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와.”
양손과 발을 쓸 수 없다는 게 불편할 거라고는 당연히 알고 있으나, 막상 이렇게 되고 나니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손과 발을 꽁꽁 묶인 채로 퇴원한 나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아.”
졸지에 움직일 수도 없는 신세가 되어버려 어처구니가 없음에 한숨이 쉬어졌다.
지금은 잠잠하지만 내 안에 있는 마몬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결국 나와 놈은 같은 걸 공유하고 있으니까.
점차 덩치를 불려가는 놈의 감정도 최근 스멀스멀 내 기분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어찌나 그리 화가 많은지.
“아, 짜증 나네.”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툭 하고 한마디 내뱉자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주던 테르토나가 조심스럽게 답한다.
“그, 그래도 녹색 마탑에서 전폭적으로 해결을 위해 지원해 준다고 하지 않았니. 그나마 다행이란다.”
“그게 할 소리냐?”
테르토나의 말에 옆에서 함께 걷던 호우만이 한숨을 내쉬며 일갈한다.
“네가 봉제인형에 이상한 것만 집어넣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가뜩이나 창창한 애 몸에 악령? 어휴!”
“나만 잘못한 건 아닌데…….”
“뭐?”
“…….”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지금 내가 이렇게 된 이유를 나는 제페른의 악령이 몸에 깃들어서라고 설명했다.
마몬에 대한 걸 말할 수는 없는데 딱 좋은 변명거리.
봉제인형 벨에 있던 악령을 내 몸으로 받아냈기에 지금 이 상태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녹색 마탑의 지원까지 끌어냈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악령이 원래 있던 제페른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고.
녹색 마탑에서는 제페른으로 가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다.
듣기로는 로아 제국에 있는 도시라고 하는데 마탑 덕분에 편하게 갈 수 있게 되었다만.
‘아무리 그래도 움직이지 못하는 건 큰일이긴 하네.’
손과 발이 꽁꽁 묶인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건 답답함 이상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녹색 마탑 마법사한테 듣기로는 고향에서 왔다던데. 다시 돌아갈 거냐?”
슬며시 물어오는 호우만.
나를 데려다 줄 생각인 것 같은데 잠시 고민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어머니한테 지금 이 상태를 보여드릴 수는 없으니까요.”
아무리 터프한 어머니라도 아들이 이런 꼴이 된 걸 가볍게 여길 리 없다.
손이나 발이 검게 물들어서 자기 멋대로 움직이면서 나를 죽이려 드는데 그런 모습을 어떻게 보여드리겠는가.
“그건, 맞긴 하네.”
잠시 머뭇거리며 뭔가 위로라도 건네려던 호우만이었으나 딱히 할 말이 없었는지 그냥 끄덕인다.
어차피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녹색 마탑에서 준비가 끝나면 나를 데리러 온다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그냥 로베르담으로 가시죠. 아카데미에서 기다리면 마탑에서 오겠죠.”
“그래, 그게 좋겠구나.”
“내가 마차 표부터 알아올게.”
호우만이 로베르담으로 떠나는 마차표를 알아보기 위해 가버리고. 남은 건 나와 테르토나.
그는 내게 미안한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일단 확실히 해야 할 게 있었다.
“집으로 편지 한 통만 써주시죠.”
“그, 그래! 알았다!”
어머니랑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 부원들에게 내가 돌아가지 못한다는 걸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특급으로 보내면 며칠만 있어도 도착하겠지.
“하아.”
병원으로 돌아가 편지지와 펜을 받으러 간 테르토나.
나는 괜히 구속된 손과 발을 보지 않으려 천천히 고개를 위로 들었다.
하늘이 참 푸르렀다.
* * *
오랜만에 돌아온 나이트 아카데미.
아직 방학이라서 사람들이 몇 없었으나 남아 있는 교수들에게 내 상태를 설명하느라 하루를 사용해 버렸다.
지금도 구속된 채로 침대에 누워있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나한테 단원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내 옆에서 나를 간병하고 있는 한나. 괜히 그녀의 의족에 눈이 가게 된다.
“나도 몰랐어.”
예상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
“어쨌든 생각지도 못한 곳이지만 가능성을 발견해서 다행입니다.”
