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17
317화
49장 남송의 결정(1)
남송 명주.
고려 동계 동쪽 울릉도와 남해 남쪽 오키나와에서 고려의 중구가 넓혀지고 있는 동안, 서남해의 남송 명주 선박장에서는 고려에서 온 상선에서 물건들을 내리는 데 한창이었다.
“인삼 200근, 송자(松子 잣) 30근, 돗자리 100장, 세마포(細麻布) 100필, 백지 700장, 부채 200개, 송연묵(松煙墨) 50정(珽), 호피 10장, 그 외 왜국의 해조(海藻 해초), 진주, 왜도(倭刀) 들도 있네만 후자는 본국에서 나온 물품이 아니므로 따로 작성하여 건네주겠네.”
“그렇게 해주신다면 감사할 뿐입니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다양하게 많이 들고 오셨군요. 역시 고려 용강상단입니다.”
남송 명주 시박사(市舶司)의 관원은 이번에 온 용강상단이 신고한 품목들의 종류에 탄성과 함께 품목들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황상 폐하께 보낼 진상품의 목록이네.”
그렇게 건넨 목록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황세저포(黃細苧布 누런색 고운 모시) 5필, 백세저포(白細苧布 흰색 고운 모시) 10필, 황세명주(黃細綿紬 누런색 고운 명주) 15필, 백세명주(白細綿紬 흰색 고운 명주) 20필.
만화석(滿花席 온갖 꽃무늬를 넣어 짠 돗자리)10장, 만화방석(滿花方席 온갖 꽃무늬를 넣어 짠 방석) 20장, 백면지(白綿紙) 100권, 백성삽화은반(白成鈒花銀盤) 1면(面).
자대문라(紫大紋羅) 2필, 대지(大紙 큰 종이) 80폭(幅), 황모필(黃毛筆) 20자루, 송연묵(松煙墨) 20정(挺), 송선(松扇) 3개, 접첩선(摺疊扇) 2개, 나전연갑(螺鈿硯匣) 1벌, 나전필갑(螺鈿筆匣) 1벌, 극사약대(剋絲藥袋) 1매, 인삼 100근.
일개 상인 한 명이 황제에게 바치는 진상품치고는 제법 많은 양이었으나 관원은 이것에 익숙한지 고개를 끄덕이며 아부했다.
“바로 조정에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대단한 양입니다. 천조는 그간 고려의 상선에 대해서는 적은 관세를 부과했었는데, 이번에 와서는 그 혜택이 더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고려가 천조에 대한 예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세를 적게 받는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공식 재수교가 이루어지기 전부터 남송은 다른 나라의 선박들이 오면 대개 10분의 1로 받는 관세를, 고려 상선들에게서는 19분의 1로만 받고 있었다.
공식 수교가 된 이후로는 20분의 1로 받고 있으니 이건 남송과 무역하는 나라 중 가장 관세가 싼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고, 그만큼 양국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방증이었다.
“그럼 이대로 고려사관(高麗使官)에 가시겠습니까?”
고려사관은 북송 시기 고려 사신의 편의를 위해 명주에 설치한 객관이었다.
그러니 일개 장사치가 함부로 묵는 곳이 아니었고, 관원이 상인에게 안내하는 그런 곳도 아니었다.
그렇게 보면 지금 남송의 관원이 일개 장사치, 그것도 외국의 상인에게 하대가 아니라 존재를 하는 것도 참으로 이상한 광경이라 할 수 있었다.
실제 그들의 대화 모습에 의아하게 보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러나 그 관원이 상대하는 고려 상인의 정체를 듣게 된다면 누구나 저 상황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은 고마우나 시전을 좀 둘러보았다가 가고 싶으니 조금 있다 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사람을 보내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일이 있다면 소인을 찾아주십시오. 정 대인.”
“음.”
그도 그럴 것이 그 상인은 고려 왕태자의 장인이자 지난번 고려 국신사의 정사였던 이다. 일개 관인이 하대를 한다면 그것도 우스울 일이었으니 말이다.
* * *
“대송의 좌승상을 이렇게 다시 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고려의 정 대인께서는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하는 것이오?”
사숭지는 불안과 경계가 섞인 시선으로 정안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좌승상께서 조정에 크나큰 일을 도모하시는데 제가 미력하게나마 보탬이 되고자 왔습니다.”
정안연의 그 말에 사숭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내 부드럽게 타이르듯 대답하였다.
“성의는 고마우나 정 대인은 고려의 사람이며 고려의 관인이오. 그런 대인이 나를 돕게 된다면 양자 모두 불편해지지 않겠소?”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좌승상께서는 우승상과의 알력 다툼은 물론, 조정 내 신료들도 좌승상에 의문을 품는 일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으음.”
그 말에 사숭지는 불편한 기색을 나타내며 대답을 피했다. 그러자 정안연은 품에서 봉토를 꺼내 사숭지에게 건네주었다.
“받으시지요.”
“무엇이오??”
