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01
501화
15장 호애천자(胡愛天子)(1)
연회가 끝나고 다음 날. 나는 남송의 황궁, 황제의 앞에 있다. 황제는 내게 시좌(侍坐)를 시키고는 물었다.
“공(功)을 성취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마치 교수가 신입 대학원생에게 자기 논문에 대해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질문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감각을 뒤로하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어찌 입을 통해 대답했다.
“어떤 일을 일정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경영(事業)하고 그것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하면, 어떤 것이 사(事)가 되고, 어떤 것이 공(功)이 되며, 어떤 것이 업(業)이 되는가?”
“사와 업은 모두 해야 할 도리인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은 경연(經筵)이다. 물론 경연 자체는 고려에서도 받고 있었던 것이지만 남송까지 와서도 받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지금 가장 태클을 걸고 싶은 것은 경연 자체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주강(晝講)을 하는 이가 다름 아닌 남송 황제란 것이다. 만약 여기가 현대였거나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면 나는 허탈함과 당혹감에 육성으로 터졌을 것이다.
내가 외국에서 외국의 황제에게 주강을 받고 있는 것은 연회가 끝난 후 남송 황제와의 문답에서 나온 배려 덕분이긴 하다. 그래서 이렇게 오늘 주강을 받고는 있지만 솔직히 이런 이야기는 그만 끝내줬으면 하는 것이 내 진심이다.
애초에 지금 벌이는 경연도 사실상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묻는 질문에도 적당히 어디서 들은 것을 흉내 내어 답변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오직 하늘의 도(道)만이 크고 오직 요(堯) 황제께서만이 그것을 본받았다고 하는데, 대체로 하늘은 높은 것이다. 요 황제께서는 어떻게 그것을 본받았는가?”
뭔가 빨리 끝내줄 것 같지가 않다.
“요께서는 바로 성인(聖人)이며 성인으로서 극도의 경지에 나아갔기 때문에 하늘과 덕(德)이 합쳐졌으니, 스스로 그것을 본받은 것입니다.”
“많은 신하가 있은 뒤에야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신하가 비록 적더라도 군왕이 훌륭하고 신하가 현명하면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질문들을 대답할 때마다 엄청 조마조마하다. 내가 고려에서 내로라하는 명사나 학사들과 경연을 하는데, 그때는 질문을 주고받으며 밀리지 않고, 때로는 압도하기도 하지만 그 실체는 해동유학이라는 기존에 없던 것을 주제로 잡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사학과 교수들도 자기 전공 부분 아니면 관심 있어 하는 학사들보다 지식에서 밀릴 때가 있는데, 고려의 유학자들이라고 다르겠는가?
간혹 막혀도, 그럼 바로 주제를 ‘어째서 그런 논리가 나와 막히고, 이것이 고려에선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로 막힌 이유 자체를 연구, 논의하는 식으로 가서 밀리는 경우는 없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이유에서 내가 주도하는 거지. 순수 유학의 학식으로 비교하면 내 실력은 동궁학사들보다 확연히 떨어진다.
그에 비해 눈앞에 있는 황제는, 원조 성리학의 나라인 남송에서 원 역사에서는 성리학을 널리 알렸다고 하여 이종(理宗)이라는 묘호를 받은 이다. 유학 부분에서 우열을 논하자면 내가 이길 턱이 없다. 그런데 처음 운만 떼기 위한 경연 흉내가 계속 이어진다. 아, 이제 그만 본론으로 갑시다. 좀.
“호오.”
“하면, 아녀자도 정치를 도울 수 있는가?”
“여인이라 하더라도, 만약 현명하다면 정치를 도울 수 있습니다.”
“국란에서 인재가 없어 나라가 멸망하는 것이 부지기수다. 인재(人才)는 어찌 얻기 어렵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재능(才) 또한 덕(德)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히 남송 황제의 질문들은 하나같이 어디서 들어본 것들, 정확히는 내 기억상 조선 시대에도 비슷한 문답이 나왔던 것들이다. 덕분에 그때 학식 높다는 이들이 한 말들을 흉내 내 대답할 수는 있었다.
다만, 결국 남에게 빌린 것이라 계속 길게 이야기하면 결국 바닥이 드러난다. 그래서 한 주제로 깊게 나누고 싶지는 않았는데, 남송 황제도 그 이상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다.
