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95
95화.
각자의 태도를 쥔 채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방금 서로를 처음 봤지만 의외로 마리아와 윤은 상대방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종족도 다르고, 살아온 인생도 다르며, 환경도 다르다.
하지만 왜 이안 아이넬이 이 여자의 검술을 가르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철컥.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동시에 뽑아 든 검은 마치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맞춰둔 듯 같은 궤도를 그리며 서로 맞부딪쳤다.
카앙!
뭉뚝한 보통의 검으로는 만들 수 없는 깊은 철의 울림.
윤은 빙그레 미소 지어 보인다.
“준비물은 잘 가져왔네.”
만약 어디서 나뭇가지 같은 검을 가져와서 자신에게 배움을 청하려 했다면 금세 베어 넘겼을 거다.
“이것도 이안이 준 거야!”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레이로즈의 무기창고에서 가져왔으니 메디안 레이로즈가 줬다고 봐야 했으나.
이미 마리아의 머릿속에서 그런 기억들은 전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이안에게 감사하며 땅을 밀 듯 앞으로 나선다.
그것을 흘리듯 받아내는 윤.
“태도를 다룬 지 얼마 안 됐지? 태도는 다른 검들에 비해 얇아서 방어할 때는 부드럽게 흘리는 방식이 유용해.”
마치 교과서를 읊듯 자신이 말한 대로 마리아의 공격을 흘려낸 윤이 이번에는 몸을 비틀어 마리아를 향해 검을 휘두른다.
마리안느나 다른 기사들을 상대할 때와는 다른 느낌.
도발적으로 빠르지도 않고, 바람이 밀어주는 듯한 묵직함도 담겨 있지 않았다.
끼기기긱!
방금 윤이 했던 걸 그대로 따라 하는 마리아.
어떤 방식인지 대충 이해했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윤은 칭찬의 미소를 흘린다.
“잘 배우네?”
그러곤 이번엔 재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연격을 내리찍는다.
겉으로 봤을 때는 그냥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듯했으나 결이 있고, 길이 있음을 부딪치고 있는 마리아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니, 알 수 있도록 윤이 인도하고 있었다.
“화려할 때와 잔잔할 때를 구분하면서 사용하는 거야. 우리의 검은.”
갑자기 시작된 교육에 윤을 상대했던 마리안느와 다른 적장미 기사단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너무 뜬금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적장미 기사들 중 몇몇이 특공대처럼 파견되어 마리아와 검을 나누고 있는 윤의 뒤를 잡고 덮치려던 순간.
부우우웅!
묵직한 바람이 일어나며 달려들던 적장미의 기사들의 몸이 꽃잎처럼 하늘로 붕 떠오르더니,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마리아에게 맞춰주고 있는 검과는 사뭇 다른, 윤의 진심 어린 일검.
그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마리아는 꿀꺽 침을 삼켰다.
“장난 없네.”
가장 가까이에서 봤음에도, 솔직히 검을 휘둘렀다는 느낌만 얼핏 들었다.
윤의 검을 마리아는 전혀 눈으로 좇지 못했다.
앞에 있는 여인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폭풍처럼 느껴졌다.
폭풍의 눈으로 들어가길 허락받은 사람은 자신뿐이었고, 허락받지 못한 자들은 바람에 갈려 날아갔다.
배우고 싶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저 여인처럼 당당한 검사가 되고 싶었다.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레이로즈 가문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저 여인처럼.
“나도.”
꾸득.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마리아는 앞으로 크게 걸음을 내딛으며 전력을 다해 손을 휘둘렀다.
“존나 쎄지고 싶어!”
상스러운 어투로, 토해내듯 각오를 외친 마리아였으나.
“흥분을 검에 담지 마.”
그 어느 때보다 쉽게 튕겨나가 버린다.
“열정 같은 걸 검에 담지 마. 감정을 담지 마. 검을 자신과 동일시 여기는 건 우리 검술엔 치명적이야.”
“크으읏!”
“그놈이 안 알려주더냐?”
알려줬다.
하지만 그런 가르침 이상으로 윤이 보여준 검술은 마리아의 가슴을 격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리아를 억제하듯 윤의 검격이 다시금 세차게 날아든다.
캉!
“막을 때는 최대한 비스듬히 쥐는 거다! 상대가 내지르는 검의 길을 읽어!”
캉!
