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주변이 어두컴컴하기 때문에 시간 개념이 없다. 잠들었다가 일어나도 결국에는 똑같은 풍경.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는 건 생각보다 정신적으로 압박이 심했다.
‘지난번 로아 제국에서 이송될 때랑은 아예 다르네.’
얼추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했으나 그건 내가 이 안을 너무 얕보았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단순히 시간에 대한 개념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주변에 빛이나 소리도 하나 없다.
마나를 다루지 못했으면 여러 의미로 더 초조할 뻔했다.
‘뭐, 어쨌든 지금은 가만히 있는 게 맞아.’
스스로를 속이듯 나는 뒤척이며 다시금 눕는다. 완전히 사람으로서의 의욕을 잃은 것처럼 굴어야 했다.
그래야 내 안에 있는 마몬을 속일 수 있다.
‘이 자식 근데 지금 깨어있는 건 맞는 건가?’
애초에 내가 잠들면 같이 잠드는 건가?
잘 모르겠다.
아스모데우스 쪽이 궁금해서 슬쩍 눈을 돌렸으나, 그쪽도 어둠에 가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나 인기척은 분명하게 느껴졌기에 저기에 있는 건 확실했다.
이제 그만 우는 걸까?
‘아니, 이러다가 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외부와의 시간개념 자체가 다른 것 같았으니까.
만약 내가 여기서 탈출했는데 애들이 다 나이가 들어 있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면서도.
‘쓰읍, 볼만하겠는데?’
왜인지 또 흥미롭긴 했다.
300년 전에 은빛사자 기사단을 모집할 때랑은 색다른 느낌으로 단원들을 불렀었다.
그때는 이미 실력자로 유명하거나, 전반적으로 유능하다고 알려진 기사들을 찾아가서 영입하는 거였다면.
나이트 아카데미에서는 아예 내가 떡잎부터 보고 어울리는 길에 맞춰서 키우는 느낌이었으니까.
육성의 재미가 있다고 해야 할까.
왜 은퇴한 기사들이 교수가 되거나, 지도자의 길을 걷는지 꽤나 젊은 나이에 이해해 버렸다.
그런 아이들이 10년이나 2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되어있을지 정말 궁금했다.
‘샬롯은…….’
지금 상태라면 유약한 성격도 다 이겨내지 않았을까?
실전을 치루거나, 큰 전장을 경험하는 건 자신감 없는 그녀의 성격에 큰 도움이 될 거다.
게다가 일레인 가문의 검술을 거의 기초부터 새롭게 다지고 있는 그녀였으니까 이후에 검술을 발전시키는 것도 잘해낼 수 있겠지.
샬롯이라는 소녀 덕분에 일레인 가문은 다시 한번 전성기를 구가할 수도 있었다.
‘뭐, 마리아는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네.’
전투의 자극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하이에나. 저런 성격 중 9할은 자기 실력에 맞지 않는 상대에게 덤벼들다가 죽는 게 부지기수였으나.
마리아는 좀 특별했다.
자신의 실력보다 강한 자들과 몇 번이나 싸워왔으나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부터가 운이 좋은 거겠지.
그런 경험들이 그녀에게 지혜를 탑재해 줬을 거다.
게다가 만약에 소환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면 윤과 마리에게 동시에 가르침을 받으며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을 수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애들에 대한 걸 생각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간 것 같지만.
막상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확인을 못하니 답답함이 가중될 뿐이었다.
그래도 그걸 티 내서는 안 된다.
이 안에 있는 게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
‘먼저 답답해하는 놈이 지는 거다.’
마몬이 먼저 내게 고개를 숙이면서 들어오게 만들어야 한다.
새장에서 발악하면서 어떻게든 탈출하고, 천사들을 죽여 봤자 어차피 마몬은 그대로다.
결국 나를 집어삼키고 다시 대륙을 지배하려 들겠지.
그렇다면 나는 새장을 이용해서 놈에게 새로운 감옥을 선사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참는다.
다시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하며 몸에 힘을 푼다.
결국 최고는 잠이었다.
내가 이렇게 있어도 아무런 타격도 없다는 걸, 오히려 대륙을 구해냈기 때문에 뿌듯해하고 있다는 걸 어필해야 했다.
‘다시 자자.’
