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하아.”
늦은 새벽.
폴탄 해안 부둣가.
해적여제 바레타는 자신의 함선으로 돌아와 찌뿌둥한 몸을 푼다.
시간이 늦었음에도 선원들은 하나 같이 깨어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떠십니까?”
피곤한 그녀를 위해 준비해 둔 차가운 맥주와 더불어 연초 한 개비.
원래라면 바로 연초부터 물어야 했으나, 잎담배 때문에 난리 난 이후부터는 연초를 입에 잘 대지 않게 되었다.
맥주잔만 받아들고 한 모금 거하게 마신 바레타는 확신에 차서 답했다.
“그년이야.”
“역시!”
“개 같은 자식!”
“아주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새벽이라는 걸 신경도 쓰지 않고 거칠게 외쳐대는 해적들.
감에 의존하는 면이 좀 크긴 했지만 바레타는 워즈의 과수원에서 잎담배의 원료를 재배 중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눈동자.’
겉으로 봤을 때는 바레타에게 밀려서 두려움에 떠는 것처럼 보였으나, 바레타처럼 경험 많은 해적은 사람을 보는 눈이 뛰어났다.
워즈의 과수원장은 막상 바레타를 크게 위협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몸에 간간히 묻은 털과 묘한 짐승냄새.
“수인은 아닌데…….”
전설의 기사 중 하나인 워즈의 후손이니 수인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코가 민감한 바레타는 몸에서 풍기는 특유의 짐승 냄새를 쉽사리 넘어갈 수 없었다.
맥주를 마시며 계속 고민 중인 바레타였으나.
“어이.”
그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배 위에 올라타 있는 덩치 큰 남자.
주점에서 봤을 때와는 다르게 은빛의 갑옷을 걸치고 대검을 등에 매고 있는 모습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미친?”
바레타 역시,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맥주잔을 놓으며 탄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내리쬐는 달빛을 받으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남자는 주점에서 봤던 위압적인 기사, 톰이었으니까.
“꽤나 교묘하게도 배를 숨겨뒀군.”
다른 화물선들이랑 외견이 똑같았기에 생각보다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려버렸다.
바레타를 쫓은 도로시의 미행과 더불어 부둣가를 계속 감시하고 있던 엘빈의 공이 컸다.
‘저것들은 도대체 뭐야.’
워즈의 과수원과 잎담배도 그렇지만.
바레타에게 있어선 은빛갑옷을 입은 저 남자도 수상하다면 수상했다.
왜냐면.
‘마나로 이루어져 있다.’
도로시를 직접 죽였던 바레타는 분명히 봤다.
총알이 박혀 들어간 장소에 남아 있던 건 찐득한 핏물이 아니라 푸른 마나뿐이었다.
저들은 마나로 이루어진 존재.
마법적인 지식이 해박하진 않지만 바레타는 저들이 아마 소환수의 일종이 아닐까 판단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만나버렸네.”
쓴웃음을 내지으며 바레타는 천천히 커틀러스를 뽑아 든다.
‘이미 여자 쪽은 처리했고, 뒤에 있던 건 남자 하나.’
주점에서 만났던 기사는 셋.
하나를 처리했으니 남은 건 둘.
한 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으나 바레타는 각오를 다졌다.
“해적선 위에서 해적이랑 싸우려 들면 안 되지.”
선상 위의 백병전은 해적여제의 해적단에게 장기나 다름없는 전투였다.
비록 닻이 내려가 있어 최소한의 파도밖에 타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어쨌든 숫자로 찍어 누르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바레타.
또한 다른 해적단원들도 말없이 그녀의 의도를 재빠르게 파악하고 넓게 퍼지며 포위진형을 갖추려고 했으나.
“으쌰.”
그때 반대편에서 등장한 금발의 쌍둥이 기사 엘빈과 켈빈.
원래 켈빈은 수감소 쪽을 경계하고 있었으나 해적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이렇게 합류했다.
