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85
교랑의경 185화
“유규는?”
군관 하나가 병영으로 들어와 소리쳤다. 병사 둘이 달려와 고개를 숙인 채 서로 눈치를 살폈다.
“유 대장은 집에 일이 있어서, 못 오셨습니다…….”
두 병사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군관이 화를 버럭 냈다.
“집은 개뿔! 일은 개뿔! 대답해라. 또 어느 기루에 자빠져 있는지!”
두 병사가 겁을 먹고 얼른 대답했다.
“기루가 아닙니다. 그게, 그러니까, 병을 치료하는 낭자를 보고 계십니다.”
군관은 더욱 길길이 날뛰었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 당장 가서 전해라. 거리 순찰 못 하겠으면, 성문 지키는 곳으로 보낸다고 해!”
군관이 씩씩거리며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군관이 나가자 나머지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게, 벌써 사흘째잖아. 대장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지?”
“그 신의가 정말 손을 도로 붙였나?”
“그러지 말고 가서 확인해 보자고.”
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더 많은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잘린 손을 붙인다는 얘기가 나오자 병사들은 더욱 웅성거렸다.
“사기꾼이네, 그게 말이 되나!”
확실히 말이 안 되긴 하지…….
“근데 죽은 사람도 살리는 신의잖아. 목숨도 구하는데 손 하나가 대수겠나?”
“맞아, 맞아. 나도 전에 그런 얘기를 들어 봤어. 하주에 사는 어느 여인의 턱이 못쓰게 되자, 의원이 다른 이의 턱을 잘라다 붙여서, 그 후로 아주 잘 살았대.”
“정말 그런 일이? 거 신기하구먼!”
“여기서 입씨름할 것 없이 가서 보면 알 거 아니야. 어차피 성 안에 있는데.”
그 말에 병사들은 우르르 몰려나갔고, 그날 밤 일을 목격한 병사들의 안내에 따라 옥대교로 향했다.
같은 시각 옥대교의 저택 앞.
말에서 내린 주육낭이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은 문간방에 있는 유 대장이 보였고, 이어 회랑 아래에 있는 송씨댁이 보였다. 두 사람은 여전히 변함없는 자세로 꼼짝도 않은 채 굳게 닫힌 대청 문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시녀가 쟁반을 받쳐 들고 회랑 아래를 총총 지나갔다.
“아씨, 도련님, 식사하세요.”
시녀의 목소리는 발걸음처럼 경쾌했다. 서재 문을 활짝 열자 그 안에 마주 앉아 있는 남녀가 보였다.
“수소문해 봤지만 아무 단서도 없어. 태평거에도 아무 일 없고, 시비 거는 사람도 없던데.”
서무수가 말했다.
“단서는 있든 없든 상관없어요.”
정교랑은 시녀가 시중을 드는 대로 손을 닦고 젓가락을 들었다.
“오라버니, 먹어요.”
서무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젓가락을 들었다. 시녀가 고개를 들어 마당에 서 있는 주육낭을 쳐다봤다.
“주 공자가 왔네요.”
시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정교랑과 서무수가 쳐다봤다.
“매일 올 필요는 없어요.”
정교랑이 말했다.
난 너처럼 속 좁은 사람이 아니거든. 네가 고개를 숙이고 도움을 청한 이상, 당연히 와야지. 주육낭은 굳은 얼굴로 정교랑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회랑 아래로 가 앉았다.
대청 문이 안에서 열리자 유 대장과 송씨댁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반근을 쳐다봤다.
“아씨.”
반근은 기쁜 목소리였다.
“깼어요, 깼다고요.”
송씨댁은 흐느끼며 앞으로 몇 발짝 걸어가더니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할 뿐 그 안으로 들어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깼으면, 돌아가도 돼.”
정교랑은 젓가락을 계속 움직이며 대꾸했다. 반근은 네 하고 대답한 후 고개를 돌려 초췌한 송씨댁을 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아씨, 송씨댁이, 들어가 봐도 돼요?”
“돼.”
그 말에 송씨댁은 흐느끼며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다리의 상처는 이미 반근과 시녀가 싸매 준 후였지만, 심리적 원인 때문인지 먹고 마신 게 거의 없어서인지 제대로 걷지 못해 기어갈 수밖에 없었다.
