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19
519화
23장 고려의 제후(3)
왕은 태자와 논의하고 다시 아뢰라고 했지만, 계사지주 시절부터 황궁에 출근한 신하들 중 일부, 그러니까.
최 씨 정권이 타파된 이후의 조정 생활에 이제 제법 익숙해진 이들 중 감이 좋은 이들은 태자와 상담한다고 결정이 뒤집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은 동요국의 참전은 반대하는 태자의 답장과 함께 사실로 드러났다.
“동요를 굳이 동석시킬 필요는 없소. 현재 요국은 내부의 일을 처리하는 것도 급급한데, 여기서 사람을 보내는 것은 일을 더 늘리는 것이라, 요나라에도 좋지 않소. 나아가 이 일이 북조(北朝 몽골)의 눈과 귀에 들어가면, 그들도 개입을 시작할 것이 뻔한데, 어디를 통해 개입하려 들겠소?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회맹을 개최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사태가 될 것이니, 요국에는 회맹이 끝난 후 일을 진달하고 협력을 청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오.”
태자는 동요국의 사람을 참가시킬 필요 없다는 설명을 하고는 이윽고, 대신 동북 외번의 여진족들을 회맹에 참가하는 것이 어떠냐고 의견을 냈다.
어디까지나 동요국의 참석 여부만을 확인하고자 온 신하들이었기에, 갑자기 여진에서 제후를 선별하자는 그 의견에는 동요국 이상으로 찬반 논란이 심했다.
고려에게 있어 동요국은 전쟁을 한 사이긴 하나, 지금은 형제국이자 숙질국이 된 관계이고 자신들이 확실히 이겨서 눌렸다. 그리고 몽골에게 큰 피해를 입어 원한도 공유한다면 공유할 수 있는 관계였다.
그러나 동북외번, 그러니까 수분하와 미타호 이동의 여진들은 고려에 조공을 바치더라도 갈라전과 달리 영향을 받을 뿐이며, 완안자연 때와 같이 동북외번이라 불리는 여진들의 관직 또한 ‘고려의 장수’라는 것과 그들을 나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역사도, 근본도, 지위도 제후로서 부족한 그들을 굳이 제후로서 취급하여 만국이 오는 회맹에 참석시켜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것이다.
하지만 태자는 단호하게 회맹의 목적을 언급하며 반대에 선을 그었다.
“제국(諸國 여러 나라)은 몰라도, 남조(南朝 남송)와 금(金)의 잔당에게는 그들이 동석하는 것을 보여야 하오. 갈라도병마사는 말할 것 없고, 동북 외번의 장수들도, 하다못해 외번 장수 중 한 명은 필히 데려가는 것이 회맹의 본 취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오.”
요약하면 ‘다른 나라들의 눈과 나라의 체면도 중요하지만, 회맹을 벌이는 목적이 뭔지 잊었냐? 대몽 연합군이 결성된다고 하더라도 만 리 밖에 있는 외국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아니면 든든한 물주인 남송이 더 도움이 되겠냐?
우리만큼이나 여진족의 힘을 아는 남송이나 잔금(殘金)을 끌어들이려면 우리가 여진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게 백배 더 좋은데, 걔들을 빼긴 왜 빼?’라는 말이었다.
여기서 머리가 굴러가는 신하들은 여기가 태자의 본론이구나 짐작했고, 보다 더 눈치도 빠른 이들은 왕이 동요국의 문제를 결정하고, 태자에게 묻게 한 것이 이것 때문이구나 하고 간파하고는 태자의 말을 그대로 대왕에게 아뢨다.
“상서성(尙書省)에서는 지난날 태자가 올린 보고를 검토하여, 외번 중 제후로 삼을 만한 자들을 선별하여 다시 아뢰라.”
그리고 예상대로 왕은 그 청을 받아들였다.
* * *
왕과 태자가 협력하여 반대 없이 일을 처리했다고는 하지만, 사회라는 것이 그렇듯, 아무리 왕과 태자가 유능하게 결정을 내려도, 그 결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준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번 회맹의 제후 문제에 대한 준비는 예부와 호부, 공부, 이부 등 고려의 육부(六部) 상당수가 동원되었다.
그들은 각고의 노력과 지력을 총동원하여, 고려의 제후로서 부끄럽지 않은 제후들을 선별하거나 자격을 줄 준비를 마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예부상서 추영수는 결정이 나자마자 단호하게 외쳤다.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하겠소. 이 사람은 이 이상 여진 족장들을 제후로 두는 것을 좌시할 수 없소.
