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일생을 마무리 지을 장소.
꽤나 그럴듯하게 들렸으나 결국 여기서 절대로 탈출하지 못한다는 의미일 뿐이었다.
잔인한 말일 수 있겠으나 의외로 나는 담담하니 받아들였다.
내가 걱정하고 있던 건 여기서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늙어죽는 게 아니라, 단원들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었으니까.
“위협에 핀트가 어긋나있는데.”
마른 반응을 보여주자 마몬은 콧방귀를 뀌며 대꾸한다.
“위협한 게 아니다. 그저 어리석은 네놈을 비웃어주려 했을 뿐.”
다시금 내 혀를 통해서 말하는 마몬. 아까부터 좀 거슬려서 눈살이 찌푸려진다.
“내 입 안 쓰면서 말 못 하냐? 못하면 그냥 다물고 있어.”
“너도 지금 내가 다물면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작정 있어야 한다는 걸 알 텐데.”
내가 말을 하자마자 마몬이 말을 하니까 숨을 쉴 틈이 없다.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짜증날 수가 있나 싶었다.
방금 전 대화했던 아스모데우스 때문에 대악마를 향한 시선이 조금은 달라질 뻔했던 게 다시 제자리를 찾아왔다.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짜증이 몰려왔다. 워낙 악연으로 묶여있는 녀석이라 대화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이 ‘새장’이라는 장소에 대해서 놈이 뭔가 알고 있어 보였기에 이번에는 이쪽이 입을 잠시 다물어야 할 것 같았다.
“여기에 대해서 아는 거 다 말해 봐. 숨 쉬는 거 생각하면서 말해.”
나름 밀리지 않으려 으름장을 놓은 후, 입을 다물었고. 잠시 후 내 입이 서서히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는 천사들이 우리를 가둬두기 위해 만들어놓은 새장이다. 대악마들은 천사와의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이곳에 갇힌 채로 여생을 보내왔지.”
“하지만 우리를 모두 가둬둘 수는 없었던 거야. 천사 놈들이라고 해도 모든 대악마를 자신들의 거처에 두는 건 부담스럽기도 했을 테고 말이지.”
“그래서 녀석들은 우리를 네놈들의 땅으로 버리던 거다. 그리고 우리는 네놈들을 통해서 힘을 키워 다시 천사들에게 복수를…….”
흐어어어업!
바로 놈의 말을 틀어막고 입과 코를 통해 호흡한다.
“켁! 켁켁!”
몇 번인가 헛기침을 쏟아내며 머리끝까지 뻗어 오른 화를 억눌러본다.
“숨 쉬면서 말하라고 했지.”
뭔가 대답이 올라오려 했으나 그냥 막아버렸다. 숨을 다시 고른 후, 마몬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다.
“복수를 하려던 거다. 우리를 가둔 오만한 천사들에게. 하지만 그것도 다 끝났군.”
“끝났다고?”
“그래, 왜냐면 내가 대부분의 대악마를 잡아먹었으니까.”
마몬의 말에 의하면.
대악마의 숫자가 부담스러워 지상에 방류시켰다는 소리. 그런데 다시 이렇게 잡아들인 이유는 숫자가 줄었기 때문이다?
“네가 잡아먹었으니까?”
“우리가 잡아먹었으니까.”
굳이 말을 정정하는 마몬.
어쨌든 자기가 잡아먹은 거면서 굳이 나한테까지 뒤집어씌우는 게 같잖다.
“이제 천사들이 대악마의 숫자 때문에 부담스러워할 필요가 없어진 거다. 내가 거의 다 먹어치웠으니.”
“…….”
놈의 말에 답하지 않고 잠시 고민하고 있자니 마몬의 탄식에 가까운 목소리가 쏟아진다.
“이런 거였어. 천사 놈들이 내가 다른 대악마들을 잡아먹는 데 역으로 도움을 줬던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던 거야.”
“…….”
“사탄, 어리석은 놈. 천사들의 그물망이 머리 위에 얹어진 것도 모르고 쫄랑쫄랑 내게 찾아왔구나.”
“아, 조용히 좀 해봐!”
팍 짜증 내자 그제야 조금 조용해진 마몬.
천사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동족의 힘까지 흡수해 가며 무작정 먹어치워 갔던 행위들이, 오히려 천사들의 골칫거리를 없애준 셈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악마를 먹어치워도 결국 다시 부활할 거라 생각했었으니까 알 수 없었다.
‘나름대로의 여정이 결국 독으로 끝났다는 소리일까?’
의문이 살짝 들었다.
어쨌든 내가 이 장소에 있는 걸 보면 천사들은 나와 마몬을 가둘 수 있다고 확신하고 데려왔으니까.
그런데 내가 죽으면 마몬은 다시 다른 곳으로 가서 부활하게 되는 거 아닐까?
“아무래도 새장에 대해서 네가 모르는 게 더 있는 것 같은데.”
