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71
71화. 65장 분리, 견제, 합일
“적도 이연년은 죽었다! 모두 병장기를 버려라!”
양익이 무력화되고 포위되었을 때, 이미 반란군은 전의를 거의 상실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수괴 이연년이 도주하고, 곧이어 이연년의 수급이 꽂힌 장창이 눈 앞에 보이자, 병사들도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는 무기를 놓고 항복하기 시작했다.
고려군도 그들을 전부 죽이는 것은 속현의 씨를 말리는 것과 다름 없음을 알아 항복을 받아주었다.
만약 그들이 저항했다면 모를까, 순순히 항복을 한다면 받아주라는 전투가 벌어지기 이전 세자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모든 반란군들이 무기를 던지며 손을 드는 것을 확인하는 동시에 병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드디어 전투가 끝이 난 것이다. 전투를 관전하고 있던 갈라전의 여진인 ‘아부한 두문’도 그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두 손을 치켜들었다.
“와아아아아!!!”
“고려국 만세! 만세! 태자 전하 천세!!”
“견훤 대왕 만세!”
“견훤 대….”
갑자기 들려온 견훤의 이름과 만세를 외치는 소리에 주변의 환호성이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만세는 황제에게만 바칠 수 있는 축수(祝壽)로 고려국에선 해동천자라고 불리는 고려 왕뿐이었다.
안 그래도 백제국의 부흥을 논하는 반란을 진압하였는데 그 명분 중 한 명인 견훤의 이름이 거론되며 만세라는 축수로 부르는 자가 나오자 분위기는 당연히 심각하게 차가워진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그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자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전하? 어찌하여 망국의 대왕에게 축수를….”
다름 아닌 세자가 만세를 내뱉은 것이다.
그러나 세자는 전혀 꺼림칙하게 여기지 않은 채 당당히 대답했다.
“이번 난은 백제국과 고려국의 분쟁이 아니다. 백제국 대왕이자 태조 황제의 상보이신 견훤 대왕의 이름을 더럽힌 추악한 도적을 쓰러트린 전투이니 당연히 견훤 대왕에게도 축수를 보내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하오나 본래 만세는 천자만이 받을 수 있는 축수이옵니다. 또한 태자 전하께서 태조 황제의 상보(尙父)이시자 백제국의 대왕인 견훤 대왕님을 흠모하시는 것은 모르진 않으나 지금 대왕님의 존성대명이 거론되어 반란이 일어난 이상 만세의 축수는 과하다 사료되옵니다.”
김방경도 이것은 세자가 너무 나갔다 싶었는지 만류하자 세자도 머리를 긁적이더니 축수를 수정했다.
“그리 말한다면 알았다. 허나 견훤 왕께서는 태조께서도 인정한 호걸이시며, 아조에서도 높은 어른이시니 축수를 받음이 옳다. 그러니 천세로 하되 축수는 하도록 한다.”
“하오나….”
“…태, 태자 전하 천세! 대고려국 태조 폐하 상보 어르신 천세! 대고려국 만만세!!”
세자의 대화에서 눈치를 보던 반란군에 붙어 있다가 항복한 백성 한 명이 벌떡 일어나 갑자기 두 손을 들며 천세,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고, 그를 시작으로 너도나도 세자와 견훤, 그리고 고려국을 향해 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고려의 병사들도 처음에는 얼떨떨했으나 이내 세자가 그 축수를 손을 들어 받아주는 것을 보곤 함께 축수를 시작했다.
“견훤 대왕 천세! 태자 전하! 천세! 황제 폐하 만세!!”
“와아아아아–!!”
방금 전까지 창칼을 나누던 병사들이 하나가 되어 함께 천세, 만세를 부르짖는 그 광경은 참으로 기묘하면서도 신기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 * *
승리는 승리이고, 이제 해야 할 것이 있다.
“죄인을 끌어내어라!”
“예이!”
병사들이 나주 목사 임복항을 끌고 왔다.
결박된 채 끌려오게 되자 그는 사시나무 떨 듯이 고개를 숙이며 내 시선을 피했다.
“네 죄를 알겠느냐?”
“저, 전하! 소, 소신은 억울하옵니다!”
“억울… 하다?”
내 물음에 나주 목사는 갓 태어난 새끼 망아지처럼 떨며 말했다.
* * *
“과연 그래서 항복을 하였다고?”