반근이 손을 뻗어 부축했다. 송씨댁은 벌써 구르고 기면서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대청 안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사건이 일어난 후, 송씨댁이 드디어 울음을 토해낸 것이다.
“너도 가 봐.”
정교랑이 옆에 있는 시녀를 보며 말했다. 시녀는 헤헤 웃고는 얼른 치마를 들고 뛰어갔다.
송씨댁은 병풍 뒤에서 이대작의 오른손을 들고 엉엉 울었다.
“있네요, 아직 있어요.”
송씨댁이 웅얼거렸다. 이대작 얼굴의 상처는 많이 나은 상태였고, 눈도 뜰 수 있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있소, 있어.”
이대작도 흐느끼며 말했다.
“네, 있어요. 송씨댁이 들고 온 덕분이에요. 다시 찾으러 갔거나 이미 묻은 후였으면 큰일 날 뻔했죠.”
반근 역시 눈물이 글썽한 채 말했다. 송씨댁은 더욱 목놓아 엉엉 울었다. 바닥에 엎드려 흰 천으로 꽁꽁 싸매 놓은 이대작의 오른팔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숨이 넘어갈 듯 오열했다.
“움직일 수 있겠소?”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손을 봉합하는 거라면 누군들 못할까. 핵심은 전처럼 움직일 수 있느냐였다.
“아직은 안 돼요. 열흘이나 보름은 기다려야 한대요.”
“전과 똑같이 될 수 있다고?”
유 대장의 호흡이 가빠졌다. 반근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건, 저도 몰라요.”
거기까지 말한 반근은 바닥에 꿇어앉아 손을 뻗어 이대작의 오른손을 가리켰다.
“보세요. 보기에는 전과 똑같아 보여요. 좀 붓긴 했지만 혈색도 돌고 온기도 있어요.”
반근은 손을 뻗어 이대작의 오른손을 가볍게 주무르며 말했다. 유 대장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보았다. 반근과 시녀가 살살 만지라고 소리쳤다.
뜨겁고! 부드럽다!
차디차지 않아. 푸르딩딩하지 않아. 못쓰게 되지 않았다고!
살아 있는 것이다! 피가 돌고 영양이 공급되고 있어! 진짜 붙였구나!
“나가요, 나가!”
시녀와 반근이 씩씩거리며 유 대장을 밀며 몰아냈다.
평소라면 이런 계집 둘은 고사하고 장정 둘이 달려들어도 결코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유 대장은 넋이 나간 상태여서 시녀와 반근에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유 대장이 와하하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주육낭은 미간을 찌푸리며 유 대장을 노려봤다. 주육낭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유 대장이 이번에는 목놓아 울며 뒤돌아 달려나갔다.
“있다, 있어.”
유 대장의 외침이 멀리서 전해졌다.
“놀라서 정신이 나갔나? 무식하긴!”
금가아가 입을 삐죽거렸다.
확실히 놀랄 만한 일이긴 하지. 마당에 있던 사람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저 군인이 정신줄을 놓을 만도 하다고 여겼다.
서무수 역시 대청으로 가 이대작을 살폈다. 본인도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는 신기한 경험을 한 당사자였지만, 이런 일을 직접 목격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금가아가 서둘러 마차를 빌려왔다. 팔에 부목을 댄 이대작은 부축을 받아 일어선 후 홀로 걸어가 마차에 올랐다. 오히려 송씨댁은 다리에 힘이 풀려 시녀와 반근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사흘 후에 보러 갈게요.”
정교랑이 말했다. 이대작 부부는 마차에서 몸을 굽혀 인사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 우린 이만 갈게.”
서무수도 마차에 올랐다.
“두 사람 데려다주고, 난 다섯째, 여섯째와 같이 올게.”
이번엔 이대작이 당했지만 다음은 누굴지 알 수 없으니, 어쨌든 매사 조심하는 게 옳았다.
“여긴 당분간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정교랑은 그렇게 대답하며 주육낭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회랑 아래에 뒷짐을 진 채 서 있던 주육낭의 몸이 굳어졌다. 등줄기로 불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저 사람이 있으니, 괜찮을 거란 뜻일 터…….
주육낭은 콧방귀를 뀌며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뒷짐 진 손을 저도 모르게 만지작거렸다.