300년 전부터 시작해서 나와 계속 같이 있었던 게 이 녀석이니까.
아무래도 그 사이에 천사들이 새장에 뭔가 변화를 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너무 허술하니까.
“아스모데우스한테 물어볼 필요가 있겠어.”
결국 내 발걸음은 아스모데우스가 떠나간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녀라면 뭔가 알고 있겠거니 싶어서 다가갔는데.
“흑.”
“…….”
“흐윽.”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다시금 내 가슴을 아프게 찌르고 들어온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는 생각이 확 들면서 괜히 내가 나쁜 놈처럼 느껴졌다.
“저기…….”
“뭐야.”
내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부르자, 원망에 가득 찬 눈동자가 쏘아 들어온다.
축축하게 젖은 눈가. 피부 자체가 붉은색이라서 크게 티는 안 나지만 눈물자국이 분명하게 있었다.
뭐라 말해야 할까.
잠깐 고민하는 순간, 마몬이 먼저 선수를 쳤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대악마라는 자가 인간 따위에게 사랑을 품고 질질 짜고 있는 꼴이라니! 죽어간 다른 악마들이 이걸 봤다면 네년을 찢어 죽였으며, 기록된 모든 역사서를 전부 불태워 후세에도 숨겼을 거다!”
숨도 쉬지 않고 쏟아낸 폭언.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는다. 아무리 그래도 상처받은 애한테 너무 말이 심한 게 아니냐고 한 소리 해주려고 했으나.
잊어선 안 됐다.
상대도 대악마라는 걸.
아스모데우스는 벌떡 일어나서는 갈 곳 잃었던 증오와 분노를 나를 향해 쏟아낸다.
“인간의 몸에 잡힌 채로 다른 동족들을 먹어대다가 결국 여기에 끌려온 주제에 뭐?”
“잠깐만.”
검이라도 소환하고 싶지만 소환되지 않는다. 결국 내가 선택한 건 마력검.
아스모데우스의 길고 날카로운 손톱이 폭풍우처럼 휘몰아치고 들어왔다.
원래라면 마력검 수준으로는 절대로 못 막을 위력.
하나, 사탄을 흡수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마나를 옹기종기 모아서 만든 마력검조차도 나쁘지 않은 검이 되어주었다.
챙! 채앵!
“네 탐욕 때문에 다른 대악마들이 다 죽은 거야! 우리가 이렇게 천사들의 새장에서 결국 영원을 보내야 하는 이유도 바로 너 때문이라고!”
감옥 내에서 울려오는 아스모데우스의 외침은 다소 공허했다.
마력검 자체가 견고해지긴 했으나 그녀의 공격 자체도 힘이 부족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아, 진짜!”
마몬의 외침이 나를 통해서 쏟아져 나간다. 좀 다물라고 해주고 싶어도 놈은 다시금 말을 쏟아낸다.
“결국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당연하다! 나는 동족들의 피와 살을 먹어치워 그들에게서 불사를 앗아갔으며!”
검을 휘두르면서 호흡을 유지하는 게 힘들다. 억지로 말을 하면서 코릍 통해서 호흡을 이어나간다.
“그것을 이용해 이 새장에서도 탈출할 것이고! 결국 나를 베어 넘겼던 이 인간의 몸까지도 먹어치울 것이다!”
“미친 소리 하고 있네!”
이게 가만히 있어주니까 정말로 자신이 몸을 지배했다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바로 다시 주도권을 가져온다.
어느 순간부터 마몬이 나의 몸을 다룰 수 있게 되었던 것처럼, 나 역시 그의 힘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
힐다의 사령마법은 사탄을 먹어치우면서 풀려버렸지만 그것을 통해 배운 요령 또한 아직 남아있다.
마몬이 나를 지배해 가려던 것처럼.
나 역시 마몬을 지배하는 일에 게으름은 없었으니까.
“끄으으!”
마몬을 억누름과 동시에 손이 힘이 들어간다.
아스모데우스의 손톱을 쳐내며 그대로 반대 손에서 다시 새로운 마력검을 뽑아냈고.
채앵!
길게 자라난 손톱을 무더기로 잘라내며 그녀를 밀어냈다.
콰당!
힘에서 밀려 뒤로 넘어진 아스모데우스가 멍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오랜 시간 새장에 갇혀 있느라 전투에 대한 감각이나,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던 덕분에 꽤나 쉽게 이길 수 있었다.
“물어볼 게 있어.”
갑자기 둘이 싸움을 시작해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샐 뻔했지만. 내가 그녀를 찾아온 이유는 새장에 대해서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 천사들은 여기 있으면 탈출 못한다고 생각한 걸까? 어차피 너희도 시간이 지나면 죽…….”
말하려던 내 입술이 뚝 하고 굳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말하면서 내가 깨달았으니까.
몇백 년이나 지난 일을 아직도 현생이라고 아스모데우스가 생각했던 건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을 원천봉쇄한 감옥의 구조, 간수 하나 없는 황량한 내부.