“자, 자아. 진정하시오. 예로부터 번인(蕃人)들에게 벼슬을 내려 달랜 것은 종종 있던 일이 아니오? 거기다 태조 황제 시절 고창에서 큰 활약을 한 정조 권행을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삼은 일도 있으니 공이 있으면 큰 상을 내린 것도 사례가 없지는 않소?”
“경은 우산도의 백겸과 유구의 의본이 그만한 공을 세웠다고 보오? 아니면 이번에 회맹에 소환되는 흑고대라는 여진이 그만한 공을 세웠다고 생각하오?
바른말로 충직한 우산과 유수에게 내린 것만 하더라도 사례를 찾기 힘든 과한 처사가 아니오? 그런데, 그저 회맹의 수를 채우자고 힘 좀 있는 여진 족장을 제후의 반열로 올리는 것은 아니 될 말이오이다!
거기다, 앞서 두 섬도 어쩔 수 없다고는 했으나, 과한 것은 사실이지 않소이까?
둘 다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제대로 된 관직도 없고 미관말직이던 자들을 이렇게 국남(國男 남작 종5품)이 되면서 우산도의 백겸은 한 번에 그 품계가 2급이 올랐고, 의본은 무산계를 기준으로 해도 4급이며, 급제하여 받은 관직을 기준 한다면, 자그마치 8급이 오른 셈이오. 이는 과거를 상고하여도 파격적이어도 너무나 파격적인 승급이오이다!”
“알겠소. 하여, 우리도 이번에 여진 제후는 일전에 이미 작위를 받은 흑고대만으로 좁힌 것이 아니오? 병마사마저도 동행은 하더라도 제후의 반열이 아닌 장수로서 동행하는 것이니, 흑고대만이 외번의 사표(師表)가 되는 것이오이다.”
“알고 있소.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것이오. 적은 공을 세우고 제후가 되니, 마느니 하는 것은 두 번 다시 있어선 아니 될 것이오. 특히 갈라도와 그 너머의 여진인 중 또다시 제후가 나와서는 아니 될 것이오!”
추영수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이들도 적잖아 있었는데, 추영수의 이런 발언과 공감하는 이들의 반응을 그저 단순하게 고려인이 가진 여진인에 대한 차별 인식 문제로 볼 것이 아니었다.
근래 들어 고려는 확장 정책을 펼치고 있었고, 조정의 신료들이 보기도 이후에는 지금보다 더 넓어질 것으로도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정복한 땅에는 그곳에 살고 있던 여진인들도 있었고, 고려에서는 과거에도 한 것처럼 벼슬을 내리고 고려의 백성들로 만들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으니, 그렇게 정복한 땅에 있는 여진 족장들의 지위였다. 과거 고려가 여진인들 다스릴 때는 조공을 받고 관직을 내려 그들을 달래주었는데, 이 관직들은 국내 토호들에게 내린 것과 비슷하면서도 평균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북방을 기미주로 다루고, 번방으로만 다스렸던 시절에는 그들이 고려에서 살 것이 아닌 이상 죄다 명예직, 그것도 자신들끼리 비교하는 지위에 불과했는데, 그들의 땅이 고려의 실제 영토가 되면서 낮게 잡아도 위계상으로는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는 하나, 기존 백성들이, 새로 들어온 백성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말이 되겠소!”
이들이 말하는 이 ‘신(新) 백성’들 중 중앙에 실세로서 출사한 경우는 태자의 장인인 정안연을 제외하면 없었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이미 의전상 위계는 고려 토호들보다 높은 이들이 많으니 기존 고려인들에게는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거기다 제후로 인정받게 된다면 그 불만은 더 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대들은 저 여진인들을 믿을 수 있는가 본데, 이 사람은 갈라전도 그렇지만, 외번의 여진은 더욱 믿을 수 없소이다.”
이렇듯 당대 고려가 여진을 마치 자기 집 개처럼 길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고려 내부에선 숙종, 예종 시기의 완안부와 금의 흥기를 기억하는 신하들의 경계도 적지 않았다.
* * *
여진족 제후는 한 명이면 족하다는 상서성의 뜻을 받은 나는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굳이 조정신료들과 싸우면서까지 악착같이 여진 제후를 늘려야 할 이유는 없고, 솔직히 외번(外蕃) 놈들이 지리적으로 멀리 있으니 그나마 낫다는 거지. 몽골한테 안 붙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지.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지리나 바닷길까지 알려줘 봐야 좋을 게 없지.’
왕실이 조정을 휘어잡긴 했지만, 그게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독단과 독주를 일삼으라는 말이 되지는 않는다.