사숭지는 자신에게 건네진 봉투를 받아 들었다. 그 자리에서 꺼내 확인하였는데, 봉투 안에는 서찰이 아니라 글들이 적혀 있는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 종이는 세로로 반이 찢어져 있었다.
“정 대인. 이것이 무엇이오?”
“어음입니다. 그것을 명주 포구에 있는 용강상단의 지점에 낸다면 즉시, 송은(宋銀 송나라 은전) 3천 관(현재가치로 약 4억 8천만 원)을 내줄 것입니다!”
“무, 무슨!!!”
“그 정도면 좌승상께서 처한 현 사태를 극복하고 승상께서 조정의 동량들을 이끌고 정치를 하는 것에도 어느 정도 보탬이 되겠지요.”
“정 대인! 지금 내게 뒷돈(뇌물)을 주고 청탁을 하려는 것이오!”
정안연의 말에 사숭지는 버럭 외치며 호통을 쳤으나 정안연은 태연히 앞에 놓인 찻잔을 잡고 마시며 대답했다.
“안심하십시오. 저는 승상께 딱히 청탁 따위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면 이것으로 인해 정 대인이 얻는 것이 무엇이오?”
“말하지 않았습니까? 승상께서 조정에 큰일을 하는 데 보탬을 해주겠다고 말입니다. 굳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저 천조와 아조를 위해 승상께서 올바른 정치를 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자 정안연은 다시 입을 열었다.
“사 승상께서도 몽고의 위험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몽고는 거란도, 여진도 아닙니다. 이제껏 그 어느 이민족들과 비교해도 강력하고 위험한 족속들입니다. 지금 저들이 물러갔다고 무턱대고 쳐서도 안 되고, 동시에 안도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지금 천조 조정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으음.”
“아조의 태자 전하께서는 북쪽의 일은 때가 올 때까지 준비하되 서두르지 말고, 태만해져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약팽소선(若烹小鮮)의 자세로 함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정 대인이 아니라 고려 태자 전하의 뜻이란 말이오?”
“예. 이것은 저의 뜻이 아닌 아조의 뜻이며 양국의 국교를 유지하며 나아가 대(對)몽고를 위한 투자입니다. 그곳이 양국을 위한 정치이자 방향이라 아조는 생각합니다. 또한 혹시나 하여 말하거니와 이것은 뒷돈이 아니고 청탁도 하지 않은 만큼 이후로도 이런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만일 승상께서 사욕을 위해 뒷돈을 요구한다면, 그 시점으로 아조는 승상께서 양국의 안전을 걱정하는 충신이 아니라 진회와 같은 간신배로 보고 천조와의 국교조차 재고하게 될 것입니다. 승상께서는 지난날 아조에서 말한 합종연횡(合從連橫)의 이야기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짐짓 정색하며 경고하는 정안연의 말에 사숭지는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포장하더라도 이것은 뒷돈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뒷돈으로 요구하는 것은 청탁 아닌 청탁이었고, 협박이었다.
물론, 실제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고려와 송이 국교를 맺음으로써 양자에게 이로웠고, 둘 중 누가 더 이득을 보는지를 따지자면 고려임이 명백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천만 분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연려제몽(聯麗除蒙)을 주장하는 사숭지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고려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재상이면서, 그 재상이 문제를 일으켜 고려가 국교를 단절한다? 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상황이며, 분명 사숭지는 두 번 다시 재개가 불가능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하셨으면 받아주십시오. 설령 이해는 하였으나 받지 못하겠다 하더라도 상관치 않습니다. 이해만 해주셨다면 이후는 승상께서 하시면 되니 말입니다.”
정안연의 그 말에 사숭지는….
* * *
남송 황궁.
“본국의 상인들이 관의 눈을 피해 왜인들과 밀거래를 한다 들었는데 이것이 사실이오?”
용강후 정안연이 떠나고 남송 황제는 곧바로 신료들을 불러 물었다.
정안연은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송상들이 왜인들과 밀거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버린 것이었다.
이 처사에 아래에 있던 신하들은 죽을 맛이었지만 이미 알린 것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이전부터 종종 나라 밖에서 송인 밀상이 보인다는 고려상인들의 보고를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한 일이 있었는데 고려의 정사가 이 말을 알린 것이라면 지금 이 상황은 고려에서도 작정하고 알리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현 상황에서 잡아떼는 것은 쓸모없는 행동이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본국의 상인들이 왜상들과 밀거래를 하고 있는 것이 어느 정도 사실인 듯하옵니다.”
“하오나 폐하. 지금 일어나는 밀거래는 상당수가 본국 내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관에서도 관리하기가 매우 어렵사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오? 본국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니?”
