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콰과과과광!
바닥이 터져 나가는 건 어디서도 쉽게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아카데미 바닥은 운동장을 제외한 장소는 대부분 벽돌이 깔려 있었는데 덕분에 벽돌들이 사방으로 튀며 기괴한 풍경을 연출했다.
흙과 벽돌로 된 분수.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기괴하다는 정도의 시선으로 보지 않았을까.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마수들.
키에에엑!
땅을 판 걸로 추정되는 벌레 형태의 마수가 길게 뻗은 자신의 몸을 자랑하듯 주변으로 거칠게 휘두른다.
‘이거 위험하다.’
우리가 버티고 있는 벽들도 하나둘 뚫리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바닥에서까지 놈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솔직히 이제 나이트 아카데미는 방어를 취하는 요새로서의 이점을 완벽하게 잃었다고 할 수 있었다.
‘대악마가 올 때까지 좀 버텨보고 싶었는데.’
결국 지금 사탄이라는 이름의 대악마가 몸에 깃들어 있는 건 로만 레이먼드이다.
나름대로 마음에 드는 후배였고, 레이먼드라는 성을 짊어지고 있는 남자였으니 내가 직접 최후를 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으나.
나 개인의 욕심 때문에 생도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었다. 기사단원들이라면 다시 소환할 수 있지만 생도들은 아니니까.
사지나 다름없어진 나이트 아카데미.
나는 곧장 생도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후문으로 달려서 윤이랑 합류해! 도망칠 거야!”
도망친다는 말에 딱히 기뻐하는 생도들은 없었다. 간단한 반응조차 보이기 어려울 정도로 가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내 말에 바로 몸을 틀어 후문으로 향하는 기사들. 나는 반대로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기사단원들을 그냥 내버려둔 채로 도망갈 생각은 없었기에 그들과 합류해서 빠지려는 의도였다.
이제는 벽을 부수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마수들에게 저항하기 위해서 아예 입구에서 떨어져 둥글게 진형을 갖춘 기사들.
레잔의 방패를 주축으로 기사단원들은 깔끔하게 마수들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생도들을 보다가 기사단원들을 보니 그 차이가 여실히 느껴졌다.
왜냐면 그들은 이런 와중에도 묘한 여유를 몸에 풍기고 있었으니까.
중앙에서 지휘하던 마리는 나를 보자마자 바로 입을 다물었다. 지휘권을 넘긴다는 일종의 신호였다.
“뒤로 빠진…….”
바로 후문으로 후퇴하자고 말하려던 내 시선이 아카데미 밖으로 향한다.
찌릿하고 느껴지는 살의가 나에게 어딜 함부로 도망치냐 위협하고 있었고.
“왔어!”
위에서 억지스럽게 마수들을 막아내던 힐다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나 역시 피부로 느끼고 있었으며, 멀리 있음에도 왜인지 녀석의 눈동자가 정확하게 나를 응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흐…….”
피로에 찌든 숨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 나왔다. 허나, 그러면서도 비릿한 미소가 슬그머니 지어지는 게 묘하게 느껴졌다.
“우습네.”
나를 향해 도전장을 내밀 듯 쏟아내는 살기는 참으로 강압적이면서도 묵직했다.
주변의 공기 자체가 뜨겁게 변하며, 마수들 정도는 같잖게만 느껴졌다.
검은 갑옷과 안개를 전신에서 흩뿌리는 덩치 큰 검은 사자. 손에 쥐고 있는 건 과거 영광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사자의 검.
“같은 전장에 서고 싶다던 꿈이 이렇게 뒤틀리게 이뤄지는 걸 원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
슬픈 남자였다.
바라왔던 꿈은 숭고했으며, 지니고 있던 신념은 올발랐다.
하지만 끝은 그렇지 못했다.
라인 레이먼드인 나의 등을 쫓아서 따라왔다. 그에게는 절대로 굽힐 수 없으며, 타협할 수 없는 게 바로 나라는 존재였으나.
굽힐 수 없기에 부러졌다.
타협하지 못했기에 결국 결과는 저것이었다.
“네가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을 게.”
나였어도.
분명 저런 선택을 했을 테니까.
그러니까.
“부단장, 명령을 하달한다.”
