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Empire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302)
달칵.
마우스를 눌러 인터넷창을 열었다.
그리고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 내 이름, 아니 내 이름이었던 이름을 적었다.
검색어 : 이광
엔터 버튼을 누르자 마우스 휠을 한참 내려야 끝이 보일 정도로 긴 문서가 떴다.
난 천천히 내 인생이 담겨 있는 문서를 읽기 시작했다.
* * *
대한제국 제26대 황제
본관 : 전주 이씨
휘 : 광(光)
묘호 : 열조(烈祖)
별명 : 광조(光祖), 광조(狂祖), 재벌 황제, 위대한 설계자, 폭군, 학살자 등
생몰 기간 : 1894년 5월 15일 ~ 1974년 10월 11일
재위 기간 : 1921년 6월 5일 ~ 1960년 6월 20일
1. 개요
대한제국 26대 황제이자 지금의 대한제국을 만든 위대한 명군.
조선이 대한제국이 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진 세종 황제 다음으로 위대하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대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그가 설계하고 아직까지 이어지는 대한제국, 미국, 러시아 제국 삼국 동맹은 세계 질서를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며 세계적으로도 존경을 받는 황제다.
2. 생애
두 형들과 나이 차이가 열 살 이상 나는 늦둥이 막내아들로 태어난 열조는 열 살 때까지는 평범했었다고 한다. 의학 부분과 군사 부분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두 형들과 달리 특별할 것이 없는 아이였다고.
하지만 열 살이 되었을 무렵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에 걸려 의식을 잃었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한 후 그의 진가가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놀고 먹고 자기만 하고 싶어서······ 라는 황당한 이유로 일부러 평범한 척을 하던 열조는 미국의 함대가 대한제국으로 오며 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미국과는 무조건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열조는 당시 미 해군 함대의 사령관이던 조지 듀이 원수와 접촉. 그를 설득하여 당시만 해도 긴장감이 돌던 대한제국과 미국의 관계를 호의적으로 만들었다.
그 후에는 미국에 처음으로 파견된 사절단에 참가.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제국에 유리한 협정을 맺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때 현대에서도 유명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인 듀이 월드를 만들고, 유명 총기 제작자인 존 브라우닝을 대한제국으로 데려오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총기 시리즈인 그린내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귀국하던 중 임진왜란 이후 교류가 끊긴 일본에 들려 대한제국에게 전적으로 유리하고, 일본에게는 손해인 조약을 맺어 엄청난 이득을 벌어들였다.
어린 나이에도 다 큰 어른들에 필적하는 업적들을 세우자 당시 황제였던 고종은 열조를 황태자로 책봉하기로 결정. 황위에는 관심이 없던 두 형들을 제치고 황태자가 되었다.
그 후에도 열조는 계속해서 업적을 세웠는데, 그중 하나는 참호전의 시작이었다.
의화단 운동으로 수십만 명이 넘는 의화단이 대한제국의 땅을 침범하자 참호를 도입해 아군의 피해는 최소화를 한 채 적의 피해는 극대화시켰다.
이에 깊은 인상을 받은 프랑스가 대전쟁 당시 참호를 도입하며 독일군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으니, 열조가 군사적 능력 또한 부족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후 대한제국이 대전쟁에 참전하자 열조는 일개 장교로 원정군에 참여. 그곳에서도 협상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독일군의 비행서커스단을 격파하는 업적을 세웠다.
이때 대한제국 최초의 우주인인 로타어 폰 리히트호펜을 설득해 대한제국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는데, 로타어는 현재의 대한제국 공군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긴 만큼 열조가 그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현대의 강력한 공군은 없었을 것이라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열조의 능력은 이런 군사 분야에서만 한정되지 않았는데, 전쟁이 끝나고 젊은 나이로 황위에 오른 후. 전 세계를 덮친 대공황으로부터 대한제국을 지키며 경제 분야에서도 능력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는 일찍이 대공황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오랫동안 이를 대비했으며, 덕분에 대공황으로 세계가 큰 피해를 입었을 때도 대한제국은 굳건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현재 황실이 대주주로 있는 세계 최대의 기업, 윌로우의 전설도 시작되었다.
윌로우는 대공황으로 망하기 직전인 기업들을 인수, 합병하며 엄청난 속도로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그리고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한 후에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며 현재의 재벌 황제라는 별명이 만들어진 이유가 되었다.
이후 유럽에서 시작된 파시즘이 유럽 전역을 집어삼키고 유럽연맹이 탄생하자 또다시 전쟁이 시작될 것임을 직감.