“그치? 설마 이런 방식으로 마몬에게 대항할 방법을 찾을 줄은 몰랐어.”
당시 녀석이 자신의 영혼에 자신이 있었던 걸 생각해 보면 그쪽으로 파고들면 해답이 보일 수도 있다.
죽기 싫어서 아예 영혼이 되었다는 미친놈이니까.
“……사실 힐다 님이 꽤나 심통이 나셨습니다.”
“응?”
뜬금없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한나는 한숨을 내쉬며 푸념한다.
“마몬을 막기 위해서 그 고생을 했는데 결국 해법이 흑마법이었던 거니까요.”
“아아, 우리 때는 흑마법은 아예 쳐다도 보면 안 됐으니까.”
대악마가 날뛰던 상황.
흑마법은 마몬교와도 연관이 되어 있는 부분이다 보니 관련되는 순간 마몬교라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힐다 자체도 사대원소 마법에 지대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흑마법이 할 수 있는 걸 사대원소가 못할 수 없다고 믿었었다.
“뭐, 상황이 바뀌기도 했고. 흑마법도 300년이 지나면서 나름 발전했을 테니까.”
“그것도 맞습니다.”
어쨌든 힐다가 꽤나 배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기분이 묘하다.
엠버를 소환하면서 마나도 슬슬 넉넉해졌지만. 아직도 힐다를 소환하기 위해선 갈 길이 멀었다.
가르간테가 습격했을 당시.
힐다의 마석 안에 있는 마나를 이용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 그 안에 있던 마나량은 지금의 나로도 아직 부족했다.
‘촉매라도 있으면 좀 가능성이 보이긴 할 텐데.’
하지만 다른 기사단원들과 다르게 힐다는 썼던 숟가락조차도 보물로 지정될 정도다.
그녀의 촉매를 얻는 건 사실상 테러라도 벌이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쉽네, 힐다는 다른 단원들이랑 다르게 순서에 영향도 없어 보였는데.’
기사단원들이 순서에 따라 소환되는 반면, 힐다는 마석을 통해서 즉시 소환됐으니까.
흑마법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법과 관련된 일에서 힐다만큼 도움이 되는 사람도 없다.
“힐다가 안 되면 다른 사람한테 도움을 청해야지.”
다행이게도 나는 은근 마법사들과 연관이 깊으니까.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한나가 힐끔 시계를 보더니 말해준다. 누워있는 내 쪽에서는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알겠다 답하며 그대로 그녀를 역소환한다.
그렇게 잠시 후.
밖에서 들려오는 다소 다급한 발걸음. 노크와 함께 내 대답이 들리자마자 바로 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어온 건 메이지 아카데미의 알프레도 교수와 금발의 소녀, 앤.
알프레도 교수를 부른 건 맞지만 앤까지 올 줄은 몰랐다.
“안녕하세요.”
아무렇지 않게 인사했으나 그게 오히려 두 사람에게는 아프게 다가왔는지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이야기는 다 들었네, 이안 생도. 도움이 필요하다고.”
“어쩌다 이런 일이…….”
본인들 일처럼 슬퍼해 주는 두 사람.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악령을 몸에 뒤집어썼다는 이야기가 심금을 울린 모양이다.
‘조금 미안해지는데.’
악령을 몸에 받아들이진 않았으나, 그것보다 더한 놈이 있으니까 뭐.
그리고 사람들을 구하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건 맞지 않은가.
콕콕 찔리는 양심의 가책을 무시하며 나는 말했다.
“악령이 말한 바에 따르면 놈은 흑마법을 사용하던 마법사라고 합니다.”
얘기가 시작되려 하니 바로 마몬의 기운이 솟구치며 팔이 움직이려 들었으나 이미 완벽하게 결박당했기에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로아 제국에 있는 제페른이라는 도시에서 살던 녀석인데 일단 거기 가서 뭔가 실마리라도 찾을 생각입니다.”
내 말에 순간적으로 앤의 표정이 어두워졌으나 일단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흑마법에 관련된 사안이다 보니 좀 어려울 것 같아서요. 혹시 아시는 흑마법과 관련된 마법사가 있나 싶어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뭔가 있더라도 흑마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마법사가 없으면 그냥 놓칠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나 내게 필요한 건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영혼 계열의 마법이었으니까.
