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64
64화.
“흐, 어이가 없군.”
테르토나 샤이먼은 높게 뻗은 황색 마탑을 올려다보며 헛숨을 내쉬었다.
전격 마법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
그야말로 황색 마탑의 자존심.
얼마나 관리를 철저하게 했는지 연식이 꽤 된 건물임에도 반짝반짝 광이 흐르고 있었다.
매달 마법으로 색을 덧입히고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더니.
“마탑이랑 싸우게 될 줄이야.”
원래라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
메이제렌에 살아가는 보통의 마법사라면 마탑에 적대적이더라도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건 지양하는 편이다.
메이제렌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마탑에 속해 있든, 속해 있지 않든, 반골기질이 옅게나마 흐르는 마법사들에게 있어서는 언젠가 꼭 한번 무너뜨려 보고 싶은 권력의 탑이기도 했다.
특히나 마탑에 소속되지 않은 무소속 마법사들에게는 말이다.
파지지직!
푸른 전격처럼 테르토나의 손끝에서 마나가 거칠게 요동친다.
앞으로 있을 전투를 떠올리자 오랜만에 젊어지는 감각이 들었다.
아직 30대 초반이지만 그럼에도 갖은 고생을 하면서 머리도 빠지고, 허리도 굽은 삭은 외모가.
오늘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생기를 찾아간다.
마치 그 옛날, 오롯이 마법에 몰두하던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테르토나의 손에서 거세게 쏟아져 나가는 마나들이 일순 거대한 마법진을 형성한다.
마탑 근처를 지나가던 행인들은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인가 주위를 살필 정도.
황색 마탑 측에서도 심상치 않은 마나를 느끼고 바로 대응에 나서려는 듯 내부의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으나….
“허어.”
테르토나의 눈에는, 지나가던 참새가 앉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느린 대응으로 느껴졌다.
소환마법에서 중요한 건 많지만 그중에서도 전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걸 꼽는다면.
소환수를 불러내는 캐스팅 속도였으니까.
콰드드드득!
황색 마탑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도 전, 엄청난 속도로 완성된 마법진에서 거대한 머리가 튀어 나온다.
온몸이 바위로 되어 있는 둥근 형태의 마수, 마운틴 골렘.
“또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이 올라가겠군.”
마탑 습격은 그만큼이나 큰 사건이었으니까.
도시 한복판에 솟아오른 거대한 크기의 마운틴 골렘은 마탑을 바로 앞에서 노려보며….
콰아앙!
묵직한 주먹을 내뻗었다.
황색 마탑의 보호마법이 요동친다.
그들의 보호마법은 침입자를 막는 건 물론이고, 흐르는 전류를 통해 되려 태워버리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으나.
전신이 돌로 되어 있는 골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보호마법에 지속적인 충격이 가해지며 마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반처럼 든든하게 자리 잡은 골렘을 시작으로 테르토나의 머리 위로 수많은 소환진들이 넓게 퍼지듯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게 낭만이고, 이게 소환사야. 이 무지렁이들아!”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소환수들을 바라보며 테르토나는 크게 웃었다.
소환마법의 위대함을 모르는 메이제렌과 마법사들에게.
오늘 그 힘을 보일 기회였다.
* * *
콰앙!
테르토나의 골렘이 시선을 끌어준 때를 틈타 베히모스를 타고 마탑 정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뭐야?”
“습격이다!”
당황한 마법사들이 다급하게 마나를 깨우며 대응하려 했으나 이미 거리가 너무 좁혀진 상황.
베히모스가 후려치듯 지나가자 하나같이 바닥에 나뒹굴며 신음을 흘린다.
“단장! 바로 가시죠!”
“단장! 넬슨을 부탁합니다!”
이번에 새로 소환한 쌍둥이 기사, 엘빈과 켈빈이 마차에서 뛰어내린다.
두 사람은 계획대로 1층에 있는 다른 마법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휘몰아치는 검격에 살의는 담기지 않았기에 사상자는 없을 거다.
하지만 책이나 읽어오던 마법사들은 버틸 수 없는 공세였다.
또한 쌍둥이는 서로의 시야를 보완해 주었기에 사각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기습적인 마법도 여유롭게 피해냈다.
푸르릉!
거친 투레질과 함께 검붉은 화염을 입에서 뿜어낸 베히모스가 그대로 앞발을 들어 올린다.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은 없다.
나는 바로 고삐를 당기며 허벅지에 힘을 줘서 단단히 몸을 고정했고.
베히모스가 허공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발굽 밑으로 검은 불꽃의 발판이 떠오른다.
이를 밟으며 높은 마탑의 꼭대기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 베히모스.
녀석이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마나가 쑥쑥 빠져가는 걸 느꼈으나 효과는 확실했다.
높은 거리의 마탑을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와중, 근처 난간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전격을 쏘려는 마법사.
하지만 날아든 창 한 자루에 그의 마법은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흐트러진다.
난간을 박살 내고 벽에 박힌 창끝에 이어져 있는 푸른 마나의 실.