설명을 전부 끝낸 그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신은 결단코 역도들에게 호응한 것이 아니옵니다.”
나주 목사의 자초지종과 우여곡절의 견공소리 설명은 나의 심금을 충분히 울렸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견공 자제분 같은 그의 처우를 어찌할지 친절히 말해주었다.
“저 역적 놈을 끌고 가라!”
“전하! 전하–!! 억울하옵니다! 신은 억울하옵니다!!”
“닥쳐라! 내가 이곳에 오는 동안 역도들에게 강제로 징집된 속현의 조사를 끝냈노라! 불과 반나절도 되지 않아 내가 이끄는 군이 도착하였거늘, 1천하고도 5백이 넘는 병력들과 나주의 장정들을 놔두고 지원군을 못 기다린다고 항복했단 말이더냐!”
“전하! 그, 그것은 전하의 군이….”
“닥치지 못하겠느냐! 그래서 항복을 하였다니 네놈이 그러고도 나라의 녹을 먹는 관료란 말이더냐! 귀주성의 장졸들과 충주의 노별초들은 그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저항하여 성을 지켰다. 역적이 대군이라면 병사들과 백성들을 독려하고 사기를 진작시켜 힘껏 싸우게 하는 것이 너의 직책이거늘, 태조 황후(장화왕후)의 고향을 관리하는 자가 겁을 먹고 열어준 것을 어찌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느냐! 또한 네가 진정으로 나라의 충신이었다면 도적과 우군이 대처한 시점에서 성문을 열어 적의 후미를 쳤어야 했다. 그런데 어찌 마지막에 전세가 다 결정이 되고 나고서야 겨우 창을 다시 바로 잡은 것만으로 충정을 운운하고 억울하다고 논한단 말이더냐!”
관아 벽 너머에서 벽에 매달려 이를 지켜보던 백성들도 나의 말에 웅성이기 시작했다.
“네놈의 그 어리석은 선택 하나로 나주성은 반역향이 되고 성내 모든 백성들과 장졸들이 역적의 수하가 되고 만대에 손가락질을 당할 뻔하였다! 그것만 하여도 내 너를 절대 용서치 않을 이유로는 충분하다!”
반역향으로 낙인이 찍힌다면 그 취급이 얼마나 고역인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엄청난 위험천만한 위기에 있었음을 새삼 직접 듣게 된 나주의 백성들은 목사를 죽일 듯이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제야 목사도 미친 듯이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저, 전하! 용서,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신은 그저, 그저 헛된 희생을 피하고자….”
“듣기 싫다. 끌고 가라! 너 때문에 나주 전 백성 아니, 전라도의 전 백성들이 입었을지 모를 누명과 피해를 생각하면 결코 용서할 수가 없다!”
“즈으으언하아아아아—!!!”
임복항은 결국 비명을 지르며 끌려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주변 백성들이 환호하며 기뻐했다.
“처, 천세! 천세!”
“태자 전하 천천세!”
“태자 전하! 천세!! 태자 전하 천세!! 고려국 만세!”
환호성을 들으며 속으로 임복항의 일을 잊기로 하고 지금 해결된 일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란이 일어나고 나주까지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놀란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용서할 수 없다.
이연년이라는 녀석이 멍청해서 유분수지. 만약 저들이 나주를 점령하기 전에 해도(바다 섬)를 먼저 점령했거나 혹은 해도로 도주했다면 상당히 귀찮아질 뻔했다.
전라도는 섬이 많아 거기다 경상도 만큼은 아니지만 전라도에도 양마장이 있기도 하고, 섬으로 건너면 저들을 완전히 소탕하기 위해선 바다를 건널 군선도 마련해야 했다.
거기에 서해를 통해 가는 조운로를 노리기도 편해 여몽 전쟁에서 삼별초들이 첫 수도를 진도로 삼았을 정도다.
만약 저들이 작정하고 숨거나 도주를 한다면 상당히 번거로웠을 것이다.
‘역사가 개변된 게 이로운 쪽으로만 일어난다고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이번에 결정 났으니 반란이 이것에서 그친다고 장담할 수도 없고, 이후 최가 같은 놈들 처리 후 처박아둘 것도 염두에 두자면 슬슬 따로 수용할 교도소 같은데 준비해야 할 것 같구나. 어디 들어가는 것도 힘들지만 들어가서 나오기도 힘들고 쉽게 자생도 불가능한 섬 같은 곳 없으려나? 아니다. 그것은 조정에 한번 건의하기로 하고 맡기기로 하고 나는 옛 백제 백성들의 민심과 우려를 달래는 것이나 신경 쓰자. 어디 보자. 어설프게 겁박하는 것보단 견훤을 통해 옛 백제의 위상을 인정하되 삼한이 하나임을 논하는 것이 낫겠지?’
