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콰아앙!
묵직하게 날아드는 반투명한 검기가 옥상 난간을 그대로 베어 넘긴다.
몸을 낮춘 덕분에 튀어 오른 파편이 스치는 정도로 끝났지만 휑하니 뚫린 시야.
윤의 눈동자는 여전히 이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 저거 미쳤나 봐요!”
인사랍시고 검을 휘두른 윤을 향해 욕을 내뱉는 도로시.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목숨을 앗아갈 가능성이 있는 공격을 재회의 순간에 날려대진 않는다.
“도대체 무슨…….”
다이니는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갑자기 수인 여인이 자신들을 공격했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아카데미에 들어왔는지.
또 은빛사자 기사단과 무슨 사이인지.
등등 여러 의문점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지만 일단 분명한 건, 저 검사가 300년 전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그때, 세 사람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인사말이 들려왔다.
“오랜만이네.”
둥실 떠오른 달 아래.
무너진 옥상 난간을 대신하여 우뚝 서 있는 검사.
방금 전 일검을 날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털털하면서도 너그러운 인사말.
이 여인에게 있어서 방금 그 수준은 애교였다고, 가벼운 분위기가 말해 오고 있었다.
“한나랑 도로시…… 근데 한나는 다리가 왜 그래?”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족이 자리 잡은 한나의 다리를 가리키는 윤.
꽤나 무례한 질문이었지만 한나는 몸을 추스르며 답했다.
“마몬과의 전쟁에서 잃었다.”
딱딱한 말투와 선을 긋는 대사.
한나가 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딱 한마디 주고받는 걸로 바로 알 수 있었다.
“쓰읍, 그래서 활을 들고 있었구나? 아쉽네. 네 검이 레이로즈 다음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쓸데없는 말은 됐고.”
300년만의 재회라고는 해도 불청객과는 회포를 풀 생각이 없다고 일축한 한나.
그녀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레 도로시와 다이니의 앞에 선다.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
“수인 중에는 수명 자체가 꽤나 긴 종도 있지만 너는 아니잖아.”
“그치, 늑대수인은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하지.”
그래서 그들은 더없이 치열하게 또한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뭐, 너희랑 비슷한 이유 아닐까? 사실 나도 정확하게는 잘 몰라.”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팔짱을 끼는 윤.
“분명 죽었단 말이지? 최후까지 검을 휘두르면서 내가 바라던 대로.”
“…….”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눈을 뜨니까 이 시대더라?”
두루뭉술한 표현과 설명.
하지만 윤이 무언가를 숨기고자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한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진정으로 윤은 자신이 겪었던 상황을 설명할 뿐이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나를 불러낸 놈들이 있긴 했어. 뭐, 전부 죽였지만.”
“불러내?”
꽤나 핵심적인 단어라는 생각에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하지만 윤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정말 조금도 상관없어 보였다.
“그것보다 여기에 라인 레이먼드가 있지? 걔 보러 왔어.”
“지금 단장님은 너랑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으셔.”
“벗이 찾아왔다고 말하면 좋아하지 않을까?”
정중히 돌려보내고 싶었던 한나였으나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단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단장님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회포를 풀 생각이라고?”
“그치? 오랜만에 술도 좀 마시고, 옛날이야기도 좀 하고 그러면 좋잖아.”
확실히 이안 아이넬의 친구가 아니라, 라인 레이먼드의 친구가 만나러 와준다면 단장에게도 심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왜 앞에 있는 여인의 등 뒤로 흐르는 불안감이 어찌 이리도 큰 것처럼 느껴질까.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늑대를 보는 기분이었다.
밤하늘이 마치 윤의 그림자처럼 보이며 그 안에 뭔가가 숨어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그리고 죽일 거야.”
똑같은 말투와 똑같은 높낮이.
술이나 같이 마시고 싶다고 그리워하던 목소리와 동일한 흐름이었지만 입에 담은 단어는 그렇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한나와 도로시 그리고 다이니까지 몸이 굳어서는 윤을 바라본다.