후퇴하려던 발걸음을 되돌린다. 대악마로서 뒤틀렸다고 해도 저 남자의 시선을 받고도 등을 보인다는 건.
우상으로서 할 일이 아니겠지.
“길을 뚫어. 후배에게 쉼을 주러 간다.”
억지스러운 명령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냉정하게 현 상황에서는 적의 심장부로 파고드는 행위보다는 도망치는 게 옳으나.
“존명.”
이곳저곳 마수의 외침이 들려오고 있음에도 마리는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내게 고개 숙였다.
그게 끝이었다.
기사단원들은 둥글게 말았던 진형을 곧바로 풀어헤친다.
따로 말은 없었으나, 자연스럽게 화살촉이 연상되는 쐐기진형으로 변하며 앞으로 나설 준비를 한다.
“중앙 부분은 하울로스가 담당한다. 엠버와 레잔은 좌익, 우익으로 찢어져서 각 축을 담당해.”
내 말에 우리 기사단에서 유일하게 창과 방패를 같이 들고 있는 하울로스가 재빠르게 화살촉의 중심 부분으로 이동했다.
그 옆을 차지한 건 도로시와 톰.
이제부터는 방어가 아니라 상대의 진형을 뚫고 나가야 하는 상황인지라 그런 면에서 가장 특화된 둘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따라 붙었다.
베히모스를 타고 갈까 고민도 했으나 그랬다가는 단순히 혼자 돌진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게다가 녀석은 나름대로 비장의 한 수가 되어줄 수 있었기에 지금 당장은 아끼기로 했다.
척!
하울로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는 순간 모든 기사들이 동시에 앞으로 치고 나서기 시작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호흡.
마몬의 군세를 상대할 때도 우리만큼 뛰어난 기사들은 없었으나.
자그마치 300년.
함께해 온 우리는 이제 단순히 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전장에 나서는 마음가짐조차 확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흐핫.”
옆에서 들려온 웃음소리.
쌍둥이 기사, 엘빈이 검을 쥔 채로 묘한 소리를 흘리자 바로 옆에 서 있던 켈빈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대검을 들고 하울로스의 바로 옆에서 달려들고 있는 톰은 아예 환하게 웃고 있었고, 평소 무뚝뚝한 편인 한나조차 조금 가벼운 표정이었다.
막내 라인이라고 볼 수 있는 넬슨과 릴리 역시 검을 휘두르는 손이 가볍기 그지없다.
누군가 지금 상황을 본다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방벽이 뚫렸는데 도망치는 게 아니라, 아예 적의 머리를 치러 간다는 발상 자체도 쉽게 나올 수는 없으나.
사실상 죽음밖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 마수들 무리와 대악마를 향해 무작정 돌진하고 있는 모습도 기괴하게 보이겠으나.
“다행입니다.”
내 옆에 있는 마리 역시, 드물게 환한 미소를 지은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모두가 자리를 지켜서.”
그녀의 말에 나는 천천히 기사들을 한번 쭉 훑어본다.
확실히 전투가 시작되고 시간이 좀 지났으나 이번에는 아무도 역소환된 사람이 없었다.
“그래, 다행이네.”
마리를 향해 나 역시 웃으며 끄덕여주자, 그녀는 검을 꽉 쥐고는 앞을 바라본다.
내 옆을 지키면서 혹시라도 놓친 마수가 달려드는 걸 방지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격한 떨림. 공포나 두려움 같은 건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감동과 더불어 찡한 울림이 담겨 있었다.
“드디어 단장님의 옆에서 검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마리…….”
“300년 전, 홀로 대악마를 막으셨을 때. 눈을 감은 단장의 앞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네가?”
그건 조금 놀랐다.
마리가 우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으니까.
되물음은 조금 센스가 없었던 걸까. 마리는 별다른 대답 없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차라리 함께 싸우다 제가 죽는 게 더 나았을 거라고 몇 번이고 후회했습니다.”
“…….”
“당신에게 쏟아지는 마수들을 옆에서 막아주지 못했다는 게, 제게 짙은 후회로 남아 이 시대까지 오게 만들었습니다.”
천천히 마리의 시선이 전장으로 향한다.
득실거리는 마수들.
