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98
98화.
“영광이었다.”
그리 말하며 스르르 눈을 감는 윤.
나 역시 본인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그녀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네려 했으나….
윤의 몸이 연기처럼 마나로 흩날려 사라져 가기 시작하는 걸 보니 찡하고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리 기사단원들이 역소환될 때와 똑같은 풍경이었으니까.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
레비아탄교의 신도들은 대악마를 소환하는 의식을 치렀고 그곳에 나타난 건 결국 윤이었다.
똑같이 대악마를 몸에 품고 있지만 나랑은 다른 케이스였다.
나는 이안 아이넬이라는 아예 새로운 몸에 깨어나면서 대악마의 저주가 따라붙은 거고.
윤은 300년 전의 모습 그대로 가진 채 각인을 몸에 지니고 있지 않은가.
‘마치 다른 기사단원들처럼.’
거기까지 생각이 닿는 순간, 이미 내 손은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결론은 윤이 소환수라는 것.
다른 단원들과 마찬가지로 마나로 이루어진 존재.
마법진에서 삐죽 튀어나온 건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어린 여자아이 체형의 인형.
저 멀리서 나와 윤의 대결을 지켜보던 마리아, 로만, 마리안느가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으나 그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런 걸 보여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보다 오랜 벗과의 이별이 조금 이른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앞선다.
그런 생각 속에서 수식을 계산한다.
한 손에는 인형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윤을 만진다.
‘내 안에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불과 며칠 전, 마리아의 태도에 있던 장인의 영혼을 인형으로 넣어보려 했던 경험이 있기에 이전보다는 훨씬 빠르게 술식을 계산할 수 있었지만.
‘들어오지 않아.’
통로를 만들어도 윤을 이쪽에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정확히는 그녀의 안에 있는 레비아탄이 내게 들어오길 거세게 저항하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며 실패한 건가 싶었으나….
내 가슴의 문양이 이빨을 내밀 듯 거칠게 기운을 쏟아낸다.
“……!”
내 신체를 타고 흘러 들어간 마몬의 기운이 강제로 윤과 레비아탄을 안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워낙 거대한 힘에 몸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마몬의 힘은 정신도 못 차리고 그것들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윤까지 먹혀 들어간다.
마리아의 태도에서 꺼냈던 장인의 악령이 순식간에 먹혀 사라졌던 것처럼 윤조차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
이 뒤는 결국 줄다리기였다.
무엇이 윤이고 레비아탄인지 모르지만 일단 마몬의 힘이 먹어치우기 전에 인형으로 집어넣는다.
꽤나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갔다.
하지만 레비아탄이 가진 힘이 워낙 크기가 컸기 때문일까?
그것을 먹어치우는 동안 윤의 마나와 사념체를 인형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고.
그 결과.
아무런 움직임도 없던 인형에 조그마한 숨소리가 새근새근 울려오기 시작했다.
“하.”
테르토나 샤이먼에게 이토록 감사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강압적으로 동족의 힘을 먹어치워 대고 있는 마몬의 힘을 억누르는 데 집중한다.
이전에 영약을 먹고 정신을 잃었던 경험이 있으니 이번만큼은 이를 악물며 뒤틀릴 것만 같은 마나의 흐름을 억지로 다잡는다.
“후, 우욱.”
입 밖으로 쏟아내는 숨소리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열기.
용광로를 먹어치운 것처럼 전신이 뜨겁게 달아올랐기에 일부러 마나를 바깥으로 쏟아낸다.
그러면서도 윤이 들어간 인형을 놓지 않은 채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미 내리앉아 모습을 감춘 노을 대신 떠올라 있는 달빛이 그나마 뜨거워진 신체를 차갑게 식혀주고 있었다.
* * *
윤의 습격이 있고 다음 날.
정원은 아예 갈아엎어졌다고 말해도 될 수준으로 망가졌지만 그래도 저택만큼은 멀쩡히 남아 있었다.
“돌아가라.”
폭풍이 닿지 않은 가주의 집무실.
메디안 레이로즈는 짙은 고민을 담은 한숨을 내쉬며 마리아에게 선언했다.
어디로 돌아가라는 건지 굳이 묻지 않아도 마리아는 이미 눈치챘지만.
“어디요.”
굳이 질문을 입에 담으며 더욱 확실하게 못 박는다.
이런 모습을 보면 능구렁이가 따로 없는데….
한숨을 내쉬면서도 메디안은 굳이 대답해 주었다.
“나이트 아카데미 말이다. 수속은 다시 해둘 테니, 네 친구 몸이 괜찮아지면 얼른 돌아가거라.”
“제 검술 안 보셨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마리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물었으나 그게 메디안에겐 아픈 손가락이었던 듯하다.