참고로 이 백제 부흥을 자칭하는 이연년의 난과 지금 도주한 최산이 아직도 이어나가는 신라 부흥 운동인 동경의 난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둘 다 옛 망국의 부흥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선 같을지 몰라도, 동경의 신라 부흥 반란은 고려 역사상 숱하게 일어난 일들인데 비해 이 백제 부흥 운동은 이연년의 난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말하자면 동경과 달리 전적(?)이 낮은 셈이다.
무엇보다 이곳 나주는 어디까지나 견훤이 비장(裨將)으로 발령 나 서남해 호족들을 포섭, 정복할 때 들어온 초창기에나 백제 영토지, 비뇌성 전투(卑惱城 戰鬪) 이후 본격적으로 후고구려, 고려와 자웅을 겨루기 시작하자 후고구려, 고려에 빼앗기고, 탈환하고를 반복했다.
즉, 나주를 경주처럼 격하시킨들 억제에는 큰 효과도 없고 그렇다고 연관도 없는 전주목을 격하시키는 것도 사리에는 맞지 않고, 되려 애꿎은 백제계 백성들의 반감만 살 뿐이란 것이다.
그런 대처는 정말 안 하는 것만도 못하다. 그런 강경책보다는 유화책으로 견훤을 추켜세우고 그런 견훤이 인정하고 삼한을 일통하고 상보로 인정한 왕건의 위상도 높이는 식으로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고려가 백제 땅들에는 유화책을 쓰고 용서한 것은 태조가 인정해 준 견훤의 백제이기에 인정한다는 것을 가야겠지. 그렇다면 이연년처럼 감히 백제 부흥을 운운해도 함부로 붙지는 않을 테니까.’
어설프게 백제 부흥에 찬조했다가는 고려가 인정한 견훤의 백제를 부정하는 꼴이 될 것이니 될 후백제 백성들에게 반발을 살 것이다.
고려가 전국을 온전히 지배를 하기 위해선 고려이기 이전에 삼한이라는 하나의 테두리임을 강조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부흥운동을 막기 위해선 경상도에서는 신라계는 가야계로 견제하고 전라도에서는 백제를 놔두되 후백제의 왕인 견훤을 더 우대하며 후백제계로 하여금 구백제와 다르다는 식으로 견제시켜 세력을 줄인다.
백제의 영토가 크고 명분이 확실하다 해도 후 백제 강역의 백성들이 찬동하지 않는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혼란해하는 이들에게는 다시 삼한의 테두리를 강조함으로써 부흥 운동의 명분 자체도 줄인다.
‘할 수만 있다면 이연년의 목을 강화도로 보내기 전에 전주와 견훤대왕릉에 들고 가 참배(參拜)라도 하여 더욱 선전하고 싶은데….’
세자인 내가 견훤을 존숭하는 모습을 보이면 백제계도 불만을 가지지는 못할 것이다.
되려 반역과 연관된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전주, 나주 등 옛 구(온조 백제), 후(견훤 백제) 가리지 않고 모든 백제 측도 나를 손가락질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포로로 잡힌 이들 중 적들에게 강제로 징집된 자들은 그대로 돌려보내도록 하라.”
전투에서 잡은 포로들을 모조리 데려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내게 그럴 권한도 없을뿐더러 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다.
이들은 이연년에게 점령된 각 주, 군현들에서 강제로 끌려온 장정들이다.
이들을 모조리 데려가면 누가 밭을 갈고 세금을 낸단 말인가? 나주의 모든 속현들을 폐촌으로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우선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을 먹일 군량도 구하기가 부담이 장난이 아니다. 그런 만큼 돌려보내는 것이 맞으리라. 다만….
“그들 중 과인을 따라 호국의 임무를 짊어질 자 있다면 데려가도록 한다?”
입대 권유를 하는 것은 문제없으리라. 굳건한 노예…. 가 아니라 나는 일꾼이 필요하다!
