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99
99화.
“아오 씨.”
레이로즈 저택으로 올 때와는 다르게 짐이 한 무더기로 늘어난 마리아.
그녀는 마차에서 내리면서부터 투덜거리고 있었다.
정작 짐은 가문에서 보내준 사용인들이 전부 옮기고 있어서 본인 손은 텅 비어 있음에도.
“저걸 도대체 어디에 놓으라는 거야? 하여간 사람이 돈이 많으면 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니까? 여기가 저택인 줄 알아?”
확실히 마리아가 가져온 짐의 양이 상당해서 기숙사 개인 방에 다 넣기에는 많이 불편해 보였다.
“하, 하지만 가주께서 꼭 다 챙기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곤란해하는 사용인들을 보며 결국 이마를 손바닥으로 툭 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우, 정리까지 알아서 잘해.”
무슨 짐이 그렇게 많은가 싶어서 슬쩍 보니까 옷이 한 무더기였다.
거기에 추가로 화장품이나, 장신구 같은 물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내가 진짜 이걸 걸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짐에서 목걸이 하나를 휙 낚아채더니 짜증을 한껏 담아 씩씩거리는 마리아.
도대체 무슨 의도로 마리아에게 이런 걸 보냈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그녀가 슬쩍 나를 보며 툴툴거렸다.
“너 때문이잖아.”
“왜 나를 걸고 넘어져.”
마리아를 한껏 꾸미게 해주는 짐들이 나랑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그녀는 입을 옴짝달싹하며 뭔가를 말하려다 결국 뜨거운 숨만 토해냈다.
“아오 씨. 됐어.”
하여간 성질머리하고는.
어쨌든 나이트 아카데미로 돌아온 우리.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마리아의 아카데미 생활은 다시 시작됐다.
가문으로부터 반쯤 독립까지 얻어냈으니 성과가 없다고 할 순 없었다.
‘게다가 마리아를 확실하게 영입할 수 있었으니까.’
이제 무사히 졸업만 하면 마리아를 은빛사자 기사단으로 데려갈 수 있다.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마리아를 가르칠 윤이라는 스승도 얻게 되었으니까.
성장시킬 원석도 있고, 원석을 가공할 장인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가문에서 받아 온 태도를 허리춤에 찬 채로 하품을 쩍 내뱉고 있는 마리아를 향해 경고했다.
“넌 이제 진짜 고생할 거다. 내가 진짜 죽도록 굴릴 거야.”
“하, 지 거 됐다고 바로 노골적이네. 나한테 따라 잡히지나 않게 조심해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싱글벙글 웃는 걸 보니 얘는 정말 천생검사가 아닐까 싶었다.
샬롯이나 다이니였으면 바로 질리는 표정을 지으면서 어떻게 좀 쉴 궁리 없나 고민할 텐데.
‘애들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짐 가방을 챙겨 들고 기숙사로 향하는 길.
오랜만에 보게 될 애들이 얼마나 열심히 훈련을 했을지 기대가 되었다.
* * *
“뭔 또 시험이야!”
아카데미로 돌아온 다음 날.
텅 빈 강의실.
펜을 깨물며 난동을 부리는 마리아.
그의 옆자리에 앉아 내게 내밀어진 시험지를 내려다본다.
“마리아 생도. 조용히 시험 보세요.”
주의를 주는 교수님의 압박에 투덜거리며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마리아.
레이로즈 가문을 다녀오느라 진도가 밀린 우리는 다른 생도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와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다른 생도들은 이미 어제 시험을 치렀으니까.
아카데미의 시험은 여름에 중간고사를 한번 보고.
겨울에 기말고사를 한번 보는 걸로 알고 있다.
기말고사라면 겨울방학 직전에 치러지니, 아직 시험을 치르기엔 이르지 않나 싶었지만.
문제지에 떡하니 적혀 있는 모의고사라는 단어.
기말고사를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시험이라고 한다.
이럴 거면 차라리 기말고사를 보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
시험 점수가 성적에 반영되진 않지만 현 수준을 파악할 수 있게 등수는 매긴다고 한다.
‘기말고사까지 마냥 기다리면 생도들이 헤이해질 수 있으니까 이렇게 장작을 넣는 건가.’
아무래도 경쟁을 통해 성장하는 방식이 효율적이다 보니 아카데미에서는 등수를 매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계속 매기려는 듯 보였다.