미국, 러시아 제국과 함께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삼국 동맹을 맺었다.
정말로 전쟁이 터진 후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 전 세계를 억압과 공포로 떨게 만들었던 유럽연맹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 그들과 동맹이었던 명나라와 일본마저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전쟁이 끝난 후엔 우주 개발 계획을 시작, 인류에게는 불가능한 영역이었던 우주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하며 인류사에 큰 영향을 남겼다.
여기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입헌군주제와 민주주의를 백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입. 대한제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길을 열었다.
그 후 황태자에게 양위를 한 뒤 세계 여행을 떠났고, 돌아온 후에도 종종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행복한 노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가 승하한 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열조라는 묘호를 받게 되었다.
3. 업적
많다. 너무 많아서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군사, 경제, 외교 등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모두 두각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들만 뽑아보자면 두 번의 세계 대전에서의 승전과 중원과 열도를 대한제국의 식민지로 만든 것이었다.
두 번의 세계 대전에서 승리하며 대한제국은 미국, 러시아 제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고, 중원과 열도를 지배하며 그곳의 자원과 재화를 독점할 수가 있게 되었다.
현재 대한제국의 물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도 다 중원과 열도를 얻는 값싼 자원들과 노동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더 큰 업적은 바로 컴퓨터라고 볼 수 있다.
대한제국이 세계 최초로 만들었던 컴퓨터를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전기공학자인 니콜라 테슬라를 데려와 개량시켰고, 이를 무기로 활용하며 더 정확한 포격과 폭격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열조는 컴퓨터를 무기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세계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며 컴퓨터가 민간에 보급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니, 현재 집마다 컴퓨터가 한 대씩 있는 것도 다 열조 덕분이라고 봐야 했다.
컴퓨터로 업무를 보고 동영상을 보고 게임을 하는 것도 다 열조 덕분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업적조차도 대한제국의 민주화 앞에서는 명함도 꺼내기 힘들 정도다.
열조는 누가 요구하지도 않았음에도 백성들에게 권력을 돌려주어야 한다면서 자발적으로 입헌군주제와 민주주의를 추진했다.
이에 반발한 백성들이 반발 시위를 벌였으니, 보통 반대인 걸 생각하면 매우 희귀한 현상이었다.
이렇게 열조 덕분에 대한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으며, 지금은 미국에 버금갈 정도로 민주화가 잘 된 나라가 된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업적들이 있는데······.
4. 별명
열조에게는 여러 별명이 있다.
대부분 사후 생긴 별명들로, 그의 생애와도 관련된 별명들이었다.
일단 광조(光祖). 그의 업적을 보기만 해도 빛이 난다며 원래 묘호인 열조 대신 휘인 빛 광자가 들어간 광조라 부르는 것이었다.
동시에 미칠 광자를 넣은 광조(狂祖)라는 별명도 있는데, 이는 학살자라는 별명과도 관련이 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명나라와 일본의 모든 지역을 폭격하며 억 단위의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중원과 열도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었던 것인지 민간인 거주 지역을 가리지 않고 폭격을 명령했고, 목제 건물이 대부분이었던 명나라와 일본은 불바다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로 인해 중원과 열도의 반사회분자들이 열조를 미친 황제라 하여 광조, 혹은 폭군이라 부르거나 그 또한 전범과 다를 바 없다며 학살자라 불렀다.
당연하게도 대한제국의 위대한 황제를 그렇게 부른 반사회분자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고.
지금은 그렇게 말하는 중원인과 열도인은 거의 없다.
그 외에도 돈을 많이 벌었다 하여 재벌 황제도 있지만, 외국에서는 위대한 설계자란 별명이 더 유명했다.
그가 미, 러, 한 세 나라의 협력하여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지금의 체제를 설계하였기 때문이다.
여러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체제가 만들어지며 또 다른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평가를······.
5. 비판
이런 열조이지만 비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전쟁 동안 중원인과 열도인을 너무 많이 죽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폭격은 물론, 인공강우로 폭우를 유도하고 둑을 폭파해 지금도 정확히 집계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사람을 죽이고, 목제 건물이 많은 지역에 소이탄을 투하해 사람들을 태워 죽였다.
또한 논밭은 물론 숲에도 고엽제를 뿌리며 식량 부족 사태를 유도했고, 이로 인해 수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어 죽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현재 독립운동을 펼치는 중인 중원인과 열도인들은 물론, 그리고 국내 인권 단체에서도 이를 근거로 열조를 공공연히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 그들 또한 깨끗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먼저 가만히 있던 대한제국을 공격해 전쟁이 시작된 것인 만큼 그들이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면 그럴 일도 없었다는 게 대한제국의 반응이었다.