* * *
“그저 죄를 묻고 벌을 내리기만 해서는 아니 된다. 저들이라고 어찌 원해서 창칼을 들었겠느냐. 허나, 위에 있는 자. 이런 일이 일어나서도 용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변명해서는 안 되지. 하물며, 수령이라는 자가 약한 소리를 내며 저런 도적들에게 문을 여는 것은 절대 아니되지. 아니겠느냐?”
“옳으신 말씀이시옵니다, 전하.”
“내가 그대를 놔둔 것은, 그대가 목사가 항복하는 것에 반대했다는 보고를 들었기에 우선 목사만 벌하였으나 다음번에도 그럴 것이라 절대 생각지 마라. 이것은 과인의 경고로다.”
내가 굳은 표정으로 당부하자 부호장인 시팔은 잔뜩 굳어진 태도로 그렇겠다고 답했다.
주도하진 않았으나 결국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목사와 함께 벌하여야겠으나 일단 반대를 하고 목사 놈이 번갯불로 콩 볶듯이 항복했다는 점을 정상 참작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읍사의 부호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호장이 자리를 비운 이 상황에서 당장 처리하였다가는 애로사항이 꽃핀다는 것도 한몫했고 말이다.
그러니 어디 한번 두고 보자. 이후 반란이나 변란이 일어났을 때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지 아니면 달라지는지….
“명심 또 명심하겠나이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과인이 듣기로 이곳 나주에는 남조(南朝: 남쪽의 왕조)에서 건너온 자들이 기거하고 있다고 들었다.”
“혹여 주 선생과 그 문하생들을 말씀하시는지요?”
“남조에서 한림학사로 있다고 온 자를 말한다면 맞다.”
“예. 있사옵니다. 불러오면 되겠습니까?”
지금 내가 말한 주선생이라는 사람은 1212년 남송에서 고려로 귀화한 남송의 관인인 ‘주잠’을 말한다.
저 시기 금나라의 선종은 몽골과의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남송을 쳤는데 이 때문에 남송은 다시 전란에 빠지게 되었고, 주잠은 그때 가솔들과 문하생 도성하(陶成河), 두행수(杜行秀), 섭공제(葉公濟), 유응규(劉應奎), 조창(趙昶), 주세현(周世顯)과 진조순(陳祖舜) 7학사를 거느리고 뱃길을 통하여 고려로 망명해 온 것이다.
이렇게만 본다면 평범한 유민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잠에 대해 파고 들어가 본다면 은근히 비상한 배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주잠 본인만 하여도 남송의 한림원에서 한림학사로서 일하다가 한림원태학사(翰林院太學士)와 비서각직학사(祕書閣直學士)에 이르렀다.
여기서 한림학사(翰林學士)만 하여도 요직에 속하고, 직학사(直學士) 경우 정3품인 고관에 속하며 태학사(太學士)에 이르러선 정1품에 속하는 매우 높은 위치다.
물론, 고려 기준이니 남송에서는 다르게 취급받을 수 있지만 결코 낮은 위치는 아닐 것이다.
거기에 부친과 조부들 또한 작호를 받았다고 하니 이견 없는 명문이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주잠의 증조부는 그 유명한 성리학을 집대성시키고 주자학을 창안하여 조선에서 공자와 맹자와 더불어 제일의 성인으로 존숭하던 ‘주자(朱子) 주희’이기도 했다.
“한번 만나봐야겠구나.”
주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만나봐야 한다. 설령 그를 기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 * *
“겨우 벗어날 수 있었나.”
이제 안도할 수 있다고 여겼는지 중은 땀을 닦으며 숨을 고르고는 서쪽을 바라보았다.
“이연년의 혈기와 집념을 높이 사서 대왕으로 추대하였건만….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이야. 설마 고려 세자가 이렇게 뛰어났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설마 세자는…. 아니, 지금은 나의 처지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구나. 어찌 벗어난 것은 좋으나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참수는 피하기 힘들 터, 어서 거처를 마련해야 하는데….”
염주를 만지며 한참을 고민하던 중은 결국 각오를 하고는 발을 움직였다.
“이제 최산에게 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이연년 패거리들을 훈육하고 인도하던 중. 보을은 한두 번의 패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경상도로 발걸음을 다시 재촉하기 시작했다.
“후우. 계획에는 차질이 생기긴 했으나 내가 할 일은 바뀌지 않았다. 모든 것은 대한을 위해 움직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