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66
66화.
“으음.”
납치사건이 끝나고.
힐다의 마석에 관한 행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으나 나는 메이제렌에 있는 가장 큰 병원에서도 개인실에 입원한 상태였다.
널찍하면서도 마법을 활용한 치료가 상당히 발달된 병원이라 사실상 이미 치료는 끝났고, 휴식기를 지내는 중이었다.
납치사건 당시에도 꽤나 촉박하게 움직였는데, 막상 진짜 바쁜 건 그 뒤였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마석에서 봤던 것들을 사흘 동안 여유롭게 증언해야 했다.
그런데 사건 때문에 시간이 촉박해졌고, 학회 측에서는 상당히 조급하게 내 이야기를 듣고 행사를 준비했다.
그래도 지금 행사가 진행되는 걸 보면 다행히 제시간에 맞춰서 깔끔하게 정리가 된 듯했다.
생도인 내가 황색 마탑주를 잡은 건 굳이 세간에 밝히지 않기로 했다.
이전에 레지스탕스를 혼자 소탕한 걸로 시끄러워졌던 걸 생각하면 굳이 이 이상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내가 메이제렌에서 할 일은 없지만 나는 조금 더 이곳에 남을 생각이었다.
테르토나 샤이먼과의 친분도 쌓았으니 소환마법에 대해서 좀 더 배울 필요도 있었고, 영약 복용 이후 호우만의 케어도 아직 덜 끝났으니까.
그러니 어서 퇴원하기를 기다렸으나.
또 막상 가만히 있는 것도 몸이 쑤시다 보니 이번 습격의 전리품으로 손을 뻗는다.
수북히 쌓인 제각각의 길이를 가진 지팡이들.
전부 마법지팡이며 이번 마탑 습격에서 얻은 부가적인 전리품이었다.
내가 마탑주의 방에 쳐들어갔을 당시, 밑에서 소란을 피우던 엘빈, 켈빈 쌍둥이와 도로시가 주워 온 물건들.
마법사가 되었으면 지팡이 정도는 다루셔야 한다면서 억지로 나한테 떠넘기고 가버렸다.
처음에 지팡이를 받았을 때는 기사단이 아니라, 무슨 도적단인가 싶었다.
황색 마탑에서도 이에 대해 모를 리 없지만 황색 마탑주의 범행 탓에 그냥 입을 다문 듯 보였다.
확실히 지팡이 하나 정도는 필요할 듯싶었기에 일단 하나씩 시험해 보고 있었다.
내 팔 길이 정도 되는 지팡이를 손에 쥔 채로 보조마법을 건다.
마나가 좀 더 효율적으로 외부로 표출되어 소모되는 마나량은 적어졌지만.
‘그다지 메리트가 없는데.’
굳이 이렇게 한 손에 지팡이를 쥐고 있을 정도의 메리트가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검사다.
지팡이를 몽둥이처럼 휘두르며 근접전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별 도움이 안 될 듯싶었다.
다른 지팡이들을 하나씩 쥐어보며 계속 사용해 본다.
나름 나쁘지 않은 지팡이도 있었으나, 이 역시 전투에서 한쪽 손을 포기하면서까지 쓸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보조 정도로 생각해야 하려나?’
내가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단원들을 지휘할 때 사용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 듯싶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계속 여러 지팡이를 다뤄보고 있었는데….
파직!
황금빛 구체가 뿌리에 휘감기듯 걸려있는 지팡이에 마나를 불어넣자 바로 그 끝에서 전격을 흘려낸다.
살짝 놀라긴 했으나 이미 이와 유사한 걸 한번 본 기억이 있었다.
“마탑주가 가지고 있던 반지랑 비슷한 개념인 것 같네?”
마나를 다루기 힘든 상황에서도 단순 주문 하나로 마법을 쏘아냈던 소형 마석.
이건 아무래도 캐스팅 없이 바로 마나만 주입하면 사용할 수 있게 하려고 전격 마법이 담긴 마석을 지팡이에 심어둔 것 같았다.
“이거 괜찮네.”
속성 마법을 다루지 못하는 내게 있어서는 꽤나 유용한 무기가 되어줄 듯싶었다.
아예 한번 실전처럼 사용해 볼까 싶어서 단원들을 소환해 본다.
병실 내부에 빛이 환하게 쏟아지고, 모습을 드러내는 은빛의 기사들.
따로 임무를 나간 한나를 제외해도, 다섯 명이나 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함과 든든함이 차오른다.
“단장! 이번에 저 진짜 고생했습니다!”
투덜거리면서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한 넬슨.
“와, 300년이 지나니까 병실도 아예 다르네.”
“나는 무슨 왕궁인 줄 알았어.”