사실 질문 자체도 ‘어라? 술술 대답하네? 그럼 이것도? 이것도? 어? 오랑캐 왕자 주제 생각보다는 입 좀 놀릴 줄 안다?’ 같은 내려다보는 느낌도 없잖아 들긴 하지만 어쨌든 개쪽 당하는 것은 피했다. 세이프다.
그래도 후반부엔 유학 경서보다는 군신 관계에 대해 묻는 것들이라 대충 요지는 이해해서 유학 단어를 적당히 버무리는 것으로 말해줘서 편하긴 했다. 그래도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이 진짜 경연의 문답들은 반 각 정도 더한 뒤에야. 끝났음을 알리는 황제는 큰 탄성이 들려왔다.
“짐이 고려 왕태자가 무략만이 아니라 학식이 뛰어나고 학문을 배우기도 좋아한다 들어 경연에 참석하게 하였으나, 아, 과연 명불허전이오, 소문 이상이로다! 아, 과연 고려 대왕에게는 뛰어난 아들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사실이니, 해동의 안녕은 참으로 밝구나.”
“황공하옵니다. 폐하.”
‘이제 끝났다. 고마워요. 조선왕과 왕세자들, 학사들!’
황제의 그 말은 경연에 대한 감상인 동시에 이것으로 진짜 경연은 끝이 났다는 신호였고, 기억 속에 있는 조선의 왕과 학사들의 문답들을 통해 겨우 창피당하는 것만은 면한 것에 불과한 나에게 그 말은 그 무엇보다 달콤하고 기다린 말이기도 했다.
하여 진심으로 이 지긋지긋하고 조마조마한 문답이 끝났다는 것에 안도와 고마움, 과찬이라고 대답했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다시 말하지만 이 경연 자리는 결코 남송 황제가 고려 태자가 공부를 좋아하니 자비를 베풀어 특별히 경연에 참석하고 친히 주강을 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명분이고 실제 의도는 다른 데 있으니, 조선 시대 정조가 학사들의 수준이 부족하니 자신이 직접 가르친다는 핑계로 초계문신(抄啟文臣)을 강(講)하며 따로 논의하고 등용한 것과 같다.
즉, 정조처럼 나랑도 독자적으로 대화를 하기 위해 호학의 태자에게 본고장 성리학 경연을 베푼다는 핑계로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다.
‘그런 장소인데, 깐수르 교수도 아니고, 왜 진짜 경연을 하려고 하는 거냐고…. 깜짝 놀랐잖아.’
그나마 뒤의 이야기들은 나았다. 군사와 전쟁에 대해서니까. 단지 걱정인 건 자꾸 몽골이 아니라, 지방군의 준동할 시 대처하는 법에 대해서도 묻는다는 건데….
‘…설마…? 에이. 아니지? 그것만은 진짜 하지 마라.’
* * *
남송 황제와 고려 태자의 문답은 주강(晝講)의 시간을 훌쩍 넘어 신시(申時 오후 3시 반 ~ 오후 4시 반)까지 돼서야 겨우 끝이 나며 고려 태자는 물러날 수 있었다.
속으로는 긴장과 한탄, 그리고 다 끝난 뒤에는 크게 안도하며 나가는 태자였으나, 문답 중 시종일관 태연자약함을 유지하였으니 왕태자의 연기 능력은 나날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런 고려 태자의 속내를 모르는 남송 황제 조윤은 왕태자와 달리 진심으로 이번 문답에 많은 것을 느끼는 바였다.
어디까지나 자리를 만들기 위한 경연이다 보니 초반에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경연 행세를 한 것인데 거기서 이적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총명한 답을 내놓은 것이다.
“허허허. 그래. 휘문공(徽文公 주희)의 후손이 고려로 넘어갔다는 말인가.”
고려 태자가 듣던 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진짜 나름 유학을 알고 있다는 것도 이목을 끌었으나 그 이상으로 태자의 문답 대다수에서 당대 남송의 주 학문인 성리학이 아닌가? 하여 왕태자에게 물으니, 과연 주자의 후손과 제자들이 고려로 넘어갔고, 지금은 고려 왕태자의 태자태사로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당대 남송의 조정과 전국에 주자학을 끌어들이고 학사들을 등용하던 조윤에게 있어선 나름 인연이 느껴지는 바였고, 또 통하는 학문이 있으니 새삼 인연과 친근감이 느껴지는 바였다.
그렇다고 이후 원래 의도인 회맹과 북벌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성실히 대답하며, 태자에게서는 회맹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만 하고 있어 좋은 의미로 예상대로였다.
