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샬롯의 아버지이자 일레인 가문의 가주인 샤렐은 꽤나 기분이 좋은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평소의 생활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일레인이라는 이름이 과거만 찬란할 뿐인지라 마을 관리 업무 정도만 다른 귀족에게 하청 받아서 하는 수준.
쉬는 날도 없이, 그는 자신의 허름한 집무실에서 일을 하는 중에도 히죽 웃음이 흘러 나왔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될지 아니면 안타깝다고 해야 될지.
돈이 없어서 잡무를 대신해 줄 비서도 고용하지 못해 집무실에는 혼자라 히죽거리는 걸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샬롯이 참.’
자신을 닮아서 소심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나이트 아카데미로 떠나기 전, 그래도 은빛사자 기사단 소속의 일레인 가문이니 기죽지 말고, 오히려 당당하게 나가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사실 그게 처음에는 좀 통할지 몰라도 결국 밑천이 드러나면 샬롯이 다른 생도들에 비해 비교적 밀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자신의 딸이 친구들을 데려왔다.
당연히 알 수밖에 없는 레이로즈 가문의 셋째 딸 마리아 레이로즈.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몰락해서 이제는 이름조차 잊혀진 브랜드 가문의 다이니 브랜드.
최근 가장 뜨거운 기사 생도로서, 왕국 기사의 미래라고 일컬어지는 소년.
심지어는 성검까지 소유하게 되면서 그야말로 신이 축복한 아이라고 불리는 이안 아이넬까지.
사실상 이안이 평민이라서 다소 과소평가 되던 부분이 있으나, 성검을 얻으면서 그런 것들까지도 완전히 사라졌다.
벨레스 테오도른이라는 소년 역시 평민이었으나 보통의 실력자가 아니라는 걸 샤렐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의 검은 비록 미완성의 어중이떠중이 수준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봐왔던 수많은 기사들이 눈썰미만큼은 높여줬으니까.
저런 생도들이 은빛사자 연구회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는 부분부터 이미 그는 깊은 호감을 느끼고 있었으나.
사실 레이로즈 가문이나, 성검의 주인 같은 이름값은 그에게 엄청나게 중요하진 않았다.
샬롯이 아카데미에서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친구들을 사귀고, 같이 지낸다는 점.
게다가 딸이 밝아진 모습까지.
샤렐은 마리아와 이안이 아니라 이름 모르는 평민 친구들이 왔어도 똑같이 환영해 줬을 거다.
‘조금 무리를 하는 게 좋겠지.’
이미 어제 마을에 있는 업자에게 얘기해서 돼지 한 마리 잡으라고 지시했고 요리도 따로 마을사람들에게 부탁했다.
소를 잡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사실 돼지만으로도 그에겐 상당히 큰 지출이었다.
마누라 눈치가 보여도 딸의 친구들이 놀러왔는데 그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크흠, 그래도 샬롯 친구들인데. 괜히 애엄마한테 한 소리 듣지는 않겠지.’
일단 일을 벌이긴 했는데 한 소리 들으면 어쩌나 걱정하던 샤렐의 귓가에 들려온 노크소리.
따로 찾아올 사람이 없었기에 샤렐은 의아해 했으나, 문 밖에서 들려온 건 딸의 목소리였다.
“그, 아빠.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지금 말이니?”
분명 아침에 이안 아이넬이랑 같이 마을로 나갔다고 들었는데 점심도 안 먹고 돌아온 걸까?
돼지는 저녁에 먹을 거니까 크게 문제는 없지만, 기사를 지망한다면 많이 먹는 게 좋을 텐데.
샤렐이 일어나 문을 열자 그곳에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샬롯과 멀뚱히 서 있는 이안 아이넬이 있었다.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
‘둘이 기류가 좋아 보였는데.’
딸이 남자친구를 데려온 걸까? 내심 샤렐은 두근거리면서도 걱정스러웠는데.
남자친구면 남자친구지 왜 자신의 집무실까지 갑자기 찾아오는가.
‘설마…….’
