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97
97화.
윤을 처음 봤을 때, 늑대의 귀를 달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외형적인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성격이나 하는 행동 등이 털털하면서도 망설임이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신념 위에서 이루어지며, 절대로 포기하지 못할 긍지를 담고 있다.
고고한 늑대가 절로 연상되는 첫인상이었다.
물론, 그 다음에는 널브러진 우리 기사단원들을 보고 바로 흥분해서 늑대고 뭐고 한 소리 했지만.
어쨌든.
내가 봤던 검사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윤은 대단한 여성이었다.
그러니까 지금도, 대악마인 레비아탄에게 육신이 빼앗겨가면서까지 자신의 검을 놓지 않고 있는 거겠지.
카아앙!
우리 사이에 따로 말은 필요 없었다.
신체 능력 면에서는 내 쪽이 월등하게 부족했지만, 반대로 윤은 많이 지친 상태이며 몸이 변해 검술이 투박해진 상태였다.
이 줄 타듯 절묘한 밸런스 위에서 나와 윤은 망설임 없이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서 검을 찔러 넣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사이에서는 많은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서로 눈을 마주치고, 지어지는 미소를 확인하면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를 힘이 차오른다.
격렬하게 맞부딪치는 검의 울림은 하나의 음이 되고, 그것이 모이며 음률이 되어간다.
마치 우리가 같은 악보를 보며 하나의 연주를 하며 나아가는 연주자처럼 느껴졌다.
‘네가 만족하는 시간을 줄 수 있을까?’
격렬한 움직임에 가쁜 숨을 몰아쉬는 와중, 크게 숨을 마시며 동시에 머리에 떠오른 의문.
레비아탄에게 몸의 주도권이 넘어가기 직전인 상황에서도 나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윤이었다.
그녀에게 더없는 시간을 선사해 주고 싶었으나, 지금의 내 능력으로는 부족한 게 아닐까라는 걱정이 되었다.
카아앙!
그런 의문을 박살 내듯 윤의 검이 깊게 찌르며 들어왔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목에 구멍이 뚫릴 뻔한 일검.
길게 내려온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윤의 눈동자가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집중하라고 나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감히 자신과 검을 나누며, 이 시간을 보내며 다른 생각하지 말라고.
오롯이 본인의 목을 쳐낼 생각만을 하라고.
‘하.’
그래, 맞는 말이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민보다는 행동이었으며, 검을 휘두르는 것 말고는 그녀가 내게 원하는 건 없었다.
거추장스러운 날개를 달고, 땅에 질질 끌리는 꼬리를 이끌며, 이마에 솟아난 뿔의 통증에도 오직 나만을 보고 있는 윤에게 실례였다.
윤을 죽인다.
이대로 두면 대악마가 되어버릴 나의 오랜 벗을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그 정도였고.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그게 바로 윤의 소망이었다.
* * *
부스럭.
쓰러진 몸 위에 깔린 먼지를 쏟아내듯 천천히 몸을 일으킨 로만 레이먼드.
레이로즈 가문의 정원은 반파되어 있었고, 적색과 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들은 흩날리는 꽃들을 대신하여 그 자리를 매우고 있었다.
몸이 쑤셔오며 두통이 지끈하고 일지만 자신이 봤던 그 일검에 대해서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검의 신이 있다면 아마 그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폭력적인 충격.
일평생 라인 레이먼드를 쫓기 위해서 검을 쥐고 휘둘러 온 로만조차 한순간이지만 그 검에 매료되었을 정도였다.
‘과연 라인 님이었다면 그 여인을 막을 수 있었을까?’
솔직히 힘들지 않을까 하고 로만은 생각했다.
물론, 로만은 라인 레이먼드의 검을 직접 본 적도 없었기에 정확하게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반대로.
방금 윤이 보여준 검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검사가 있다는 게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단순히 수인이라는 종족과 그녀가 지닌 독특하면서도 불길한 기운 때문이 아니다.
그 모든 건 부차적인 문제였고 윤이 보여준 검술은 모든 검사가 감히 좇는다는 말을 입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하.’
스스로가 미워지는 로만은 천천히 단원들을 살피려 했으나.
바로 옆에서 침을 흘리며 기절한 녹색 로브의 여인이 발에 밟힌다.
“어윽.”
기절한 상태로도 밟힌 부분이 아팠는지 신음을 흘린다.
“고생하는군.”