쏟아지는 비명과 핏물.
고고하게 우리를 내려다보는 검은 갑옷을 걸치고 있는 대악마.
절망적인 상황이자 비극이라고 볼 수 있으나.
“이 시간을 어찌나 고대해 왔는지.”
마리는 오히려 목소리에서 약간의 흥분이 느껴졌다. 이런 부분을 보면 피는 이어지지 않았어도 마리아랑 살짝 닮은 것 같기도 했다.
“300년 전과는 다릅니다.”
“…….”
“길을 뚫겠습니다. 다른 마수들은 단장의 발끝에도 닿지 못할 테니…….”
밀려나는 마수들.
어느새 우리는 로베르담의 시내까지 내려왔고, 대악마 역시 준비하듯 검을 뽑아 든다.
“우리에게 승리와 영광을 안겨주세요.”
뭔가를 이어받은 기분이었다.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발에 힘이 더욱 들어간다.
발자국에 푸른빛이 남는다. 안개처럼 발끝에서부터 퍼져가는 마나는 곧이어 하나의 선으로 변해간다.
이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대악마가 곧바로 자신의 군마를 몰고 앞으로 치고 나선다.
대지를 울리는 발굽.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역병처럼 번져가는 불쾌한 공기.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대륙의 악의를 모아놓은 것만 같은 괴물.
전장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과시하며 이쪽의 진형을 완전히 망가뜨리겠다는 각오를 보이는 놈을 보며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하울로스!”
방패와 창을 들고 가장 정면에서 밀고 나가던 하울로스는 내 부름에 다급하니 몸을 옆으로 뺀다.
그에 발맞춰 옆에 있던 도로시와 톰도 깔끔하게 움직이며 자리를 비워주었고.
덕분에 텅 빈 정면.
그 앞으로 내가 치고 들어갔다.
예전에는 마몬과 그의 군세들까지 상대했던 탓에 제대로 대악마와 일대일의 상황이 나오지 못했으나.
지금은 다르다.
기사들이 내 옆과 뒤를 지켜주고 있으니.
오직 정면, 나를 향해 달려드는 대악마에게만 집중하면 되었다.
거대한 사자는 그대로 나를 짓밟겠다면서 달려들었으나.
바닥에 흩뿌려지던 마나는 이미 마법진으로 완성되었고.
푸르릉!
가소롭다는 듯 교만하고 투쟁심 짙은 투레질 소리가 발끝에서 울려왔다.
달리고 있는 내 밑에서 어느새 등장한 베히모스가 그대로 검은 사자를 들이받았고.
콰아앙!
군마가 충돌했다고 보기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소음이 길게도 울려 퍼졌다.
하지만 희비는 분명하게 엇갈렸다.
뒤로 물러나며 얼추 부상을 입은 베히모스. 하나, 사자는 어딘가 부러졌는지 절뚝거리면서 입에서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군마들끼리의 힘 싸움은 이쪽의 승리.
베히모스의 기습적인 등장이었음에도 녀석은 큰 동요 없이 빠르게 검은 사자에서 뛰어 내려서는 자세를 잡았다.
양손으로 쥔 사자의 검은 나의 성검처럼 빛이 바래 어두운 색을 띄고 있었다.
“씨, 그게 얼마나 귀한 건데.”
나한테 성검을 준 교단에서 내 말을 들으면 내로남불이라며 역정을 내겠으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 역시 베히모스에서 내려 검을 쥐었다.
“대악마를 상대한다고는 말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까지 해서는 한 남자의 인생의 종막이 너무나 비극으로 끝이 나버리니까.
“로만,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
레이먼드라는 성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끼리 어디 검을 겨루어보자.
사방에서 쏟아지는 마수들.
이제는 쐐기진형에서 다시 둥근 원형으로 바뀌었고, 기사단원들이 하나의 벽이 되어 나와 로만이 싸울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로만은 내 말을 이해라도 한 것처럼 크게 조급해하지도 않았고, 주변의 다른 기사들에게 시선을 주지도 않았다.
그저 검은 눈동자가 나를 지그시 응시하며 싸움을 준비했고.
나 역시 그를 마주보며 검을 들어올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동시에 땅을 박차고 들어가며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검의 소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