샤렐은 잠시 좋지 않은 상상을 했다. 나이트 아카데미가 워낙 남녀사이에 선이 모호한 장소이다 보니 혹시 선을 넘은 건가 싶었다.
특히나 샬롯의 결연한 저 표정은 아비의 마음을 거칠게도 흔들었으나.
“나랑 대련 한번 해줄 수 있어?”
“……대련, 말이니?”
너무나 뜬금없는 제안에 샤렐은 방금까지 자신이 했던 생각들을 모조리 잊고 샬롯과 이안을 번갈아 가며 바라본다.
이안도 굳이 별말 없이 꾹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부탁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이유니?”
어차피 점심시간이니 잠깐 정도는 쉬어도 되지만, 딸이 갑자기 대련하자는 건 다소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샬롯은 막무가내로 말했다.
“부탁해. 대련해 보면 아빠도 알 거야.”
“검을 휘두른 지 좀 되긴 했는데…….”
하지만 그러면서도 집무실에 있는 자신의 검을 손질하는 걸 쉬었던 적은 없다.
샤렐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마당에 가서 준비하고 있으렴. 나도 정리만 하고 내려가겠다.”
그 말을 듣자 샬롯의 표정이 환해지며 그대로 이안과 함께 밑으로 내려갔다.
샤렐은 몸을 돌려 하던 일을 대충 정리하고 거치대에 홀로 덩그러니 걸려있는 검을 챙겨 든다.
오랜만에 쥐게 된 검.
예전, 젊을 때는 유실된 일레인의 검을 다시 재건시키고자 노력해 왔던 과거가 떠오른다.
허름하니 낡은 검은 그가 젊을 적 해왔던 노력의 유일한 증거였다.
이제는 잘 쥐지 않게 되었어도 젊은 날을 추억하며 종종 그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샬롯의 성적이 꽤나 높아졌었지.’
나이트 아카데미에서는 검술 같은 것도 배우니까.
가문에서는 조잡한 잡기술이나 자신이 고안해 낸 겉핥기 수준의 일레인 검술만 가르쳤었다.
샤렐은 나이트 아카데미에서 드디어 꽃을 피운 딸을 향해 미안한 감정이 응어리처럼 가슴에 남아있었다.
제대로 된 검술을 가르쳐주었다면 분명 꽃 피울 수 있는 아이였는데.
문득 자신의 무능과 가문의 고집이 아이를 막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과를 보여주고 싶은 거겠지.’
나이트 아카데미에서 이런 검술을 배웠으니, 일레인 가문의 것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려는 걸수도 있다.
샤렐은 딸이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걸어왔던 과거의 전설에 연연하는 실패의 길을 딸도 걷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정원으로 나오자 샬롯은 여전히 하얀 원피스에 머리도 예쁘게 묶은 채로 검만 한 자루 덩그러니 쥐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기엔 다소 어려운 복장이 아닐까 싶었으나, 소녀의 표정은 결연했다.
“왜 갑자기 대련을 하고 싶다는 거니?”
오래된 자신의 검을 뽑아내며 샤렐이 묻자, 샬롯은 담담하게 답했다.
“아빠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무엇을? 이라는 질문이 혀 위에 맴돌았으나 그는 굳이 촌스럽게 묻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딸이 원하는 대로 직접 경험해 보고, 깨닫고, 인정해 줄 준비를 할 뿐이었다.
‘그렇게 작은 아이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커서, 진정한 기사로 나아가기 위해 가문을 뛰어넘는다.
천천히 자세를 잡은 샤렐.
그러자 샬롯도 부드럽게 검을 쥐며, 유려하게 발을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다.
“……음?”
딸의 자세를 보는 순간, 샤렐은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왜냐면 그 모습이 자신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묘하게 달랐으니까.
자세는 얼추 비슷하지만 왜인지 느껴지는 분위기가 다르다.
의아함을 지닌 채 두 사람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먼저 달려든 건 샬롯이었다.
머리를 묶고 있었기 때문에 분홍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진 않았으나, 하얀 원피스 끝자락은 펄럭이며 거세게 경고해 왔다.
