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정적.
이제야 내 의도를 이해한 마몬에게서 흘러나온 감정은 꽤나 복잡했지만, 어쨌든 뭉뚱그려서 설명하자면 나를 향한 적의와 분노였다.
이제야 내가 무엇을 기다려 왔으며, 왜 이런 식으로 체념하듯 행동해 왔는지 알아차린 거겠지.
“나를, 속였구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속이긴 뭘 속여.”
여기서 다시 화를 내면서 나와 적대하겠다고 해봤자 결과는 같다는 걸 마몬이라고 모를 리 없다.
결국에 녀석은 내게 순응해야 이곳에서 나갈 수 있었다.
“아예 밖으로 나가지 말든가, 아니면 나가서 천사들만 딱 조지든가.”
양자택일을 내가 들이밀자 마몬은 괜히 으르렁거리며 대꾸한다.
“네가 바라는 건 결국 나와 다르지 않다. 네놈 역시 밖으로 나가고 싶겠지.
“당연하지. 누가 평생 여기서 썩어들어 가고 싶겠냐.”
너무나 쉽게 긍정해 줬기 때문일까. 오히려 마몬은 잠깐 멈칫했고, 나는 기회를 틈타 계속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괜찮아. 상관없어. 대악마들을 전부 먹어치우면서 힘이 넘쳐흐를 정도로 강해진 너를 나 하나의 희생으로 잡아둘 수 있으면 말이야.”
“그렇다면 천사들은?”
마몬은 꽤나 허를 찌르며 들어간다고 생각했겠지.
“천사들이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나? 지금까지도 대악마들을 버리는 쓰레기통 정도로만 대륙을 생각해 왔던 놈들이 정말 평화롭게 놔둘까?”
하지만 이 정도는 당연히 예상했고. 그건 여기 갇혀 있는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었다.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아직 기사단원들은 역소환되지 않았어.”
내가 이곳으로 끌려올 때 갑자기 빛 무리가 쏟아지긴 했으나 역소환된 단원은 없었다.
나와의 연결이 당장에 끊어졌다고는 해도 내부에 남은 마나를 통해서 버티거나, 따로 마나를 추가로 공급 받아서 남아있을 수도 있다.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직접 키운 기사 생도들도 있어.”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후임들에게 뒤를 맡긴다는 건, 썩 탐탁지 않았으나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남아있다는 감각은.
300년 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쁘지 않았다.
“고작 2학년 생도인데도 벌써부터 대악마와의 전장 한가운데서 우리를 도와서 싸웠어.”
나는 진심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단순히 내 안목으로 뽑은 아이들이라서가 아니라.
그 녀석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걸 믿고 있었다.
“몇 년만 있으면, 그 녀석들은 분명 위대한 기사가 될 거야. 천사나 너희 악마 같은 것들은 함부로 넘보지도 못할 정도로.”
실로.
“자랑스러워.”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방금 전까지 들끓던 마몬의 기세가 한층 누그러진 것부터 시작해서, 생도들을 떠올리며 마음에 차오른 뿌듯함까지.
여러 가지로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늘어난 기분이었다.
만약 여기서 마몬이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둘이서 새장 안에 갇힌 채로 지내게 된다고 해도.
밖에 있는 천사들이 호시탐탐 대륙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고 해도.
그 녀석들이 남아 있으니까 분명 이겨낼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을 가르쳤다는 게 실로 자랑스러웠다.
“싫으면 말아. 나는 어차피 여기 남아 있어도 상관없으니까.”
주변에 퍼진 마나들이 점차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굳이 마몬이 나와의 계약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나 역시 그를 억지로 소환수로 만들면서 새장에서 탈출하려고 노력할 생각은 없었다.
나의 반응이 진심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까.
마몬의 초조한 감정이 숨소리를 통해서 새어 나왔다.
시간에 대한 개념이 내부에는 없다 보니 고민이 얼마나 이어진지 모르겠으나.
“좋다.”
결국 마몬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완전한 항복 선언이었다.
“이딴 감옥에 갇혀서 가지고 있는 힘을 발산도 하지 못하고 썩어갈 거라면…….”
마몬에게 있어 지금의 선택은 최악을 대신한 차악.
“차라리 네놈의 목줄을 차겠다.”
화아아아악!
