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65
65화.
학장실의 창문을 부수고, 베히모스와 함께 바깥으로 나섰을 때까지만 해도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강렬한 뇌전을 뿌려대던 황색 마탑주가 하늘에서 등을 보인 채로 지상을 내려 보고 있었으니까.
어차피 그를 그냥 놔둘 생각도 없고, 납치를 당했던 내 입장을 더욱 자극적으로 이용하려면 한 번쯤 건드릴 필요가 있었다.
푸르릉!
마탑주의 시선이 팔린 사이, 베히모스가 다시 한번 불꽃의 발판을 생성하며 마탑주보다 더 높은 고도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제 한계다 싶을 때쯤, 망설임 없이 떨어졌다.
결과는 대성공.
갑자기 자신의 위에서 등장한 검사의 일격.
황색 마탑주 제리아 하우크스는 어깻죽지에 정타로 검이 찌르고 들어오는 걸 허용하고 말았다.
마지막에 다급히 몸을 비틀어 뒤를 잡진 못했지만.
덕분에 놈과 눈이 딱 마주쳤다.
“끄으으윽!”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이 담긴 분노 어린 눈동자.
하지만 질문보다는 갑작스러운 기습을 타파하기 위해 마나를 끌어 모으는 게 우선인 듯했다.
“네노오오옴!”
파직! 파지직!
제리아의 손끝에서 다시금 황색 전격이 흉흉한 비명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몸이 흔들리며 추락하는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지근거리에서 다음 수를 강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마나가?”
당장이라도 날아들 기세였던 제리아의 마나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부릅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제리아에게 나는 거센 바람에 밀리고 있는 볼살에 억지로 힘을 주며 웃었다.
“엿 같지? 가지고 있는 마나도 함부로 쓰지 못하고.”
검에 마나를 담아 휘두른다.
이건 기사라면 기본 중의 기본.
하지만 내 마나는 좀 독특하며, 그 안에 담긴 성질 역시 굉장히 기형적이다.
그렇기에 사용하기 어려웠으나.
이번에 영약을 먹은 이후로 마몬의 기운은 반쯤 강제적으로 내 주도권 아래에 놓였다.
마나에 뒤섞인 마몬의 기운이 찔러 들어간 검을 통해 제리아의 몸으로 섞여 들어갔고.
나의 마나를 잡아먹었던 것과 같이, 모든 걸 먹어치우는 대악마의 기운이 제리아의 내부에서 마나를 마구잡이로 먹어 치워대기 시작했다.
“어억!”
굳이 따지자면 마나의 기생충.
갑자기 다른 마나를 잡아먹어 가는 검은 기운을 처음 느낀 제리아는 차가운 숨만 토해낼 뿐 버둥거리지도 못했다.
마몬의 기운이 대마법사의 질 좋은 마나를 먹어치움으로 기뻐하는 게 손끝에서 느껴진다.
“나는 늘 그런 느낌이었어.”
나야 이제는 익숙해졌기에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지만, 이걸 처음 겪는 마법사는 상당히 당황스러울 것이다.
무서운 기세로 자신의 마나가 사라져 가는 걸 느낄 테니까.
덜덜 떨면서 손을 올린 제리아.
뭔가 저항이라도 하려나 싶었는데 그는 내 검날을 손으로 꽉 잡았다.
손바닥이 베여 핏물이 흩뿌려짐에도 그는 이를 악물며 외쳤다.
“라하트라!”
따로 큰 의미가 있는 주문처럼 보이진 않았다.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중지에 끼어진 반지에서 섬광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대로 육중한 질량이 되어 나를 밀어냈다.
마치 거대한 마수의 꼬리에 정타로 맞았을 때와 유사한 감각.
황색 마탑주를 놓치자 거센 바람에 몸이 휩쓸린다.
추락하더라도 밑에 있는 테르토나와 프라이드가 받아줄 거라 믿고 대담한 기습을 벌인 거였지만.
이대로 황색 마탑주를 놓아준다면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아예 도망칠 수도 있다.
푸르릉!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받아주는 베히모스.
몸이 활처럼 휘며 녀석의 등에 안착했으나 놈은 아무 문제 없다는 듯 깊은 숨을 쏟아냈다.
