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71
271화
18장 테무케의 야심
정안연은 왕검의 지시를 받고 남송에 간 후 그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하고 돌아왔다.
유황 광산을 찾는 기술과 사탕수수가 재배가 적힌 책, 이전에 요구한 한국 토종 돼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크고 성장도 빠르다는 중국 돼지와 안남미를 비롯한 일부 미곡 종자들까지 들고 온 것은 물론, 고려의 갈라전 영토에 대한 남송 조정의 답변도 받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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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에도 정확한 기록이 없어 상세히 알 수는 없으나 대관(大觀 휘종의 연호)년에 해동의 고려가 여진을 토벌하고 두만강 이북에 있는 강들까지 영토를 넓혔다는 이야기는 천조에서도 오래도록 전해지고 있는바 이북의 강들도 고려의 강역으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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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서한과 함께 이전까지만 해도 늑장을 부리며 주지 않았던 품목들을 준 진의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남송은 지금 ‘갈라전의 문제에 동의 해주고 국교도 인정하니 어서 옷치긴 왕가와 부딪혀라.’ -고 선언한 것이다. 비록 구전에 전해지는 내용 정도라는 식으로 아쉬운 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왕검은 만족 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고려가 탐라의 문제와 화포 제조에 이어 갈라전의 명분도 얻으며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 북쪽에서는 정반대의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예상한 불온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 *
“일단 저놈은 말에 매달아 끌어서 죽이고, 그 후에는 시체를 토막 낸 후 인근 부족들에게 전부 보내라.”
테무케의 명령에 그 벌을 받게 된 여진인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고개를 들었다. 몽골에서 상대를 죽일 때 존중을 한다면 땅에 피가 흐르지 않도록 포대에 집어넣고 말로 밟아 죽인다.
달리 말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 참형(斬刑)으로 신체를 절단하고 사방에 핏물이 흐르게 하는 것은 존중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였고 지금 테무케의 처벌에 이르러서는 단순히 참형에 고통과 모욕 모두 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졸지에 최악의 고통 속에서 죽고 조리돌림까지 당하게 된 여진인은 병사들에 의해 끌고 나가는 내내 용서를 빌었지만, 그곳에서 그 여진인을 변호하거나 동정해 줄 마음을 가진 이는 한명도 없었다. 오히려 자업자득이라는 시선과 테무케 못지 않게 노려보는 시선들 뿐이었다.
“지금 이게 무슨 꼴이지?”
여진인이 끌려가 사라지자 테무케는 거의 폭발 직전의 목소리로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분노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향하자 그들은 방금까지 은은히 여진인에게 노기를 드러내던 모습이 거짓인 양 겁 많은 양처럼 움츠러들었다.
“고려 놈이 우리 바로 밑까지 야금야금 훔치고 올라오고 있었는데 이 중에 아무도 몰랐다? 대답해 보거라. 이게 무슨 꼴이지? 그러고도 네놈들이 나의 부하들이란 말이냐!”
결국 노왕의 거친 호통이 터져 나왔다. 갑오화약 이후 있었던 요동에 개입할지 모를 다른 3왕가의 문제를 겨우 해결한 테무케는 좋은 기분으로 간만에 남쪽강(송화강) 인근에 사냥을 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사냥을 시작한 테무케는 사냥을 하던 중 지난 번과 비교하여 강 너머에서 조공을 하려고 온 여진 부락들의 수가 적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자신이 사냥하러 올 것이라는 소식은 이미 인근 부락에 소식이 전해졌을 것인데도 이전보다 작은 것이 이상하여 이번에 온 여진족에게 물었더니 답이 이러했다.
“지난 번에 온 부락들 중에는 사실 강 인근에서 떨어진 부락들도 여럿 있었는데 그들은 고려에 속하게 되면서 오지 못했습니다.”