“하나가 늘었나.”
이 정도 수준의 기사는 하나가 더 느는 것만으로도 배 이상으로 위험도가 늘어난다.
바레타와 해적들 입장에서는 아쉬운 상황이었으나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복수! 복수! 복수우우!”
그때 갑판 쪽에서 등장한 또 다른 기사.
창을 양손에 쥐고는 원시인처럼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은 기사라고 보기엔 힘들었으나.
해적여제의 입장에서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등장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분명 피스톨을 이용해서 마나로 만들어버린 도로시가 다시금 등장했으니까.
심지어는 자신에 대한 기억도 명확하게 가지고 있어 복수를 외쳐대는 모습에서는 해적여제라도 섬뜩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상황은 매우 불리하다.
특히나 피스톨 같은 무기는 비밀병기로서 딱 한 번 피해를 줄 수 있는 물건이었다.
100번을 싸운다면 99번은 막히겠으나. 처음의 딱 한 번은 무조건 먹혀드는 방식.
이제는 자신에게 피스톨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테니 이 정도 수준의 기사들이 쉽게 당해줄 리가 없었다.
철컥.
그렇다면 아예 위협하듯 피스톨을 꺼내서 대놓고 보여주는 바레타.
차라리 의식하게 만들어서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억제할 생각이었으나.
쐐액!
마치 새가 날아드는 듯한 소리였다.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는 걸 깨달은 순간은 이미 늦었다.
털컥!
피스톨을 쥐고 있던 바레타의 손등에는 어느새 화살이 박혀 들어와 있었고 그녀의 피스톨은 바닥을 나뒹굴 뿐이었다.
“크으으으윽!”
“선장!”
“선장님!”
꿰뚫리지 않은 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걸까.
해적들의 근심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손을 감싸쥔 바레타가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본다.
저 멀리, 화물선의 돛대 위에 올라서서 활을 겨누고 있는 의족의 여인을 찾을 수 있었다.
“저 거리에서 내 손을 정확하게 맞췄다고?”
시작부터 피스톨을 쥔 왼쪽 손을 박살 낸 게 운이라고 보이진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기사들이 튀어나온 거지?’
왼손에 부하가 가져온 붕대를 감으며 바레타는 이를 으득 물었다.
손이 뜨거운 만큼 머리도 뜨겁게 돌아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들이 튀어 나온 걸까.
‘기사……?’
그리고 순간적으로 해적은 의도치 않게 정답에 도달한다.
‘나이트 아카데미?’
불과 어제, 폴탄 해안으로 나이트 아카데미가 훈련을 왔다는 건 들었다.
생각해 보니까 이들이 나타난 것도 어제부터였다.
비교적 최근에 있던 화재 사건 같은 것들도 모르던 걸 떠올리면.
‘거기구나.’
이를 으득 물며 바레타는 확신했다. 이 기사들을 다루고 있는 누군가가 나이트 아카데미에 있다고.
혹은 이들이 전부 나이트 아카데미 소속이거나.
왜 아카데미의 점잖은 것들이 자신 같은 상것들을 상대하러 왔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바레타는 이곳에서 살아나간다면 반드시 그들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이들이 이곳에서 자신들을 살려 보낼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촤르르르륵!
뭔가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뱃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소리.
배가 서서히 부둣가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정박시키기 위해 내려놓은 닻과 항구에 묶어둔 줄이 풀린 것.
“다, 닻이 올라갔나?”
해적 하나가 다급하니 선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고.
부둣가 쪽에는 손을 휘젓는 수인 여자애가 하나 있었다.
허리춤에 매고 있는 태도.
그리고 닻에 연결되어 있던 줄이 말끔하게 잘린 모습.
“어어?”
워낙 무거워서 성인 남성 몇 사람이 함께 옮겨야 하는 닻이다.