감거나 뜨거나 똑같은 풍경에 나는 피곤하지도 않은 몸을 뒤척이지도 않으며 억지로 잠에 들려고 한다.
생도들의 미래를 생각하다 보니까 의외로 금방 잠들 수 있었는데. 그들의 10~20년 후를 상상하면서 결국 끝내 드는 생각은.
아쉬움이었다.
* * *
“야.”
툭.
너무 자서 머리가 아플 정도인 상황.
이제는 사실상 자는 게 아니라 자는 척을 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정수리를 툭툭 건드리는 불쾌한 발길질에 눈을 뜬다.
오랜만에 시야에 들어온 건 전신이 선홍빛을 띠고 있는 대악마, 아스모데우스였다.
근처에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둠에 가려져 있던지라 모습을 보는 건 꽤나 신선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건드리면서 말까지 걸어왔다.
순간적으로 타인이 나를 만진다는 게 어색한 감각으로 느껴졌으나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둑, 우두둑.
무릎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등골이 오싹했다.
내가 도대체 얼마나 이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하루? 이틀? 혹은 일주일?
아니면 내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났을 수도 있고.
반대로 실은 5~6시간 정도 지났을 수도 있다. 모르겠다.
잠은 잤는데 제대로 잤는지도 모르겠다. 어둠과 심리싸움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어쨌든.
“왜.”
내가 의아해하며 그녀에게 묻자 아스모데우스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를 죽여줘.”
“…….”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귓구멍에 뭔가 먼지라도 낀 건가 했으나, 여기는 먼지도 없어서 그럴 일은 없다.
“내가 방금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건가?”
“죽여 달라고.”
“허.”
어이가 없어서 머리를 긁적인다. 왜 굳이 나한테 와서 죽여달라고 했는지 모르진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가 부탁한 건 내가 아닌 마몬이었다.
부활이 아닌 완전한 소멸.
아스모데우스는 마몬에게 흡수당해서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싶다는 의미였다.
쩝.
입가에 고인 침.
순간적으로 아스모데우스가 탐스럽게 느껴진다는 충동이 치솟았으나 억지로 꾹 참았다.
“왜. 이제 못 버티겠어?”
물음에 아스모데우스의 표정이 대번에 어두워진다. 어차피 여기 있는 건 우리 둘뿐이다.
뭐 숨길 게 있나 싶어서 당당하니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다.
“버틸…… 이유가 없어.”
“…….”
“란데른을 생각하면서 계속 버텨왔어. 내가 여기 들어온 걸로 그가 무사하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아스모데우스는 참으로 특별한 대악마였다.
그녀를 볼 땐 외형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그냥 감정적인 인간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아마, 란데른이라는 남자가 그녀를 이렇게 바꿔둔 게 아닐까 싶었다.
“근데 란데른이 없다며. 이제 그를 만날 가능성도 없는데 굳이 살아있고 싶지는 않아.”
“마몬한테 먹히면 부활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알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너한테 죽여 달라고 하는 거잖아.”
“…….”
“천사들도 아무 상관 없을 거야. 어차피 네가 악마를 또 하나 먹어봤자라고 생각하겠지.”
“오히려 좋아할 수도 있겠네.”
천사들을 떠올리며 인상을 확 찌푸리자 아스모데우스는 그럴 수도 있다며 동의했다.
“어쨌든 이제 신물이 나. 란데른이 없으면 부활도 하고 싶지 않아. 그냥…… 그냥 없던 존재처럼 아무 생각 없이 사라지고 싶어.”
애절하다 못해 피폐한 몰골이였다. 새장이라는 감옥이 절대적이라 불리던 대악마조차 이렇게 만드는 거라면.
결국 나 역시, 나중에는 이렇게 되는 걸까.
솔직히.
머뭇거려졌다.
그녀의 바람을 듣고,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옳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랬다가는 정말 이곳에서 혼자가 되어버린다.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더라도,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도 아스모데우스란 존재가 있는 게 나름의 위안이었는데.
내 감정을 읽은 걸까 아스모데우스의 어깨가 축 늘어진다.
내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후.”
그런 연약해진 모습을 보며 나는 결국 손을 뻗었다.
대악마를 연민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또한.
이것들을 구원하는 날이 올 줄도 몰랐다.
내 손에서 뻗어 나온 마몬의 기운이 바닥에 떨어지며 아스모데우스의 발끝에서부터 집어 삼키기 시작한다.
