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쏘아져 내려오던 빛 무리에 시야가 환하게 밝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떠있던 시야.
쾅! 쾅! 쾅! 쾅!
무언가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막상 몸 어디에도 통증이 있거나 상처가 생기진 않았다.
다만,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환하게 빛나는 주변 덕분에 어지러움과 동시에 과격한 구토감을 느꼈다.
내가 제대로 이 땅에 서 있는 건가 싶은 착각이 순간적으로 들 정도.
발이 붕 떠올랐으며 몸이 이리저리 회전한다는 착각이 들었다.
쾅! 쾅! 쾅!
소음이 워낙 심해 이제 주변에 있던 기사단원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고.
어느 순간.
백색 휘광이 사라지며 내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장소는 방금과는 정 반대인 어둠 속이었다.
“뭐, 지?”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손을 한번 주변으로 휘저어 보자 뭔가 차갑고 단단한 것이 손등에 툭 걸렸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내가 방금까지 대륙을 구하기 위해서 사탄과 싸웠던 은빛사자 기사단의 단장이 맞는 건가.
그런 혼란마저 들 정도로 너무나 갑작스럽게 상황이 변했기에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우선 손등에 걸린 무언가를 천천히 만진다.
차갑고 단단한 그것이 철로 만들어졌다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반대 손을 천천히 내밀어 또 뭐가 있나 확인한다. 그러자 손에 잡히는 똑같은 감촉.
일정 간격을 두고 손에 잡히는 그것은 밀리지도 당겨지지도 않으며 부서지지도 않는다.
이쯤 돼서야 이게 뭔지 알 수 있었다.
“감옥이잖아?”
내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건 창살이었다. 밖으로 나가려 해도 단단한 창살에 떡하니 막힌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하얀 빛 무리.
악마들을 가둔 채로 대륙에 풀고 있던 천사들.
연상되는 정보들이 자연스럽게 머리에서 떠오르면서 대강 어떤 상황이 내게 펼쳐진 건지 알 것도 같았다.
‘마몬이 대악마들을 삼켰으니까 이제 마몬에게 목줄을 채우겠다는 뜻인 걸까?’
여러 의문이 들었으나 일단은 밖으로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혹시 마나도 사용하지 못하는 건가 했는데 다행인지 마나 자체는 발현되었다.
손바닥에서 떠오른 푸른 불빛이 주변을 밝혀준다.
하지만 주변이 보이면서 오히려 내가 이곳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게 분명하게 드러났다.
내부가 넓어 안쪽 끝까지 보이진 않았으나 어쨌든 감옥은 감옥. 상당히 견고해 보이는 모습에 탈출의 의지조차 순간적으로 깎여나갈 정도였다.
“도대체 뭐지?”
둘러봐도 따로 뭔가 보이진 않았다. 애초에 감옥이니 기물이나 가구 같은 게 있진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감옥이면 당연히 있어야 할 게 빠져 있지 않은가.
“간수가 없는데?”
창살 밖으로 얼굴을 슬쩍 빼보려고도 했으나 텅 하고 걸릴 뿐 어림도 없었다.
감옥 내부를 확인해 보려고 해도 탈출할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악마를 가둬두겠다는 일종의 강박관념까지 느껴지는 감옥이었다.
혹시 모르니 마나를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불을 꺼트린다.
다시금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잔잔하니 가라앉았다.
어둠 속에 있다 보니 그리 오래되진 않았으나 로아 제국에서 갇혔던 때가 떠오른다.
한 사람 정도 누울 수밖에 없는 좁은 감옥 안에서 마차의 흔들림과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식사를 제외하고는 시간의 흐름을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
‘차라리 거기가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비록 좁을지라도 일단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그런 것도 없다.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 멈췄는지에 대한 구분조차 가지 않는다.
빛이 사라지자 그런 감각은 더욱 심해졌다.
나라는 사람이 어둠 속에 파묻혀서 사라져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는 힐다라도 있었는데.’
소환이 될까?
나는 다시금 손을 들어 마나를 일으킨다. 그 뒤는 평소와 똑같았다.
소환마법진을 바닥에 그리며 나와 연결된 소환수를 불러낸다.
이런 상황에서는 만능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마법사를 소환하는 게 옳겠지.