“고려에 속하게 되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여진족을 통해 자초지종의 사정을 들은 테무케는 그제서야 겨우 고려의 수작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된 테무케로서는 가히 숨이 턱 막히고 뒤통수가 얼얼한 심정이 아닐수 없었다.
이러한 중대한 일을 제때 보고조차 하지 않은 이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기가 차고 있을 때, 어느 눈치 없는 여진족 하나가 천연덕스럽게 그곳이 고려의 땅이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테무케를 폭발케 했고, 그 눈치 없는 여진족이 바로 지금 저 멀리서 말에 묶여 질질 끌려다니는 자이기도 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전하. 우선 사냥을 파하시고 돌아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닥쳐라. 말포이! 이대로 저 솔롱(고려) 놈들을 놔두고 돌아가란 말이냐!”
또 눈치 없는 놈이 나오다 못해 듣기 싫은 소리 까지 한 것에 노왕은 도끼눈으로 진언을 올린 마포이를 노려보며 질책하였다.
“정 반대이옵니다. 이번에 온 것은 어디까지나 사냥을 즐기기 위해 온 것이라 이렇듯 준비를 갖추지 못하지 않으셨사옵니까? 여기서 사람을 보내 꾸짖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소신이 생각하건데 이 문제는 결코 간단히 처결할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이옵니다.
하니, 일단 돌아가 이 문제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사람을 보내 고려의 잘잘못을 따져 꾸짖고 그럼에도 족하지 않다면 제대로 엄벌을 내리시옵소서. …그리고 소신은 마포이입니다.”
당장 눈앞에서 끔찍한 처형을 내리고 지금도 그 분노를 숨기지 않는 테무케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어지간한 담력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렇게 진언을 올리는 마포이도 백전노장 테무케가 노려보자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내가 고작 고려 따위가 두려울까!”
실제 지금 이곳에 모인 규모만 하여도 갈라전 전체는 몰라도 작은 부락 한두 개는 충분히 초토화시키고도 남을 수 있었다.
그 정도면 고려에 향한 경고는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마포이는 그것을 막았다. 결코 고려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당연히 논할 가치가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선대 칸 시절부터 천하를 풍미한 명장이신데 어찌 저 작은 나라를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일은 감히 변방의 소국이 예케 몽골 울루스의 땅을 침입하고 넘본 큰 죄입니다. 전하께서는 이를 순간의 처결로 관대히 넘기시지 마시고 제대로 꾸짖어 번방(藩邦)이 다시는 이따위 짓거리를 하지 못하고 죄를 크게 뉘우치게 하는 위엄을 보여주시옵소서!”
“으음.”
비록 분노에 잠식된 테무케였지만 부하들의 진언을 들을 이성은 가지고 있었고, 마포이의 뜻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 고려의 작태는 테무케로서는 분통이 터진다는 것만 뺀다면 되려 반갑기도 한 상황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일찍이 몽골 조정의 눈치를 본다고 고려를 제대로 처리하거나 손을 뻩을수 없었는데 그 대칸이 서쪽으로 친정을 나가면서 지금은 감시, 견제하는 힘이 약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테무케로서는 이 틈에 요동과 삼한에 다시금 영향력과 세력을 확장시키고 싶었는데 지금 고려 쪽에서 이렇게 먼저 개입할 여지를 준 것이다.
분통과 별개로 반가운 상황임은 분명했고, 마포이도 그런 테무케의 야욕을 알기에 일순의 분노로 그르치기 전에 말린 것이었다.
“좋다. 우선 돌아간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다. 추후 제대로 확인하여 고려 놈들이 이번에 저지른 짓을 제대로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 말하는 테무케의 입가에는 냉정함을 되찾았는지 방금전 분노가 거짓인양 밝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 * *
“우리가 끌려왔다고 생각하나? 우린 그저 너희가 땅을 넘어왔기에 그것을 따지기 위해 온 것이다. 다시 묻겠다. 너희는 어째서 예케 몽골 울루스의 영토에 침범하고, 예케 몽골 울루스의 일에 간섭하며 재물을 탈취하였는가!”
