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20
520화
24장 영몽 연합군(1)
시간을 거슬러 동방에서 왕검이 아리크부카와 몽케 형제를 중재하고 있을 때, 구유크도 아리크부카와 왕검의 안다 소식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다른 황족이면 몰라도 아리크부카는 일단은 형식상으론 대칸인 자신의 자식이었고, 자식과 같은 고려 왕태자가 자기 자식과 친밀하다는 상황이라, 상당히 거슬리기는 해도 그것만을 두고 건드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그걸로 건들 바에는 차라리 금이나 남송과 관계가 의심스럽다며 처리하는 것이 나았고, 섣불리 치다가 일어날지 모르는 몽케 형제들의 준동이 더 신경 쓰였다.
그래서 중동 문제를 해결하여 여유가 생겼을 때, 내심 마음에 안 들고, 불안하기까지 한 몽케 형제들의 문제를 일소하고, 고려로 하여금 자기 말고 다른 황족에게는 줄을 만들어 두지 않는 것을 바랐는데, 왕검이 중재하면서 막아버린 것이다.
‘이놈이…?!’
계획이 실패했단 사실에 분노와 허탈을 느끼면서도 여유에서 동방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궁리하던 중. 갑자기 서쪽, 그것도 영국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드디어 프랑스 놈들이 움직였습니다. 이미 우리 군사가 출병해서 사실상 내부에서 프랑스를 무너뜨렸고 등 뒤에 칼을 찌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의 본군이 섬에서 나오기에는 프랑스가 경계가 심하여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는 귀국이 도와준다면 우리는 각자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영국의 사절이 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영국의 사절이 온 것은 왕검으로 인해 내란이 막히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 역사보다 늦어진 프랑스에서 일어난 위그 남작의 분란의 원인은 그 뒤에 영국, 아니, 영국의 왕 헨리 3세가 있었다.
헨리 3세는 작금 유럽 전역을 뒤흔드는 ‘동방에서 온 악마 타타르’에 대해 적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 타타르군이 신성로마제국마저 멸망시키고 프랑스의 국경까지 다가왔다.
그때쯤 프랑스의 루이 9세가 서진하는 타타르의 군대를 대비하고자 친히 주력군을 동쪽에 배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헨리 3세는 기뻐하며, 위그 남작을 지원하며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전쟁을 시작한 초기만 하더라도 헨리 3세는 자신이 지난날 아버지(존 왕)가 잃은 영토를 수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크게 자신하며, 여유를 가진 채 추이를 지켜볼 수 있었다.
프랑스는 타타르를 무시할 수 없고, 타타르는 프랑스를 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기대와 계획은 얼마 뒤 모래성처럼 무너져야 했다.
“…타타르 놈들이 진격을 멈추었다고?!”
* * *
교황청의 사절단이 몽골의 진공을 막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헨리 3세는 온 세상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이미 이전 전쟁에서 패해 프랑스와의 국력 차도 뻔한 상황에서 위그 남작을 지원한 것이 무슨 이유겠는가?
오직 앙주 제국이라고도 불리던 그 광활한 전성기의 영토를 부흥을 위해서다.
“…그런데 타타르 놈이 교황청에서 보낸 주교의 대화로 진군을 멈추고, 전쟁도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이 무슨… 훈족 같다고 하더니 그것마저 재현한단 말이냐?”
군대도, 돈도 아닌 사절단의 방문이 이적을 막았다는 것에서 과거 교황 레오 1세가 훈족의 침략을 막았다는 전설을 떠올리며, 이것이 신의 기적인가?
아니면 가호인 것인가 하는 의심을 하는 동시, 그러한 신의 기적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 신이시여. 어찌하여 이 상황에서 그런 기적을 보이시나이까. 이것은 제게 너무나 큰 시련이 아니옵니까!”
아니, 오히려 울고 싶었다. 몽골이 유럽을 공격하는 것을 중단한 지금, 몽골과 프랑스의 격돌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 어쩔 수 없다. 그대로 진행해.”
“예? 하, 하지만 타타르는….”
“아직이다. 루이 놈은 타타르를 경계하여 군대를 빼더라도 전부 빼지는 못하고 있다. 덕분에 군대를 쪼갠다고 해도 우리는 버틸 수는 있어. 우린 이것을 파고든다. 그래! 타타르 놈들이 겁을 먹어 진군을 멈추면서 예정과는 달라졌지만 결국 루이 놈이 오지 못하는 이상 아직 우리가 유리하다. 지금이 바로 기회다. 지금 이상으로 돈을 지원하고, 군대도 보내. 이번 기회에 탈환하는 거다.”
