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일단 기본적으로 마나와 관련된 효과가 있을 거야. 마법사들한테 팔아먹으려고 했던 물건이니까.”
뭔가를 잔뜩 준비하고 있는 호우만은 지나가듯 툭툭 말했지만 놓쳐서는 안 될 정보였다.
악마의 진심이라는 꽃잎으로 만들어진 영약.
어떤 효과가 있을지 호우만조차 확실하게 장담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며칠이 걸릴 수도 있고 아니면 몇 시간 만에 끝날 수도 있어. 이건 영약과 사용자의 궁합, 그리고 네 정신력에 달렸어.”
아까부터 솥에서 휘젓고 있던 약을 접시에 따라서는 내게 가져오는 호우만.
“복용 전에 이것도 마셔. 고통을 최대한 억제해 줄 거야.”
영약과 관련되어 있어서 그런 걸까, 호우만은 그 어느 때보다 흥분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신중했다.
만난 지 고작 이틀밖에 안 된 사이였으나 그녀가 천성적으로 마법사 기질을 가진 여인이라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았다.
후룹.
호우만이 준 약은 혀를 마비시킨다는 느낌이 아니라, 아예 후려 팬다는 감각을 주는 폭력적인 쓴맛이었지만 일단은 끝까지 마셨다.
그걸 본 호우만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게 내부의 물건들은 전부 치워두고 텅 비게 된 중앙에 선 채로 기다리고 있자니 협력관계가 된 비서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이제 이틀 후면 행사가 시작되는데 괜찮으실까요?”
“뭐, 알아서 하겠죠.”
딱히 행사가 망하든 말든 나랑은 크게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는 납치된 걸로 되어 있으니까.
그 책임을 내가 짊어질 필요는 전혀 없었다.
비서 역시 굳이 나를 행사에 참석시키려는 건 아니었고, 그냥 뜻만 물어봤던 건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본인도 그 행사를 망치는 데 기여했으니 죄책감이라도 느꼈나 보다.
“프라이드 놈이 망하는 건 썩 보기 좋겠군.”
키득거리면서 좋아하는 테르토나를 보고 있자면 괜히 충동적으로 돌아가고 싶어지긴 했지만.
“자, 이것도 입어.”
호우만이 가져온 건 구속복이었다.
양손을 완전히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답답한 디자인.
순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으나 일단 순순히 입었다.
영약의 전문가인 호우만의 뜻이니 이유가 있겠지.
구속복까지 다 입은 후, 호우만은 긴장이 섞인 딱딱한 웃음과 함께 영약을 내게 내민다.
“몸에 좋은 건 다 때려 넣은 영약이야. 주재료가 심상치 않지만 너는 상성이 좋아 보이니까 괜찮겠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아마 영약을 처음 복용하는 나를 안심시켜주려는 듯했다.
“가게 문도 닫고 내가 너 깨어날 때까지 잠도 안 자고 지켜볼 거야. 테르토나랑 같이. 네가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조치할 거니까 걱정 마.”
“나도?”
갑자기 밤샘을 하게 된 테르토나는 어벙하니 답했으나 어쨌든.
나는 피식 웃어주었다.
“얼른 합시다.”
대답이 퍽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호우만의 딱딱한 웃음이 부드럽게 풀린다.
영약의 밀봉을 위해 감싸뒀던 줄을 풀고 뚜껑을 연다.
뽕!
깔끔한 소리와 함께 영약 안에서 지독하게 퍼져오는 기운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비서가 다시금 파르르 떨었다.
“어, 이건 좀…… 위험해 보이는데? 내가 처음 제조했을 때랑 상태가 많이 달라.”
호우만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영약이 오랜 기간 숙성되는 동안 뭔가 변화가 있었던 듯하다.
“잠시만 이거 확인을 좀 하고 마시는 게 맞을 것 같아. 자칫 잘못하면…….”
하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저걸 입안으로 처넣고 싶다는 욕망과 싸워오던 나는, 결국 버티지 못했다.
호우만이 영약을 뒤로 빼기 전에 목을 쭉 뻗어 입구를 이빨로 물고 뺏어 온다.
그리고 그대로 고개를 젖혀 안에 있던 내용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목구멍을 통해 넘긴다.
“이 미친 새끼야!”
당황한 호우만이 뭔가 하려 했으나, 영약을 복용한 내게 함부로 손대면 안 되었기에 손은 어색하게 내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나도 왜 내가 충동적인 행동을 했는지, 하고 나서야 의아함을 느꼈으나.
확신 정도는 있었다.
이걸 먹어야 한다는 그런 확신.
“……!”
구속구 안에 있는 피부가 바짝 날이 서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마수의 비늘처럼 뒤틀려 가기 시작한 근육.
순식간에 앞머리가 축축하니 젖을 정도로 땀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고, 눈과 코, 입에서도 물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변화라기보다는 진화.
