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93
93화.
바람.
고작 한 단어로 정의되는 게 바로 윤의 검술이었다.
어디서 날아들지 모를 정도로 빠르고 날카로우며 현란하다.
고요함은 산들바람과 같으나.
그것에 속아 손을 뻗었다간 태풍에 짓이겨지듯 휩쓸린다.
도로시는 순간적으로 내지른 자신의 창이 휘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윤이라는 여인의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신의 창이 날아가지 않도록 붙잡는 것만이 도로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끄으으으!”
탄성을 내뱉는 도로시.
그런 그녀를 돕기 위해서 한나가 화살을 쏘아대고 있으나.
강렬하게 날아드는 한나의 화살조차 중간에 휘어지듯 궤도를 꺾어 옥상 밖으로 날아간다.
검술의 극의에 이른 여인이 보여주는 기교와 같은 움직임.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마치 마법을 부리는 모습은 절경이라 부를 법했다.
만약 윤을 상대해야 하는 게 아니었다면 진심으로 감탄하면서 눈을 떼지 못했겠지.
“아오오오!”
결국 창을 양손으로 쥐고 크게 휘두르는 도로시.
순간 그녀의 괴력에 밀려나 바람이 옆으로 밀려난 기분이 들었으나.
“도로시!”
한나의 다급한 외침이 결과를 이미 말해주고 있었다.
어느새 안으로 파고든 윤의 검이 도로시의 가슴을 꿰뚫고 들어간다.
이렇게 가만히 있어서는 휘둘리기만 할 거라고 압박하며 조급하게 만들었고 큰 움직임을 강요했다.
단순 기술뿐만 아니라 심리전에서도 패배한 도로시는 그대로 마나가 되어 흐트러졌다.
도로시의 흩날리는 마나 사이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치고 들어오는 윤.
활로는 싸울 수 없다 판단한 한나가 그대로 검을 뽑아 들며 대항한다.
카앙!
연주의 추임새와 같은 깊은 울림이 울려온다.
도로시와는 달리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전투를 이어가는 한나였으나.
“큿!”
문제는 당연히 의족이었다.
윤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오른쪽 의족이 짓뭉개지며 결국 쓰러진다.
“아쉬워, 다리만 멀쩡했더라면 나름 버텼을 텐데.”
의족이 아니었더라도 승리하진 못했겠지만 그래도 시간 벌이 정도는 할 수 있었겠지.
분할 수밖에 없는 한나였으나 오히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자존심을 구기며 부탁한다.
“저 아이는 건드리지 말아 줘.”
“…….”
“너와 마찬가지로 단장의 친구야.”
“흠, 그 녀석 벗이라고?”
턱을 쓰다듬으며 미묘한 표정으로 다이니를 관찰하는 윤.
어떤 대답이 나올지 그녀의 입으로 다이니와 한나의 시선이 쏠린 순간.
에에에에에엥!
생도들의 단잠을 깨우는 격렬한 경고 소리가 울려온다.
윤이 아카데미 입구를 지나올 때 쓰러트렸던 경비들이 다음 교대자들에게 발견된 것.
순식간에 운동장으로 몰려드는 교수들과 생도들에게 각 기숙사 1층으로 모일 것을 지시하는 안내음.
긴장된 상황을 갑자기 확 풀어버리는 소란 속에서 윤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또 라인은 여기 없는 것 같고.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밑에 많은 것 같으니까.”
“…….”
“이 여자애는 그냥 두지.”
푹!
그대로 윤의 태도가 한나의 목을 찌르고 들어간다.
도로시와 마찬가지로 마나가 되어 흩날리는 한나.
잠시 그것을 내려다보던 윤은 천천히 몸을 돌린다.
옥상 입구 쪽에 서 있는 다이니에게는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로.
1학년 여자기숙사 옥상 난간이 무너져 있는 걸 확인한 교수와 경비들이 다급하게 올라오고 있었으나.
“끄응! 어깨가 쑤시네.”
윤은 기지개를 한번 켜며 다시금 검을 치켜들고는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 * *
“후우.”
나이트 아카데미의 정문.
검은 후드로 전신을 감싼 남자는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두 번째다.
그 괴물이 휩쓸고 간 자리를 보는 게.
그나마 메이제렌에서 보였던 압도적인 파괴행위보다는 좀 나은 게 아카데미 건물들 자체는 대부분 멀쩡했다.
