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8
28화.
적적하니 어두운 밤공기가 거친 돌산 위에 짙게 깔렸다.
그러한 밤공기를 흩트리며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무리.
정체를 숨기겠다는 의도가 너무도 보이는 가면과 두꺼운 로브.
하나 이들의 목덜미에는 하나같이 짐승의 이빨 모양을 한 로자리오가 걸려 있었다.
걸음걸이에서는 물론,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조차 흘리지 않는 이들이었으나….
막상 가면 안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경박하기 그지없었다.
“로베르담에서 우리 형제 중 하나가 걸렸다는 거 들었어?”
“형제? 그냥 레지스탕스 아니야? 로베르담시의 발표로는 레지스탕스라던데.”
“그게 실은 우리 형제 중 하나가 레지스탕스였다고 하더라. 내 정보통이 알려줬어.”
경박한 남자의 웃음소리가 이어진다.
“멍청하긴. 신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면 가만히 있을 것이지.”
“나름의 계시를 받은 거겠지.”
마몬교의 신자들은 300년 전에도 그랬듯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그저 개인에게 내려오는 악마의 계시를 통해 행동할 뿐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원래였다면 아무런 관계도 없을 무리들이 계시라는 이름의 명령을 따라 한데 묶여 행동하고 있었다.
“그만.”
그중 가장 먼저 앞장서던 여인이 걸음을 멈추며 대화를 끊는다.
“도착했다. 그런 하찮은 일에 신경 쓰지 마라.”
“예이.”
걸음을 멈춰선 일행들은 저 멀리 있는 깊고 거대한 구덩이를 눈에 담았다.
그 구덩이 근처에는 수많은 보초들이 서 있었는데 얼마나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는지 개미 하나 들어가기 힘들어 보였다.
“작전대로 한다.”
여인의 한마디에 일행은 고개만 끄덕인 후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고.
홀로 남은 여인은 가면을 슬쩍 벗고 로자리오를 꼭 쥐더니 입을 맞췄다.
“당신의 만찬을 위하여.”
가장 거대한 감옥에 수감된 오래된 죄인을 꺼낼 시간이었다.
* * *
사건 이후, 폭풍 같은 일주일이 지나갔다.
크게 다치지 않았음에도 아카데미 측에서는 혹시 후유증이 남을지 모른다며 강제로 입원시켰다.
이후 레지스탕스를 소탕한 기사생도라는 이름으로 취재도 당하고, 납치당했던 귀족 가문으로부터 선물도 잔뜩 받았다.
의도치 않게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마몬의 선지자들에 대한 고민만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결론은 늘 하나로 귀결되었다.
당장에 내 힘으로는 그들을 일일이 추적하거나, 행위를 방해하기 어렵다.
아직 나는 기사생도에 불과한 이안 아이넬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최대한 빠르게 힘을 키우고, 기사단원들을 소환한다.
추가로 아카데미의 새싹들을 길러 강대한 기사단을 만들어 그들과 대적하는 것.
시간은 조금 걸릴지언정 그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다이니였다.
부모님의 유품이라는 마몬의 로자리오.
그게 계속 거슬려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다이니와 몇 번이고 얘기를 나눴으나 딱히 마몬의 선지자처럼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본인이 더 의욕적으로 로자리오에 담긴 가문의 비밀을 알아보겠다며 선언하는 모습에 우선은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감금에 가까운 일주일의 입원을 끝마치고….
나는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안!”
돌아온 나를 가장 먼저 반겨준 건 살롯이었다.
아침훈련을 하고 있었는지 뒤로 묶어 길게 늘어뜨린 분홍머리를 촐랑거리며 다가온다.
“몸은 좀 괜찮아? 병문안 가고 싶어도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지를 못해서 어쩔 수 없었어!”
“왔어도 기자들이랑 다른 귀족들이 보낸 선물에 치여서 반겨줄 시간도 없었을 거야.”
애초에 아프지도 않았으니까 병문안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러고 보니 받은 선물이 너무 많아 곤란했는데 마침 잘됐다. 나는 끌고 온 캐리어에서 병원에서 받은 선물들을 꺼냈다.
“이거 가져. 그리고 이것도.”
“어? 응?”
자신의 손 위에 착착 올라가는 과자 상자들을 보면서 당황한 샬롯.
“이, 이제 그만 줘도 되는데?”
어느새 얼굴 높이를 훌쩍 넘긴 상자들을 보며 당황해서는 버둥거리는 모습에, 손가락에도 슬쩍 과자 담긴 종이봉투를 걸어줬다.
각 가문에서 자제들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보낸 선물들인데 처치 곤란이라서 힘들었다.
“왔군.”
앞이 안 보인다며 아등바등하는 샬롯의 뒤에서 다가온 덩치 큰 남학생, 베런 둠베스트.