윤은 빙그레 미소 지으면서 답한다.
“그게 걔를 위한 일이야.”
“무슨 소리야.”
눅진하게 묻어 나오는 살의.
이제야 불안감의 정체를 알아차린 한나가 활을 강하게 쥔다.
입으로는 대답하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앞의 검사를 어떻게 쓰러트릴지 고민 중이었으나.
그 모든 것이 하찮다는 듯 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던 대악마가 실은 본인의 안에 기생해서 살아가고 있는데?”
“…….”
“…….”
“예?”
한나와 도로시가 입을 꾹 다문다.
두 사람의 반응에 오히려 다이니가 당황하며 물어 왔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안 안에 마몬이 살아있다고요?”
당황한 다이니가 흐름을 깨듯 대화에 끼어들자, 순간적으로 화마와 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짙은 살기.
방금 전까지는 단순한 농담 정도였다고 말하는 듯한 윤의 진심.
억센 증오를 지닌 윤의 한마디가 다이니를 꿰뚫는다.
“입 열지 마, 악마숭배자.”
“아…….”
본인의 목에 걸린 마몬의 로자리오를 내려다본 다이니.
윤이 뭔가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네 안에 흐르는 건 마몬의 기운이지? 라인 레이먼드가 준 건가?”
생각 이상으로 많은 걸 보고 있는 윤의 검은 눈.
단순히 로자리오만을 보고 판단한 게 아니라 그 외의 다른 게 보이는 듯싶었다.
“이 힘을 준 덕분에 제가 살아있을 수 있는 거예요!”
어떻게든 이안에 대한 오해가 없도록 다이니가 외쳤으나 윤은 심드렁하니 대꾸한다.
“처음엔 그렇겠지. 결국엔 마몬이 바라는 대로 될 거야. 대악마라는 놈들은 생각만큼 쉽게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당신이 뭘 안다고……!”
“알아.”
이안이 대악마가 될 거라는 듯한 윤의 말투에 다이니는 욱해서 한마디 내뱉으려 했으나, 말허리에서 단호하니 잘린다.
오히려 너무나 확신하는 그 말투에는 자신이 모르는 믿음이 윤에게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네가 단장에게 검을 겨누게 만들지 않을 거야.”
“단장이 그런 괴물이 되는 걸 막기 위해 저희가 있는 거예요.”
한나와 도로시가 끼어들며 답하자 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말은 그렇게 하겠지. 노력도 할 걸 알아. 하지만 세상에는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게 있다는 걸 잘 알잖아?”
“도대체…… 뭘 알고 있는 거야.”
으득.
드물게도 감정이 넘실거리듯 요동치는 한나.
뜨거운 파도와 같이 철썩이는 한나의 감정을 받으며 윤은 잠시 입을 다문다.
그녀 역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보였다.
눈가와 얼굴 표정에는 회환과 후회 또한 억울함 등.
여러 감정이 담겨 있었으나, 윤은 그 모든 걸 단 하나의 행동으로 옮겨 보여주었다.
스륵.
옷을 풀어헤치자 자연스럽게 윤의 가슴골이 눈에 들어온다.
여성밖에 없기 때문에 거부감은 없었으나 갑자기 무슨 짓인가 싶은 순간.
“어?”
탄성을 내뱉은 건 다이니였다.
윤의 가슴팍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양이 하나 떡하니 그려져 있었으니까.
역십자.
레비아탄을 섬기던 추종자들이 가지고 있던 로자리오와 동일한 문양.
그것은 은은한 남색빛을 흘리면서도 당장이라도 터져 뭔가를 쏟아낼 듯 주변의 공기를 흉흉하니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설, 마.”
순간적으로 한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가지.
레비아탄교를 정리하기 위해서 그들과 싸웠을 무렵.
투항해 왔던 경비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의 레비아탄교는 이미 많이 무너진 상태라고.
예전에 대악마를 소환하기 위한 의식을 대규모로 진행한 적이 있지만 실패했고.