물론, 녹색 마탑에서도 윤에게 갚아줘야 할 빚이 있겠지만 결국 마법사인 그녀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 자신이지 않은가.
윤의 검격에 휩쓸려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로 누워있는 마법사가 또 퍽이나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때 멀리서 울려오는 묵직하면서도 울림 있는 철의 타격음.
몇 번이나 들어왔던 검과 검이 맞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소음에 로만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그 여인과 싸우는 기사가 있는 건가 싶었는데.
저 멀리.
저택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건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검은 제복을 입고 있는 생도였다.
찰랑이는 생도의 은발은 로만의 가슴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천천히.
주변에 널브러진 잔해들과 다른 동료들을 내버려둔 채로 로만은 두 사람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소음은 하나의 교향곡처럼 웅장하면서도 기사된 자의 뜨거운 욕망을 자극하고 있었다.
날개와 꼬리 그리고 뿔을 달고 있음에도 그 모든 위협적인 무기들을 다 제쳐놓고 얇은 태도 한 자루만으로 생도와 상대하고 있는 윤.
그런 그녀를 상대함에도 일합조차 물러나지 않으며 동등한 수준의 검술을 선보이는 이안 아이넬.
이미 로만보다 두 사람을 먼저 지켜보던 선객이 있었다.
마리안느 레이로즈와 마리아 레이로즈.
레이로즈 가문의 장녀와 막내가 입을 떡 벌린 채로 그저 두 검사의 아름다운 무대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나마 마리안느가 반파된 거추장스러운 갑옷을 몸에서 떼어내듯 벗으며 중얼거렸다.
“저, 아이가…… 정말 생도라고?”
윤의 검술은 이미 질릴 정도로 맛봤다.
위대하다고 불러도 될 검.
극에 달했다고 표현해도 할 말이 없는 실력.
그것을 상대로 홀로 맞서는 소년을 보며 마리안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마리아는 두 사람의 결투를 눈에 담으면서도 장녀에게 답해줬다.
“나이트 아카데미 1학년 A반 수석. 이안 아이넬이야.”
마리아는 나름대로 이안이 대단한 남자라는 걸 알리기 위해 앞에 수식을 몇 개 정도 붙였지만.
사실 지금 이 광경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근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사실 마리안느와 로만뿐만 아니라 마리아조차 이안의 이러한 실력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비밀스러운 남자라는 건 알고 있었다.
또한 빼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 역시 피부로 몇 번이고 느껴왔다.
하지만 설마 적장미와 신성을 동시에 상대하고, 그대로 박살 낸 괴물과 호각을 겨룰 줄은 몰랐다.
“진짜 꼬셔야 하나.”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리는 마리아의 옆에 서는 로만 레이먼드.
“…….”
사실 이 자리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건 바로 그였다.
전설 속의 기사, 라인 레이먼드는 자신의 검술을 후대에 남기지 않았다.
그가 일부러 전승을 남기지 않은 게 아니라, 전장에서 대악마 마몬과의 동귀어진 하여 자연스럽게 명맥이 끊겼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검술을 어떻게든 복원하고, 기록을 통해서 유추하고, 발전시켜 온 게 바로 지금 로만 레이먼드가 사용하는 검술이었다.
자부심이 있었다.
3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며, 겹겹이 쌓인 레이먼드 가문의, 그 노력의 성과는 분명 라인 레이먼드의 가까이에 닿았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만약.
라인 레이먼드가 실제로 현현했다면.
저런 검술을 쓰고 있지 않았을까?
이안 아이넬이라는 생도가 보여주고 있는 검은, 로만 레이먼드의 자존심뿐만 아니라 가문이 300년 간 쌓아 올려온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었다.
저 소년이 라인 레이먼드의 검을 쓴다는 게 아니다.
은발을 하고 있지만, 사실 저 소년은 레이먼드 가문과는 일절 상관없다.
하지만 왜일까.
왜 저 소년이 보여주고 있는 검이, 자신이 지금까지 발악하듯 쫓아온 전설 속 기사의 것처럼 보이는 걸까.
꾸욱.
주먹이 강하게 쥐어졌다.
고작 17살 소년.
아직 기사도 되지 못한 아카데미 생도 나부랭이.
하지만.
질투하고.
시기하면서도.
소년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건 아마.
동경이라는 감정이었다.
* * *
카아앙!
길게 울리는 검과 검의 마찰음이 흔들린다.
아쉽지만 이제 슬슬 끝이 찾아오고 있음을 윤은 확신했다.
