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크, 흐으.”
쪼개지듯 반으로 갈라진 녀석의 갑옷.
충격이 그대로 내부로 흘러갔는지 무릎을 꿇은 녀석의 불꽃이 일렁거리며 색채를 잃어간다.
“차이가 심하긴 하네.”
“그, 그러게. 알고는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더 심하다.”
벨레스와 베런, 게다가 마리아까지 순식간에 제압한 흑기사를 상대로 몇 합 제대로 겨루기도 전에 쓰러트린 게 충격적이었던 걸까.
다이니와 샬롯은 혀를 내두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단…… 하군.”
무릎을 꿇은 흑기사는 반으로 쪼개진 방패와 검을 놓친다.
의도한 게 아니라 손에 힘이 풀렸다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그가 어떠한 발버둥도 칠 수 없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명을 따르지 못했음은 분하더라도, 위대한 검술을 눈에 담을 수 있었음에 최후가 후회스럽진 않다.”
“…….”
이제는 진짜 기사처럼 말하고 있는 흑기사. 해골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늠름한 자세였다.
“패자의 관례에 따라 내가 묻는 거에 대답할 생각은 있냐?”
혹시 몰랐다.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한 걸 보면 혹시 내 질문에 답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흑기사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답하지 않는다. 입을 다무는 게 자신의 주군을 위한 충심이라는 의미였고.
“하.”
솔직히 아쉽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네가 마수만 아니었으면 기사단에 스카우트하는 걸 진지하게 고민했을 텐데.”
수인도 있지만.
마수는 진짜 아니지 않은가.
검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곧장 놈을 향해 찔러 넣었고 묵직한 분위기를 강렬하게 뿜어내던 것에 반해 안개처럼 사라진 녀석.
상황이 일단락된 걸 보고 이제야 멀찍이 거리를 두고 지켜보던 놈들이 하나둘 다가온다.
“도,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
가장 먼저 테르토나 샤이먼. 그는 혼란스럽다는 게 표정에서부터 드러나고 있었다.
“설명을 좀 해주렴! 방금 튀어 나온 건 보통 마수가 아닌 것 같은데?!”
“얘기를 들어보니까 프랑트를 점령했다는 마수가 그놈이야?”
“네, 그런 것 같네요. 근데 저한테 뭐 묻지 마요. 나도 제대로 몰라요.”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려고 했으나 호우만의 날카로운 눈초리는 나를 놓치지 않는다.
“아까 해골이 너를 찾아오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
“마, 맞다! 그랬지!”
“…….”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이 부분도 그냥 무식하게 우기고 들어간다.
“몰라요. 나를 노리고 있는지 나도 지금 처음 알았어요.”
이건 진실이었다.
왜 노리는지 알고는 있어도, 이렇게 직접 나를 찾아오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러면 프랑트의 협상은 미끼일 가능성이 높은데.’
마몬이 레비아탄과 벨페고르의 힘을 흡수하면서 훨씬 강해졌던 것처럼.
사탄 역시 자신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서 나를 먼저 노리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인류의 군세와 정면대결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프랑트의 인질들로 시간을 벌면서 외부로는 병력을 빼돌려 나를 납치해 힘을 키우려는 거였겠지.
“이거 진짜 곤란하네.”
그 의미라면 지금 흑기사와 엇비슷한 녀석들이 기사단이라는 이름을 지칭할 정도로 많은 숫자를 채워 넣고는 달려오고 있다는 뜻이지 않은가.
설명을 바라는 시선들이 내게 쏟아지고 있으나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넬슨, 로베르담 밖으로 가서 정찰 좀 해봐.”
손을 뻗어 베히모스를 소환한다.
오랜만에 불려 졌다는 점에서 거칠게 울부짖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얘 타고 다녀와. 프랑트 방면으로 쭉 달려봐. 베히모스는 날 수 있으니까 빠르게 다녀올 수 있을 거야.”