촤르륵 소리와 함께 실이 감기며 창을 향해 날아온 또 다른 기사, 도로시.
“엄호하겠습니다아!”
우렁차게 외치며 다시 자신의 창을 뽑아 든 도로시는 마치 개울가에서 물고기를 사냥하는 것처럼 옆 난간에 올라타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핀다.
혹시라도 나에게 마법을 쏘려는 마법사가 있으면 바로 요격할 속셈.
“고맙다.”
간단하게 감사를 표하며 지나치자 도로시는 경례하며 투구 사이로 웃음소리를 흘렸다.
“오늘 회식 있죠?”
그건 모르겠고.
새로 소환한 기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고작 5분 만에 마탑의 정상에 올라왔다.
외부에서 펼쳐지는 테르토나의 기습을 시작으로, 혼란을 틈타 치고 들어온 걸 감안하더라도 꽤나 빠른 속도였다.
난간 너머로 슬쩍 기사단원들을 내려다본다.
오랜만의 전투라서 그런지 길길이 날뛰었지만, 마법사들을 유린하는 모습에서는 여유가 묻어나왔다.
난전에서 마법사는 웬만해선 기사를 이길 수 없었다.
몸을 틀어 넬슨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향한다.
점차 가까워지는 기운과 그 끝에 놓인 명패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탑주 집무실.”
마탑 내부에서도 가장 꼭대기에서 기운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이번 납치소동에는 황색 마탑주가 연관되어 있었다.
“이쪽이다!”
“마탑주님 방으로 갔어!”
“미리 마법들 준비해라. 상대의 접근을 허용하면 안 된다!”
그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마법사들의 목소리.
나는 베히모스를 옆에 둔 채 다시금 마나로 소환진을 그렸다.
이제는 꽤나 능숙하게 다루게 된 소환마법진.
발밑에 그어진 마법진에서 곧이어 은빛 갑옷을 입은 거구의 기사가 나타났다.
“흐, 저는 언제 나오나 했습니다.”
어깨에 대검을 걸친 톰이 씨익 웃으며 투구를 쓰며 얼굴을 가린다.
“내가 안에서 상황을 파악할 동안, 누구도 들이지 마.”
우르르 몰려오는 상위의 마법사들.
고층에서 머무르고 있는 만큼 적어도 5등급, 간혹 6등급 이상으로 보이는 자들도 있었으나….
그들을 보며 톰은 한 걸음 쿵 앞으로 찍으며 선언했다.
“매우 쉽군요!”
몸을 살짝 낮춘 톰은 날아드는 전격 마법들을 검과 몸으로 우직하게 막으며 밀고 들어갔다.
“뭐, 뭐야!”
“밀리지 마!! 접근을 허용하지 말라고!”
“화력 최대로 높여, 머저리들아!”
터프하게 마법을 맞으면서 밀고 들어오는 톰을 보며 마법사들은 당황해서는 뒷걸음질 친다.
기사를 상대론 거리를 벌려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으나 그게 패착이겠지.
“미숙하다! 미숙해! 마법사가 그 자리에서 적을 죽이지 못하면 본인이 죽는 거야!”
톰의 일갈을 들으며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베히모스도 함께 들어왔는데 밖에 있는 마법사들에게 썩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탑주가 사용하는 방이라 그런지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더불어 잔잔한 클래식까지 어딘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무 냄새가 살짝 풍기는 장소. 하지만 내 눈은 바로 넬슨의 기운이 가장 강하게 풍기는 중역용 책상 뒤에 있는 벽에 닿았다.
“거기구나.”
상당히 복잡한 술식으로 숨겨둔 것 같으나 나와 넬슨은 어차피 마나로 연결된 상태인지라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오른손에 마나를 응축시키자 마몬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스며 들어오며 묵직한 파괴력을 뿜어냈다.
쾅!
벽면과 그 옆에 있던 책장이 넘어가며 공간이 드러난다.
고문실처럼도 보이는 작은 공간.
구속당해 축 늘어진 채 눈을 감고 있는 은발의 넬슨.
바로 옆에는 새까맣게 타서 축 늘어진 여우 수인 하나가 있었다.
“넬슨!”
우선 넬슨부터 확인했으나 전격에 정신을 잃은 것일 뿐 큰 부상은 없어 보였다.
소환수니까 괜찮다고 말했어도 내심 꽤나 걱정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아차린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창밖에서 도시 전체를 밝히는 찬란한 뇌전이 지면을 강타했다.
시선을 돌리자 테르토나의 골렘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며 박살이 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창문을 통해서 힐끔 위를 올려다보자 그곳에는 노란색 로브를 걸친 황색 마탑주가 당당하게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회다.”
자리를 비운 줄 알았는데, 밖에서 테르토나를 상대하고 있던 거였나.
나는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아 들어 거대한 창문을 베어냈다.
꽤나 두꺼웠으나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그 틈새로 들어오는 거센 바람.