이미 전달했던 내용이었음에도 내 입을 통해서 듣자 알프레도 교수는 탄식이 섞인 한숨을 내쉰다.
“이안 생도, 정말 미안하지만 아무리 나라고 해도 불법인 흑마법에 대해서 알고 있는 마법사는 모른다네.”
“…….”
“자네의 처지는 안타까우나, 이번 일에서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없어 보여.”
진심으로 통탄할 노릇이라며 알프레도 교수는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한 번 쓸어내린다.
원래도 주름진 그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욱 근심이 깊어 보였다.
“그렇, 군요.”
알프레도 교수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제페른에 도착하더라도 흑마법에 대한 무지로 인해 다소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래서 내가 같이 왔어.”
옆에 있던 앤이 앞으로 나서며 나를 내려다본다. 뜬금없이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앤은 주먹을 꼭 쥔 채로 말했다.
“내가 로아 제국 출신이거든.”
“……!”
너무 뜬금없는 고백.
하지만 알프레도 교수는 알고 있었는지 입을 꾹 다문 채로 앤을 바라본다.
용기를 낸 그녀에게 감복한 표정에서 기묘함을 느낀다.
“그리고 제페른은 내가 마법을 배웠던 장소야. 거기는 불법으로 마법 과외를 하거나, 다루면 안 되는 마법을 사용하는 괴짜들이 많거든.”
그럼 앤도 불법으로 마법을 배웠냐는 의문이 순간적으로 솟구쳤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표정을 봤을 때 묻지 않아도 이미 알 수 있었으니까.
“내가 같이 제페른에 가줄게. 아는 마법사 중에서 발이 넓은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라면 분명 흑마법사에 대해서도 잘 알 거야. 잘하면 네 몸에 깃들어 있는 녀석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설마 여기서 앤의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로아 제국 출신인 그녀가 왜 우리 왕국의 메이지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는지 궁금했으나.
알프레도 교수와 앤의 분위기를 봤을 때 함부로 발을 내디뎌서는 안 되는 주제인 듯했다.
그렇기에.
“고마워.”
나는 그저 감사를 표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 *
로아 제국으로 가는 방법.
이게 가장 중요했다.
녹색 마탑에서 알아서 준비해 주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마차를 타고 갈 게 뻔하지 않나 싶었으나.
의외로 녹색 마탑에서 준비한 건 마법의 집대성.
워프였다.
“와.”
붕대로 팔과 다리를 꽁꽁 묶은 상태로 휠체어에 타고 있는 나는 아카데미 운동장에 그려진 마법진을 바라본다.
딱 봐도 복잡한 수식들이 다발로 깔려서는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워프는 처음 보네.”
300년 전에는 아예 불가능하던 기술.
아마 힐다가 봤다면 침을 흘리면서 하루 종일 수식을 분석한다고 자리에서 떠나지를 않았겠지.
“나는 한 번 타본 적 있어.”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는 앤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왔다. 워프를 타보았다 말하는 건 자랑보다는 착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생각해 보니 프나틱스교의 성녀를 봤을 때도 묘하게 시선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뭔가 사연이 많긴 한가 보네.’
뭐, 일단 앤에 대한 건 넘어가고. 나는 아카데미 입구 쪽을 확인한다.
편지를 받았겠으나, 아직 내 본가에 있던 부원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상 오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가도 제대로 말도 못해주고 가는 게 좀 미안했다.
“부원들 오면 말 좀 잘 해주세요.”
“……그래, 너도 조심하렴.”
옆에 있는 학장 로젤리아에게 부탁하자 그녀는 복잡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을 지은 채로 답했다.
내가 이렇게 된 걸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듯했다.
“준비 끝났습니다.”
녹색 마탑의 마법사들의 부름에 앤이 휠체어를 끌고 앞으로 향한다.
“후.”
워프를 타고 로아 제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게 불과 며칠 만에 일어난 일이라는 게 현실감이 좀 떨어지긴 했으나.
마몬에게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나는 워프의 빛무리 속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