유난 떨면서 괜히 병실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한 쌍둥이.
“음식 맛이 그렇게 바뀌었다고요?”
“옛날에 먹던 건 이 시대의 음식에 비교하자면 맹물이나 다름없다. 저번에 국수를 사주셨는데…….”
자기들끼리 먹을 거 얘기를 시작한 도로시와 톰.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소환된 이것들을 보면서 감동의 물결이 막 가슴 속에서 차오르던 기분이었는데.
“역소환 해버릴까.”
그냥 평화롭던 병실에 갑자기 괴한이 난입한 느낌이 되어버렸다.
이럴 때 한나가 있으면 깔끔하게 정리될 텐데.
쌍둥이나 도로시 기수들은 한나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니까.
‘잘하고 있으려나?’
* * *
“아이쿠.”
가문 저택에 있는 작은 서고.
옛날에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공간.
그곳에서 책을 읽고 있던 다이니는 머리를 책장에 박은 후에야 자신이 졸았다는 걸 깨닫는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이후, 다이니는 자신의 목에 걸린 로자리오와 부모님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안 아이넬에게 당당하게 선언하고 온 것치고는 썩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뭐 꼬리가 보이기라도 해야 쫓거나 잡든가 할 텐데 아무 것도 남아있는 게 없다.
보통 종교인이라면 자신의 방이나 저택 내부에 관련 물품을 하나 정도는 남겨둘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혹시 남아있는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가 치웠나 했으나.
‘할머니는 건드리지도 않으셨다고 했고.’
아직까지도 침실이나 개인 서고 같은 곳은 그대로 남아 있고, 사용인들이 먼지만 치우고 있었기에 딱히 달라진 건 없었다.
천천히 고개를 숙여 목에 걸린 이빨 모양 로자리오를 바라보는 다이니.
정말로 부모님이 악마숭배자였던 걸까?
자신도 악마를 숭배하길 바랐기에 이런 유품을 남겨둔 걸까?
그런 생각을 할수록 늘 자신에게 친절하던, 사랑스럽다 웃어주던 부모님의 얼굴에 검은 먹물이 푹 찍히는 기분.
“후.”
괜히 가만히 있어봤자 좋지 않은 생각만 하게 되기에, 심호흡하며 책을 덮고 일어난다.
창밖을 보니 별 하나 없이 초승달만 덩그러니 놓인 고요한 새벽.
뜨거운 차 혹은 남아있는 스프 같은 게 있다면 몸을 데울 생각으로 계단을 내려온 다이니.
혹여나 같이 사는 할머니가 깰까 싶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움직인다.
깜깜하니 어두웠으나 몇 년이나 살아온 저택이었기에 다이니는 망설임 없이 주방으로 향했고.
“끄, 어억!”
그곳에는 할머니의 목을 조르고 있는 거대한 괴한이 서 있었다.
“어?”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니, 지금 눈앞에 있는 광경이 진짜일까? 혹시 잠에서 덜 깨서 착각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파도처럼 덮쳐오는 살기.
흉흉한 남자의 붉은 눈빛은 로베르담 하수구에서 봤던 상어 수인, 샤카렌의 것과 동일했다.
“힉!”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마신다.
호흡이 제대로 뱉어지지 않았으며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목이 졸리고 있는 할머니가 눈에 밟혔기에.
다이니는 궁지에 몰린 생쥐가 고양이의 꼬리를 무는 것처럼 없던 용기를 쥐어 짜내어 달려들었다.
“하, 할머니!”
쿵!
그런 다이니를 보며 흥미를 느낀 걸까.
괴한은 바로 다이니의 할머니를 바닥에 내버린 후, 쿵쿵 소리를 내며 손을 뻗었다.
막상 다이니는 괴한이 이렇게 허무하게 할머니를 포기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생각보다 빠른 적의 주먹에 그대로 얻어맞을 뻔했으나.
파각!
식당 창문을 그대로 박살 내며 쏘아져 들어온 섬광과 같은 화살 한 방.
손등을 정확하게 꿰뚫고 들어간 화살에 달려들던 괴한의 몸이 흔들리며 옆으로 기울었고.
다이니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바로 몸을 날려 할머니를 안아 들었다.
“할머니! 할머니!”
몇 번이고 불러 봐도 방금 전 충격 때문인지 기절한 상태.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다이니는 초조함을 느끼며 서둘러 깨진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1층이었기에 낙하의 충격은 없었다.
괜히 기사생도가 아닌지라 마른 노파 정도는 거뜬히 업고 달릴 수 있지만.
‘과연 내가 저 괴물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까?’
의문은 두려움으로 변화하고 그것은 곧 다이니의 다리를 무겁게 만들었다.
쐐에엑!