“이 사람 손 똑똑히 봤죠?”
정교랑의 물음에 주육낭이 시선을 돌렸다.
“뭐 볼 게 있다고.”
주육낭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와서, 봐요.”
정교랑은 주육낭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이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햇빛을 받은 소녀의 미소는 순간 눈부시게 빛났다. 그 경직돼 있던 얼굴과 눈도 부드러워지며 생기가 돌았다.
목소리는 여전히 딱딱했지만 미소를 짓고 있으니 훨씬 고와 보였다. 주육낭은 순간 얼굴이 붉어져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시키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마차에 있던 이대작은 정교랑의 말에 얼른 바깥쪽을 향해 앉으며 손을 꺼내 놓았다. 주육낭이 몇 걸음 밖에서 힐끔 쳐다봤다.
“어때 보여요?”
정교랑이 물었다. 스승의 칭찬을 갈망하는 학생 같았다. 주육낭은 또다시 콧방귀를 뀌며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아주 잘했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너 대단한 거 안다고. 잘났다고!
주육낭은 미간을 찌푸리며 정교랑을 쳐다봤다.
“나는, 잘린 손도, 붙였어요.”
정교랑은 주육낭을 보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잘린 손을요.”
잘린 손도 붙였으니, 불구인 다리도 당연히 고칠 수 있죠.
주육낭의 머리에 꽝 하는 소리가 나면서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온 불이 정수리를 뚫고 나가는 듯했다.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악독하구나! 참으로 악랄해!
“정교랑! 해도 너무하잖아!”
주육낭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신에 있는 뼈에서 으드득 소리가 나는 듯했다.
* * *
주육낭은 눈앞에 있는 여인을 쳐다봤다. 아니, 여인이 아니다. 악마지.
자신을 부른다는 소리에 부랴부랴 달려와서 사흘 동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곳을 지켰다. 이곳에 오기 위해 모친을 속이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전부터 혹여 일이 생기면 부르지 않을까 하면서도 모친이 못마땅해하며 막을까 봐 사환들에게 각별히 주의하라고 수시로 당부했다. 갑작스럽게 위기가 닥치면 이 외롭고 기댈 곳 없는 혈육을 지켜 줘야 하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가슴에 품고 따뜻하게 해 주려던 이는 다름 아닌 독사였다. 차갑고 무정하고 냉혹한 독사!
감격하여 기쁘게 달려온 요 며칠의 일 역시 그저 웃음거리에 불과했다. 우습고 가엾고 딱한 웃음거리! 해도 너무하는군! 해도 너무해!
세상에 이리 악독한 여인이 또 있을까!
주육낭은 얼굴이 시뻘게져 주먹을 부르쥐었다. 이 여인을 한입에 집어삼키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서무수가 가장 먼저 마차에서 뛰어내려 정교랑 앞을 막았다. 서무수는 딱히 무슨 말을 건네거나 위로하지 않고 경계 태세를 취하며 주육낭을 쳐다봤다. 시녀와 이대작 등은 갑작스러운 일에 놀라 멍할 뿐이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네.
“이 기쁜 소식을 잊지 말고, 그 친구와 나눠요.”
서무수 뒤에 선 정교랑이 말했다. 주육낭은 휙 돌아서더니 옆에 있던 해당화 나무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나무가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자 시녀와 반근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서무수가 이성을 잃은 이 젊은이를 붙잡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주육낭이 휙 몸을 돌려 달려갔다. 자신이 말을 타고 왔다는 사실조차 잊었는지 그대로 내달렸다.
때마침 이곳으로 오던 사람은 하마터면 주육낭과 부딪칠 뻔했다. 다행히 옆에 있던 사람이 민첩하게 엄호했다.
“저 자식이…….”
호위들이 욕을 내뱉을 무렵 주육낭은 벌써 저만치 달려가 인파 속으로 들어간 후였다. 주육낭이 이성을 잃고 달려가는 바람에 사람이며 말이 이리저리 뒤섞이면서 다들 욕을 해댔다. 시끌벅적한 소란은 곧 멀어졌다.
* 작가의 말: 턱을 잘라 붙였다는 이야기는 홍매(洪邁)가 엮은 설화집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민간에 퍼진 기이한 사건과 괴담을 모았다 보니 황당하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