그 자리의 모든 이가 죽었다고.
하지만 윤의 가슴팍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있자니 이제야 한나는 확신한다.
그들의 의식은 실패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훌륭할 정도로 성공해 버렸다.
그 결과가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여인이었다.
“내가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레비아탄의 추종자들을 정리해 줘서 고마워. 덕분에 너희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
“…….”
“이제 충분해. 레비아탄의 추종자는 하나도 남지 않았어. 내 안에 있는 빌어먹을 악마놈도 그렇게 말하고 있어.”
스릉.
어느새 뽑아 든 태도를 손에 쥔 윤이 서글픈 미소를 짓는다.
“내가 할 일은 다 했어. 하지만 마지막 가기 전…….”
한나의 손에는 어느새 화살이 쥐여져 있었으며, 도로시는 천천히 발끝으로 바닥에 굴러다니던 자신의 창을 튕겨서 손에 쥔다.
“오랜 친우를, 구해주려는 것뿐이야.”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오직 대악마를 서로 품에 안고 있는 이들끼리만 공감할 수 있는 괴로움.
그리도 강하고, 찬란했으며, 또한 굳세던 윤이라는 여인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나는 되레 두려움이 밀려왔다.
훗날.
자신들의 단장도 이렇게 되는 게 아닐까?
결국 윤처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게 아닐까?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괴로움이 단장에게는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수많은 의문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지만 우선.
끼이익!
장궁에 화살을 메긴다.
어찌나 빠른 손놀림이었는지 검으로 따지면 발도라 불러도 될 정도.
훙!
하지만 그렇게 날아든 화살은 윤의 머릿결만 스치고 지나칠 뿐이었다.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화살의 궤적을 읽는 것 자체가 너무나 손쉬웠다.
“그러니까 말해.”
길게 뻗은 아름다운 도신에 밀려 들어가는 거센 마나.
그것이 예전 윤이 다루던 것이 아닌, 남색의 대악마가 가진 힘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이안 아이넬처럼 일부러 악마의 기운을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힘이 계속 흘러나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본연의 마나에 악마의 기운이 묻어나오는 느낌이었다.
“라인 레이먼드, 어딨어.”
콰앙!
본연의 힘에 더불어 바람이 도와준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빠른 검.
진즉에 도로시가 앞으로 뛰쳐나가서 창을 들어 올린 게 아니었다면 기숙사 옥상이 반으로 갈라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일검.
“끄으으윽!”
하지만 그런 검을 받아낸 도로시는 바로 울상이 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깟 마몬! 이미 한번 이겼어요! 다시 이기면 된다고요!”
그럼에도 도로시의 입은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억울함을 토해내는 아이처럼 단순하면서도 억척스러운 말.
“단장이 그깟 대악마한테 질 것 같아요?! 우리 단장은 엄청 세서 혼자서 마몬도 죽였거든요!”
“라인의 의지력이나 강함에 대한 문제가 아니야.”
쿠웅!
굳이 다시 검을 내리찍지 않고, 도로시의 창과 맞닿은 상태에서 더욱 힘을 주는 윤.
도로시는 무게를 견디지 못해 점차 허리가 굽으며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쐐액!
그런 도로시를 구하기 위해 날아든 화살.
정확하게 심장을 노리고 들어온 화살에 윤도 어쩔 수 없이 몸을 뒤로 뺄 수밖에 없었다.
“후아아!”
가까스로 살았다며 다시금 자세를 잡는 도로시.
방금까지 그녀가 있던 곳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움푹 파여 있었다.
“이건 너희를 위함이기도 해.”
다시금 윤의 검이 움직인다.
궤도를 쫓지는 못한다.
바람소리마저 그녀의 검을 따라잡지 못한다.
“죽여야 할 대상과 구해야 할 대상이 동일해졌다는 걸 인지한 그 순간을.”
다만, 흘리듯 울려오는 윤의 목소리만이 이 싸움에 그녀가 얼마나 진심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너희는, 견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