“잘했어.”
나는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마탑주를 눈으로 쫓는다.
그는 검을 뽑은 후, 어깨에 치료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직 마몬의 기운이 체내에 뒤섞여 있는 탓에 고생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파고든 마나는 소량에 불과했기에 결국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녹색빛과 함께 출혈이 멎는다.
다시 공중에서 자세를 잡고 나를 바라보는 마탑주.
주름진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잔혹함과 살기가 뚝뚝 묻어나온다.
그와 동시에 하늘 위로 파도처럼 퍼져가는 황색 마나의 물결.
아예 내부에 있는 마몬의 기운을 전부 뽑아내고자, 마나를 한번 통째로 사용할 생각인 듯 보였다.
“마탑의 주인은 곧 마법사의 주인이다.”
전신이 황색빛으로 물들며, 눈동자에는 전격이 둘러진다.
인간을 벗어난 것만 같은 압도적인 위용.
“버러지 같은 것아, 수준 차이를 목도해라.”
아무리 그래도 대마법사.
그를 중심으로 하늘에 퍼진 대량의 뇌격들이 마치 구름 위를 거니는 황룡처럼 사납게 몰아치며 모습을 드러낸다.
‘이래서 기습을 한 거였는데.’
아무리 그래도 대마법사 수준이라면 지금의 나로선 정면대결이 어렵다 판단했으니까.
그가 전력을 내기 전, 상황을 끝내야 한다고 판단했는데 그건 다들 같은 생각이었던 듯싶다.
“멍청한 놈들아! 쏘라고!”
밑에서 마탑 학회의 마법사들과 프라이드를 향해 히스테릭하게 신경질을 부리는 테르토나.
“지금 황색 마탑주가 허가받지 않고 메이제렌 상공에서 대규모 마법을 시전하고 있잖아! 이런 거 막으려고 너희가 있는 거다!”
그의 말이 옳았다.
그의 일갈에 대마법사의 예술과 같은 마법에 매료된 듯 보고 있던 마법사들이 정신을 차렸고.
학회장인 프라이드의 명령에 맞춰 마력탄을 쏘아댄다.
“쯧.”
제리아는 굳이 보호마법을 사용하기보다 사용 중인 부유 마법에 조금 더 힘을 주어 높게 날아올랐다.
어차피 거리가 있으니 맞추는 것도 까다롭고, 이 정도 고도면 보호마법을 쓰는 마나가 아깝기 때문.
그리고 그 잠깐 덕분에.
나는 베히모스를 타고 제리아에게 다시 다가갈 수 있었다.
허전한 오른손에 검은빛의 마나가 떠오르며 조잡한 십자검의 형태를 취한다.
무기를 잃은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건 이것뿐.
베히모스를 타고 달려드는 나를 노려보며 전격을 쏘려 손을 내미는 제리아였으나….
[각력 강화] [수호의 신체]보조마법을 시전함과 동시에 베히모스의 등을 발판 삼아 바로 뛰어 올랐다.
베히모스에겐 미안했으나, 공중에서는 속도를 제대로 낼 수 없었기에 빠르게 접근하려면 이럴 필요가 있었다.
손끝에서 쏘아지는 전격.
어쩔 수 없다.
초격 정도는 맞아줘야 했다.
그렇기에 몸을 보호해 주는 보조마법을 걸었고, 또 나름 믿는 구석도 있었다.
‘영약을 먹은 이후로, 생각보다 신체 변화의 폭이 크다.’
근력, 민첩, 체력 같은 게 늘었다는 게 아니다.
내 몸 전체가 인간에서 뭔가 다른 것으로 변화함을 느꼈다.
반지에서 쏟아진 빛의 충격도, 영약을 먹기 전이었다면 사실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해 나가 떨어졌을 거다.
근데 나름 버틸 만했다는 건.
파지지지직!
전격이 쏟아져 들어온다.
몸에 두른 마나와 마몬의 기운을 통해 그나마 충격을 완화시켰지만 정말 두개골이 박살 나고 뇌가 노릇하게 구워지는 충격이었다.
