인지 모르고 있다.
아니, 아마 모른 척하고 있다.
분홍 머리, 일레인의 검술, 엇비슷한 성격 등.
샬롯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아직 이안과 넬슨이 설명해 주지 않았으니 굳이 묻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일단은 돌아가. 내가 할 일이 있어서…….”
쿵! 쿵! 쿵! 쿵!
순간, 발밑에서 들려오는 격한 진동.
지진이나 흔들림 같은 게 아니라 누군가 오두막 바닥을 쿵쿵 두드리고 있는 중이었다.
지하가 있다고는 들었으나 설마 뭔가가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넬슨.
침착하게 검에 손을 올리며 샬롯을 뒤로 물린다.
“뒤로 물러나.”
그대로 검을 내리찍어 바닥에 구멍을 내자, 그곳에서 튀어나온 건.
“크하아아아! 미치이이인!”
해적여제 바레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