“그대들이 말하는 우리가 탈취하였다는 재물은 그대들이 그곳에 있던 부족을 쳐서 취한 재물과 포로들을 말하는 것일텐데, 그 부족들은 바로 아조에 속한 부족들이오. 그런데 어찌 그곳을 몽골국의 땅이고 우리가 가만히 좌시 할 수 있겠소.”
갈라전의 소속 고려군 순찰대의 대장을 맡은 여진인 ‘알합개’는 그들이 병마사까지 참관한 자리에서 저렇게 당당히 지껄이는 개소리를 들을 때마다 칼집 근처에 있는 손이 엄청 근질거렸다.
만일 병마사인 완안자연의 그들과 만나도 절대 경거망동 나서지 말라는 경고를 앞서 듣지 않았다면 이렇게 가까스로나마 참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례해도 너무 무례했다.
갈라전에 속한 부족을 공격하다가 갈라전의 순찰대에 발각된 주제 도리어 뻔뻔하게 나오더니 결국 연길까지 끌려오고도 한다는 말이 그곳은 자신들의 땅이고 그들은 재산이었으니 돌려달라는 말뿐이었다. 만약 거기서 멈췄다면 그래도 다행이겠지만 몽골인들의 오만방자함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었다.
“헉!”
한참을 갈라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몽골인들은 갑자기 자기들끼리 쑥떡이더니 웃음을 터트렸는데 이때 그들의 말을 통역하러 온 갈라전의 역관의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고개를 처박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완안자연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다그쳤다.
“저놈들이 무슨 말을 한거지?”
“그, 그것이 제가 귀가 좋지 않아….”
“너.는. 방금 저들이 말한 것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말해야 할 것이다!”
완안자연의 엄명에 역관은 한참을 주저하더니 결국 자신이 들은 그대로를 전해주었는데 그 내용은 단순한 농 치고는 여진인들을 너무나 자극 시키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이곳 주르첸 놈들은 진짜 웃기는 놈들 뿐이군. 우리들 보고는 자신들은 예케 몽골 울루스의 노예라더니 여기선 솔롱(고려)의 노예 짓거리를 하고 있단 말이야.”
“낄낄낄. 주르첸 놈들이 다 그렇지.”
“그런데 저 병마사라는 인간도 주르첸 같은데 저자가 말하는 아조는 고려를 말하는 걸로 보이는가? 아니면 카라콜룸에서 다리나 벌리는 계집들이 말하던 나라를 말하는 것 같은가?”
“그건 진짜 궁금하구만.”
역관의 통역이 전달된 순간 완안자연과 그 장소에 있던 여진인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지금 저들이 말하는 계집이 개봉 점령 때 끌려간 황실의 여성들이며, 나라는 이미 멸망한 금나라라는 것은 명백했다.
비록 지금은 고려에 속하고 있긴 하였지만 여전히 금을 잊지 않은 여진인들은 많았고, 그들을 규합하고 있는 완안자연부터가 그 황실의 성을 쓰고 있었으니 몽골인들의 그 발언은 이보다 심할 수 없는 모욕이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알합개를 비롯한 여진인들은 분노를 터트리기보다는 완안자연이 터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눈치를 볼 정도였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전부 연길에서 보호하고, 저들은 돌려보내라.”
그러나 다행히도 완안자연은 표정이 이성을 잃지는 않았고 다른 누구도 아닌 완안자연의 명에 의해 몽골인들은 약탈한 포로들만을 압수하고 풀려나는 것으로 무사히 끝날 수 있었다. 물론 풀려난 몽고인들은 풀려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노예(포로)들을 돌려달라며 아우성을 쳤으나 완안자연도 그것만큼은 용납하지 않았다.
“병마사는 지금 고려가 예케 몽골 울루스의 재물을 탐한 것이라는 것을 아시오?”