사실 유리한 정도는 아니었다. 프랑스의 주력 전부가 동쪽을 경계하여 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영국은 만전조차 아니다.
이 전쟁 자체가 영국에 있어서는 헨리 3세의 독단에 가까웠고, 소모되는 전비도 심해서 프랑스와 정면 승부는 꿈도 못 꾸기에 위그 남작을 지원하는 식으로 비용을 줄이고, 이마저도 몽골을 이용할 수 있다고 단언하여 무리하게 진행한 전쟁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뺀다면 위그 남작의 실망만이 아니라 귀족들에게도 비웃음거리가 되고, 앙주 제국의 전성기를 부활시킨다는 목적은 영영 수포로 돌아갈 게 뻔한 것이다.
“…그리고 타타르 놈들에게 전해. 저 프랑스 놈들은 너희가 잡아야 하는 신성로마제국인들을 받아들이고 땅을 노리고 틈만을 엿보고 있다고 말이야.”
“예? 그, 그렇지만 그것은….”
이적과 손을 잡고 같은 교인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냐는 부하의 이성적인 반문은, 조용히 노려보는 왕의 눈앞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그렇게 카르피니 사절단으로 인해 서정이 중단된 몽골을 향해 밀사를 보내 지속적으로 협력을 요청하던 영국은, 왕검이 몽케 형제들을 만나러 갈 즈음 루이 9세의 주력군이 영국부터 제거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소문이 퍼질 때는 거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이제 더 이상 야만적인 이교도와 손을 잡을 수 없다고 운운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한편, 몽골이 아무리 유럽에 무지하더라도, 서정을 한 지가 몇 년인데 현지인들에게 대략적인 정보마저 조사하지 않았겠는가?
영국과는 맞닿지 않았지만 헨리 3세의 밀사가 처음으로 접촉한 이후 다소의 시간이 있었고, 그사이 몽골인들은 현지 유럽인들에게 영국과 프랑스에 대해 알아보았다.
물론, 엉터리도 있고, 과장된 것도 있는 등, 확실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강의 정보는 얻을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야율초재는 저들의 노림수와 사정을 대강이나마, 그러나 중요한 부분들은 다 파악할 수 있었다.
“너의 말은 결국 우리가 불란서(佛蘭西=프랑스)를 쳐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더냐? 너희가 과거 불란서에게 져서 잃은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말이다!”
야율초재는 싸늘하고도 냉소 어린 지적에, 영국의 사자는 속으로 찔끔하며 순순히 인정하며 설득을 계속했다. 아니라고 변명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아쉽게도 현재 우리나라는 국력을 소모하여 바다 건너까지 대군을 보내기가 쉽지 않아 자력으로 탈환을 한다면 많은 피해를 얻게 됩니다. 그러니 이 이상 피해가 요구되면 우리 국왕께서는 군대를 회군시킬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귀국이 군을 움직인다면 우리도 피해를 경감되니 그대로 전쟁을 지속할 것입니다. 그러니 귀국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너희의 전쟁이 우리에게 이득이라고? 우리는 이미 법왕(法王 교황)에게 전달했듯 법왕국(法王國 교황청)의 사절단이 오기 전까지는 진군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국 남부의 교황청을 치지 않겠다는 것 아닙니까? 프랑스는 그들과 관계가 밀접하고, 실제 신성로마의 귀족들과 백성들을 받아들이며 귀곡과 일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귀국을 치기 위해 남부에 있는 에첼리노 4세를 부추기고 있으니 프랑스를 치는 것이 귀국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지요.”
“애찰리노(挨拶利虜)라….”
“동쪽에선 귀국 타타르가, 서쪽에선 우리 잉글랜드가 함께 친다면 저 간악한 루이 9세를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에첼리노의 성격이 더러우나,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은 프랑스가 지원에서 이루어지는 이상 프랑스의 루이만 제거해도 귀국은 서부와 남부 모두 안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밀사는 자신들의 속내가 어떻든, 몽골에도 이득인 것은 분명했기에 그 말에 한점의 거짓도 없다고 자신했다.
물론, 몽골이 군을 움직인다면 프랑스의 주력군은 영국보다 위협적인 몽골군을 막으러 갈 확률이 높다는 말을 굳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눈치채지 못한다면 칭기즈칸 시절부터 있었던 친카이라는 박힌 돌을 빼고 야율초재가 당대 대칸의 군사로 등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야율초재는 즉시 코웃음을 치며 또다시 그것을 지적했다.
“흥. 참으로 잡스러운 말로 현혹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우습다 못해 애잔하기까지 하는구나. 우리 천군(天軍)이 서진을 하면, 불란서의 군대가 화들짝 우리를 맞서기 위해 회군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더냐?”