지난번 샬롯의 검술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준 뒤로 그녀와 가끔 훈련을 함께하고 있었다.
“몸은 좀 괜찮나?”
“너무 좋아서 문제야.”
의도치 않게 일주일을 쉬어버렸으니 얼른 몸을 움직이고 싶어서 쑤신다.
그런 대답에 베런은 묵묵하니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연다.
“다행이군, 어떻게 보면 1학년 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네가 놓칠까 걱정했다.”
“가장 중요한 시기?”
이제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런 중요한 게 있나.
의아함에 고개가 살짝 기울어진다.
“중간고사 같은 거라도 있는 거야?”
“그건 다음 달이다. 이건 중간고사보다 훨씬 더 중요하지.”
“뭔데?”
이쯤 되면 궁금해지는데?
진중한 성격 탓에 베런이 의도치 않게 뜸을 들이고 있던 순간.
“기사단 현장체험이야! 이안, 나랑 같은 기사단으로 가자!”
옆에서 과자상자들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정리하던 샬롯이 송곳처럼 끼어들어 왔다.
“…….”
자신이 할 말을 뺏긴 충격에 입을 벌린 채로 잠시 샬롯을 보던 베런이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 * *
기사단 현장체험.
몇몇 아카데미와 협의하여 1학년 기사생도들에게는 실제 기사의 생활체험과 동기부여를 목적으로 수많은 기사단과 계약을 맺어 1박 2일로 현장체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말이 현장 체험이지 그냥 본인들의 일상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것으로 많은 생도들에게는 자신의 꿈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서 평이 좋다고 한다.
기사단 측에서도 자신들의 기사단에서 현장체험을 한 학생이 졸업할 경우, 스카우트 우선권을 배부 받을 수 있기에 서로가 웃으며 협약을 맺었다.
“여러분, 지금 나눠드린 지원서에 적힌 기사단들 중에 현장체험을 원하는 기사단 하나를 체크하시면 됩니다.”
강의실 안, 젠트 교수가 웃으면서 배부된 종이를 한 손에 쥐고 설명을 시작한다.
“아무래도 인기 많은 신성기사단이나 적장미, 레아 기사단은 받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으니 잘릴 수 있다는 거 주의하시고요.”
각 기사단 밑에 적힌 제한인원이 눈에 확 들어온다.
대부분의 기사단이 적게는 서른 명에서 많게는 백 명까지도 받고 있었는데….
“신성기사단 5명?”
가장 인기가 많은 기사단에서 딱 5명만 받는다니…
신성기사단은 경쟁이 치열할 듯싶었다.
그때 한 생도가 손을 번쩍 들었다.
“교수님! 인원이 몰렸을 때 선택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아주 좋은 질문이라며 젠트 교수가 빙그레 웃으며 설명한다.
“기사단에 따라서 다릅니다. 무작위로 추첨을 하는 기사단도 있는 반면….”
척.
“신성이나 적장미처럼 아예 학생 개인 면접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면접이라고 해도 고작 1~3분 정도 자기 피력을 할 뿐이지만요.”
“오오~”
생도들의 기대감이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결국 면접 준비만 잘하면 대륙 최고의 기사단을 가까이서 눈에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공부가 되겠지.
또한 기사단원들이 1학년 생도들을 1시간 정도 직접 지도해 주는 시간도 있다.
그런 부분까지 고려한다면 신성 기사단에는 다들 득달같이 달려들 게 뻔했다.
잔뜩 흥분한 생도들 사이에서 내 시선은 어느새 종이의 끝에 도달해 있었다.
“…….”
[은빛사자 기사단]-제한인원 없음.
맨 밑에 아주 초라하게도 적혀 있는 은빛사자 기사단.
그것도 다른 기사단처럼 제한인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오면 다 받아준단다.
사실상 걸러지고, 걸러지고 또 걸러진 생도들이 도달하는 장소.
솔직하게 말해서 조금 짜증이 나서 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버렸다.
우득!
그리고 그 탓에 펜이 부러져 버렸다.
‘아 씨.’
마나가 갑자기 치고 올라와 손에 감겼기 때문인데 샤카렌에게서 마몬의 힘을 흡수한 이후부터 계속 이렇다.
‘마나가 가끔 자기 멋대로 움직인다.’
덕분에 다룰 수 있는 마나의 양이 더 늘긴 했으나, 이렇게 가끔씩 통제를 벗어난 마나가 툭 치솟아 오른다.
마치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다고 내게 호소하는 기분.
어차피 선물 받은 펜이 많았기에 부러진 건 옆에 치워두고 새 펜을 꺼낸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마리아가 어깨를 딱 붙이며 제안해 왔다.