그녀는 별 고통 없어 보였다.
아니, 이미 너무 아팠기 때문에 이 정도는 고통 축에도 들지 않는 걸 수도 있었다.
“란데른.”
마몬에게 먹혀가면서도.
아스모데우스는 조용히 사랑했던 남자의 이름을 읊조렸다.
고요하게 빛나오던 선홍빛은 결국, 어둠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답지 않은, 유언을 남긴 채로.
란데른.
“어쩌면 그는…… 대륙의 첫 영웅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어.”
대악마 아스모데우스로부터 인류를 구원해 냈으며, 그녀 스스로도 갱생시켰던 남자로 말이다.
나는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고요한 정적.
미세하게 느껴지던 인기척도 더 이상은 없다.
몸에 강대한 힘이 들어온 건 느껴지지만 그게 끝이었다.
나는 다시 혼자서.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 숙였다.
* * *
“이제 됐다.”
또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스모데우스가 사라진 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으나 이제 슬슬 나도 이곳에 있는 게 한계처럼 느껴질 때.
입에서 흘러나온 마몬의 목소리.
놈의 목소리에서는 뭔가 묘한 회의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뭐가.”
내가 슬쩍 눈을 뜨며 묻자 마몬은 탄식과 같은 울분을 쏟아냈다.
“여기서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탈출해라.”
“개소리 하지 마. 너, 밖으로 나가면 또 인간들 죽이니 뭐니 할 거잖아.”
숨을 한 번 고르자 바로 답하는 마몬.
“그렇다고 여기서 천사 놈들이 원하는 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
아무래도 아스모데우스의 죽음에서 뭔가 많이 느낀 모양이었다.
그는 꽤나 초조해 보였으며, 그만큼 분노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갈 방법을 찾아라. 이대로 가만히 있는 건 참을 수 없다.”
“개소리 하지 마. 내가 지금 여기 있고 싶어서 있는 것 같아?”
나도 이런 장소에 있는 게 스트레스를 넘어서 정신병이 걸릴 것 같다.
하지만 버티는 이유는 딱 하나.
“너 때문이잖아. 너를 대륙에 풀어놓지 않겠다는 사명감 하나 때문에. 인류의 방패를 자처했던 기사로서, 결국 대악마인 네놈을 마지막까지 막아서고 있는 거라고!”
쾅!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외친다. 녀석이 뭔가 말하려 했으나 바로 억누르며 계속 주도권을 뺏어온다.
“네가 300년 전에 만들었던 광경이 아직도 선명해. 사람들의 비명, 바람이 불면 코와 눈을 찌르고 들어오는 피 비린내, 길가의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는 시체더미들.”
300년 전, 혼자서 마몬과 그의 군세를 막아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검을 놓을 수 없었고, 무릎 꿇을 수 없었다.
내가 쓰러진다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알고 있으니까.
그런 내 외침에.
“알았다.”
마몬은 쓰라린 숨을 삼키며 선언한다.
“약속하지.”
항복을.
“이 빌어먹을 장소에서 빠져 나와, 천사들을 죽인다면 나는 더 이상 인류를 위협하지 않겠다.”
“…….”
“못 믿겠나?”
코웃음이 피식 흘러 나왔다.
지나가던 똥개를 믿지 이놈을 믿겠는가.
마몬도 이 이상 뭔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말이 없었으나.
나는 이제야 되었다 생각해 벌떡 일어났다.
힘들고 지쳤으나.
결국 기다리고 버티다 보면 기회가 오기 마련.
“너를 믿을 수는 없어.”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발끝에서 마나가 발현된다.
찬란한 푸른빛이 사방으로 퍼져가며 새장 내부를 환하게 밝혀간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밖으로 나가고 싶다면.”
새장이 넓어서 다행이었다.
바닥 전체를 뒤덮을 기세로 빽빽하게 채워가는 마나들이 내부의 탁한 공기를 몰아낸다.
“나와 계약하자.”
마나의 색채가 뚜렷해지고 새장 전체 바닥에 그려진 건.
거대한 소환마법진.
외부와는 완벽하게 차단된 장소.
하지만.
내가 소환할 존재는, 새장 내부.
내 안에 있다.
“내 소환수가 돼라, 마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