순간적으로 이를 악 물고, 침이 질질 흘러나왔으나.
“무식한 놈!”
그래, 나는 버텼다.
그대로 좁혀진 거리.
하늘에서 울려오는 주인의 위험을 감지한 천둥의 비명.
십자검이 그대로 제리아의 심장을 향해 날아드는 순간.
휙!
검이 사라지고, 내 손만이 힘없이 놈의 가슴팍에 닿을 뿐이었다.
“흐.”
참을 수 없는 듯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노도의 분노가 담겨 있던 일그러짐은 자취를 감추고, 오롯이 싸늘한 비웃음만이 입가에 걸려있다.
“우매한 놈.”
대마법사인 자신의 앞에서 마나로 된 검이 통할 거라고 생각한 그 안일함을 비웃으며 다시금 전격을 내리찍으려던 순간.
푸욱!
뜨거운 핏물이 손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제리아의 입꼬리가 천천히 내려앉으며 치고 올라오는 격통에 입을 벌리지만 비명은 토하지 못한다.
왼쪽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간 검 한 자루.
“분, 명…… 버렸는데….”
비명 대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어떻게 내 손에 아까와 같은 검이 쥐어져 있냐는 질문.
애초에 대마법사인 그에게 마나로 만든 검이 먹히지 않을 거라는 건 예상했다.
다만, 검에 담긴 살의는 진짜였기에 대마법사도 눈을 돌릴 수 없었겠지.
왼손 끝에 그려졌던 소환마법진이 흐트러지듯 사라진다.
그걸 본 제리아는 답을 알아챈 듯 입에서 피를 쏟으며 읊조렸다.
“소환, 마법……!”
고작 그딴 것에 당한 자신이 싫다는 듯 제리아는 정신을 잃었고.
그의 마나가 점차 흐트러지기 시작하며.
곧이어 우리는 함께 추락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받아주기 위해서 마법사들이 펼쳐둔 마나의 그물 위로.
* * *
“나는 아무 잘못 없다.”
황색 마탑주, 제리아 하우스크는 병실에 누운 상태로 담담하게 선언했다.
그 뻔뻔한 태도에 마탑 학회장인 프라이드는 헛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함께 온 수사관은 무뚝뚝하게 뭔가를 적어 나갔다.
“지금 장난하십니까?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고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시는 거요?”
“나? 나 말인가? 황색 마탑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말이지?”
되레 주먹을 꽉 쥐고는 불과 몇 시간 전의 치욕스러운 패배를 회상하듯 이를 악무는 제리아.
“가만히 있는 황색 마탑을 먼저 공격한 건, 그 미치광이 소환사랑 철도 들지 않은 검사 나부랭이다. 그쪽에서 먼저 마탑을 습격했고 나는 지켰을 뿐인데 도대체 무슨 조사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거칠게 일갈하는 황색 마탑주 제리아.
하지만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학회 측에서 성급하게 움직였다고 속으로 웃고 있었다.
‘어차피 내가 납치한 소년에 대한 건 아무도 모른다. 고문실도 쉽게 알아차릴 수 없게 이중삼중으로 은폐마법을 걸어뒀다.’
납치의 주모자인 레지스탕스와 그 끄나풀이던 여우 수인 레베카까지 처리했다.
이안 아이넬이 깨어난다 한들 고문실 안에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봤자 외부로 퍼지진 않는다.
같은 대마법사 수준의 마법사가 가지 않는 한 절대로 알아차릴 수 없는 공간.
어떻게 알았는지 학회 쪽에서 테르토나를 앞세워서 덤벼들긴 했으나, 어차피 증거는 없다.
속으로 웃음을 삼킨 황색 마탑주가 노한 척 감정을 쏟아낸다.
“내가 필히 그놈들을 잡아 죽일 것이오! 감히 우리 명예로운 황색 마탑을 습격해? 평생 마법사 구실도 못하도록……!”
“하아.”
그때 짙게 깔리고 들어오는 수사관의 묵직한 한숨.
감히 말을 끊는다고 생각한 제리아였으나 수사관은 짜증을 담아 묻는다.
“지금 그게 하실 말씀입니까?”
“뭐요?”