또한 두 나라의 인구가 그때 줄어들지 않았다면 나중에 대한제국에게 큰 위협이 되었으리란 건 사실인 만큼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보는 시선이 다수······.
6. 가족
러시아의 황녀인 아나스탸샤 로마노프와 결혼하여 슬하에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았으며······.
7. 평가
역사를 만든 거인.
대한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하나.
지금의 대한제국을 만든 주역.
그가 두각을 드러내기 전에도 대한제국은 위대했지만, 열조 덕분에 더욱 위대해졌다는 평가는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열조가 승하한 지 벌써 50년 가까이가 지났음에도 사람들이 존경하는 위인으로 뽑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 * *
“닭살 돋네.”
사람들이 나에 대한 너무 좋은 말들을 많이 써 놓아서일까. 기분이 좋기보다도 부끄러움이 더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다 읽은 후 인터넷창을 닫고,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검은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은, 이광의 얼굴이 아닌 내가 이광이 되기 전의 원래의 내 얼굴이었다.
1979년, 내 수명이 끝이 난 후.
죽었다고 생각한 나는 2001년, 21세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태어났다.
그 후 성인이 될 때까지는 이광이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았다.
그러다 얼마 전 갑자기 내가 이광이었고, 이번이 세 번째 삶이라는 걸 기억해 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다시 태어나는 건 게임 속 세상의 인물에게 빙의한 적도 있으니 불가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다시 태어나고 한참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때 텔레비전에서 날 주인공을 한 드라마를 보다가 뒤늦게 기억을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하지만 당황스러움도 잠시. 난 날아갈 듯이 기뻤다.
21세기에 다시 태어났다는 말은, 즐길 거리가 더 많단 소리였으니까.
20세기는 즐길 거리가 너무 없어 심심한 시대였다. 오죽하면 양위하고 난 후 내가 그토록 원했던 놀고 먹고 잘 수만 있게 되었음에도 심심했을 정도일까.
그에 비해 21세기는 정말 놀고 먹고 자기만 해도 심심하지 않은 시대다.
돈만 많으면 평생 지겨울 일 없이 살 수 있었다.
“문제는 돈이지.”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에 놀고 먹고 자기만 할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하지 않았다.
그런 지금의 내가 그냥 놀고 먹고 자기만 하기는 힘들었다.
“내가 선견지명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하지만 이것 또한 해결 가능한 문제였다. 이미 준비해 둔 것이 있었으니까.
게임 속 세상의 인물에 빙의도 했는데, 평범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나?
그래서 죽기 전에 일반인으로 다시 태어나도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다.
무기명주식과 이를 찾은 사람에게 준다는 편지를 내 자필로 쓰고 남겨 놓았거든.
다른 곳도 아닌 현재 황실과 유일한의 후손들과 몇 명만이 가지고 있다는 윌로우와 계열사들의 주식이다.
시장에 풀린 게 없어 부르는 게 값인 만큼 그것들을 찾기만 하면 바로 벼락부자가 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게 아직까지 있냐는 건데······.”
인터넷에 날 검색해 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잘 숨겨 두긴 했는데, 내가 죽은 후 혹시나 찾은 사람이 있었을까 봐.
다행히도 아직 찾은 사람이 없었는지 인터넷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확인도 다 끝났겠다, 옷을 챙겨 입은 난 밖으로 나와 북한산으로 향했다.
“쩝. 그냥 은행에 넣을 걸 그랬나?”
막상 북한산에 오니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무기명주식을 북한산의 땅을 파고 숨겨 두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은행이 넣어놨으면 간단하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은행에 넣으면 기록이 남을 테니 오히려 땅에 묻는 것 같은 고전적인 방법이 추적을 피하기 용이할 것이라 여겨 북한산에 묻었다.
하지만 산에서 갑자기 이런 걸 찾는 것도 이상하니 남들한테는 헌책방에서 책 사이에 숨겨져 있던 주식과 편지를 찾았다고 알릴 생각이었고.
근데 막상 삽질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후회가 되네.
그냥 좀 더 찾기 쉬운 곳에 보관할걸.
그 후 몇 시간 동안 북한산을 돌아다니며 주식을 묻은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리고 해가 지기 직전에 표시해 둔 바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 확인한 난 가져온 모종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고-.
“으헤헤헤헥! 찾았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을 무렵, 주식과 편지를 넣어두었던 상자를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놀고 먹고 잘 수만 있겠네.”
그렇게 놀고 먹고 잘 수만 있는 세 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