마법진이 화려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내 안에 있는 마몬의 검은 기운이 마법진으로 쏟아져 나온다.
내 몸, 정확히는 가슴에 박혀 있는 마몬의 각인이 매개체가 되어 마몬과 나를 다른 방향으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마몬에 의해서 강제로 연결되어 있었던 거라면. 이제는 다르다.
놈의 검은 각인은 풀리듯 사라지고, 그 위에 덧대어지는 나의 푸른 마나.
“크, 읏.”
엄청난 마나가 쏟아져 들어갔다.
힐다를 소환할 때랑은 비교도 안 되는 양은 대양이라 불리던 나의 마나를 거의 바닥까지 잡아 먹어냈다.
마법진이 검게 물들며, 불현듯 마몬을 소환하려 했었던 마몬교의 떨거지들이 떠올라 쓰라린 감정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폭포처럼 쏟아져 나가는 마몬의 기운은 결국 소환마법진 위에서 응어리처럼 지어졌고.
슬쩍 옷깃을 당겨 가슴을 확인하자 어느새 마몬의 각인은 내 안에서 사라져 있었다.
“허억, 허억!”
응어리진 마몬이 점점 형태를 찾아간다.
억지로 숨을 고르며 허리를 굽힌 채로 가까스로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300년 전, 나와 싸웠고 결국 내 검에 찔려 토벌당했던 마몬이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거대하면서도, 외형적인 부분은 차이가 좀 있었다.
“크, 흐.”
그는 바깥으로 나왔다는 게 감격스러운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리곤 주변을 둘러보려 했으나 새장 안이라는 걸 인지하고는 혀를 차며 내 쪽을 바라본다.
“뭐 하는 거지? 얼른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해라.”
“가, 만히 있어 봐. 이 자식아.”
마나가 워낙 많이 빠져 나가서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강하게 밀려 왔다.
몸을 추스르며 억지로라도 버티고 서 있다 보니 슬슬 괜찮아졌다.
그런 와중에도 마몬은 묵묵하니 나를 기다려 주었다. 가만히 서 있는 게 나름 볼만했다.
“하아아, 이제야 좀 괜찮아졌네.”
식은땀을 닦으며 중얼거리자 마몬은 손을 이리저리 뻗어보면서 혀를 찬다.
“정말로 네놈을 죽일 수 없군.”
“미친놈.”
소환계약을 채결한 소환수들이 소환사를 공격하지 못하게 아득바득 노력해 왔던 테르토나 샤이먼의 마법이다.
그와 계약한 정령들이 인형에 들어가는 걸 싫어하면서도 테르토나에게 괜히 저항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내 아래로 들어온 마몬은 이제 내 명령에 따라야 한다.
기사단원들이야 원래부터 잘 따랐으나, 계약을 채결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적대적이던 베히모스만 생각해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황토색 피부.
옛날에는 두툼하다는 느낌이 드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키가 엄청 큰 근육질의 거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대략 4m는 될까.
어쨌든 나보다 엄청나게 컸다.
이제는 베히모스를 타고 다닐 수도 없고, 아르가스도 단순 이쑤시개 정도로밖에 사용할 수 없겠지.
줄 생각도 없지만.
그럼에도 녀석은 새장의 천장에 닿지 못하고 있었다.
새장이라는 이 장소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갈 방법은?”
재촉하듯 물어오는 마몬.
명령받는 느낌에 나는 팍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엎드려.”
“…….”
“엎드리라고.”
얼굴이 기과하게 일그러지며 나를 노려보는 마몬이었으나 결국에는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보다 훨씬 큰 게 짜증나긴 했어도 일단은 확인할 게 있었다.
“여기서 내가 너를 역소환하면 다시 나한테 네 각인이랑 기운이 돌아올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아마 맞겠지. 결국 나는 너라는 존재의 안에 있는 거니까.”
결국 소환마법을 이용해서 마몬의 기운을 뽑아내 실체화시켰을 뿐, 내 안에 있는 건 아직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이제는 목줄을 확실하게 채웠으니 몸을 뺏거나 하는 행위는 하지 못하겠지.
“밖으로 나가는 방법 말인데.”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아스모데우스가 말했잖아. 여긴 꽤나 민감한 장소라서 여러 대악마를 수용할 수는 없다고.”
“그래, 분명 그리 말했다.”