1차 교황청 사절단이 귀환하면서, ‘저 타타르라는 놈들이 기병만 해도 10만이 넘는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유럽에 퍼진 지 오래였고, 영국에서도 이를 반신반의는 하면서도 대군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루스-헝가리-폴란드에 이어 신성로마제국마저 멸망시킨 몽골을 보고 그 힘을 의심하는 나라는 유럽에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진실이었다.
그나마 신성로마제국과 국력을 다투는 프랑스 왕국이니까. 소식을 듣고 나서도 자력으로 지킬 수 있다고 말하는 거지.
현재 유럽에서 프랑스 왕국이 타타르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보다는 침묵하거나 고개를 젓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부정할 이는 적다는 것은 밀사 ‘더그 리들리(Doug Ridley)’도 잘 알고 있었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프랑스와 전면전만은 피하기 위해서라도 영국은 몽골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너희의 도움이 법국과의 약조를 어길 정도라고 본다면 참으로 어리석고 오만하다고밖에 볼 수 없구나. 천조는 너희의 도움이 없어도 불란서나 북진의 잔당쯤은 능히 토벌할 수 있다.
너희가 신성하다고 말하는 북진(北秦 신성로마제국)이 어찌 되었는지 잊었느냐? 지금 도움이 필요하고 자비를 청하는 것은 너희거늘, 어찌 끝까지 숨기느냐?”
“…….”
더그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고, 야율초재는 속으로 웃었다.
‘역시 북진(신성로마제국)이 과거의 진(秦 로마제국)과 같은 성세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패자국(霸者國)이나 그에 준하는 위치는 분명하다!’
그러나, 몽골에게 있어서도 지금 영국의 요청은 이득인 것은 분명했다.
입으로는 교황청과의 인연을 운운했지만, 애당초 몽골에서 카르피니 사절단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점령한 신성로마제국 내의 화근을 제거하고, 중동의 문제도 해결한 뒤 재정비를 위한 시간벌기다.
그 문제들을 대강 해결한 지금, 몽골은 당장이라도 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 있었고, 명분까지 있다면 더욱 거리낄 것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었고, 안 그래도 황금씨족들도 서정의 재개하자는 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구유크의 본래 계획마저 왕검에 의해 막히면서 구유크는 정말로 다른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동방에 개입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이유를 대서 서정을 재개할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서정을 하면 방해가 될 프랑스의 동부 군이 빠지고 영국이 먼저 협공을 청한 것이다.
몽골인들은 서정에 더욱 안달이었고, 구유크도 사세를 보니 동방은 당분간 더 놔두어도 되겠다 싶어 서정 재개에 마음이 기운 상태였으니 야율초재가 그와 만나는 것도 저들의 청을 막는 것이 아니라 수락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러나 대칸께서는 자비로우신 분. 너희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결국, 야율초재의 으름장은 입으로는 너희의 요구 따위 들을 가치도 없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서정을 재개하는데 명분마저 챙겨 유럽의 단합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맥락이었다.
그 후, 야율초재가 내건 몽골의 요구를 들은 ‘더그 리들리’는 고대시절 스스로를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는 그리스 문명의 사람들이 페르시아에 갔다가 느낀 충격과 굴욕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왕을 보고 직접 오라 가라 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절이라니요. 귀국의 문화나 풍습을 모르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 행위는 무척이나 무례하고 굴욕적인 일입니다. 왕에 대한 대우가 아닙니다!”
“허허. 너희 스스로 천조와 비교하면 작고 약함을 알고 우리에게 기대면서, 그에 대한 자세를 갖출 생각이 없단 말이냐?”
밀사는 즉답을 피하며 연기하려고 했지만, 야율초재는 느긋하게 ‘시간 끌어봐야 너희만 X 되지. 우리가 X 되는 건 아니니까. 마음대로 해.’라는 자세를 유지했다.
발등에 붙은 불부터 꺼야 하는 영국의 밀사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대신 당장에라도 군대를 진군하여, 프랑스군과 싸워야 한다는 조건하에 요구를 받아들인다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몽골은 기다렸다는 듯 서정군 7만을 프랑스에 투입시켰다.
계묘년(癸卯年 1243년). 고려 고종 30년, 몽고 구유크칸 3년. 남송 순우(淳祐) 3년. 8월 18일.
몽골의 서정이 재개된 것이다.
#작가의 말
*작중 헨리 3세의 반응이 나온 시기는 427화 4부 58장(문피아 연재 기준)쯤입니다. 90화 넘어서 겨우 다음 반응을 적는군요.
**더그 리들리는 작중 창작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