연결된 밧줄 또한 그 두께가 상당한데 그걸 혼자서 잘라낸 소녀?
해적인 그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자아!”
콰드드득!
혼란에 빠진 그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톰의 거친 외침.
내리찍은 대검이 해적선 전체를 출렁거리게 만들었고, 반으로 갈라지는 커다란 구멍도 뚫어버렸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톰의 실력은 입증된 셈이나 다름없었다.
“해적 놈들아, 설마 너희가 억울하다고는 하지 않겠지?”
정이 많다.
가족 같은 사이다.
해적여제의 해적단은 의리가 넘치고, 낭만적이다.
그래서 선한 자들이냐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었다.
이들의 우정과 의리, 낭만은 전부 무고한 사람들의 핏물 위에서 펼쳐지는 것들이다.
해적의 본업은 약탈.
해적여제라고 불릴 정도로 리더십이 넘치는 바레타지만 그것을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하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애초에.
“자기 사람한테 잘해주는 건 당연하지.”
톰은 해적 놈들이 의리니 뭐니 그렇게 노는 것 자체가 썩 마음에 안 들었다.
아군에게 잘해주는 게 뭐가 대단한 건가.
뭐, 그건 그가 해적의 생태계를 잘 몰라서 그런 거긴 했으나.
어쨌든.
“원래는 말이야. 너희한테 좀 알아내고 싶은 게 있었거든.”
잎담배에 관해서.
제조범인 저니를 죽인 게 바레타였기에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게 나름 있었으나.
기사단원들도 하루 동안 폴탄 해안에 머물면서 여러 정보를 얻었다.
게다가 이안 아이넬과 도로시가 워즈 과수원이 이상하다는 점을 알아낸 게 꽤나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더는 너희한테 묻고 싶은 게 없어졌어!”
부우우웅!
덩치만큼이나 거대한 대검이 반원을 그리며 크게 휘둘러지자.
해적선의 가장 거대한 돛이 도끼에 찍힌 나무처럼 박살 나며 그대로 기울어 무너진다.
이 배 자체를 수몰시킬 거라는 꽤나 과격한 경고였다.
“이제는 괜히 변수가 될 수 있으면서, 해적질이나 하고 다니는 너희에게 볼일이 없다는 뜻이지.”
“미, 미친놈아! 이러면 너희도 다 죽어!”
“그 갑옷 입고 바다에서 헤엄쳐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아?!”
악에 받친 해적들의 외침에도 톰은 헛웃음을 실실 흘리며 답했다.
“우린 안 돌아가도 괜찮아.”
해적들 중에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건.
오직 바레타뿐이었다.
‘빌어먹을!’
저들은 전부 마나로 이루어진 존재.
결국 여기서 역소환되더라도 내일이면 무슨 문제라도 있었냐는 듯 다시 소환된다는 뜻.
결국 여기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였다.
“다들 뛰어내려!”
왼손을 부여잡고.
그대로 바다로 뛰어드는……!
파악!
거리가 꽤나 벌어졌음에도.
다시금 어깨를 박살 내며 들어온 화살.
바레타는 탄식과 함께 공중에서 몸이 뒤틀리는 기이한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깨에 화살까지 박힌 채로 차가운 새벽 바다에 떨어진 바레타는 코와 입 그리고 화살 탓에 생긴 상처들 사이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빠져버린 탓에 바레타는 몸을 추스르지 못했으나.
함께 빠진 해적들이 그녀를 챙기려던 순간.
섬뜩한 붉은 눈동자들이 바다 속에서 그들에게 찾아왔다.
거대한 입.
매끈한 몸체.
바다에서 서식하는, 상어를 닮은 마수들이 오랜만에 찾아온 호화스러운 먹잇감들을 그대로 입에 쑤셔 넣기 시작했고.
우드드드득!
기사들이 몇 번 검과 창을 휘두르자, 해적여제의 해적선은 그대로 깊은 바다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