아스모데우스에 대해서 말하자 약간 기세가 죽었다. 같은 동족의 최후가 그런 식이었다는 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 말은 내부에 대악마가 많으면 수용하기 힘들다는 소리이기도 해. 뭔가 이 내부에 하자가 있다는 뜻이지.”
“…….”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대강 눈치챈 걸까.
마몬은 천천히 일어나려 했으나 내가 눈짓을 주자 엎드린 채로 몸이 굳는다.
소환수라는 게 이래서 좋다.
“근데 너는 벌써 대악마만 넷이나 먹었잖아. 사실상 네 안에는 대악마 넷이 있는 거 아니냐?”
“그들의 힘을 흡수하긴 했으나 완전하게 사용하진 못한다. 아마 그런 부분 때문에 탈출하지 못하는 거겠지.”
바로 그거다.
“그러니까 거기서 더 강해지면 된다는 소리잖아.”
내가 손짓하자 다시 마몬이 일어난다.
놈은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숨기지 않았으나 무시한다.
우리는 그 뒤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이유라 함은 내 마나가 다시 차오르길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대강 5시간 정도인가?’
비어 있는 마나가 다시 차오르는 걸로 시간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나름 이런 것도 여기서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었겠으나, 이미 탈출하기로 정했다.
그 동안 마몬은 혼자서 몸을 움직이며 새로운 몸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옛날의 더부룩한 신체가 아닌 근육질의 덩치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고, 아마 그건 나와 같이 있으면서 생긴 변화가 아닐까 싶었다.
‘기사처럼도 보인단 말이지.’
겉모습이 갑옷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흉측한 모습이긴 해도 어쨌든 미묘하게 기사의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탈출하면 바로 천사들이랑 싸우게 될 테니 준비하고 있는 마몬의 등을 보며 나는 벌떡 일어났다.
“야, 됐다. 준비해라.”
“흠.”
마나가 거의 다 채워졌기에 이제 움직일 시간이었다.
준비는 끝마쳤다며 마몬이 자세를 잡았고 나 역시 손을 뻗는다.
내가 배워온 마법은 소환마법만이 아니다.
기사단원들이나 소환수들을 지원하기 위한 보조마법에 대한 연구 역시 나는 소홀히 한 적이 없었고.
“네가 다른 대악마들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다른 방식으로 힘을 늘려주면 그만이야.”
마나가 다시금 새장에 넓게 퍼져간다. 마치 터져나가듯 사방으로 흩뿌려졌던 마나가 마몬을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고.
“크음!”
놈은 쏟아지는 보조마법들에 과부하가 걸렸는지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당연하다.
지금 녀석에게 쏟아지는 보조마법만 해도 세 자릿수가 넘어가고 있으니까.
어려운 마법 몇 개를 사용하는 것보다도 기초적인 보조마법을 계속해서 몇 개씩 중첩시키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몸이 버티지 못하고 망가지겠지만, 놈은 악마이다.
그것도 동족을 무려 넷이나 잡아먹고 비대해질 정도로 그릇이 커진 존재.
익숙한 보조마법의 연산은 간단했고, 마나는 부족함이 없다.
힐다처럼 동시에 열 개씩 해결할 수는 없어서 시간이 좀 걸리긴 했다.
“빨, 리!”
마몬 역시 버티기 힘든지 재촉해 왔는데 놈의 으름장이 새장에 퍼지자 순간적으로 내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됐다!”
가능하다 충분히 가능성이 보인다.
그렇기에 나는, 마지막 마법을 발휘한다.
마몬의 발끝에서부터 치솟아 올라오는 푸른 마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
아르가스를 다루던 녀석이니 그에 걸맞는 무기를 쥐어준 것이었다.
내가 사용하는 마력검에서 길이를 좀 많이 늘린 정도인 간단한 물건이었으나.
푹!
마몬은 그대로 창을 뽑아내더니 자세를 잡는다.
한쪽 발을 크게 앞으로 내딛는다. 거대해진 힘을 버티지 못한 새장에 쩌적 금이 갈라지고.
“으아아아아아악!”
마몬은 양손으로 쥔 마나의 창을 바닥에 그대로 꽂아 넣었다.
콰아아아앙!
어둠이 조각나기 시작한다.
우리를 향해 쏟아져 들어온 건,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듯한 환한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