기숙사 건물 벽 한쪽에 새겨진 거대한 짐승이 할퀴고 간 듯한 흔적만 아니면 얌전한 수준.
‘메이제렌보단 덜 날뛰었군.’
아예 도시에 있는 건물 일부는 물론이고, 마탑까지 하나 베어 넘긴 전적을 생각하면 아카데미에서는 비교적 조용하게 지나갔다 할 수 있었다.
다만, 운동장에 보이는 거친 전투의 흔적들은 나이트 아카데미도 최선을 다해 싸웠다는 걸 알려왔다.
“누구십니까?”
한쪽 팔에 붕대를 감은 헥토르 교수가 슬며시 남자에게 다가온다.
바로 어젯밤 불시에 일어난 습격 탓에 예민한 말투.
최대한 공손하게는 말하고 있지만 혹시라도 불청객이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투기까지 느껴졌다.
“…….”
남성은 주변을 살펴보곤 슬며시 후드를 넘긴다. 그러자 드러나는 탁한 빛의 은발.
다부진 외형과 듬직한 체형.
고귀한 기사의 피를 이어 왕국 최고의 기사단을 이끈다고 알려진 로만 레인먼드가 스스로 정체를 밝힌다.
“아?!”
경계하던 헥토르의 입이 떡 벌려진다.
당황했다는 게 표정에서 여실이 드러난다.
설마 여기서 왕국 최고라 칭송받는 기사가 나타날 줄은 몰랐으니까.
“쉿.”
입에 손가락을 대며 주의를 주는 로만.
헥토르는 천천히 침을 삼키며 심호흡까지 하며 진정한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로만이 비밀리에 이곳에 찾아왔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 헥토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묻는 그에게 로만은 주변을 살피며 답했다.
“쫓고 있는 수인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미 늦은 것 같군요.”
“로, 로만 님도 그 여인을 아십니까?!”
“예, 나름.”
신성 기사단이 단 한 명의 여인에게 패배했던 날을 떠올리면 아직까지도 로만은 아찔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기사단 내부에서 전투가 벌어졌던지라 외부에 소문이 새어나가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신성 기사단의 모두가 입을 다물면 없던 일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날 이후로, 로만 레이먼드는 기사단을 비우면서까지 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신성 기사단의 단원들 역시 곳곳으로 윤을 수소문하는 중이었다.
치욕스러운 패배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수인을 왕국에 그냥 풀어둘 수는 없었다.
추적을 통해 메이제렌으로 향했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었다.
또 나이트 아카데미로 향했다는 증언을 토대로 이곳까지 왔지만 이번에도 늦었다.
어찌 이리도 빠르게 이동하는지 신출귀몰할 정도.
“그 여인을 체포하기 위해서 왔는데, 이미 늦어버렸군요.”
“…….”
“혹시 그 여인이 어딘가 행선지를 밝히진 않았습니까? 아니면 누구를 찾는다던가.”
가령 전설 속의 기사, 라인 레이먼드라던가.
그리 덧붙이며 묻는 로만.
헥토르는 잠시 고민하더니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실토한다.
“여인은 레데른으로 떠났습니다.”
“레데른? 레이로즈 가문의 영지이지 않습니까.”
거리가 조금 있는 장소.
조금의 규칙성도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헤집어 놓는 여인이 향한 곳이 레이로즈 가문이라니.
혼란스러운 로만을 바라보는 헥토르의 입안에는 아직 할 말이 남아있었지만 과연 이걸 그에게 말해도 되는 걸까 싶었다.
‘아니, 오히려 로만 님이니까 더 말해야 하는 걸까.’
결국 헥토르는 주먹을 꾹 쥐며 그에게 있어서는 실례가 될 수 있는 말을 조심스럽게 입에 담는다.
“여인은 기묘하게도 라인 레이먼드 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
하지만 의외로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로만을 보며 헥토르는 그가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이번 1학년 생도들 중에 은발의 생도가 있습니다. 그 생도가 지금 레이로즈 가문의 초대를 받아서 레데른으로 가 있는데…… 아마 그를 찾으러 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은발.”
고작 하나의 키워드임에도 로만은 소년이 누구인지 바로 떠올린다.
이전에 기사단 실습 때 면접에서 로만의 면전에 대고 정말 레이먼드의 후손이냐고 물었던 무례함.
거기서 끝나지 않고 마몬교에게 납치까지 당했던 소년.
‘끊이질 않는군.’
순간적으로 로만의 흥미가 윤에게서 이안 아이넬에게로 옮겨 간다.
