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깊고 진한 울림이 담겨 있는 공방.
단순히 검과 검이 맞닿는 것만으로도 그것에 여러 의미가 담길 수 있다는 건.
수많은 강자들을 상대해 오면서 몇 번이나 느껴왔던 감정이었다.
마리와 대련을 할 때도 그러했고.
윤이랑 검을 맞댈 때도 그랬으며.
300년 전, 각기 자신의 기사단을 이끌던 기사단장들과의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휘두르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자세한 대화를 나누거나, 검이 맞닿는 것만으로 상대의 사고를 파악하고 그런 건 절대로 아니지만.
그래도 당시 검을 맞대고 있는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묘한 감각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게 정말 다행이야.’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뻤다.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현 상황을 통해서 전해져 오는 기묘하면서도 동일한 감각 덕분에.
내 앞에 있는 거대한 존재가, 대악마 사탄이 아니라 로만 레이먼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신체 자체가 로만의 것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로 그가 검을 휘두르고 있는 걸까?
혹은 나와 마몬처럼 서로 주도권을 두고 팽팽하게 내부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을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지금 내가 맞서고 있는 건 레이먼드라는 이름으로 이룩된 검.
등 너머로 보던 나의 검술을, 300년이라는 기간 동안 수많은 검사들이 공들여서 따라잡은 것.
당연하지만 검술에 차이는 상당히 많았다.
기본적인 베이스가 나의 검술이었다고는 해도, 30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수정하고, 보완해 왔겠지.
카앙!
다시금 검과 검이 맞부딪친다.
사자의 검은 주인도 알아보지 못하고 격렬하게 나의 목을 노려왔고, 그에 응수하며 성검을 맞댄다.
“후.”
이미 예전에 아카데미에서 로만과의 대련을 통해서 겪어본 적은 있었으나.
그건 목검을 이용한 대련이었을 뿐.
지금처럼 진검이 휘둘러지며 서로의 목숨을 앗아 가려는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부웅!
높게 치켜 올린 검을 양손으로 쥐는 로만. 그의 양손에서 스멀스멀 올라가는 거센 기운이 검을 감싸며 위협적인 바람소리를 쏟아낸다.
근처에 닿는 모든 걸 찢어내고 있는 사탄의 기운. 놈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것을 나를 향해 휘둘렀다.
묵직하고 방대하다.
일정한 속도로 내리 앉는 검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단순히 사탄만의 힘이 아니었다.
이는 로만 레이먼드가 휘두른 레이먼드 가문의 검이었다.
“단순히 가짜라고 말할 수는 없겠네.”
아니, 오히려 사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검술의 원류는 내 손에서 시작되었으나, 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다.
그것에 내 이름을 붙여서 말하는 꼴이 우스우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이 정도면 내 이름 같은 거 따지 않았어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야.”
파아아악!
마몬의 기운과 마나가 동시에 전신에서 흩뿌려진다. 대사자 깃발을 통한 보조마법이 전신에 쏟아지며 순간적으로 몸이 강화된다.
“너희가 만든 자랑스러운 검인데.”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 넣지 않으면 패배한다.
사탄의 힘은 덧붙여졌을 뿐.
저것은 30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라는 존재를 연구해 온 검사들의 노력의 결실이나 다름없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내려오는 타이밍에 맞춰 검을 위로 휘두른다.
자칫 잘못해서 저게 대지에 내려앉는 순간, 주변에 있는 기사단원들에게도 후폭풍이 쏟아지게 된다.
“크, 으윽!”
이를 꽉 물고 검을 들어 올린다.
손이 덜덜 떨려오며, 밟고 있는 땅이 움푹 파이기 시작하지만.
비스듬하게 세워진 검만큼은 여전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300년의 무게는 실로 경이로웠으나.
“아……!”
그것을 휘두르는 건 검을 쥐고 있는 기사.
분명 훌륭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검이었으나, 대악마라는 불순물이 섞여있는 검 따위에 밀릴 생각은 없었기에.
“아쉽네!”