‘차라리 잘된 걸 수도.’
어제 잠깐 봤던 샬롯과 다이니 그리고 베런을 떠올리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리아도 얻었으니까 본격적으로 부활동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마리아, 이거 끝나고 부실로…….”
“우랴아아아아아!”
결국 참지 못하고 책상 위에 올라탄 마리아가 시험지를 갈기갈기 찢더니 그대로 포효하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마, 마리아 생도!”
감독하시던 교수님이 다급하게 도망친 그녀를 쫓아간다.
메디안 레이로즈가 왜 그녀를 마수라고 했는지 다시 한번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성적에 반영되지도 않으니 그냥 아는 것만 대충 푼 다음 교탁에 올려둔 후, 식당으로 향했다.
지금이면 다들 밥을 먹고 있을 시간이니까.
아카데미 내부는 여전히 변함없었다.
이제 반년 가까이 지냈다 보니 1학년 생도들은 대부분이 친해졌고, 애정행각이 과한 생도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2학년이 되면 밀림의 왕국으로 변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것보다 심해지는 건가.
동아리 내에선 연애 금지 관련 조항을 넣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며 식당으로 들어간다.
역시 밥을 먹고 있는 샬롯과 다이니.
둘 다 퀭한 눈으로 깨작깨작 밥을 먹고 있었는데 내가 준비해 준 식단대로였다.
“이야, 맛있겠다.”
웃으며 내가 샬롯의 옆에 앉자 두 사람의 게슴츠레한 시선이 바로 꽂혀 들어온다.
나름 농담이었는데.
300년 전에나 먹히던 거였나.
식사가 아니라 일종의 고문처럼 꾸역꾸역 밥을 먹어대고 있는 두 사람에게 나는 헛기침하며 말했다.
“오늘 모의 실기시험이라며.”
“어.”
“맞아.”
쌀쌀맞은 태도를 보니 농담이 정말 별로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기서 수석이랑 차석부터 그 밑으로 쫘르륵 우리가 다 먹는다. 듣기로는 10등 안으로 들어가면 2학년 상위권이랑 붙을 수도 있다며.”
“……어?”
“하웁.”
당황해서는 허공에 포크질한 다이니와 호밀빵을 입에 넣고는 씹지 않는 샬롯.
하지만 내 말은 끝나지 않았다.
“수석은 동아리 부장인 내가 먹고. 차석은 너희끼리 나눠 먹으면 돼.”
“아, 아니. 갑자기 와서 그런 말을 해도.”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불가능하다고 빽 소리치는 두 사람이었지만 나는 슬며시 웃어주었다.
“오늘 새벽에 너희 훈련하는 거 봤어.”
“……!”
“시험 보러 간 거 아니었어?”
“가면서 잠깐 봤어. 둘 다 열심히 했던데.”
다이니 같은 경우는 윤이 오기 직전까지 한나에게 계속 훈련을 받았고, 샬롯은 다이어트를 깔끔하게 성공하고 자신의 검술을 다시 갈고 닦고 있었다.
“대진운만 좋으면 충분히 가능해.”
다이니는 원래부터 검술 자체에 센스가 있었다 보니 체력이나 기본적인 부분만 보완해 주면 되었고.
샬롯 같은 경우는 스스로의 검술을 배워가며 급진적으로 성장해 내고 있었다.
내가 기사단의 머리를 담당하고 마리아가 오른손이라면.
이 두 사람은 우직한 다리가 되어 중심을 잡아줄 거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주는 거야. 은빛사자 연구회 소속들이 장난 아니구나. 저 동아리에 뭔가 있구나.”
특히 샬롯 같은 경우는 C반에 있다 보니 더욱 눈에 띄게 될 것이다.
“게다가 너는 저번에는 마리아한테 가로막혀서 제대로 빛을 못 봤잖아.”
아쉬웠다.
그때가 샬롯의 화려한 데뷔 무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마리아를 만나버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리를 만든 지금이, 샬롯이 진정으로 빛날 순간이었다.
“오늘 가서, 지금까지 배운 걸 보여주는 거야.”
내가 등을 툭 두드리자 어느새 샬롯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로 자신의 접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전의 시험에서 다이니를 이기면서 분명 저력을 뽐내고, 자신감도 붙었지만 주변에는 크게 눈에 띠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이 샬롯의 날이었다.
자신의 실력을 한껏 뽐낼.
“가서, 보여주자.”
