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39
39화.
“하악 하악! 저거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마몬의 선지자 중 하나가 다급하게 외쳐보지만, 구름 안에 숨어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존재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젠장! 자길 풀어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지 멋대로 굴고 있어!”
“자그마치 300년을 감옥 안에 갇혀 있었는데 그럴 만하지!”
“잡담 그만하고 쫓아, 이 새끼들아!”
골짜기 습격의 여파로 이제는 몇 남지도 않은 마몬의 선지자들이 거대한 존재를 쫓았다.
300년 동안 갇혀 있단 가장 오래된 죄수.
마몬의 마수 중 하나인 가르간테는 골짜기의 감옥을 벗어나서부터 계속해서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마몬의 선지자들도 그가 어디를 향해서 날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구속을 풀어준다면, 같은 마몬의 권속임을 알아차릴 줄 알았건만.
가르간테는 본인을 300년 된 구속에서 풀어준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향해 충실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 끝이 어디인지는 선지자들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가르간테의 탈옥을 돕다가 죽었다.
여기서 그냥 내버려두기에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
직접 이용하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가르간테의 목적이라도 확실히 파악해야만 한다.
“잠깐!”
선지자 중 가장 앞에서 달리고 있던 여인이 흐트러진 가면을 고쳐 쓰며 손짓한다.
딱히 그녀를 따르고 있는 건 아니지만, 다들 자연스럽게 그녀의 말대로 걸음을 멈췄다.
“왕국군이다.”
누구도 깨닫지 못했으나 시선을 지평선 너머로 두자, 떠오르는 태양처럼 왕국의 군대가 차분히 걸어오고 있었다.
찬란하게 흔들리는 깃발에는 태양의 눈동자가 그려져 있었다.
새벽 눈 기사단의 깃발이었다.
“거물인데?”
“기사단뿐만 아니라 마도병단까지 왔는데?”
기사들에게 기사단이 있듯, 마법사에게는 마도병단이 있었다.
새벽 눈과 협력관계인 푸른 눈동자가 그려진 깃발이 펄럭인다.
“마나의 푸른 눈이야. 더 이상 접근하지 마. 함부로 다가가면 바로 색적당한다.”
이미 골짜기의 감옥이 괴한들의 난입으로 무너졌다는 건 보고가 들어갔을 거다.
여기서 가르간테를 쫓아가다가는 저들에게 발각당할 수 있다.
자신들의 정체가 왕국 측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선지자들은 우선 거리를 벌렸다.
과연 가르간테가 자신의 앞길을 막는 적들을 어떻게 대할지 궁금했다.
엄청난 마나가 마도병단 측에서 먼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한 사람의 마법사인 것처럼 마나를 응축시켰고, 그것은 거대한 쇠사슬 모양을 이루며 하늘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촤르르르륵!
구름을 꿰뚫고 날아든 거대한 푸른빛의 쇠사슬이 목표를 낚아챘는지 팽팽하게 당겨진다.
둥! 둥! 둥! 둥!
리드미컬한 북소리와 동시에 점차 당겨지기 시작하는 쇠사슬.
구름 속에서 숨어있던 가르간테의 얼굴이 튀어나온다.
용보다는 뱀이 더 어울리는 얼굴 뒤로 목을 칭칭 감고 있는 푸른 쇠사슬.
그러자 이번에는 기사들의 화살이 쏘아진다.
가르간테의 몸통은 상당히 높은 고도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마나가 잔뜩 실린 화살들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박혀 들어간다.
“저 거리를 쏘네.”
“새벽 눈은 원거리 화력 지원에도 강점이 있는 기사단이잖아.”
“푸른 눈의 마법도 짜임새 있고 견고해. 이거 우리가 도우러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선지자들은 가르간테의 위기를 보며 서로 한마디씩 의견을 낸다.
만약 저 쇠사슬을 끊지 못하고 지상으로 끌려 내려온다면 사실상 가르간테의 패배는 확실시된다.
해충처럼 날렵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새벽 눈의 기사들을 가르간테 혼자서는 막아낼 수 없을 거다.
퉁!
거기에 추가로 등장한 노포에서 거대한 작살처럼 생긴 화살들이 쏘아져 들어간다.
화살에 적중당한 가르간테의 검은 비늘이 벗겨지며 비명을 토해낸다.
누가 봐도 위험해 보이는 상황이었으나, 선지자들 중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여인은 차분하게 입을 뗀다.
“300년 전, 마몬님의 침략전쟁에서 가르간테는 사실 두드러진 활약을 하지 못했어.”
뜬금없이 역사 이야기에 몇몇이 어깨를 으쓱이며 빈정댔지만 그녀는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시 마몬님께서 요충지였던 벨로콥 성을 혼자서 점령하라고 투입하셨지만, 안타깝게도 거기엔 대마법사 힐다가 있었거든.”
전무후무한 천재 마법사.
기사 중의 기사를 꼽으라면 열이면 아홉은 은빛 사자의 라인 레이먼드를 꼽는다.