“……베히모스는 단장만 탈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푸릉 하고 콧김을 뿜어대는 베히모스. 나 말고는 태우고 싶지 않다는 기특한 모습을 보였으나.
“그냥 태워. 지금 고집 피울 때 아니야.”
짜증내며 한마디 하자 베히모스도 고개를 숙이며 넬슨을 받아들였다.
예전에는 이런 말에 콧방귀나 뀌었을 텐데 지금은 내가 베히모스에게서 주도권을 많이 가져왔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마 내가 강해진 걸 녀석도 실감하기 때문이겠지.
결국에는 넬슨을 태운 채로 밖으로 달려 나간 베히모스.
넬슨의 비명이 길게 울려왔으나 녀석도 기사니 떨어지거나 하진 않을 거다.
“흠.”
“뭔 상황이야.”
상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나를 보고 있는 부원들과 마법사 둘.
“이만 돌아가. 나는 좀 더 하다 가야 할 것 같아.”
손짓하며 그만 가도 된다고 했으나 아무도 떠나는 사람은 없었다.
피로는 여전히 몸에 남아있으나 내가 떠나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도 남겠다는 생각인 듯했다.
“지쳤잖아. 그만 가 봐.”
나 혼자 책임져야 한다든가 그런 게 아니다. 4시간 정도 이어진 훈련 탓에 생도들은 전부 지쳐 있는 상태였다.
저런 상태로 싸워봤자 다치거나 위험한 상황만 늘어나서 거슬릴 뿐이었다.
“내가 있으니까 걱정할 거 없다. 너희가 하던 역할을 내가 대신할 테니.”
장죽을 입에 물고는 어깨에 자신의 긴 태도를 얹으며 끼어든 윤.
윤이 함께한다는 소리에 생도들은 그나마 안심했는지 결국 등쌀에 떠밀려 밖으로 나섰다.
“혹시 위험하면 불러.”
“도움이 필요해도! 바로 달려올게!”
다이니와 샬롯이 걱정하며 가버렸고.
“내일도 계속할 거라면 오늘 일찍 자두는 게 낫겠지.”
“부상은 심하지 않아.”
베런과 벨레스는 흑기사에게 얻어맞아 생긴 상처를 쓰라려 하며 떠나갔다.
“아, 난 더 할 수 있는데.”
“이안……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정리가 되면 설명해 주면 좋겠어.”
아쉬워하는 마리아와 나라는 존재에게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실리아.
두 사람 역시 마지막으로 훈련장을 떠났고.
남은 건 나와 윤.
그리고 테르토나와 호우만이었다.
두 마법사도 떠나려고 하고 있었으나 그 와중 테르토나가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온다.
“마법진으로 촉매를 소환해서, 촉매에 해당하는 소환수를 불러낸다. 네가 뭘 찾고, 어떤 소환수를 부르려는지 몰라도 소환마법에 있어 역사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소환마법의 역사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테르토나가 말하는 거니 분명하겠지.
쓰게 웃으며 노력하겠다고 말했으나 테르토나가 말하려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나도 나름대로 네가 마법진을 무작정 쏘아대는 걸 계속 보고 있었다. 그런데 방식을 조금 바꾸는 건 어떻겠니?”
“방식을 바꿔요?”
“스승이신 여마법사님이랑 할 때는 마법진을 하나로만 했다고 그랬지?”
“……네, 맞습니다.”
방이 좁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하나로만 했었다. 하지만 테르토나는 혀를 차며 그 부분을 지적했다.
“내 생각엔 하나로만 하는 게 정답 같구나. 괜히 여러 마법진을 통해서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것보다는 아예 거대한 마법진 하나를 사용해서 불러내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
“굳이 따지자면 너는 바다에서 잃어버린 동전을 찾는 거라고 볼 수 있다.”
뜬금없는 비유였으나 찰떡으로 들어맞는단 느낌을 받았다. 실로 나는 넓디넓은 바다 속에서 작은 동전 하나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처럼 여러 마법진을 사용하는 건, 잠수해서 아래를 확인하고 다시 물 밖으로 나오고를 계속 반복하는 느낌이야. 막상 바다 아래를 제대로 보지는 못하고 겉핥기로만 보는 중이지.”