“적장미로 가자!”
“…….”
“가자! 적장미로! 나는 무조건 적장미로 가야 하니까 너도 가는 거야!”
그러더니 바로 손을 뻗어서 내 지원서를 뺏으려 드는 마리아.
재빨리 그 손을 밀어내면서 차단한다.
“나는 갈 곳 정했거든? 뭔 적장미야.”
거기 가서 내가 뭐 하겠는가.
그러자 마리아가 씩씩거리면서 주먹으로 쾅 책상을 내리쳤다.
덕분에 주변 생도들의 시선이 확 쏠려버렸다.
“야! 나 혼자 가면 재미없잖아! 또 지긋지긋한 언니들 봐야 하는데!”
“어쩌라고.”
진심으로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어깨를 으쓱이며 능글맞게 비웃어 주자 마리아가 콧바람을 흥 하고 불면서 펜을 쥔다.
그러더니 자기 종이의 이름 란에 내 이름을 적는 게 아닌가!
“야! 야!”
“그냥 가자고!”
왜 이렇게까지 억지를 부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리아의 억지를 뿌리친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지원서를 내려다봤다.
사실 선택지는 딱 두 개였다.
하나는 당연히 은빛사자 기사단.
얼마나 기사단이 개판인지 한번 봐두면 앞으로의 재건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거다.
다른 하나는 신성기사단.
내 후손이라고 사칭하는 녀석들의 얼굴 한번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나는 은빛사자 기사단 쪽에 체크했다.
‘은빛사자로 가는 쪽이 훨씬 합리적이다.’
신성기사단은 궁금하긴 해도, 내 개인적인 사욕일 뿐이다.
게다가 마몬교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상황.
나는 하루 빨리 기사단원들을 소환하거나 넬슨에게 한 것처럼 촉매를 통해 강화할 필요가 있다.
‘보통 기사단은 옛 물건들에 상징성을 부여하고 귀중하게 보관한다. 특히나 우리 같은 과거의 전설로 치부되는 기사단은 더 심하겠지.’
한마디로 촉매로 쓸 수 있는 물건들이 넘칠 거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기대돼서 두근두근 거려서 웃고 있자니….
옆에서 슬쩍 얼굴을 내미는 에디 브릴리언.
이번 사건에서 내가 도와준 뒤로 은근히 내 주변을 맴돌고 있는 녀석이었다.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리는 마리아를 지나쳐 다가온 에디는 웃으면서 제안했다.
“레아 기사단으로 가지 않을래?”
레아 기사단은 전통적으로 브릴리언 가문의 가주들이 기사단장을 맡는 곳이었다.
적장미와 마찬가지로 서른 명밖에 되지 않는 최대 인원.
신성 기사단을 제외하면 가장 적은 인원을 받는다.
“…….”
“내가 가서 잘 말해볼게.”
눈을 찡긋하고 웃으며 엄지를 치켜드는 에디.
상큼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지만 결국 비리를 저지르겠다는 말이지 않은가.
“가라.”
손을 휘저어 쫓아내자 이번에는 베런이 자신의 덩치를 숨기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며 다가온다.
“저기…….”
“흑곰 기사단 안 갈 거야.”
“…….”
하여간 이것들이 어려서부터 이상한 버릇이 들었다.
그렇게 종이를 제출하고 몇 시간 뒤.
나는 따로 젠트 교수에게 불려갔다. 갑작스러운 호출에 레지스탕스와 관련된 일일 줄 알았지만….
교무실에서 마주하자 난처한 듯 안경을 살짝 치켜 올리며 종이 두 장을 내민 젠트 교수.
“이안 생도. 제출된 종이가 두 장인데요?”
“예?”
“하나는 은빛 사자고 하나는 적장미인데 어떻게 된 거죠?”
황당해서 말이 제대로 안 나온다. 마침 교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마리아.
내 어깨 너머로 그녀를 본 젠트 교수가 손짓하며 부른다.
“마리아, 지원서를 아직 제출 안 했는데. 혹시 이게…….”
젠트 교수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왜냐면 사태를 파악한 마리아가 바로 몸을 틀어서 도망치기 시작했으니까.
“저거 진짜 미친 것 같아.”
이마를 탁 치며 한숨을 내쉬려던 순간….
엄청난 묘안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잠시만요, 교수님.”
“응?”
나는 갑자기 떠오른 묘안에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 지망 기사단을 바꾸고 싶습니다.”
내 말에 젠트 교수는 어렵지 않다고 답했다. 이미 몇 번인가 바꾸러 온 생도가 있었다면서.
“어디로 갈 생각이니?”
아무래도 은빛사자는 좀 그렇지 하고 덧붙이는 젠트에게 나도 동조하듯 끄덕이며 답했다.
“신성으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