내가 선동하듯 외치자 샬롯이 양손으로 주먹을 꾹 쥐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전투적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 맞은편에서 다이니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지만, 쟤는 원래 성적이 중위권에서 놀고 있었다.
“한나가 볼 거다.”
“……!”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다이니는 긴장한 표정으로 다시금 식사를 시작했고, 두 사람의 부실한 식단을 보며 나는 심호흡했다.
“별거 아니니까 먹으면서 들어.”
내 말에 두 사람은 눈동자를 힐긋거리며 나를 바라보곤 다시금 식사를 이어간다.
용기를 불어넣어 줬으니 불편한 진실 정도는 가르쳐 줘도 되겠지.
“실은 그 식단 말이야. 한 1주에서 2주 정도만 할 생각이었거든.”
우뚝.
방금까지 체하진 않을까 걱정되던 두 사람의 손이 뚝 하고 멈춘다.
슬며시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날 준비를 한다.
“근데 내가 레이로즈 가문으로 가면서 너희한테 깜빡하고 말을 안 해줬었네, 하하!”
“…….”
“…….”
입에 음식을 머금은 채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
방금까지 의욕적이던 감정들이 혼탁하게 물들어 간다.
마치 내 마나에 스며들던 마몬의 기운을 보는 듯한 눈동자들.
나는 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식단대로 안 먹어도 괜찮아. 곧 대련인데 육류 위주로 묵직한 것들 좀 먹어라.”
“이 개새-!”
“웁웁읍읍!”
바로 나한테 포크를 던지려는 다이니와 입에 음식을 머금은 채로 뭔가 외치는 샬롯을 뒤로 한 채 다급하게 식당 밖으로 뛰쳐나왔다.
저렇게 힘이 넘치는 걸 보면 그냥 식단대로 가도 될 것 같기도 하고.
* * *
모의 대련을 위해서 운동장에 몰려든 1학년들.
성적에는 반영되지 않는 대련이라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생도들도 있을 줄 알았는데, 다들 꽤나 긴장한 상태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래, 이래야지.’
혹시라도 대강 하는 분위기로 인해 허무하게 이기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차라리 잘됐다.
아무래도 모의 대련에서 이기면 2학년 상위의 생도들과도 대련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때문에 1학년들도 꽤나 긴장한 듯했다.
“샬롯에게 들었다.”
그런 1학년 생도들 사이에서 내게 슬며시 다가온 베런.
나는 그를 웃으며 맞이해 주었다.
“너는 어차피 열심히 할 거 아니까 굳이 말하진 않았어. 무조건 상위권이야. 2학년과의 대련기회, 모조리 우리가 먹는다.”
“당연하다.”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베런.
확실히 이런 면에 있어서는 마리아와 더불어 가장 믿음직한 생도였다.
“그리고 2학년 상위권까지 잡아먹는 거야.”
“……거기까지?”
“자신 없어?”
능글맞게 팔짱을 끼며 묻자 베런은 오히려 승부욕이 돋았는지 콧김을 흥하고 불며 목을 풀었다.
“2학년만 보다가는 큰 코 다친다.”
“응?”
“수석 자리, 이번에는 내가 가져가겠다.”
담담하지만 확실한 도전장에 나는 웃으며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그래, 이 정도 도전정신은 있어야 키울 맛이 나지 않겠나.
마리아 같은 경우는 긴장감이나 심리적 압박감이 전혀 없이 그냥 머리부터 박는 반면, 베런은 심적인 부분까지도 성장하며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니 확실히 마음에 든다.
슬슬 시작될 시험.
몸을 푸는 척하면서 슬쩍 남자 기숙사 쪽을 확인하자 역시 내 방 창문에 우르르 몰려서 대련을 구경하는 단원들.
창틀 맨 밑에는 인형인 윤이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었고.
그 위로 엘빈과 켈빈 그리고 도로시, 마지막으로 넬슨까지.
한나와 톰은 자리가 부족해서인지 자연스럽게도 옥상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생도들처럼 긴장한 채로 운동장을 지켜보고 있는 단원들.
왜 그런가 하면 자기들끼리 내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수석은 나로 확정이니 그 밑으로 순위가 어떻게 매겨질지.
진 사람은 새벽에 옷 벗고 운동장 중앙에서 춤추기로 했다는데.
‘어휴, 머저리들.’
남는 시간에 이러고 노는 꼴을 보니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