그렇다면 마법사 중의 마법사를 꼽으라 한다면?
열이면 열.
모두가 한 마음으로 같은 여인을 가리킨다.
대마법사 힐다.
“힐다에게 패배한 이후, 포박당해서 지금까지 갇혀 있었던 거야. 저 멍청한 마수는.”
그렇기에 역사서에도 가르간테에 대한 이야기는 딱히 나오지 않는다.
왕국군에 크나큰 상처를 남긴 다른 마몬의 마수들과 비교하면 별다른 피해도 주지 못하고 바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수많은 마수를 다뤘던 마몬님이, 혼자서 성 하나를 초토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의 전력이었다.”
쩌저적!
그 말과 동시에 가르간테의 목에 감겨 있던 쇠사슬에 금이 가더니 그대로 깨지기 시작한다.
대규모 마법이 깨진 걸 보며 마법사들은 현기증을 호소했으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분노로 일그러진 가르간테의 포효와 동시에 쏟아진 숨결이 기사와 마법사, 누구 할 것 없이 평등하게 쏟아져 내렸고….
딱 10분.
교전을 시작한 지 10분 만에 적들에게 괴멸적인 타격을 입힌 가르간테는 유유히 구름 위로 모습을 감추며 다시금 동쪽으로 떠나갔다.
전투 속행이 불가능한 타격을 입은 새벽 눈과 푸른 눈의 곡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했다.
“또 가네.”
“이젠 못 쫓아가.”
선지자들도 지쳐서는 항복을 선언한다.
저 은혜도 모르는 마수한테 욕지거리를 하거나 한 방 쥐어박아 주고 싶어도 방금 광경을 보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알겠네.”
리더인 여인은 모습을 감춘 가르간테의 뒤를 눈으로 쫓으며 중얼거렸다.
아예 더 높은 고도로 올라가 이제는 위치를 특정하는 것도 불가능해졌지만.
여인은 가르간테가 어디로 가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주인이 죽은 지금.
가르간테에게 지금 남아있는 욕망은 오롯이 하나.
대마법사를 향한 복수였으니.
대마법사 힐다의 모든 흔적을 지우기 위해 마수는 하염없이 동쪽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 * *
메이지 아카데미 체험 입학 닷새 차.
피로는 기사단원이라도 된 것처럼 나와 계속 함께하고 있었고, 입안에서는 매점에서 파는 피로회복제 맛이 빠지지 않는다.
몇 번이나 양치질을 해도 혀와 코에 계속 그 향이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편한 점이라고 한다면 교복이라 부를 수 있는 백색 로브였다.
기사로서 정복이나 갑옷만 입어왔는데, 펑퍼짐하니 걸치기만 하면 몸 전체를 가려주는 로브를 입으니 몸이 너무 편하다.
차라리 이러고 싸우는 게 훨씬 편할 것 같았다.
기사는 예우와 격식을 중시하지만, 마법사는 효율을 중시한다는 말이 있는데 각 아카데미의 교복을 통해 그걸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흐암.”
하품을 하니 자연스럽게 고개가 위로 들려진다.
시야도 함께 올라갔는데 본관 건물 옥상에 박힌 거대한 마석이 딱 눈에 들어온다.
대마법사 힐다가 만들었다는 독창적인 마석.
듣기로는 저 안에는 힐다가 평생에 걸쳐 만든 대마법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다만 수수께끼처럼 복잡한 술식으로 잠겨 있어 아직 무엇인지는 모른다.
마법사들 중에서는 저것만 전문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들었다.
‘힐다가 남긴 술식이라.’
실은 마석이 궁금했기에 한번 옥상에 가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옥상은 출입 금지라고 하여 못 들어갔다.
마법으로 문을 아주 거칠게 밀봉해 뒀는데, 아마 마석 근처도 따로 보호 마법이 걸려있을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하자니 힐다와의 일들이 떠올랐다.
힐다는 옛날부터 수수께끼를 좋아했다.
괜히 나한테 와서는 쓸데없이 이것저것 문제를 내는 게 귀찮기 그지없을 정도로.
그런데 또 도발에 넘어가서 골머리를 싸매다 맞추면 그렇게 좋아했었지.
해맑게 웃으면서 “정답! 정답!” 하고 책상을 탕탕 내리치던 목소리는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
뭔가 뒤가 콕콕 쑤시는 느낌이었다.
힐다가 기대감에 가득 찬 웃음과 함께 나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기분.
괜한 생각을 정리하며 나는 운동장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학도들이 몸을 풀거나, 마나를 가다듬으며 준비 중이었다.
오늘은 메이지 아카데미 1학년의 학기 종합 평가 과목 중 하나인 마도대련 날.
나이트와 메이지, 이 두 아카데미에서는 학기당 한 번의 학기 종합 평가를 치른다.
메이지의 경우, 나이트보다 봐야 할 과목이 많았기에 며칠 먼저 시작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거기에 나도 같이 끼게 된 상황이었다.