“죽을 수 없구나…….”
중얼거린 내 목소리에 아스모데우스는 흠칫 떨며 나를 바라본다.
아무래도 정답이었는지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답했다.
“맞아. 여기선 죽을 수 없어.”
“…….”
“여기에 들어올 수 있는 대악마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어. 그만큼 민감한 감옥이라는 소리야. 또 우리가 모여 있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
그런데 숫자가 확 줄었으니.
그냥 집어넣어서 영원이 가둬두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시간에 대한 개념이 잘 잡히지 않았던 거구나.”
그냥 시간이 고정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한 장소.
내 말에 아스모데우스는 다시금 울적해졌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벌떡 일어난다.
“물어볼 거 다 물어봤지? 이제 나한테 찾아오지 마. 나는 너랑 얘기 나누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아스모데우스는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가서는 웅크리고 앉는다.
처량한 신세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광경. 하지만 이제 저게 내 미래나 다름없었다.
굳이 좀 더 나은 게 있다면 마몬이라는 불쾌한 불청객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정도겠지.
“후우.”
한숨을 내쉬며 기지개를 켠다.
뭐, 대강 상황은 알았다.
굳이 더 이상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대자로 누워서는 위를 올려다본다.
천장도 보이지 않는 어둠.
옆에 띄워뒀던 마나의 빛도 꺼트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든 말든 아무런 변화도 없지만 하여튼 눈을 감았다.
고요함.
정적.
그 속에서 나는 서서히 잠에 들어간다. 의식을 놓으며 점점 몸에 힘이 풀려가는 순간.
“지금 뭐 하는 거지?”
입이 또 멋대로 움직이며 걸걸한 목소리를 토해낸다. 억지로 억눌러놨던 마몬이 다시 얼굴을 내민 거였다.
“뭐 하긴 쉬어야지.”
담담하니 답하자 안에 있는 마몬의 감정이 뒤틀리듯 역정을 낸다.
말은 하지 않아도 감정 정도는 느껴졌다.
결국 한 몸이었으니까.
“쉬어? 지금 장난하나? 여기서 포기한다고?”
“…….”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단 한 번도 쉬지 않았던 게 네놈이다. 다른 대악마는 물론이고, 전성기의 나를 앞에 두고도 검도 놓지 않았던 게 네놈이란 말이다!”
나름대로 나를 고평가 하고 있었나.
‘하긴.’
나도 굳이 대악마들 중에서 가장 강한 놈을 꼽으라면 마몬을 선택할 것 같긴 하다.
그때 놈을 상대할 때는 정말 지옥이 현세에 재림했다는 느낌이었으니까.
아마 마몬도 인간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놈을 고르라면 나를 택하겠지.
서로 엇비슷한 감정으로 상대를 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포기하겠다고? 고작 날개 달린 정신병자들이 만들어 놓은 새장에 갇힌 채로 영원을 살아가겠다고?”
“……뭔 소리 하는 거냐.”
벌러덩 누운 채로 나는 헛웃음을 흘린다.
“내 목표가 뭔지 잊었어? 너희를 싹 잡아서 대륙에 오지 못하게 만드는 거야.”
아쉽다.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들이 이제는 쓸모없어졌으니까.
하지만 그거면 됐다.
“사탄이랑 싸울 때 애들이 많이 도와줬고, 짧긴 해도 기사단은 완전체로서 활동하긴 했어. 우리 모두, 꿈꿔왔던 전장에서 소망하던 대로 싸웠어.”
그리고 조금 뜬금없긴 해도.
“결과가 이거야. 대악마들은 더 이상 대륙에 나타나지 않아. 다른 대악마를 잡아먹은 너와, 그런 너를 몸에 받아낸 내가 여기 있으니까.”
마몬은 할 말이 없어 보였다.
본인 스스로도 느끼고 있겠지. 내가 정말로 모든 걸 이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됐어, 이제 인류는 안전해.”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시원스럽게 웃어준다.
마몬은 뭔가 대꾸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된 말을 찾지 못했는지 결국 입을 다물었다.
감정을 통해서 느껴진다.
놈은 어떻게든 나를 밖으로 데려갈 생각이다. 끄집어내겠다고 고민하고 있었다.
악마답게 유혹하겠지.
그리고.
‘계속 고민해라 이것아.’
그게 바로 내가 던진 낚싯바늘이었다.
여기서 평생?
영원?
‘지랄하지 말라지!’
대악마들은 정리했다고 해도 대륙 위에서 자기들 입맛대로 움직이던 천사라는 놈들이 아직 버젓이 살아있다.
미안하지만 아직, 나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리 생각하며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밖으로 나가기 전, 내부의 적부터 확실하게 정리해야 했고.
내 생각도 모른 채로 마몬이 초조해하는 감정이 계속 흘러들어 올 때마다 괜히 웃음을 참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