“…….”
“찾기 위해선 아예 잠수를 한 상태로 내부를 둘러보는 게 맞겠지. 소환마법진 하나로 집중해서 진행해 보렴. 뭔가 튀어나와도 소환마법진을 유지하면서 해보라는 소리야.”
그리 말하고 테르토나 샤이먼과 호우만은 떠나갔다.
두 사람은 여전히 방금 사태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아 보였으나 일단은 나를 응원하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결국 남은 건 나와 윤.
다른 기사들도 추가로 소환할까 싶었으나, 마나를 아끼기도 할 생각으로 일단은 윤만 소환해 두기로 했다.
어차피 윤이 있으면 대부분의 마수는 처리할 수 있다. 방금 전 같은 흑기사도 저 대부분에 포함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마나를 사용해서 마법진을 펼친다.
이제 통금 시간이라 여기 있어서는 안 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정도로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후우,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해봐.”
옆에 있는 윤은 거대하게 그려지는 마법진을 내려다보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소환 못 해도 지금 전력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애초에 내가 꼈잖아.”
“흐.”
자신감 넘치게 스스로를 가리키는 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맞는 말이었다. 윤이 우리 기사단에 들어 와줘서 기사단의 전력은 확 올라갔다.
“네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전력을 내고 싶어 하는 건 알겠는데. 과거의 단원들이 아니라 지금 네가 쌓아온 전력들을 봐.”
“…….”
“그렇게 조급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될걸.”
“하.”
입에 장죽을 문 채로 말하는 윤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윤에게 검술이 아닌 다른 부분으로 위로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 맞는 말이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는 힐다와 테르토나의 가르침을 상기하며 다시금 마법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이안 아이넬을 두고 프랑트로 향한 힐다는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프랑트 근처에 왔다.
마차가 프랑트까지는 운행을 안 하기 때문에 일단 가장 가까운 도시까지만 이동한 후, 그 뒤는 날아서 온 것.
옛날처럼 자신의 마나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친구의 마나를 공유받고 있기 때문에 마법 사용은 최대한 제한하는 중이었다.
“쯧.”
프랑트를 눈에 담자마자 힐다는 혀를 찼다. 어둑하게 오염된 검은 성벽부터가 이미 대악마가 이 땅에 현현하여 자신의 요새를 건설했음을 알려오고 있었다.
“이거 진짜 큰일 나긴 했네.”
이미 도시가 점령된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저 안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막을 필요가 있었다.
“뚫는 건 어렵겠지만, 가둬두긴 할 수 있겠지.”
이미 프랑트 성벽 밖으로 쭉 둘러싸고 있는 기사단과 마도병단.
지휘대리인으로 임명된 건 레이로즈 가문의 장녀, 마리안느 레이로즈였다.
힐다도 300년 전부터 이어져 온 유서 깊은 기사단도 있었는데, 둠베스트의 흑곰이나 브릴리언의 레아 기사단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름대로 막아볼 만한데?’
솔직히 전력을 가늠하며 힐다는 의외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인물인 자신들에게 손을 빌리지 않아도, 현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은 멋들어지게 자신들의 미래를 쟁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순간.
부우우웅!
콰아앙!
“뭐야!”
“폭격이다! 투석이야!”
성벽 안쪽에서 뭔가가 길게 날아와서는 이쪽을 향해 떨어졌다.
한번이 끝이 아니고 몇 번이고 동시에 날아드는 그것.
“아, 아니야아! 사람이다!”
투석이 아닌 사람이었다.
시체를 던져대고 있는 성벽 안쪽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흥분하기 시작한 군세였으나.
“어?”
힐다의 눈은 시체들에게 가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뻔하게도.
이미 다 썩어 문드러진 시체들의 살점이 녹아내리며 해골이 되어 일어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