몇몇 학도들이 나를 힐끔거렸으나, 나는 그런 시선을 무시하고 마나를 자연스럽게 몸에서 흘려냈다.
메이지 아카데미에 온 지 이제 닷새.
남은 이틀은 주말이기에,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봐도 되는 상황.
딱 맞게 성과를 발휘할 기회가 찾아왔다는 생각에 나잇값 못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 * *
“자! 마도대련을 시작한다. 우선은…….”
마도대련의 심사를 보기 위해서 수많은 교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C반 27번 사리아 벤터 그리고 상대는 기사생도…… 이안 아이넬.”
기대하긴 했는데 설마 시작부터 불릴 줄은 몰랐다.
학도들 무리에서 탄성이 터져 나올 것도.
“나이스!”
사리아 벤터라고 불린 학도는 껑충껑충 뛰면서 자신의 벌써부터 승리를 자축한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보호 마법이 걸린 두꺼운 로브를 걸치는 모습이 참 미묘하다.
“벤터? 쟤가 왜? 그래도 C반에서 10등 안에는 들잖아.”
“1회전 넘어가네. 개부럽다.”
“솔직히 그냥 부전승 시켜주는 거랑 뭐가 다르냐.”
“만약 이거 성적에 반영되면 나 진짜 항의할 거야.”
벤터라는 학도를 향한 시기와 질투가 쏟아져 나온다.
보약 취급을 받게 된 나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대련장으로 나왔다.
대련장에 서니 교수들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나를 향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생도라는 것 때문에 나를 좋지 않게 보는 거다.
알프레도 교수만이 온화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데, 내게 묘한 믿음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민망했다.
“흐음.”
대련용으로 지급된 로브를 한번 훑어본다. 마법 몇 방 맞는 것 정도로는 흠집도 나지 않을 듯했다.
‘이걸로 대련을 할 수 있나?’
그냥 맞아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와중 규칙 설명이 시작된다.
“마법을 맞은 충격으로 기절하거나, 장외, 마나 탈진, 또는 교수님들의 재량으로 판정승패가 갈릴 수 있습니다.”
꽤나 애매한 규칙이었다.
학도를 지키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보호 장비가 너무 완벽한 게 흠이다.
아무래도 목검이랑은 다르게 마법은 자칫 잘못하면 진짜로 학도가 죽을 수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만.
‘흐음, 궁금하네.’
궁금증을 안은 채로 대련이 시작되었다.
“마력탄도 못 만들던데 보호막은 펼 수 있냐?!”
양손을 쫙 펼친 벤터의 마력탄이 둥실 떠오른다. 빈약하다면 빈약한 마법.
하지만 이것 또한 그 나름의 전략이었다.
마도대련은 같은 날 결승전까지 진행된다.
따라서 필승이 확정된 상대에게는 마나를 아끼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쾅!
정확하게 나를 향해 쏟아져 들어온 마력탄.
일부러 피하지 않고 맞았는데 두개골이 띵 하고 울려온다.
“으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돌린다.
“무슨 느낌인지 알겠네.”
이건 일종의 치환마법이었다.
외부에서 들어온 충격을 흡수하고 완화시키지만 완벽하게 막아주진 않는다.
몸에 상처는 없되 피해는 남는다.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 아주 독특한 보호장비였다.
옛날이었으면 걸려 있는 마법을 알아보지도 못했을 텐데 나름 뿌듯하기까지 하다.
“뭐야. 꼴에 생도라고 몸 하나는 튼튼하네.”
한 방에 쓰러트리지 못했다는 것이 불만이었는지 툴툴거리는 벤터.
“너희가 지나칠 정도로 비실한 거야. 운동 좀 해라.”
그런 놈에게 한심하다는 듯 한마디 날려주며 바로 마나를 끌어 올렸다.
둥실.
내 머리 위에 떠오른 마력탄.
꾸득 하고 주먹을 쥐자 내 마력탄의 정중앙에서 검은빛이 희석되듯 뒤섞이기 시작한다.
그걸 본 학도들이 순간 웅성거린다.
“으음?”
“저건 또 뭐야?”
학도들도 의아한 표정으로 나의 마력탄에 집중했고….
“묘한 마력탄이군요.”
“겉으로 보기에는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은데.”
“알프레도 교수님이 뭔가 알려주셨습니까?”
교수들조차 이런 마력탄은 처음 보는지 이목이 집중된다.
이안은 주변의 반응을 무시한 채 마나를 조종했고, 검은빛을 머금은 마력탄은 쏜살같이 벤터를 향해 날아갔다.
슈웅!
쾅!
장내를 울리는 폭음과 함께 벤터의 주위로 짙게 피어오르는 연기.
평범한 마력탄이라고 믿기 힘든 파괴력에 모두가 입을 다문다.
이윽고 연기가 걷혔을 때….
벤터는 거품을 물고 기절해 있었다.
왜 마도대련은 시간이 짧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운동 좀 하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