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어?”
조금 뜬금없는 만남이었다.
분명 오늘 아침에도 함께 운동했으나 기본적으로 샬롯과는 반이 다르니까.
당연히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만날 일이 없었는데….
신성 기사단 면접 대기줄에서 샬롯을 만나니 이상하게 평소보다 반가웠다.
“아! 이안!”
환하게 웃으면서 줄에서 벗어나 나한테 다가오는 샬롯.
걱정되는 마음에 내가 순간적으로 미간을 찌푸리자 샬롯도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원래 서 있던 자리로 다시 돌아가려 했으나….
“나갔으면 끝이지.”
이미 샬롯의 자리는 사라져 있었다.
줄이 길어서 지친 건지 아니면 그냥 샬롯이 만만한 건지… 잠깐 나갔다고 바로 다시 줄 서라고 하는 거 보면 참 삭막하다.
“히잉, 30분 기다렸는데.”
결국 터덜터덜 걸어와서는 나와 함께 줄의 맨 뒤에 서게 된 샬롯.
‘넬슨이랑 비슷해.’
괜히 넬슨의 후손이 아니다.
넬슨을 보면서도 약간 멍청한 강아지를 보는 느낌을 종종 받을 때가 있는데 샬롯도 비슷했다.
“이안도 신성 기사단 지원했어?”
방금까지 자신이 있던 자리를 아쉽다는 듯 눈에 담으며 물어 오는 샬롯.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뭐, 그렇지.”
물론 실제로 신성 기사단으로 갈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애초에 전교에서 다섯 명 뽑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는가.
내 목표는 바로 이 면접이었다.
“면접관이 기사단장 맞지?”
“응! 로만 레이먼드 님! 내가 아는 2학년 선배한테 들었는데 원래 신성 기사단은 단장이 직접 와서 면접을 본다고 하더라.”
“…….”
나는 레이먼드라는 성이 괜히 찝찝해서 입을 꾹 다물었으나, 샬롯은 신이 나서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선배한테 듣기로는 졸업 후 신성 기사단에서 뽑을 단원을 여기에서 미리 선점한대. 작년에 2명이 신성 기사단 들어갔잖아? 그 두 사람도 1학년 때 현장 실습에서 로만 님한테 좋게 보였나 봐.”
자기 눈으로 직접 원석들을 미리 선점해 두겠다는 생각.
3년 뒤에도 생도들이 변심 없이 신성 기사단에 지원하고 싶어야 한다는 문제가 남지만, 신성 기사단이라는 거대한 성벽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은빛 사자로 간다고 하지 않았어?”
“그럴 생각이야.”
“으에? 그럼 면접은 왜 보는 거야? 아니, 그것보다 선배들이 거기는 생도들 엄청 괴롭힌다고 가지 말라던데.”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내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샬롯은 기분이 좋은 듯 어깨를 들썩이며 말한다.
“은빛사자 기사단은 가면 뭘 가르쳐주지도 않고 그냥 구경만 시키다가 괴롭힘도 당한다고 하더라. 심하면 돈을 뜯긴 생도도 있다고 들었어!”
“…….”
그렇게까지 망가졌다고?
“그래서 다들 기피하는 거잖아. 은빛사자로 갈 거면 그냥 현장학습 가지 말라고 하던데?”
참 묘한 상황이구나 싶다가도 왠지 의아해서 슬쩍 샬롯을 본다.
그녀는 한 건 해냈다는 표정으로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근데 너는 어디서 그렇게 정보를 얻어 왔냐. 선배라는 사람이 누군데?”
“흐흐. 선도부의 2학년 실리아 선배 알아?”
“아, 머리 파란 사람?”
마나 친화력이 높은 신체를 지닌 2학년이다. 그 영향으로 머리색까지 변할 정도니까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넬슨의 촉매를 얻기 위해 2학년 기숙사에 침입했을 때 짧지만 추격전도 벌였고.
“응! 그 선배랑 기숙사 사건 이후로 친해져서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셨어! 먹을 것도 엄청 많이 주셔!”
“흠,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었다.
“먹을 건 나도 많이 줬잖아.”
과자 상자만 한 무더기를 줬는데.
“그거 그냥 버린 거잖아! 고급 과자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무슨 녹차 맛, 산삼 맛 이런 것밖에 없고!”
어쩔 수 없다.
병문안 선물이니만큼 건강에 도움이 될 법한 것들이 주를 이뤘으니까.
그리고 달콤한 것들은 병원에서 나랑 다이니가 다 먹었다.
“그러니까 너 줬지.”
소위 말하는 짬이라는 거였다.
* * *
“다음.”