어느새 천천히 내려앉는 노을.
그것을 등진 채 서 있는 윤은 딱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라는 하루의 막을 내리는 시간.
또한 윤이라는 검객의 최후를 배웅하기에 딱 어울리는 노을빛.
슬며시 태도를 내린 윤.
그러자 이안 역시 마찬가지로 검을 쥔 손을 내린다.
윤의 태도에 비해서 허접하던 그의 검은 이미 상했지만 마몬의 기운으로 가까스로 검의 형태 정도는 유지하고 있었다.
“몸이 너무 무거운데, 짐 좀 내려놓고 해도 괜찮냐?”
“……얼마든지.”
말의 뜻을 바로 알아차린 이안을 보며 윤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는 얼추 움직일 수 있게 된 자신의 날개를 천천히 접은 윤.
콰득!
그러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태도로 스스로의 날개를 잘라냈다.
아찔한 통증에 치아를 너무 강하게 물어 부러진 느낌이 들었지만, 어차피 원래의 치아도 아니다.
그저 레비아탄의 힘 때문에 솟아올랐던 송곳니였다.
양쪽 날개를 베어낸 윤은 바로 다음으로는 스스로의 꼬리를 잘라내었다.
살이 짓이겨지는 소리와 함께 피가 뭉텅이로 흘러나와 바닥을 적신다.
손이 덜덜 떨리는 통증 속에서 이번에는 태도를 피가 흥건한 바닥에 꽂아 넣고는 양손으로 이마의 뿔을 쥔다.
뿌드드드득!
그러고는 그대로 양손에 힘을 주어 뿔을 부러뜨린다.
이번에는 날개와 꼬리 수준의 통증은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치솟으며 레비아탄의 힘이 빠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엉망진창이 된 몸.
하지만 윤은 이제야 준비가 끝났다며 자신의 태도를 들어 올렸다.
역시 말은 필요 없었다.
윤을 기다려 준 이안 또한 곧바로 검을 들어 올렸고 그런 벗에게 윤은 감사를 느꼈다.
바람이 불어왔다.
하루를 끝맺는 고요한 바람.
문득, 윤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부는 건 실로 당연하다.
물이 흐르는 것도 너무나 당연했다.
불이 타오르는 것 역시 당연했다.
그런 당연한 것들 사이에.
분명 라인 레이먼드와 자신의 자리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과 그가 검을 맞대는 건 숙명이며.
실로 당연한 일이었다.
‘아아, 이 시간이 계속되면 좋을 텐데.’
탓!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서로에게 도약한 두 사람.
아쉬움 탓일까.
순간적으로 윤의 검이 반 박자 느리게 움직였고 두 사람 다 이미 그걸 눈치챘다.
그렇기에 윤은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담대하게 맞이한다.
푸우욱.
가슴을 찌르고 들어온 이안의 검.
그것을 한번 슬쩍 내려다본 후, 윤은 천천히 이안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으나 슬픔이 담겨 있진 않았다.
그 담담한 반응에 윤은 오히려 그에게 깊은 호감을 느꼈다.
최후의 최후.
뿔도.
날개도.
꼬리도.
전부 잃고.
오롯이 검객으로 삶을 다시금 마감한다.
자신의 꺼져가는 생명처럼 서서히 모습을 감추는 석양을 등지고 있는 건 아쉽지만.
길게 늘여진 그림자를 보며.
윤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실로, 실로 사치스럽지 않은가.
대륙 최고의 기사와 검을 맞대고 죽을 수 있음이.
“영광이었다.”
너의 벗이었음이.
너의 숙적이었음이.
너에게 죽을 수 있음이.
모든 게, 영광이었다.
* * *
어둠과 침묵 속에서 잠들어 가던 사고가 뭔가에 의해 거칠게 깨워지는 걸 느낀 윤.
어째서인지 몸이 삐거덕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방금까지 석양이 저물던 주변 풍경은 사라지고 고풍스러운 방의 포근한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라?”
천천히 일어난 윤은 마침 옆에 있던, 화장대에 놓인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평생을 함께해 온 머리 위에 늑대 귀는 없다.
얼굴 역시 소녀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사람의 몸이 아니었다.
“인형?”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침대 옆에 기대어진 자신의 태도.
그리고 앞에서 방실 웃고 있는.
“라인 레이먼드?”
“이제는 이안이라고 불러.”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가 자신을 반겨주고 있었다.
“입단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