도대체 그 소년은 무엇이기에 이곳저곳 들쑤시며 여러 사건에 휘말리는 걸까.
“일단 레데른에 연락은 보내뒀습니다. 적장미 기사단이 움직일 테니 걱정은 없겠죠.”
굳이 로만이 움직일 필요 없으니 안심하라는 헥토르였으나 오히려 로만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적장미 기사단으로는 윤을 막아낼 수 없다.
신성 기사단조차 그녀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정보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 말하며 후드를 다시 뒤집어쓰는 로만.
적장미와 협력하는 건 썩 와닿지 않지만 그래도 대의를 위해.
로만이 몸을 틀어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음?”
자신과 마찬가지로 로브를 입은 한 여인이 아카데미를 기웃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다만, 로만처럼 신분을 숨길 생각은 없는지 연녹색의 로브에는 대놓고 녹색 마탑의 문양이 달려 있다.
‘녹색 마탑이면…….’
이번에 윤의 태도에 마탑 자체가 반 토막 난 곳이지 않은가.
불꽃 계열을 상대하는 것 외에는 약점이 없다고 평가받는 녹색 마탑의 거목이 날붙이에 잘려 나간 건 꽤나 충격적이었다.
‘치욕스럽더라도. 놈과의 전투에서 단순 검술로만 승부를 보아서는 안 된다.’
그녀를 보는 순간 로만은 녹색 마탑 역시 자신과 같은 인물을 뒤쫓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잠시 저 좀 보시죠.”
“예?”
슬며시 그녀에게 다가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동행을 요구했다.
* * *
보름이라는 시간은 생각 외로 금방 지나가 버렸다.
규칙적인 생활은 하루를 빠르게 만드는데 이번엔 그 정도가 심했다.
각자 방에 가서 자는 시간도 아까워서 훈련장에 이부자리를 펴고 잠들고, 일어나면 다시 훈련한다.
어찌 보면 스스로를 가두고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훈련법이었으나 마리아는 오히려 기뻐했다.
“이안, 여기 와 봐.”
그 동안 마리아 본인도 자신에겐 검술이 맞지 않는단 걸 잘 알고 있었을 거다.
그렇다면 강해지는 데 있어서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야, 이거 봐!”
하지만 윤의 검술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딱 맞는 검술을 발견하게 되니 배움을 멈출 수 없었겠지.
“이거 보라니까?”
“후.”
아까부터 레이로즈 가문에서 피워둔 향초를 가리키며 호들갑을 떨어대는 마리아.
도대체 왜 그러나 싶어서 팔짱을 끼고 심드렁하니 그녀를 본다.
“왜.”
“후웁!”
철컥!
마리아의 허리춤에 달린 태도가 살짝 뽑혀 나왔다가 다시 들어간다.
그러자 향초의 촛불이 훅 하고 꺼졌다.
“……바람 분 거잖아.”
나를 등진 상태로 한번 속여 보려 한 것 같은데 검을 뽑기도 전에 기합에 촛불이 꺼졌다.
내 반응에 마리아는 배를 부여잡고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웃어댄다.
“걸렸네에!”
“에휴.”
가주가 마리아의 성과를 확인하는 당일이건만 마리아는 조금의 긴장도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더 느슨하게 풀린 모양새.
이 정도면 반대로 대충할까 봐 걱정까지 되는 수준.
“근데 왜 안 온다냐.”
웃어대던 마리아는 슬쩍 훈련장 입구로 시선을 돌린다.
이미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아직 오지 않는 메디안 레이로즈.
일부러 오지 않는 건 아닌 듯한 게 오늘 아침부터 레이로즈 가문 전체가 꽤나 분주하며 소란스러웠다.
‘윤 때문인가.’
이미 그녀에 대한 건 한나와 도로시에게 들었다.
차분하게 설명해 주는 한나 옆에서 울먹거리면서 위로해 달라던 도로시.
도로시는 짜증 나서 역소환 하긴 했지만 윤을 상대로 고생하긴 고생했다.
‘설마 윤이 레비아탄으로 소환됐을 줄이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할 일은 마리아를 가르치면서 윤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태도 아니니까.
대악마의 문양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있을 테고.
그때.
“오우! 오셨다!”
호들갑을 떨면서 어깨를 들썩이는 마리아.
그녀의 시선 끝에는 침울한 표정으로 훈련장을 걸어 들어오는 메디안 레이로즈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