적어도 몽고에 붙어 상국을 치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이 말은 즉, 요순의 선견지명은 유지되었다 할 수 있었으니 이번 정청지에게 일임한 일을 취하하고 현 권위도 보존할 수 있다는 말도 되어 이번 문답은 참으로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짐과 고려 왕태자가 경연에서 나눈 대화를 사초에서 따로 발췌하여 들고 오라.”
사초에서 발췌하라는 말에 사관과 내시도 놀라 서로 바라보며 방금 말을 자신만 잘못 들은 것인가 확인했다. 사초를 보는 것은 황제조차 불가능하다. 아니, 황제이기에 더더욱 관람이 불가능한 것인데 사초를 보여 달라고 한 것이니 더 큰 문제가 된다.
“폐하! 사초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것은, 사초를 보자는 것이 아니라, 고려 왕태자와의 대화를 보려는 것이다. 사관이 사초에 짐에게 보여선 안 될 것을 첨삭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삭제하여 들고 오라.”
내관들은 당연히 그런 패악무도한 짓에 대해 항명하려고 했지만, 황제는 귀찮아하는 기색을 드러내면서 오해하지 말라고 설명했다.
황제를 한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이제 와서 사초에 적힌 자신의 평가에 신경 쓰여 보여달라고 하는 조윤이 아니었다. 사초에 대한 평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이번 대화 내용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내게도 배운 바가 크다. 비록 내가 성급히 판단하여 덕원(德源 정청지의 자)에게 일임했다곤 하나, 그와 당여들이 순식간에 장악하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만약 내가 신속히 자신(子申 사숭지의 자)을 끌어들여 막지 않았다면, 고려의 진위 여부와 별개로 그가 권신이 되어 국정을 움직이려 들었겠지.
단평년 이후 잘 제어하였고, 설령 주도권을 건네주더라도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역시 방심해서는 안 되는 것이야.
자신(사숭지)도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덕원에게 밀려 나의 뜻을 따르나, 그도 그의 뜻을 관철하려고 한다. 하나 능력이 덕원에게 밀려 대사를 믿고 맡기기는 어렵다. 당장 대송이 어찌하여 만들어진 것을 모르는 것이지 허구한 날, 그 실체를 명확히 규정할 생각은 없이 그저 증축과 건축, 설치 등으로 군비를 늘려라,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만약 저들 중 삿된 마음을 가진 이가 있다면 어찌하려는지 생각은 하는지 의심스럽다. 암, 적어도 나만을 따르는 이들을, 저들보다 황제인 짐을 따르는 짐의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당쟁과 당파를 금하고, 모든 신료를 다스리는 황제가 이렇게 자신의 당여를 만들겠다는 것은 당연히 언급조차 해서는 안 될 것이었지만 동시에 현실이기도 했다. 말로는 당파와 당여를 만들지 말라고 하나, 그것이 어디 지켜진 적이 있던가?
선제들은 물론 자신 또한 단평년 이전까지 권력은 황제가 아닌 권신에게 있었으니, 결국 조정 내에서 공론을 만들고 쥐어야 권신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면, 역시 신진인사들, 그래. 희국공(徽國公 주자의 작위)의 학사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날이 융성해지는 고려에서, 그것도 그 중심에 있는 고려의 태자가 저리도 자신이 수용한 주자학을 고평가하고, 그것을 근거로 자신도 존숭(尊崇)하고 있다면, 비록 계획에는 없던 일이라곤 하나 이용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조윤의 이러한 방침과 생각은 기존까지 그저 영수들끼리 붙여 견제하고, 그 틈에서 제 권리와 입지만을 챙기던 것을, 아예 공론을 만들고, 여차하면 그 공론에서도 반대를 해줄 제 세력을 만들겠다고 변화한 셈이다.
그리고 이런 천자의 생각이 송나라에서 이상적인 운영으로 보고 행하려는 ‘공치(公治)’와 ‘공천하(公天下)’와는 정반대(독재)에 가깝다는 것을 지적할 이는 이 장소에 없었다.
“내일도 왕태자를 보고 싶구나.”
#작가의 말
*작중 사업 운운하는 대화는 조선 시대 정조가 아직 어릴 때 영조와 나눈 대화의 일부입니다. 덧붙여 당시 이 대화가 끝나고 영조는 사도세자가 멀쩡히 살아있는데도 불구하고 300년의 종사가 손주에게 달렸다고 대놓고 발언하며 사도세자에게서 마음이 떠났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