“그냥 막고만 있을 거냐? 언제까지고 맞기만 할 거야? 반격의 기회를 잡아야지!”
캉!
“반격을 할 때도 말해준 걸 잊지 마! 결국 흐름과 길을 따라서 휘두르는 거다! 상대의 검을 막으면서 동시에 찌를 수 있는 길을 찾아!”
터엉!
윤의 말에 마리아는 이를 으득 물었다.
윤의 검을 튕겨냄과 동시에 바로 찌르고 들어간다.
상당히 깔끔한 움직임에 윤은 씨익 웃어주었다.
턱.
“나쁘지 않네.”
심장을 노리고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간 마리아의 검이었으나.
윤의 집게손가락에 너무나 허무하게 잡혀 버리고 말았다.
“어?”
당혹스러운 광경에 탄성이 흘러 나왔다. 이런 식으로 검이 막히는 건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으니까.
방금 그 일격은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집약한 회심의 한 방이었는데.
너무 간단하게 잡힌 걸 보며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당황은 점차 흥분으로 변해갔다.
힘을 주어 검을 빼려 했으나 윤의 손은 강철처럼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촉박한 시간 안에 충분히 가르쳤다. 남은 건 알아서 독학해라.”
나도 그랬으니까라는 뒷말을 남기며 마리아를 지나치는 윤.
“여기서부터는 어른들 시간이야.”
어느새 관자놀이를 치고 들어온 충격에 마리아의 몸이 휘청거리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아.”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을 받은 마리아.
자신을 지나쳐 간 윤은 기다리고 있었던 적장미 기사단과의 전투를 곧바로 개시했다.
‘아, 젠장.’
안 된다.
아직 그녀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
‘더 싸우고 싶은데.’
이렇게 바닥을 구르며 귀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왜인지 지금을 놓치면 저 여인을 다시 만나는 건 불가능할 거란 확신이 마리아의 안에서 들었다.
‘가서 싸우고 싶은데에에에!’
투정을 부리듯 몸을 비틀며 억지로 일어난다.
어지러움이 가라앉지를 않아서 검을 바닥에 꽂으며 가까스로 중심을 잡는다.
“아지이익! 안 끝났다고오오오!”
짐승과 같은 포효를 토해낸 마리아.
왜인지 갑자기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단전에서부터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서 광기 어린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실력들은 상당하다.’
마리아를 쓰러트린 후.
적장미 기사단의 안으로 파고들어 검을 휘두르고 있는 윤은 솔직하게 이들을 평가했다.
뛰어난 기사들임은 분명하다.
특히나 기사단장과 부단장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신에게 따라붙으며 거슬리게 했다.
분명 출중한 실력자였지만….
‘아쉽군.’
안타깝게도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기사는 이 자리에 없었다.
적어도 은빛사자의 부단장이던 마리 레이로즈 정도의 기사는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윤은 어서 빨리 이안 아이넬을 만나고 싶었다.
그때.
무엇 하나 없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정적인 살기.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기습.
뒤에서 휘둘러지는 검을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피해낸 윤.
윤이 감각적으로 예민하며 신체능력이 뛰어난 수인이 아니었다면 분명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눈동자에 비친 건 갑자기 솟아올라온 탁한 은발의 기사.
신성 기사단의 단장 로만 레이먼드였다.
“이걸 피했다고?”
자신의 기습이 통하지 않은 걸 보고 오히려 놀란 로만 레이먼드.
그의 공격에 맞춰 정문으로 들어오는 신성 기사단의 기사들과 녹색 로브를 입고 있는 마법사.
‘메이제렌 마탑의 마법사까지 쫓아왔나.’
갑자기 땅에서 솟아오른 로만의 기습이 저 마법사의 도움을 받은 것임을 바로 알아차린 윤.
우선 마법사부터 처리할 생각으로 검과 발끝에 힘을 준다.
“저, 저기요!”
꽤나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양손을 번쩍 들고 윤을 부르는 마법사.
윤이 따로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봉제인형 벨! 아직 가지고 있죠!”
“으음?”
“저주받은 인형! 가져갔잖아요!”
그 말에 윤은 허리띠에 매달아 놓은 여자인형을 슬쩍 들어 올린다.
“이거?”
“그거! 그거 건드리면 안 돼요! 진짜 위험하다고요!”
“라인 녀석한테 선물로 주려고 했던 건데.”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윤에겐 두렵기는커녕 흥미롭게 느껴졌다.