부우우우우웅!
거칠게 밀어내는 바람이 나를 중심으로 퍼져간다.
위를 향해 휘둘러진 검은 어느새 제 궤도를 그리며 종착지에 도착해 있었고.
레이먼드 가문에서 쏟아낸 거대한 일검은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검을 베어내다.
기사들끼리 싸우면서 종종 하는 말이었다.
상대의 기술을 완전히 파훼하거나, 이겨냈을 때 하는 말이었다.
하늘이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 아래로 생긴 마나의 잔재, 블루 클라우드.
우리의 공방으로 인해 흩뿌려진 마나가 옅은 안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후, 우우.”
흐르는 땀을 닦으며 천천히 놈을 노려본다. 정면에서 기술이 박살 나서 손이라도 저릿한지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받아낸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을 쥔 손을 슬쩍 내려다보자 혈관들이 터졌는지 피가 팔뚝을 타고 흘러내려 손가락 끝에 닿고 있었다.
손에 감각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방금 검을 쥔 오른손을 한번 들어보려고 했는데 움찔거릴 뿐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낭패인데.’
목숨이 날아갈 뻔한 상황에서 오른팔 하나 정도만 사용 불능이 된 걸로 해결을 본 거면 사실 깔끔하다고 말해도 되겠으나.
중요한 건 다음이었다.
아직 싸워야 하는 상황인데도 검을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때.
놈의 입가에서 연기가 흘러 나왔다. 검은빛의 안광에 불길함이 더욱 가중되더니 놈은 똑바로 나를 쳐다본다.
“참.”
한마디도 없던 녀석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일종의 비웃음에 가까웠다.
이미 힐다에게 놈이 말할 수 있다는 건 듣긴 했으나, 아무 말도 없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간 건가?’
분위기가 달라진 걸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그런 걸로 보였다.
사자의 검까지 바닥에 꽂아 넣고는 이쪽을 보며 다시금 혀를 차는 녀석.
“우습게도 싸우는구나.”
“말 한마디로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드는 거 참 쉽지 않은데.”
대악마라 그런가.
진짜 한마디 내뱉은 걸로 굉장히 불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단순히 나를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로만이 내게 보여주고 싶어 했던 레이먼드의 검까지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찌 우습지 않을 수 있겠나. 가장 강한 무기들을 서로 안에 숨겨둔 채로 고작 검이나 휘두르며 목숨을 걸었다고 싸우는 모습이.”
“……가장 강한 무기?”
무슨 소리인가 했으나 사탄의 손끝이 내 가슴을 가리킨다.
“네놈 안에서 음흉하게 나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그놈을 말하는 거다.”
“…….”
“솔직히 놀랐다. 레비아탄과 벨페고르마저 그렇게 먹어치울 줄은 몰랐으니까. 탐욕이라는 이름이 같은 대악마들에게까지 닿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사탄의 말투가 다소 부드러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로만의 의지가 사라지니 사탄 쪽에서 살의가 천천히 거두어진다.
“원래는 네놈을 흡수하려 했다. 마몬이 했는데 나라고 못할 건 없으리라 생각했지.”
“원래는?”
그럼 지금은 바뀌었다는 말인가?
내 물음에 사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그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다른 대악마 둘을 삼킨 건 단순히 마몬이라는 대악마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마르지 않는 갈증.
채워지지 않는 욕망.
끊임없는 탐욕.
그런 것의 집대성이라 볼 수 있는 마몬이었기에 몇 없는 동족인 대악마들까지 삼킬 수 있었고.
“그리고.”
사탄은 조금 뜬금없지만 계속 거슬리던 이름들을 내뱉는다.
“천사들이 네놈을 원하는 게 바로 그런 이유겠지.”
“천사들이…… 마몬을 원한다고?”
이건 또 굉장히 뜬금없는 소리였다. 기묘한 표정이 지어지며 되묻자 그는 덤덤하니 답해왔다.
“우리 대악마들은 일정 주기를 두고 부활한다.”
“알고 있어.”