베히모스를 손짓으로 불러 그 위에 올라탄 나는, 고삐를 당기며 창밖으로 베히모스를 몰았다.
* * *
쿵! 쿵! 쿵!
마탑 외부에서 테르토나의 공세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마탑의 방어 마법이 가동하여 계속 전격이 쏘아지고는 있었으나, 골렘의 특성상 전격 마법은 효과가 미미했다.
또한 외부의 마법사들이 접근하는 건 같이 소환한 소환수들이 완벽하게 막아주고 있는 상황.
“크흐흐!”
괴짜 소환사가 승리를 머금은 미소를 입가에 그리던 순간.
메이제렌 전역에 깔린 블루클라우드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하늘 위로 휘몰아치기 시작한 작위적인 바람.
그 바람이 뺨을 스칠수록 흥분한 테르토나의 감정이 차분하게 식어갔으며 그 자리를 불안감이 채워가기 시작한다.
순간,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화려한 불빛이 마탑의 꼭대기에서 번뜩인다.
보통의 전격 마법과는 질 자체가 달랐다.
지금까지의 다른 고위 마법사들이 뿜어내던 전격과는 차원이 다른 일격.
뇌속으로 떨어진 그것은 분명, 신이 대륙으로 쏟아내는 진노가 담긴 번개의 일면을 담고 있었다.
황금의 낙뢰가 마운틴 골렘의 정수리를 정확하게 내리찍는다.
번뜩이는 빛과 함께 마운틴 골렘의 전신에서 노란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고….
콰아앙!
한 발자국 늦게, 천둥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골렘의 전신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내부에 응축되어 있던 전류가 사방으로 갈라지며 다른 소환수들까지도 타들어 간다.
“꺄아아악!”
“뭐야아!”
“황색 마탑주다아아!”
그나마 상성에서 유리한 마운틴 골렘이었기에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하기 힘든 위력.
그 힘의 잔재만으로 주변이 휩쓸려 나가는 위용을 뽐내는 모습에 테르토나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마운틴 골렘이 사라지자 가려져 있던 위쪽 시야가 걷힌다.
이윽고 테르토나는 하늘에 떠있는, 노란 로브를 두르고 황금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쥔 노인과 눈이 맞는다.
황색 마탑주 제리아 하우스크.
명실상부 전격을 담당하는 황색 마탑의 최고 마법사였으며.
전격 속성으로는 현 대륙에서 유일하게 대마법사의 반열에 오른 존재.
“하.”
테르토나는 흥분이 싹 가시고 싸늘한 적의에 짓눌리는 걸 느꼈다.
자신을 향해 보이는 황색 마탑주의 비릿한 비웃음이 그의 자존심을 자극했으나….
“저기 있다!”
“소환사야! 괴짜로 소문난 양반이니까 다른 짓 못 하게 막아!”
신고를 받고 찾아온 경비대에서 테르토나에게 달려들어 구속하려 했기에….
“젠장.”
여기서 퇴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탄식을 내뱉는다.
“잠깐.”
그때 뒤에서 들려온 권위적인 남성의 목소리.
그리고 그 뒤를 따라서 우르르 몰려오는 마법사들과.
수인이었던 비서 여인.
테르토나를 체포하던 경비들은 황급히 놀라며 그의 손을 놓아줬고.
몸을 가눈 테르토나는 혀를 차며 그를 노려봤다.
“프라이드.”
“테르토나, 아주 거하게도 저질렀구나.”
자신에게 뭐라 쓴 소리라도 더 할 줄 알았던 테르토나였으나.
프라이드는 오히려 고개를 들어 마탑을 올려다보며 뭔가를 잘근잘근 씹듯 읊조릴 뿐이었다.
“제리아 하우스크가 이번 사건의 범인이라는 건 비서에게 들었다. 네가 알려줬다는군.”
그 말에 테르토나는 비서를 힐끔 쳐다본다.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이안이 비서를 다시 돌려보낸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
프라이드는 황색 마탑주 제리아를 올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이딴 상황을 만들어 낸 제리아를 향해 명백한 적의가 쏟아짐에도 하늘에 떠있는 대마법사는 너무나 당당하니 그들을 내려다봤다.
마치 인간이 벌레를 내려다보듯.
너희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곳에 닿을 수 없다고 비웃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
휘이이이익!
바람이 거세게 갈라지는 소리가 울려왔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언가.
처음 그걸 봤던 이는 비가 쏟아지는 것으로 착각했으나….
곧이어 두꺼운 잔상에 우박이라 정정했고….
마지막으로 은발의 소년임을 깨닫고는 경악했다.
마나도, 인기척도, 살기도.
모든 걸 숨긴 채로 오롯이 바람과 중력의 힘을 담은 기습.
순간적으로 뒷목에 섬뜩함을 느낀 황색 마탑주가 거만한 시선을 거두고 다급하게 몸을 비틀었으나….
콰득!
어깨에 검이 박히는 걸 피하지 못하고.
그 검을 쥔 은발의 소년과 눈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