카앙!
깊은 울림이 담긴 검과 검이 맞닿는 소리.
근력 자체는 아직까진 샬롯 쪽이 밀리고 있었기에 샤렐은 손에 힘을 주며 그대로 밀어낸다.
‘봐줄 생각은 없다.’
딸의 길을 응원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순탄하게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이렇게 각오를 다지고 오는 딸에게 봐주면서 가볍게 당해주는 건 오히려 수치심을 주는 행위였다.
그렇게.
거칠게 밀어내려던 순간.
쑤욱!
“어?”
검은 허공을 가르며, 샤렐의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 나왔다.
자신의 바로 앞에서 검을 휘두르던 딸의 몸이 뒤로 쑥 빠진다.
백스텝을 밟아서 빠진 건 아니었다. 그녀의 다리는 요지부동으로 여전히 그 자리에 박혀 있었으나.
허리만 휘어서. 마치 림보라도 하듯이 검을 피해낸 모습.
유연성.
일레인의 검술을 사용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
여성이기에 다소 부족할 수도 있는 근력. 하지만 여성이기에 오히려 유연하게 검을 흘려낸다.
단점을 장점으로 보완한다.
아무런 지지대나 도움도 없이, 내려갔던 그대로 다시 올라온 샬롯은 곧장 주먹을 휘둘렀다.
원래였다면 여기서 이미 끝났지만 샬롯은 일부러 검을 휘두르지 않고 가볍게 투정부리듯 샤렐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아직 보여줄 게 많다는 신호였다.
그 뒤로 이어지는 부녀의 대련.
사실상 샬롯의 일방적인 공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얼추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
샤렐은 자신의 검을 내리며 입을 연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울림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으나 슬픔의 감정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됐다.”
검을 놓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샬롯 역시 천천히 검을 내린다.
아직 더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남아 있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마음이 전달되었음을 알고 있는 것.
“네가…… 여기까지 해온 거니?”
하얀 드레스.
공을 들인 머리 모양.
어여쁜 모습이 마치, 결혼식장에서 자신의 딸을 떠나보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성장한 아이를 언제까지고 품에 안을 수는 없다.
언제 이렇게 큰 걸까.
아직도 자신의 눈에는 참 조막만한 꼬맹이 같은데.
샤렐의 질문에 샬롯은 고개를 저으며 슬그머니 손을 든다.
그녀가 내민 손가락 끝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젊은 소년이 서 있었다.
“이안이 많이 도와줬어.”
그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샤렐은 차분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타인에게 도움을 받는 건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도움들까지도 모두 이용했기에 샬롯은 지금의 검을 완성할 수 있었다.
“선조이신 넬슨 님이 다루던 거랑은 많이 달라. 아무래도 유실된 검술을 그대로 복원하는 건 무리니까.”
“…….”
“게다가 나는 넬슨 님이랑은 아무래도 체격부터 다르니까. 성별의 차이도 있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게 내가 만든 일레인의 검술이야.”
새롭게 세상이 빛을 보게 된 일레인 가문의 검술.
그것은 보면 볼수록 신비한 매력을 품은 검술이었다. 다채로우며 화려하고 유연하다.
분명 하나의 검술임에도 한 가지 표현으로 정의하기 어려웠다.
때로는 흐르는 물과 같고.
때로는 타오르는 불과 같으며.
어느 때는 아름다운 조각과도 같다.
오히려 그렇기에 샤렐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다채롭게 변화할 수 있는 일레인의 검술이기에 지금 샬롯이 보여준 검술도 분명 일레인의 것이었다.
“아름다웠다.”
자신의 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실로.”
어여쁘게 꾸미고 있기 때문도 아니었다.
“꽃과 같더구나.”
그녀의 검술은 아름다웠고.
그렇기에 샤렐은 한 점의 부끄럼 없이 선조들에게 딸의 검술을 보일 수 있었다.
유실되었던 일레인의 검술. 그것이 다시 명맥을 잇게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