힐다가 이미 말해줬던 정보였다.
그들은 인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날 수도, 아니면 지난번처럼 소환마법을 통해서 나타날 수도 있다.
이건 단순히 우리가 아는 지식 내에서만 말했을 뿐. 분명 더 괴상하고 다채로운 방법으로 부활하겠지.
“그래서 우리 애들이 너희 막겠다고 이렇게 개고생하면서 나 따라온 거잖아.”
비극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대악마라는 존재들을 막기 위해서 대륙은 끊임없이 투쟁하고 싸워야 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우리는 대륙에서 부활하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다른 장소에서 태어난다는 소리냐?”
내 질문에 사탄의 손가락이 하늘을 가리킨다.
“천사 놈들이 사는 천계. 우리 역시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부활 역시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
“계속해서 부활하는 우리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천사들이 결국 이 땅으로 내려 보낸 것이지.”
타천 같은 건가 싶었다.
천사와 악마라는 건 동전의 양면처럼 전혀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으나, 떼어놓기 힘들어 보였으니.
하나, 악마들이 어째서 그곳에 천사들과 함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사탄은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그는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입에 담았다.
“하지만 우린 늘 방법을 찾아왔다. 대륙을 점령하고, 다시 천계로 올라갈 방법을.”
“점령한다는 걸 더럽게 쉽게도 말하네.”
짜증을 내보았으나 놈은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놈들의 입장에서 우리는 골칫덩어리였겠지. 죽여도 계속 부활한다. 결국 우리를 구속하거나, 봉인시켜 두는 방법뿐이었으나 그것도 영원할 수는 없다.”
“…….”
처리할 수 없는 쓰레기인가?
마몬이 순간적으로 내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 으르렁거리는 느낌이 들었으나 곧바로 억눌러 주었다.
“그런데 마몬이 동족들을 먹어치우면서 해결이 된 것이다.”
“얘가 먹으면 다시 부활을 안 하는 건가?”
내 말에 사탄은 정답이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천사들이 내가 이곳까지 오게 인간의 포위를 뚫어준 것도 아마 그러한 이유이겠지.”
프랑트를 포위했을 때 쏟아졌다던 빛 무리. 그것 때문에 사탄은 결국 포위를 뚫고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이유가.
“나한테 먹히기 위함이었다고?”
“놈들의 의도가 그렇다는 뜻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역으로 네놈을 먹어치울 생각으로 이곳에 왔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차린 지금.
사탄은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악마에게.
“마몬, 나와 손을 잡자.”
“…….”
“동족의 힘을 삼킨 지금의 네가, 그 남자의 몸을 뺏으며 대륙에 부활하기만 하면 된다.”
마몬의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뜨거운 숨이 가슴 안에서 불어오는 느낌과 더불어 강제적으로 막아뒀던 사령마법이라는 쇠사슬이 거칠게 뒤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함께, 모든 걸 삼키면 되는 거다. 이 빌어먹을 대륙의 인간들도. 우리를 쓰레기처럼 다루며 갖은 모욕과 수모를 주었던 천사들도…….”
꾸득.
거칠게 주먹을 쥔 사탄이 단호하게 선언한다.
“나와 함께 모두를 죽이자. 그것이 우리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각인이 새겨진 가슴이 마구 떨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을 기다려왔다는 것처럼, 마몬은 더없이 격렬하게 요동치며 나를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입 밖으로 튀어나온 나와는 다른 목소리. 마몬의 목소리는 깊고 깊은 울림을 담고 있었고.
아까까지 움직이지 않던 내 오른손이 저절로 위로 향하며 사탄과 손을 잡으려 했으나.
“어디서 개소리야.”
내 왼손이 오른손을 밑으로 탁 쳐내며 짜증이 잔뜩 섞인 표정을 지었다.
“누구 마음대로?”
떡 줄 사람 생각도 안 하는데, 벌써 내 몸 가지고 자기들 거라고 착각하는 멍청이들을 보고 있자니 짜증을 넘어 혐오가 올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