저들에게 내가 시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따르기만 하게 만든다면 내가 쓰러지는 순간 전부 다 끝난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저들도 사람이고, 합리적이고, 인도적인 방안을 구상할 줄 안다.
“다만 이래 봐야 제후가 다섯이고 탐라국 외에는 대다수가 하자가 있는데?”
엄밀히 말해 완안자연은 제후(군왕)는 아니지만, 이번 회맹에서 그의 위치나 지위는 그에 준하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다 아는 상황이라, 내 머릿속에서는 일단 제후 비스무리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신료들이야, 근본 없는 장수들이나 족장, 역사는 있으나 제대로 나라 취급도 못 받은 우산국 같은 나라보다는 적어도 탐라국처럼 국력은 모자라도 얼추 군왕으로 해도 될 법한 이를 제후로 삼고 싶었고, 그래서 동요국을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 동요랑 일본을 끌어들이는 건 아니지.’
만약, 양국이 참석했다면 나쁘지 않겠지만 굳이 두 나라를 참석시키면서까지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
‘그래. 그냥 포기하자. 애초에 회맹을 하는 건, 남송의 의심을 완화시키고 대몽연합을 유지하기 위해서지, 고려가 엄청 잘났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고 이제는 고려의 제후가 아니라 외국에서 얼마나 참석할지를 생각하자.’
잔금(殘金)은 이장용이 어떻게 구워삶느냐에 따라 결정 날 것이고, 이외의 나라들은 남송의 외교력에 달렸다. 그리고 남송도 체면이 있으니 아무리 못해도 지척의 나라들은 형식상으로라도 사람을 보내게 만들겠지.
‘…어? 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까. 고려에 더 있었구나. 제후로서 회맹에 참석시킬 만한 자가!’
* * *
고려에서 제후를 찾고 있는 동안 유럽은 이전보다 더욱 원 역사와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현대에선 ‘세계사 공부하다가 문제가 있으면 십중팔구 이 나라가 원인이다.’라는 반쯤 농담의 대상이 되는 영국은, 실제 역사적으로 그런 농담이 나올 만한 행적을 했다.
때문에 현대에선 역사 속의 영국을 두고 인류의 적, 세계 최강의 혐성국 등으로 지칭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직 그런 악의 대제국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당대에 그런 위치에 있는 것은 지금 절찬리 동유럽 지역을 점거하고 있는 예케 몽골 울루스였다.
그리고 그 두 국가는 지금 대면하고 있었다.
“위대한 몽골 제국(The Mongol Empire)의 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리 영국(Kingdom of England)은 이번에 칸께서 보여주신 우호를 결코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후일 바다를 통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약탈과 살인 등 악행을 일삼는 영국과 당대 육지를 통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약탈과 방화 등 세계에 공포를 마구 전도하는 몽골.
무의식적으로 동족 같은 상대에게 시대를 초월한 동질감이라도 느꼈는가 오해를 할 정도로 헨리 3세의 동생 콘월의 백작 리처드는 단상의 옥좌에 앉은 대칸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경의를 나타내는 방식을 보이며 예를 차렸다.
그러나, 영국과 더불어 역대급 악의 국가로 꼽힌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몽골 쪽에서는 시대를 초월한 동질감까지는 느끼지는 못했는지는 몰라도 리처드가 기대한 광경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몽골인은 동족 혐오를 느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물과 땅이라는 타입이 다르기 때문인지 당장에라도 리처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으니, 동류에 대한 유정(有情)은 없어 보였다.
답이 나올 때까지 고개를 들어서 안 된다는 언질을 미리 받았던 리처드였기에 답이 오지 않아 당황하며 고개를 숙여 그 시선을 눈치챌 수 없었는데, 그때 칸의 곁에 있던 야율초재가 몽골인들을 대신하여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대칸께서는 지금, 어째서 왕이 직접 오지 않은 것이냐며 묻고 있소.”
“아쉽게도 나의 형님이신 영국 왕 헨리 3세께서는 지금 서쪽과 남쪽에는 프랑스 잔당과 태도에 심하여….”
“일찍이 오늘 너희 왕이 친조하기로 약조를 하였거늘, 감히 약조를 어기니 지금 대칸께서는 크게 진노하고 계시오.”
양국이 대면하는 이 광경을 두고 원 역사 기준 역대 최흉의 해적과 역대 최흉의 마적이 협력한다고 소스라치게 놀랐을 왕검에겐 다행스럽게 양자의 반응만 보아 그 끔찍한 혼종 같은 연합이 제대로 성사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양국의 협력과 대면은 작게는 서유럽을, 크게는 유럽 전체를 시끄럽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