힐다를 불러내서 같이 상황파악도 하고 외로움도 좀 달래려고 했으나.
파지지직!
소환마법진은 거칠게 스파크를 튀겨댈 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마나가 부족하거나, 마법진이 잘못된 건 아니었다.
아예 마법 자체가 외부로 나가지를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마법진은 요란하게 마나를 튀어댔으나 정작 제대로 된 마법은 발휘되지 못했다.
‘이거 좀 큰일인데.’
순간적으로 덜컥 두려움이 치솟아 올라왔다.
어둠 속에서 이렇게 평생을 지낼 수도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소환마법진이 제대로 발동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어렵사리 재회한 기사단원들과도 만나지 못한다는 뜻이지 않은가.
특히나 마리 같은 경우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았는데.
하필이면 다 끝났다고 생각한 타이밍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아니, 다 끝났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겠지.’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쓸어 넘긴다. 다시 한번 마나를 일으킨다.
사탄과 싸우느라 마나가 거의 고갈되었으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바닥을 박박 긁어가며 끌어올린 마나는 소환마법진이 되어 다시 바닥에 펼쳐진다.
이번엔 다섯 개나 되는 마법진을 동시에 그려대며 어떻게든 뚫어보겠다고 노력했으나.
“……하.”
마법진의 마나들은 감옥 내부에서 서로 뒤엉키며 휘몰아칠 뿐이지 외부로 빠져 나가지 못했다.
꽈악.
긴장으로 축축하게 젖은 손을 말아쥐며 다시 도전해 보려 했으나.
“적당히 해라.”
감옥 구석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워낙 넓은 감옥이었기에 전부 훑어보진 않았지만 나 말고도 누군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여인의 목소리였다.
하나, 오랜 시간 동안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높낮이에서 어색함이 느껴졌으며, 목에 먼지가 낀 듯 탁한 음성이었다.
감옥 구석에서 피어오른 두 개의 빛.
붉은색이라고 착각했으나 자세히 보니 그건 선홍빛이라고 보는 게 옳았고.
조금 더 이후에서야 두 개의 빛이 한 사람의 눈동자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해봤자 여기서는 어떤 것도 빠져 나갈 수 없어.”
“……넌 누구야.”
“누구냐고?”
역으로 저쪽에 있는 여인이 한숨을 내쉰다.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지 서서히 일어나는데 몸에서 뿌득뿌득 소리가 나는 걸로 보아 한 자세로 꽤나 오랜 시간 가만히 있었던 모양이다.
“인간을 사랑했던 대악마.”
말을 듣는 순간, 딱 하나의 대악마가 떠올랐다.
“하나, 결국 진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조용히 토벌되어 천사들의 새장에 갇힌…….”
그녀와는 나 역시 나름대로의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아스모데우스.”
자신을 소개하며 내 쪽으로 걸어오는 그녀의 발걸음에는 흉흉한 기세가 담겨 있었다.
뭔가 지독할 정도로 한이 서려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 몸이 차갑게 시려왔다.
“이번엔 내가 하나 물어보자.”
여전히 어둠 속에 가려져 아스모데우스의 눈동자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대악마를 가뒀는지, 또 어떻게 여기에 올 수 있었는지 여러 가지로 궁금하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녀가 무엇을 내게 물을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한 남자에게 줬던 검은 꽃을 왜 네가 가지고 있는 거지?”
슬그머니.
마나의 빛이 밝히는 곳 바로 앞까지 다가온 그녀의 눈동자. 천천히 뻗은 길고 얇은 손가락이 명확하게 내 복부를 가리킨다.
“그것도 배 안에. 설마 그걸 먹은 거냐?”
“…….”
“말해. 아무리 마몬이 안에 있다고 해도 꽃을 먹었다는 건 어지간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겠지?”
이게 바로 아까 내가 말한 아스모데우스와 인연이 있는 이유였다.
그녀가 말하는 검은 꽃.
내가 메이제렌에 처음 갔을 당시, 호우만에게 받아서 먹었던 영약.
그걸 만드는 주 재료가 바로 아스모데우스가 지금 말하는 꽃이었으니까.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이유? 빌어먹을 놈이! 내가 분명 란데른은 가만히 두라고 말했을 텐데?! 그걸 대가로 네놈들에게 죽어주지 않았나!”