면접관을 맡은 로만 레이먼드는 학생의 이름 위에 엑스 자를 쳤다.
매년 하는 일인 데다 3년을 본 투자라지만 늘 지겨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기껏해야 이제 막 입학한 1학년들한테서 뭘 볼 수 있겠는가.
로만이 찾는 건 원석 중에서도 환하게 빛을 발하는 원석이었다.
잠깐의 면접만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미래가 보장된 인재.
그런 인재를 미리 선점해 두고 3년 뒤에 신성 기사단으로 데려온다.
누군가는 너무 과한 준비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런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왔기에 신성 기사단이 현 최고의 자리에 당당하니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건 분홍색 머리의 소심해 보이는 소녀. 독특한 머리색선 시선을 확 끌었다.
로만은 슬쩍 이름을 확인했다.
‘샬롯 일레인.’
그 옛날 영광의 사자에 속해 있던 일레인 가문의 후손.
현재는 검술이 유실되어 완전히 망가졌다고 알고 있었다.
로만의 옆에 있던 단원 중 하나가 샬롯의 주춤거리는 모습이 귀여운지 미소를 띠며 물었다.
“신성 기사단을 체험하고 싶은 이유가 뭔가요?”
몇 번이나 해왔던 질문.
생도들은 여기서 짧게 자신이 왜 신성 기사단을 체험하고 싶은지 핏줄을 세워 가고, 목이 쉬어가며 설파한다.
짧게는 3분.
길게는 5분.
실은 이것도 좀 길다고 생각하는 로만이었다.
일레인 가문이라는 게 조금 흥미로웠으나, 어차피 소심한 모습을 보면 대답은 뻔했다.
‘대륙 최고의 기사단을 눈에 담고 싶다.’
‘오랜 꿈이었다. 꿈을 눈에 담고 더욱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
뻔하디뻔한 말들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저, 정말 그렇게 대단한지 좀 보고 싶어서요.”
샬롯의 대답은 좀 독특하다 못해, 과히 도발적이었다.
“음?”
배려심 넘치게 물었던 단원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샬롯을 보지 않고 있던 로만 역시 천천히 고개를 든다.
“대륙 최고의 기사단이라고 하는데,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요. 제, 제가 딱 그 정도만 하면 되겠구나 싶어서요.”
“하.”
아주 미쳤구나 싶었다.
실제로 샬롯 역시 반쯤 목소리를 떨면서 무슨 대본이라도 외우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샬롯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뽑아주세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나간 샬롯.
면접관들은 대부분 헛웃음을 치며 샬롯의 이름에 엑스 표시를 했으나….
“흠.”
로만은 그녀의 이름 위에 세모 표시를 했다. 보류라는 뜻이었다.
확실하게 인상에 남기는 건 성공했다. 로만은 샬롯이 소심한 성격을 이겨내고 본인 나름의 전략을 짜 왔다는 걸 간파했다.
‘일레인이라는 것도 나름 흥미롭다.’
옛 사자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다는 꿈을 지니고 있는 로만이었기에 일레인 가문이라는 것도 플러스 요인으로 적용되었다.
“다음.”
문이 열리며 또 다시 독특한 머리의 생도가 들어왔다.
은발을 한 소년의 이름은 이안 아이넬.
‘평민 출신인데 머리색이 독특하군.’
딱 그것 정도만 흥미로울 줄 알았는데 이안은 질문을 하기도 전, 먼저 이쪽에게 물어왔다.
“로만 레이먼드 단장님이신가요?”
“생도, 질문은 우리가……!”
“아니, 괜찮다.”
방금 전, 샬롯이라는 생도가 면접에 나름대로의 전략을 구상해 온 걸 봤기에.
로만은 이번 생도 역시 본인 나름의 작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슬며시 웃으며 깍지를 낀다.
“그래, 내가 로만 레이먼드다.”
하지만 소년이 물어뜯은 부분은 로만의 역린, 그 자체였다.
“진짜로 라인 레이먼드의 후손입니까?”
“생도!”
“미쳐가지고!”
로만의 양옆에 있는 단원들이 벌떡 일어나서는 불같이 화를 냈으나, 라인만큼은 침착했다.
“기다려라.”
아니, 침착한 척했다.
방금 이 생도는 명백히 선을 넘었다.
로만은 깍지를 낀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 걸 숨기지 않은 채 답했다.
“그래, 왕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검이었던 라인 레이먼드 님이 나의 조상님이시다.”
“증거가 있나요?”
도를 넘은 생도의 발언에 더 이상 로만은 참지 않고 벌떡 일어나 그의 앞으로 쿵쿵 다가갔다.
키 차이가 꽤 있었기에 자연스레 로만이 이안을 내려다보는 구도가 되었다.