메디안은 인상을 팍 찡그리며 외쳤다.
“그 빌어먹을 수인의 검술이라는 건 잘 알았으니까 굳이 볼 필요 없다!”
마리아가 배우고 있는 검술이 누구에게서 파생되었고 또한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메디안 역시 잘 보았다.
당장 창문 밖으로 눈만 돌려도 그 여파를 다시 볼 수 있기도 하고.
“뭐, 좋게 생각하세요. 너무 옛것에만 목매달아 봤자 뭐 합니까.”
“옛것? 전통이다. 그러한 전통이 있기에 우리가 있는 거고.”
“내가 틀린 말 했나. 그거나 그거나.”
“……후우, 애비를 향한 존중은 일말도 없구나.”
메디안이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두통을 호소하자 마리아는 심드렁하니 한마디 툭 내뱉었다.
“진짜 딸도 아니잖아요.”
“…….”
“제2의 마리 레이로즈를 만들고 싶다는 아버지의 욕심은 언니들도 다 알고 있어요.”
메디안은 뭔가 대답조차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당황했으나 마리아는 말을 이어갔다.
“이미 언니들이 있는데 나를 입양했다는 게, 언니들한테 무슨 의미로 다가왔을지 알아요?”
“…….”
“부족했어요? 언니들을 보니까 300년 전 마리 레이로즈를 따라 잡는 게 불가능해 보였어요?”
마리안느와 메릴에게는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아무 생각 없는 줄 알았던 마리아에게 이리도 핵심을 찔리게 될 줄은 몰랐다.
“어이가 없네. 본 적도 없는 위인 하나 따라 잡겠다고 딸을 입양해요?”
“…….”
“덕분에 입양된 내가 할 말은 또 아닌가?”
쓰디쓴 질타가 마리아의 입에서 계속 흘러나온다.
“나는요, 천해서 아버지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고요. 보통은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주워 왔으니까 그런 말도 필요 없잖아요?”
당당하게 막말을 해대면서도 그녀의 입가에는 호탕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나마 키워주고, 먹여주고 또 아카데미도 보내준 것까지는 갚아 드릴 테니까. 또 쓸데없이 고아원 애들 데려와서 훈련시키지 마세요.”
“너…….”
“나중에 돌아올 날에는 위대한 검사가 되어 있을 겁니다. 나를 딸이라고 소개할 때마다 부러워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게 불쾌하게 해드리죠.”
외부에서 보기엔 자랑스러운 딸이지만, 내부에서는 애물단지가 될 생각에 마리아는 벌써 즐거운 기분이었다.
할 말을 모두 끝낸 마리아가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지금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메디안이 한마디 툭 내뱉는다.
“이안, 아이넬.”
“……예?”
너무 뜬금없는 이름이 튀어나온 게 아닌가 싶어서 마리아가 슬쩍 고개를 돌리자 메디안은 일종의 광기에 뒤섞인 눈으로 말했다.
“그놈과 연인이 되어라. 그리고 결혼해서 애를 낳아라.”
“와.”
“네 재능과 그놈의 재능이 합쳐지면 분명……!”
“엿이나 드세요.”
쾅.
그대로 문을 닫고 나온 마리아는 헛웃음을 토해내며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었다.
“이제 고작 17살인데 뭔 애야.”
아직 너무 이르지 않은가.
* * *
“뭐, 뭐야?”
인형임에도 표정 변화가 있다는 건 아마 제조사에서 꽤나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물건이라는 뜻이겠지.
신기하면서도 세세한 제작사의 진심이 이렇게 보답받는 광경이 아닌가 싶었다.
당황한 윤.
거울을 통해 인형 안에 들어온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뺨과 팔을 이리저리 만져대고 있었다.
“소환마법의 일종이야. 인형에 사념체를 집어넣는 방식으로 너를 인형에 넣었어.”
“……뭐라는 거야?”
이해하지 못하겠단 표정을 짓는 윤. 어차피 그녀가 마법에 관해서 완전히 이해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냥 그런 게 있다고만 알아둬.”
“허, 검술 단련은 안 하고. 마법이나 배우다니. 하여간 힐다 그 여자가 문제라니까.”
뭐라고 꿍얼거린 윤이 그대로 일어나려 했으나.
똑똑.
밖에서 노크소리가 울렸다.
“야, 가만히 있어.”
윤이 움직이는 걸 보여서는 안 되었기에 내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녀는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인형처럼 멍한 표정으로 눕는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두 사람.
신성 기사단 단장 로만 레이먼드와 적장미 기사단 단장 마리안느 레이로즈.
두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동시에 윤을 바라보더니 내게 물었다.
“어떻지?”
윤과 인형으로 마법을 다루던 걸 이미 두 사람 다 봤다.