어딘가 뿔이라도 하나 튀어나올 것처럼 몸 안에서 뭔가 나를 밀어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무릎이 꿇어졌다.
촛불이 거친 바람에 휙 꺼지듯 내 의식은 빠르게 어둠에 파묻혀 들어갔다.
* * *
어두운 배경이었다.
도저히 평범한 장소로는 보이지 않는, 신이 세상을 만들기 전은 딱 이런 풍경이 아니었을까 싶은.
하늘도, 땅도, 태양도, 별도 없는.
그저 오롯이 어둠뿐인 공간.
그곳에서 오롯이 멀찍이 서 있는 두 개의 형체.
마치 필기를 잘못했으나 지울 방법이 없을 때, 그냥 선으로 쓱쓱 그어두는 것처럼 두 존재는 색에 짓뭉개져 있었다.
덩치 큰 검은색과 한없이 작은 붉은색.
그것들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으나 아무리 봐도 검은색이 우세했다.
검은 형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뻗어 작은 놈을 낚아챘고.
그대로 자신의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콰득 콰득!
섬뜩하다 못해 역겹기 그지없는 소리.
붉은색 존재는 비명을 질러대며 산 채로 그것에 잡아 먹혔다.
결국 붉은 놈이 형체도 없이 사라진 이후.
검은 형체는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처음부터 내가 보였던 걸까.
쿵.
쿵.
놈이 나를 향해서 다가오는 발소리가 울려올 때마다 지금까지 멍하니 있던 기억들이 톡톡 튀어 오르며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그 존재가 내 앞까지 다가왔을 때.
내가 영약을 먹었으며, 지금 여기 있는 이유가 그 반동 때문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앞에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 눈치챈다.
검은 존재는 똑같이 행동했다.
다시금 입을 크게 벌리고, 손을 뻗어 붉은 놈을 먹어치운 것처럼 나를 한 끼 식사로 만들려 했으나.
콰앙!
어디선가 거센 마법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것은 일말의 자비도 없이 검은 존재를 향해 폭격처럼 쏟아져 내렸고.
마법은 곧이어 마나로 다시 형태를 바꿔 검은 존재에게 달라붙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펑.
전신에서 쏟아지는 화려한 폭죽과 같은 폭발에 검은 존재는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어 보였다.
저런 방식의 마법 사용을 본 기억이 있었다.
가르간테를 상대하던 당시 힐다가 사용했던 형태의 마법이었다.
그리고.
콰득!
하늘에서 날아들어 놈의 머리에 검을 꽂아 넣는 투구를 쓴 기사.
사자의 갑옷을 입은 기사의 체형은 여성의 것이었으며, 투구 밖으로 삐져나온 묶인 머리는 붉은빛을 띄우고 있었다.
자신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다는 듯 말의 갈기와 같은 붉은 머리칼을 흩날리며 기사는 검을 휘둘렀고.
곧이어 검은 형태의 존재는 반으로 갈라지며 쓰러졌다.
그리곤 마치 패자로서의 책임이라는 듯 그 잔해들이 나를 향해 굴러들어오기 시작했다.
“…….”
그 위에 서서 기사는 나를 바라봤다.
투구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잠깐의 순간이 너무 아쉽다는 듯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안에 담긴 그리움 정도는 읽을 수 있었기에.
나 또한 그녀가 그리웠기에.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손을 뻗어 어깨라도 두들겨 주고 싶었으나 몸이 무거웠다.
그걸 알고 있어서일까.
기사는 저벅저벅 걸어와서는.
장갑을 낀 손으로 내 한쪽 손을 어루만졌다.
조심스럽게 그것을 잡아당긴 그녀.
혹시라도 내가 아프다거나 괴로워하진 않을까 걱정한 듯했으나.
몸이 무거울 뿐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히 꿈속에 있는 감각이었다.
내 손을 잡은 기사는 천천히 손을 올렸다.
그리곤 고개를 숙여, 내 손을 자신의 투구 위에 얹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형태.
그 모습을 보며 한마디 정도는 해주고 싶었으나….
몸이 붕 떠오르는 감각이 들었다.
뭔가가 밑에서 나를 밀어내고, 위에서 잡아당기는 감각 속에서….
“허억! 허억!”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이안! 이안!”
숨을 몰아쉬고 있었으나, 산소가 부족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목구멍을 전부 사용하고 있음에도 더 많은 양이 필요하다는 급박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테르토나와 호우만의 손에서 빛이 쏟아져 내 전신을 감싸 왔고, 비서는 다급하게 구속복을 풀어주며 내 몸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몸은 축축하다 못해 더러웠다.
구린내까지 풀풀 풍겨오고 있었으나, 누구도 내게 뭐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지 바로 씻길 준비를 했고 옷까지 챙겨둔 상태였다.