한 대 쳐도 문제없을 정도의 모욕적인 언사.
로만은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함부로 나의 피를 모욕하느냐. 꼬마야, 면접에서 합격하려는 작전이라면 지독하게도 잘못 짜 왔구나. 생각만큼 내 자비는 깊지 않다.”
분노한 로만이었지만, 속으론 이쯤하면 겁을 먹은 생도가 꼬리를 말고 사과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뜻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후.”
오히려 생도 쪽에서 애써 분노를 진정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이 자리의 모두가 받았다.
심지어는 주머니에 푹 찔러 넣은 손이, 자칫 잘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날릴 수 있기에 스스로를 억제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확실하냐고.”
“……!”
순간, 로만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려 한쪽 발을 들어 올렸다.
로만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버지였다.
하나,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를 상회하는 압박감.
앞에 있는 소년은 평생 진리로 여겨온 진실을 향해 의문을 던졌고, 의심조차 해본 적 없던 견고한 진실에 묘한 파동이 치기 시작한다.
“무슨, 뜻이냐.”
당황하여 한 발 물러선 로만의 질문에 이안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몸을 휙 돌렸다.
“그건 네가 알아봐야지.”
덜컹.
쾅!
거세게 문을 닫으며 밖으로 나간 이안. 면접실 내부에는 작은 폭풍이 휘몰아친 것만 같은 적막감이 맴돌았다.
단원들은 소년의 위압감에 당황해서 입만 벌린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땀? 긴장했다고? 내가? 고작 어린생도 하나한테?’
로만은 이마를 타고 뺨을 적신 땀 한 방울을 발견하고는 찝찝한 마음으로 얼른 그것을 숨길 뿐이었다.
* * *
“하, 짜증나네.”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넬슨과 한나를 소환해서 방금 전 상황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흠, 좀 놀랍군요.”
한나와 넬슨도 신성 기사단에 대한 건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황당하다는 반응들이었다.
나는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짜증을 냈다.
“그건 자신이 내 후손이라고 진짜로 믿고 있는 눈이었어. 기사단장까지 됐으면 뭔가 알고 있을 줄 알고 떠봤는데 전혀 아니더라.”
얼마나 지독하게도 사실을 감췄는지 거짓 그 자체인 당사자조차 스스로 내걸고 있는 간판이 거짓인 줄도 모르고 있다.
빌어먹을 놈들.
차라리 알고 있었다면 파고들어서 진실을 밝히기 훨씬 쉬웠을 텐데.
“쉽게 밝히긴 힘들 것 같네요.”
넬슨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한다.
“가장 좋은 건 이번 단장의 깽판으로 의아함을 느낀 로만이 스스로 알아보는 것이겠군요.”
“그렇…… 깽판?”
슬쩍 한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괜히 기침을 하며 창문을 연다.
“환기시키겠습니다.”
“하아, 그래 창문이라도 좀 열어라. 괜히 답답하다.”
어차피 고민한다고 해서 당장에 답이 나오지는 않기에 일단은 레이먼드 가문에 한 방 먹여줬다는 걸로 만족했다.
그때 창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이아안!”
황급하니 몸을 낮춰 숨는 한나와 넬슨을 지나친 나는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토끼마냥 깡충깡충 뛰며 손을 막 휘젓는 샬롯이 있었다.
“방금 면접 결과 나왔어! 우리 합격했대! 꺄아!”
얼마나 신이 났으면 기숙사 사람들 다 볼 수 있게 나한테 소리를 지르고 있냐.
“어휴, 저 바보.”
뒤에 있던 넬슨이 이마를 탁 치며 후손을 부끄러워했다.
“이안! 나와 봐! 같이 필요할 것 같은 물건 리스트 좀 짜자!”
“어! 나 안 갈 거야!”
“……어?”
“은빛사자 갈 거라고!”
“무, 뭐? 왜?!”
“이름이 구리잖아! 신성이 뭐야 신성이! 은빛사자! 개 멋지잖아!”
쾅!
창문을 그대로 닫아버린다. 밖에서 샬롯이 “은빛사자라는 이름이 더 유치하지 않아?!” 하고 투덜거리지만 못 들은 척했다.
“아니, 기사단이면 사자 정도는 돼야 하는 거 아니냐?”
팔짱을 끼고 콧바람을 뿜어대며 내가 말하자 바로 일어선 한나와 넬슨.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갑옷이랑 방패에 그려진 사자를 보면 차오르는 감성을 요즘 애들이 알 리가 있겠습니까.”
300년 전에는 진짜 멋있다고 다들 좋아했는데, 요즘 애들은 감성을 모른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