또 다시 날아든 화살이 뒤따라오는 괴한의 머리를 노리고 파고든다.
괴한은 가까스로 양손으로 화살을 막아 즉사까진 피할 수 있었으나 꽤나 신경이 거슬리는지 숨어있는 궁수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날아드는 화살.
쏘아지는 화살세례의 기세는 점차 거세졌고, 결국 괴한은 결국 무릎을 꿇었다.
그걸 본 다이니는 다급히 손을 입에 물고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이이익!
꽤나 격렬한 소음.
하지만 한 번으로는 안 되는지 몇 번이나 계속해서 반복했고.
히이잉!
결국 다섯 번째 시도 끝에서야, 마구간에서 반응이 왔다.
“톨리아!”
갈색 말이 마구간 문을 박차고 나오며 다이니를 향해 달려온다.
어릴 적부터 함께 해왔던 가족과 같은 말이었다.
곧바로 기절한 할머니를 앞에 태운 후 자신도 올라탄 다이니.
다급하니 말고삐를 잡은 채로 저택에서 멀어지려 했으나.
“커억!”
이번에는 몸에 있던 공기가 모두 입 밖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충격이 복부를 정확하게 강타했다.
기절한 할머니를 태운 톨리아의 모습이 점차 멀어진다.
배가 뒤틀리는 충격 속에서 자신의 몸이 붕 떠올랐다는 걸 깨닫는 순간.
바닥을 구르며 역한 통증에 휩싸인다.
“쿨럭! 쿨럭!”
헛구역질과 함께 쏟아지는 침.
원래였다면 토사물을 뱉었겠으나, 먹은 게 없었던 탓이었다.
“놓칠 뻔했잖아.”
다이니의 복부에 마법을 쏘았던 남자가 터벅터벅 걸어온다.
헤드스킨에 머리를 뒤덮고 있는 흉측한 문신.
목에 걸린 역십자 목걸이.
이번엔 또 뭔가 싶었으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택 내부는 물론이고, 이곳저곳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하나같이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다들 똑같은 검은 로브와 역십자 목걸이를 두르고 있었다.
화살세례를 받은 거한은 무릎을 꿇은 채로 반쯤 실신했으나, 화살을 쏘던 궁수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3조가 추격해. 화살 쏜 놈 찾아서 내 앞으로 데려와.”
문신을 한 남자의 명령에 곧바로 움직이는 몇몇 인원들.
다이니는 벌벌 떨면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 일을 걱정했으나….
쿠웅!
쿵!
추격을 시작하던 3조의 두 명이 곧바로 이마에 화살을 얻어맞고는 바닥을 미끄러지며 날아간다.
순간적으로 시선이 쏠린 방향.
그 끝에는 은빛 갑옷을 입고, 머리를 묶은 여인이 거대한 장궁을 든 채로 서 있었다.
“너, 뭐 하는…….”
문신남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으며 입을 열었으나, 끝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모습을 드러냈음에도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한 것.
어찌나 화살을 쏘는 속도가 빠르고 정확한지 이쪽의 인원이 훨씬 많음에도 순간적으로 불리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
화살은 실체가 아닌 마나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한계가 없었으나.
이 이상은 힘들다 판단했는지 여인은 곧바로 활을 내버리고는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며 달려들었다.
콰앙!
깔끔하게 내질러진 그녀의 검을 한손으로 막아낸 문신남.
손에 상처는 없었지만 충격 탓에 뒤로 밀려난 그는 저릿한 손을 털며 외쳤다.
“두 년들 다 잡아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버럭 외치는 문신남의 명령에 다른 괴한들이 다가오지만, 여인은 그들로부터 몸을 돌려 다이니에게 다가왔다.
“어?”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서야 다이니는 알아차렸다.
자신을 구해주고 있는 이 기사의 다리가, 의족임을.
한나는 다이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곤 말했다.
“나이트 아카데미로 돌아가서, 이안 아이넬을 찾아. 나도 금방 따라갈게.”
“예?”
갑자기 이안에 대한 이야기가 왜 나오나 싶었으나 한나는 턱짓으로 뒤를 가리켰고.
그곳엔 언제 돌아온 것인지 눈치 빠른 톨리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시간을 벌 테니까.”
“하, 하지만…….”
“도움 안 되니까 가라는 소리야.”
냉정하게 들리지만 그것이 일종의 배려라는 걸 알기에, 다이니는 흠뻑 젖은 눈을 닦으며 답했다.
“꼬, 꼭 오셔야 해요.”
그 말에 한나는 살포시 입꼬리만 올렸다.
“내가 먼저 도착해 있을걸.”
의미심장한 한마디.
그걸 끝으로 다이니는 톨리아를 몰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해 등을 보이고 남은 여인을 눈에 새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