내 옷을 벗기려는 호우만에게 나는 손짓했다.
가슴팍에 있는 마몬의 문양을 함부로 남에게 보여선 안 된다.
그리 생각한 나는 괜찮다고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내 몸을 내가 가눌 수 있을까 싶었으나.
의외로 다리에는 힘이 단단하게 들어왔다.
이전까지의 몸에 어딘가 고장이라도 나 있었다는 감상이 터져 나올 정도로.
몸이 가벼웠으나 견고했고, 또한 힘은 풀풀 흘러 넘쳤다.
“새, 생각보다 약빨이 잘 받은 건가?”
내가 혼자서 움직이며 씻고 오겠다고 옷을 받아 드는 모습을 보고 호우만은 머쓱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자 예전과의 차이점이 분명하게 보였다.
가슴팍의 각인의 형태가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그런데 다시 그렸다는 느낌이 아니라 원래 있던 각인에 뭔가 덧칠된 느낌.
하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마음이 가벼웠다.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힘이 내 발 아래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감각.
썩 나쁘지 않았다.
샤워를 끝마친 내가 밖으로 나서자 환기를 하고 있는지 찬바람이 느껴졌다.
세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 내게 달려왔다.
특히나 호우만은 아주 시끄럽게 몸의 변화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어때? 어때? 막 뭔가 변화된 것 같아?”
“일단 안정부터! 안정부터 취해야 한다!”
“……뭔가 더 무서워지신 것 같습니다.”
각기 다른 반응들에 일단 나는 물었다.
“약을 먹고 얼마나 지났습니까?”
“6시간. 딱 6시간 지났어.”
예상한 질문이었는지 바로 답한 호우만.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았음에 슬며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럼 간단히 몸 좀 풀고, 영약 효과나 확인해 봅시다.”
“확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서와 테르토나에게 앞으로 해줬으면 하는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 * *
황색 마탑.
색에서 알 수 있듯 전격 마법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마탑.
전격 마법은 위력이 뛰어난데 범용성도 넓다.
술자인 마법사가 미숙하게 사용하면 심심치 않게 목숨을 잃긴 하지만 그것도 예전 이야기.
전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마도구가 개발되며 그런 위험성도 거의 없어졌다.
미래를 책임지게 될 선두주자라는 평가 탓에 많은 젊은 마법사들이 소속되고 싶어 하는 마탑이였다.
마탑들 사이에서도 약간은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일까.
마탑끼리의 경쟁이나 사적 다툼을 통제하는 학회는 언제나 그들에겐 턱 걸리는 돌부리와 같았다.
어쨌든 오늘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황색 마탑의 마법사들은 연구와 공부에 여념이 없었으나….
어떻게 사람이 늘 공부만 하겠는가.
간단한 잡담과 커피 정도가 황색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있어 그나마 쉴 시간이었다.
“오늘 마탑주께서 밖에 나갔다 오신 거 알아?”
“엥? 밖에 나갔다 돌아오시면 마법사들 1층으로 전부 인사드리러 가야 하잖아.”
마탑주가 마탑에 복귀하면 마법사들은 대열을 이룬 채 1층으로 마중 나가야 했다.
이는, 황색 마탑에만 있는 권위적인 전통이었다.
“그치? 그런데 아침에 몰래 들어오시더라. 뭔가 엄청 큰 짐에다 처음 보는 수인 노예랑 같이.”
“……약간 남들한테 알려지면 안 되는 플레이 같은 거라도 하셨나?”
킬킬거리며 음담패설을 즐기는 두 사람.
마탑주의 수상한 행동이 신경 쓰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다만, 넘어선 안 되는 선에 발을 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깊게 파고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일부러 별생각 없이 농이나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넘어가던 순간.
쿠우우웅.
마탑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건가 싶은 순간 충격이 연쇄적으로 뒤따랐다.
당황한 마법사들이 뭔가 제대로 반응을 보이기도 전.
마탑의 거대한 정문이 사정없이 박살 났다.
파편이 난사하듯 퍼져 나감에도 마법사들은 평화로운 일상을 갑자기 깨고 들어온 적을 향한 대처가 한 발짝 늦었다.
푸르릉!
“어?”
“음?”
그런 그들을 깨우는 불길한 투레질.
마탑의 수호를 위해 여러 마법이 중첩되어 보호되고 있는 마탑의 정문을 들이받아 뚫고 들어온 검은 군마.
사실 군마라기보다는 마수의 일종처럼 보였으나 어쨌든.
마스크로 얼굴을 감춘 채 그 마수의 위에 올라탄 남자가 검을 치켜 올렸고.
그와 동시에, 은빛 갑옷으로 중무장한 세 명의 기사들이 동시에 부서진 문 틈 사이로 쏟아져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