쿵! 쿵!
결국 참지 못한 아스모데우스가 마나가 퍼트리는 빛 안으로 들어오며 모습을 보인다.
붉은빛과 분홍빛이 뒤섞인 듯한 머리카락, 이마에 솟은 하나의 굵은 뿔, 쏟아내던 위압감에 비해서는 다소 작은 체구.
하지만 피부색이 붉고, 눈동자도 세로동공인 것이 딱 봐도 악마라는 느낌이었다.
“란데른이 내가 준 꽃을 그렇게 쉽게 넘겼을 리는 없다! 마몬의 탐욕에 휩쓸려 그의 오두막을 찾아낸 건가?!”
붉은 손톱이 길게 뻗어간다.
대답하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손톱으로 찢어 내겠다는 기세등등한 살기는 인상적이었으나.
‘아…….’
이제야 그녀가 무엇을 착각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그녀에겐 꽤나 잔인한 진실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미안하지만 네가 말하는 란데른은 이 세상에 없어.”
어차피 상대는 대악마다.
미안한데 저쪽을 신경 쓸 겨를도 없고, 배려해 줄 생각도 없다.
“뭐?”
어쨌든 자신의 연인을 죽였다는 이상한 오해를 받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계속 설명을 이어간다.
“네가 나타났던 시대는 몇백 년도 전이야. 란데른이 아무리 대악마의 마음을 훔쳤다고 해도, 인간은 몇백 년이고 살 수는 없어.”
이걸 300년 전 사람인 내가 말하는 것도 다소 묘하긴 했지만 어쨌든.
“어?”
충격에 빠졌는지 그녀의 몸이 굳는다. 여러 생각이 드는 것처럼 보였으나 어쨌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나는 네가 남겼다는 꽃을 어렵게 입수한 영약제조사 덕분에 그걸 마신 거야.”
“……그, 럼 란데른은?”
“모르지. 역사에는 네가 인간을 사랑했다고만 나와 있을 뿐이야. 란데른이라는 인간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아.”
“그렇다면…….”
“그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든 아니면 은거해서 네가 준 꽃을 보면서 잘 살았든 혹은 다른 여자랑 눈 맞아서 하하호호 지냈든 간에.”
순간적으로 아스모데우스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증오로 얼룩졌으나.
“그는 이 세상에 없다는 소리야.”
“아…….”
그녀의 반응을 보는 순간 묘하게 안타까워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는 어깨를 떨군다.
대악마도 자신에게 찾아온 비극에는 저런 반응을 보이는 구나.
사람 목숨을 벌레처럼 여기면서 학살이나 해대던 놈들만 상대하다가 다른 반응을 보니까 뭔가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기분이다.
아스모데우스는 그 뒤로 별말 없었다.
처음 등장했을 때의 위압감과 호승심은 온대간대 사라지고 몸을 틀어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간다.
대화는 그게 끝이었다.
‘조금 잘 말해볼 걸 그랬나.’
여기가 제대로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꽤나 오랜 시간 갇혀 있었던 걸로 보이던 아스모데우스.
당장에는 그녀와 대화할 수는 없어 보였지만 어차피 이 안에 있는 건 우리 둘뿐이니까.
결국 조금만 지나면 다시 얘기할 수 있을 거다.
‘시간감각이 없어지는 건가.’
이미 그녀가 대륙에 내려온 지 몇 백 년이나 지났건만 그걸 모르고 있다니.
씁쓸하면서도 이 장소의 공포감을 슬슬 느끼며 머리를 긁적인다.
“이제 어떻게 하지.”
계속 소환마법을 사용해도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걸 알게 되니 막상 할 일이 없어졌다.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다.”
울림이 있는 거친 목소리.
“음?”
순간적으로 고개를 휙 숙인다.
왜냐면 방금 그 목소리는 내 입에서 튀어나온 거니까.
아까 사탄과 마몬이 대화할 때 느꼈던 감각.
내 입이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서 말하는 기괴함.
하지만 마몬은 당황하는 나는 배려도 하지 않고 비웃음이나 흘리며 혀를 찼다.
“여기는 천사들이 대악마를 가두기 위해 만든 새장이다.”
새장?
“그래, 앞으로 절대 도망칠 수 없을…… 네 일생을 마무리 지을 장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