나는 너스레를 떨며 고개를 저었다.
“실패했어요.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마법이라서 불가능했나 봐요.”
자세하게 설명하진 않았다.
단순히 윤의 마나를 인형에 담아두는 마법을 사용했다는 정도로 말해뒀을 뿐.
테르토나의 마법이 잘 알려지지 않은 덕을 보기도 했다.
둘은 미심쩍은 표정을 짓었으나 내가 헛기침하자 바로 내 쪽을 바라봤다.
“그래서 생각은 해봤나?”
로만이 조급하게 물어 오자 옆에서 마리안느도 바로 끼어든다.
“우리 쪽으로 오면 최고의 조건으로 대우해 주겠어.”
처음 내가 윤을 이긴 후.
두 사람은 어디서 내가 그런 검술을 배웠고, 어떻게 실력을 쌓았냐고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나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더 이상 강압적으로 파고들 수 없었던 두 사람은 결국 수법을 바꿨다.
나를 본인들의 기사단으로 데려가려 한 것.
하지만 당연하게도.
“죄송하지만 저는 들어갈 기사단을 이미 정해뒀습니다.”
“은빛 사자.”
“이미 망한 기사단으로 왜…….”
한숨을 내쉬면서도 내 의지가 견고하다는 걸 확인한 두 사람은 당장에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몇 분 정도 더 대화를 나누고, 피곤한 나에게 쉴 시간을 주기 위해 비켜준 두 사람.
“나중에 아카데미로 찾아가겠다.”
“계속 생각해 봐. 마리아랑 친구인 것 같은데 나쁘진 않을 거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지금 물러나는 이유는 나중을 기약하기 위해서라며 의미심장한 한마디씩은 남겨둔다.
둘이 나가자마자 윤은 벌떡 일어나서는 헛웃음을 흘린다.
“네가 다른 기사단으로 스카우트 받는 걸 보는 날이 올 줄이야.”
“지금은 기사생도 이안 아이넬이니까. 그것보다 일어나서 좀 움직여 봐.”
테르토나 샤이먼이 정령을 인형에 넣었을 때는 정령들이 불편해하던 반응이 있던지라 걱정됐다.
침대에서 내려온 윤은 몸을 휙휙 움직여 본다.
주먹을 내지르거나, 허공에 발차기를 해보거나, 제자리에서 뛰거나 등등.
이런저런 자세를 취해보더니 팔짱을 끼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음, 조금 삐걱거리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몸이 작아진 거 빼고는 크게 문제없는데?”
“그래?”
정령들이 불편해했던 건 인형이 인간의 체형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나.
테르토나가 듣는다면 꽤나 좋아할 성과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끄으응.”
내가 잠시 한눈 판 사이 바로 자신의 태도를 쥐려는 윤.
하지만 몸이 작아지기도 했고, 인형이라 근력도 형편없어져서인지 낑낑거리며 들기 힘들어한다.
그런 그녀에게 근력을 상승시키는 보조마법을 걸어주자 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양손으로 번쩍 태도를 들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오오오! 다시는 쥘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작 하루 동안 못 쥔 것 가지고 꽤나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하면서 슬쩍 문밖을 확인했다.
“오케이, 아무도 없네.”
이미 저녁 시간대라서 그런지 복도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잠깐 와 봐.”
“들지 마!”
윤과 태도를 양손으로 번쩍 들어 올리자 그녀는 낑낑거리며 손발을 좌우로 흔들어댔지만 어쨌든.
조용히 시키며 그녀를 데려온 곳은 마리아와 함께 훈련했던 훈련장이었다.
문은 잠겨 있었지만 마리아랑 훈련하면서 미리 열쇠를 따로 받아두어싿.
훈련장에 들어서자 텅 빈 공간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오오.”
깔끔한 훈련장을 보며 방금까지 투덜대던 건 이미 잊은 채 이곳저곳 둘러보는 윤.
그러면서도 자신의 태도를 꼭 쥐고 있는 모습이 정말 어린애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마나를 투사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마법진에선 검 한 자루가 툭 튀어 나와 내 손에 잡혔다.
내 손에 쥐어진 검을 말똥말똥 바라보던 윤은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뭐 해, 검 뽑아.”
“흐, 흐흐흐흥!”
들썩거리는 윤.
키가 작아진 탓에 당장에는 능숙하게 검을 다루기 힘들겠지만 그녀 정도의 재능이라면 금방 익숙해질 거다.
“실은 마지막에, 너와 검을 맞대는 시간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양손으로 태도를 쥐며 윤은 당시의 감상을 털어놓는다.
“나도.”
그리고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했었기에 그녀에게 솔직하게 답해주자 윤은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세를 잡았다.
훈련장 안에서는 늦은 새벽까지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