마법사의 말을 무시한 윤이 인형을 품에 넣고 주변을 둘러본다.
은색 갑옷을 입은 신성 기사단과 적색 갑옷을 입은 적장미 기사단.
그들의 살기가 저릿하니 몸을 누르는 느낌에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거 다짜고짜 마법사한테 달려갔다간 큰일 났겠는데.’
원래 후방 화력 담당부터 박살 내는 게 맞지만, 이 경우에는 후방 담당보다도 앞을 가로막은 기사들이 훨씬 위협적이었다.
“로만 레이먼드,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비상사태다. 아군끼리 언쟁은 불필요하다.”
기사단장인 마리안느는 뭔가 불만인지 로만에게 따지고 들었으나 로만에겐 그녀를 설득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흠, 경쟁 관계인가?’
상대는 일류 기사다.
하지만 협동이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
그 허점을 노리고 찌르며 들어가면 충분히 수월하게 이길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흉흉한 기운이 기사단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음을 감지한 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악마?’
자신의 안에 있는 레비아탄이 반응하는 걸로 봐서는 분명 악마의 기운이다.
이안 아이넬이 도착한 건가 싶어서 윤이 목을 빼 들자.
“허?”
생각지도 못한 소녀가 불길한 기운을 뚝뚝 흘려대며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는 거 아닌가.
“아직 안 끝났어.”
이안 아이넬이 키우는 될성부른 떡잎.
검객인 윤조차 재능을 인정한 마리아 레이로즈가 다시금 일어나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전신에서 검붉은 마나를 풀풀 풍겨대며.
‘마몬의 기운이 마나 안에 섞여있었나?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정도면 정말 극소량이었다는 소리인데.’
나이트 아카데미에서 마주친 소녀, 다이니가 지니고 있던 마몬의 기운과 똑같다.
“너, 지금 네가 누구 힘을 쓰고 있는지는 알고 있냐?”
방금까지 호감 가던 검사였던 마리아가 순식간에 불쾌해진 윤.
그녀의 질문에 마리아는 자신의 몸을 둘러보더니 외쳤다.
“나한테 있으면 내 힘이지 누구 힘은 누구 힘이야.”
“…….”
어이가 없지만.
또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해서일까.
할 말을 잃은 윤이 입을 다물자 마리아는 씨익 웃으며 어깨에 검을 얹는다.
“이전에 이안 놈이 나한테 흘러 들어왔다고 하던 힘이 이건가 봐? 엄청 싸우고 싶다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약빨 받은 것처럼 힘이 막 솟더라.”
“싸우고 싶다?”
“어! 그것도 존나게! 아주 피 터져가면서 너랑 싸우고 싶어! 죽기 직전까지 너랑 싸워서 모든 걸 배우고 싶어!”
탐욕스럽다.
이 소녀에게 있는 갈망이 흡사 모든 걸 먹어치우는 마몬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윤이었다.
‘그래서 희미하던 마몬의 기운이 격하게 반응한 걸까?’
아직 윤조차 대악마들의 힘에 대해서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니라서 확신하진 못하지만.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놈이 옛날부터 사람 하나는 기가 막히게 본단 말이지.”
어디서 이런 거물을 주워 왔는지 참 대단했다.
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몬의 기운 같은 건, 이 소녀에게 있어 단순히 싸움에 도움을 주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게도 윤의 마음이 편해지며, 불쾌하게 느껴지던 마리아가 다시금 호감으로 급변했다.
“죽기 직전까지 싸우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정말 죽을 수도 있어.”
윤이 경고에 마리아는 호탕하게 대응한다.
“어, 죽을 것 같으면 전력으로 도망칠 거야.”
번뜩이는 마리아의 붉은 눈동자.
그건 죽음을 두려워하는 눈이 아니었다.
윤과의 대결에서 목숨을 잃는 게 무서워서 도망치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 다음.
또 그 다음에 있을 전투를 위해.
윤과의 대결을 통해 더욱 강해져서, 언젠가 승리를 거머쥘 정도로 강해지기 위해.
소녀는 극단적인 곳까지 스스로를 몰고 간 후, 물러나려는 속셈이었다.
“광기다.”
하지만 지극히 냉정하며, 계산적인 광기다.
‘설마, 그놈 말고 다른 녀석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크게 휘는 윤의 미소가 마리아를 향해 있었다.
“아주 마음에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