일개 전사 따위가 일국의 병마사를 보며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고려와 갈라전을 우습게 보고 있는지 알려주었고, 완안자연은 처음으로 그 몽골인들에게 다른 관리를 통한 것이 아니라 직접 말로 대답해주며 그들을 쫓아내듯 돌려보냈다.
“…너희는 북왕(北王: 북쪽의 왕. 이 경우 테무케 옷치긴을 말함)께 대칸의 약조를 잊지않으시는 것이 양국의 화호를 위하는 길이라 전해야 할 것이다.”
* * *
그러나 완안자연이 그렇게 말한다고 잠자코 있을 옷치긴 왕가는 아니었다. 도리어 보란 듯이 옷치긴 왕가에서는 이 일에 대해 항의를 하는 사자가 보냈다.
“며칠 전 고려에서 예케 몽골 울루스의 땅에 넘어와 무고한 백성들의 재물을 강탈하였다는데 그 죄를 어찌 감당할 생각이오?”
아무리 종왕(宗王) 중 한 명인 테무케가 보낸 사자라곤 하나 이렇게까지 말하자 발끈하는 완안자연이었으나 우선 힘겨루기를 하기보다는 갑오화약을 언급하며 꾸짖는 것으로 먼저 대응하였다.
“갑오년 이후 대국에서 아조로 보내는 사신은 무조건 조정에서 보낸 사신만으로 한정된다고 약조하였거늘, 노왕께서는 어찌하여 사자를 보내 약조를 어기시어 소방을 곤란하게 하는 것이오!”
“지금 감히 전하(테무케)를 질책하려는 것이오? 순번을 따지자면 그대들이 주제도 모르고 우리 땅을침범하여 제 땅이라며 세금을 걷은 것이 시작이 아니오! 이 작태만 하여도 당장 군마를 이끌고 이곳을 불태워도 무방하거늘, 전하께서는 이렇게 나를 보내 묻는 관대함을 보고도 갑오년의 약조를 내세워 면책하려고 하다니 진정 혼나봐야 알 것이오?”
사자는 이전에 끌려온 몽골인들과 달리 한인이 였는데, 그렇기에 그의 말은 하나 같이 이전 몽골인과 달리 조용하면서도 어느 의미에선 더욱 날카로웠다. 완안자연의 얼굴이 붉어지자 그의 입에선 다소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왔지만 내용은 여전히 꾸짖는 것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능력 이상으로 숨을 들이마신 개구리가 배가 터져 죽었다고 하였소. 황자께서 내리신 갈라전만 하여도 고려로는 충분할 것인데 어째서 더 욕심을 부리는 것이오? 만일 그렇다면 그 죄에 대한 벌은 절대 가볍게 끝나지 않을 것이오. 나는 그 벌에 고려 같은 소국이 괴로워 지게 될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오.”
“그러니까. 그곳도 갈라전이란 말이오.”
“그곳은 갈라전이 아니오. 금의 갈라로가 어디까지인지 내가 모르지 않으니 괜한 억지 부리지 마시오. ”
문답이 계속되면 될수록 완안자연과 여진인들의 표정은 붉어져만 갔고, 한인의 입에서 비웃음은 계속되었다.
“허어. 병마사는 정녕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소? 개가 주인이 있을 때야 아무렇게나 짖어도 문제없지. 아무도 없는데 맹수에게 짖는다면 먹힐 뿐이란 말이오.”
“…….”
“아시겠소? 지금까지야 대칸과 황자 전하의 온정 아래에 요리조리 피해 다녔으나 이제는 다르단 말이오. 이만 아셨으면 어서 고려 조정에 장계를 올려 이 사태를 보고 하시오.”
그리고 정말로 장계로 올라갔으니 유구를 경략하기 위해 모인 왕검이 받은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 작가의 말
이번 편부터 갈라전 확장 전쟁 돌입니다. 아마 조금 빠르게 전개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