“본인이 피해자라고요? 장난하세요? 원래 마탑주나 대마법사들은 그렇게 자기들 멋대로 세상살이하십니까?”
갑자기 들어오는 거센 언사에 오히려 제리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풋.”
방금까지 화를 내던 프라이드가 슬쩍 몸을 뒤로 빼곤 기다렸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뭐지?
뭐가 잘못된 거지?
“레지스탕스들의 은신처에서 그들이 이안 아이넬을 납치한 물증을 다수 확보했습니다. 당연히 당신이 사용한 마법의 흔적도요.”
“…….”
“이른 아침 당신이 웬 수인 여성과 같이 커다란 짐을 들고 가는 걸 봤다는 마법사들도 있었습니다. 증언과 상황이 일치하네요.”
그걸 본 마법사가 있었다고?
“게다가 학회의 보안업체인 제우스 쪽과 밀접한 관계가 있더군요? 납치 계획에 그쪽도 가담한 것 같은데 이건 차후 조사가 진행될 겁니다.”
“…….”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제리아에게 수사관이 선고를 날렸다.
“결정적으로 납치됐던 이안 아이넬이 전부 다 증언했습니다. 당신이 수인 레지스탕스를 이용해서 그를 납치했고, 고문까지 행했다고.”
“……어?”
이안 아이넬이 증언했다고?
고문실에서 탈출할 수 없을 텐데?
“그리고 뭐요? 검사 나부랭이? 필히 잡아 죽여? 납치에 고문으로도 모자라서…. 지금 발언은 제가 기록해 뒀습니다. 참나, 그 꼬마애가 얼마나 억울했으면 당신이랑 직접 싸울 생각을 했겠습니까.”
“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리가 제대로 되지도 않았다.
어려운 술식을 풀어내듯 머리가 꼬여가는 기분.
하지만 그럼에도 수사관의 말을 해석하자면….
“나랑 싸웠던 놈이 이안 아이넬이라고?”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제리아는 물었고, 수사관은 역겹다며 끄덕인다.
“본인이 납치한 소년의 얼굴도 기억 못 하는 겁니까.”
생각해 보면 그 소년이 은발이긴 했다.
하지만 은발이라고 다 이안 아이넬은 아니지 않은가.
그 검사 나부랭이는 절대 이안 아이넬이 아니었다.
“자, 잠시만! 잠시만! 그놈은 이안 아이넬이 아니다! 가짜 행세를 하고 있는 거란 말이다! 그놈은 피해자 행세! 위증! 위증을 하고 있다! 내, 내 방에 가면 다른 놈이 하나 있다!”
“예?”
“그놈이 진짜 이안 아이넬이란 말이다! 이건 함정이야! 나를 몰락시키려고 누군가 펼쳐둔 함정!”
“…….”
“나한테 검을 꽂아 넣었던 그 꼬맹이가 누군지 모른단 말이다! 일면식도 없다!”
“하아.”
머리를 북북 긁으며 수사관은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방금 본인이 스스로 이안 아이넬을 납치했다고 자백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만약 당신 말대로 진짜 이안 아이넬이 거기에 있다고 쳐도 당신이 납치범이라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
순간 말문이 막힌 제리아.
너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머리가 띵하고 울려 저도 모르게 말을 막 쏟아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뭐?”
입을 떡 벌린 채로 수사관을 바라보는 제리아.
그를 향해 수사관은 단호히 답했다.
“당신이 숨겨둔 고문실은 이미 발견했고, 그곳엔 타들어 간 수인 시체 하나만 있었습니다. 당신 말대로라면 그곳에 이안 아이넬 말고 은발을 한 사람이 한 명이 더 있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쯧 하고 혀를 차며 병실을 나가는 수사관.
벙 찐 표정으로 허공을 보고 있는 제리아에게 프라이드가 피식 웃으며 조롱을 내뱉는다.
“다음에 만날 때는 황색 마탑주가 아니라 수감자가 되어있겠군요.”
툭툭.
어깨를 두들겨 주며 고개를 끄덕인 프라이드가 수사관의 뒤를 따라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그놈이 보통이 아니긴 하네.”
어이없다는 헛웃음만 남겨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