“폐하께서 왜국과 해금령을 명하신 이래, 왜상들은 고려를 통해 오게 되었고, 본국의 상인들도 왜인들과 교역을 하기 위해서는 고려상들과 동행하는 왜인들을 만나거나 혹은 고려에 가서 고려의 관리하에 있는 장소에서 교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조 상인들과 왜국의 상인들 중 이 사태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저들끼리 작당을 하여 바다에서 밀거래를 하고 있으니 어찌 관에서 그들을 잡을 수 있겠사옵니까? 부디 넓으신 마음으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허어, 어찌 그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남송 황제는 낯을 찌푸렸다. 바다에서 밀거래를 한다면 관리가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고려 태자의 장인이 직접 조공을 바치고 건의를 하였던 만큼, 그냥 무시하는 것은 이쪽 체면의 문제였다. 이때 신료 하나가 눈치를 보더니 아뢰었다.
“폐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이번 사태는 본국의 상인들만이 아니라 왜국의 상인들과 합작을 이룬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은 고려가 자초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오?”
그 신료의 말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눈치챈 다른 신료들도 그 말에 동승하기 시작했다.
“폐하. 천조가 왜국의 상인들이 천조에 와서 장사를 하는 것을 막은 이유가 무엇이옵니까? 모두 고려가 해금령을 요청하였기 때문이 아니옵니까? 이때 갑작스럽게 왜와 장사를 막게 되면 문제가 생길 것을 염두에 두었으나 고려가 알아서 해결하리라 여겨 그대로 실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건이 벌어졌으니 어찌 천조의 탓만 할 수 있겠습니까?”
예부상서도 조심스럽게 동의를 하였다. 그 말대로 이번 일은 거슬러 올라가면 남송이 고려의 청에 따라 송-일 무역을 금지하는 것을 허락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니 이번 사태의 책임도 고려에 지게 하는 것이 그들로서는 편했다.
“더구나 지금 밀무역을 하는 이들이 가는 곳은 천조의 관리가 미치지 않는 해동의 바다로 생각되옵니다. 해동의 문제는 고려에 맡기고자 황상 폐하께서도 고려왕을 대왕으로 올리고, 동평왕(東平王)의 왕작을 내리신 것이 아니옵니까?”
“그것은 그러나, 지금 밀거래를 하는 이들 중에는 천조의 백성들도 있지 않소? 고려에서는 그것을 문제로 고한 것 같은데 이들의 문제도 고려에 맡김이 가하단 말이오?”
대소신료들이 하나같이 밀무역이 벌어지는 장소가 바다이고 영토 밖이라면 고려가 자체적으로 해결하게 하는 것이 맞다고 말을 하자, 황제도 해동을 맡기겠다는 지난번 자신의 말을 떠올리고는 난처함을 느껴야 했다.
이때, 호부에 속한 관리에 이르자 그 정도가 더했다.
“하면, 차라리 왜인들과 무역을 다시 허락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신 왜인들에게 부과하는 관세와 박세(舶稅) 늘리소서. 하면 무역이 재개되어 밀거래가 줄어들 것이고, 천조의 국고에도 이익이 될 것입니다.”
신료들이 하나같이 고려의 요청을 무시하거나 반대하자는 주장을 하자 황제는 사숭지에게 물었다.
“좌승상은 이번 밀무역 건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가?”
사숭지는 고개를 한번 조아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 또한 어느 나라의 상인이 타국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면 우선 그 현지의 병사들이 상인들을 잡고 구금하고 나아가 그 나라의 사람을 보내 이를 따지거나, 그 상인을 돌려보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도, 상인이 사는 나라에서 타국에 병사를 보내 상인을 포박하는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사옵니다.”
“흠….”
“황상께서 고려의 왕에게 동평왕의 작위를 하사하시고 그 많은 혜택을 주었다면 고려는 그만큼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법이고, 천조에서 무턱대고 해동에 병사를 보내는 것은 도리어 고려에 대한 폐가 되는 법입니다. 이번 문제도 천조 내에 있는 밀상들은 엄중히 관리하더라도 바다 밖 해동으로 간 밀상의 문제들은 고려에게 맡기심이 가(可)할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와의 협력을 주장하는 사숭지마저 저런 말을 하니 남송 황제는 속으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설마 자신이 내린 동평왕과 해동을 맡긴다며 운운한 것이 밀상 문제를 고려에게 떠넘기는 족쇄가 될 줄은 예상도 못 한 것이다.
“알았소. 하면 이번 일은 그렇게 알고 다음에 고려에 전하도록 하시오.”
“황명을 따르겠사옵니다. 폐하.”
# 작가의 말
*작중 송나라 은자 1관(냥)의 가치를 한국 돈으로 약 16만 원 정도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은전 3천 관의 가치가 현대 한국 돈으로 4억 8천만 원의 가치라고 하긴 했는데, 실제 송나라 은자의 가치는 낮게 잡으면 약 11만 원이고 높게 잡으면 약 23만 원 이상으로 폭이 좀 큰 편입니다.
그러니 다른 송나라 배경 작품에서 은자 1냥에 13만 원, 혹은 1냥에 20만 원으로 잡고 적는 내용이 나오더라도 그게 꼭 틀린 것은 아니니 유의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