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86
교랑의경 186화
주육낭은 자신이 누구를 밀쳤는지조차 몰랐고, 소리치고 욕하는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달음에 아주 멀리까지 달려왔을 때 누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육, 뭐 하는 거야?”
그 목소리에 주육낭이 우뚝 멈춰 고개를 들었다. 마차에 탄 진 공자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 잘 만났네, 찾고 있었는데. 안 좋은 소식이 있어서 말이야. 방금 거리에서 자네 모친을 만났는데, 자네가 어디 갔느냐고 물으시더군. 내가 바로 둘러대긴 했는데 보아하니 안 믿으시는 눈치였어.”
주육낭은 입꼬리를 올리는 진 공자의 웃음을 보는 게 욕을 듣는 것보다 더 거북했다.
“자네도 참, 내 명의를 대고 사흘이나 거짓말을 할 거면 나한테도 귀띔을 해 줘야 할 거 아닌가. 들키면 자업자득인 줄 알아.”
계속 웃으며 떠들던 진 공자는 그제야 주육낭의 표정이 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자네 왜 그래? 누구한테 맞았어?”
웃고 있던 진 공자가 웃음을 멈추고, 표정이 일그러진 소년을 쳐다봤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진 공자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잘린 손도, 붙였어요…….
이 기쁜 소식을 잊지 말고, 그 친구와 나눠요…….
그래, 좋은 소식이지. 진 공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한 번 더 증명했으니까. 유일한 희망이자 간절한 희망인데, 말하지 않을 수 없지.
하지만 일부러 이러는 거잖아, 일부러. 말하지 않으면 괴롭고, 말하면 더 괴로우라고.
주육낭은 주먹을 꽉 쥔 채 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육낭, 날 친구로 여기기는 하는 거야?”
진 공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친구라…….
“십삼, 내가 부탁하면, 들어줄 수 있겠어?”
주육낭이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진 공자가 웃었다.
“그야 무슨 일인지 봐야지. 난 아무 약조나 하진 않아.”
주육낭이 입을 삐쭉거렸다.
“나랑 친구 안 할 수 있겠나?”
깜짝 놀랐던 진 공자는 곧 무슨 일인지 깨닫고 주육낭을 보고 웃으며 지팡이를 후려쳤다.
“이 아둔한 녀석이 또 긁어 부스럼을 만들러 갔었네! 또 정 낭자한테 우롱당했지? 내려놓지도 못했으면서 정 낭자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 말라니까!”
내려놓으라니, 어떻게 내려놔. 주육낭이 쓴웃음을 지었다.
“십삼, 그 애가 방금 손이 잘린 사람을 치료했어.”
진 공자는 멈칫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주육낭의 말을 제대로 못 들은 듯했다.
“잘린 손을…….”
주육낭은 손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 애가 다시 붙였다고.”
잘린 손을, 붙였다……. 그렇다면 못쓰는 다리도…….
주육낭은 놀란 진 공자를 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주육낭이 뛰쳐나간 후, 마당은 다시 조용해졌다. 시녀와 반근 외에는 무슨 일인지 아무도 몰랐다.
어떻게 말 한마디에 소년이 저렇게 이성을 잃고 광분하지?
그렇다고 무슨 일인지 묻지는 않았다. 서무수는 이대작을 데려다준 후 돌아오겠다고 다시 말한 후, 서둘러 마차를 몰았다. 마차가 출발하자 금가아는 대문을 닫았고, 마당은 예전으로 돌아갔다.
정교랑이 뒤돌아 반근과 시녀를 쳐다봤다. 두 사람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내가 너무 야박한 것 같니?”
정교랑의 물음에 시녀와 반근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손을 내저었다.
“아니요, 아니요. 아씨가 어딜 봐서 야박한 분이에요!”
시녀와 반근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정교랑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하지 않고 발을 들어 걸음을 옮겼다.
“대청을 치울게요.”
반근이 말했다.
“필요 없어. 서재에서 지낼 거야.”
여건이 허락하는 한, 아씨는 먹고 자는 일에 요구가 엄격한 분이다. 이대작이 사흘이나 머물었던 곳이니 거기서 지내지는 않을 것이다. 반근은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럼 물건을 서재로 옮길게요.”
“내가 도와줄게.”
시녀도 거들었다. 시녀와 반근이 웃으며 화랑 아래로 왔을 때쯤, 저쪽 담벼락에서 쾅쾅 소리가 들렸다.
“저 자식이 또…….”
시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지만 담벼락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얼마 안 가 소년이 몸을 내밀었다. 이쪽을 보는 정교랑의 모습이 보이자 소년은 손을 흔들며 웃었다.
“밥은 먹었어요?”
지금이 몇 신데 밥을 먹었냐고 물어. 다들 너처럼 게으른 줄 알아? 시녀는 콧방귀를 뀌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반근도 입을 오므리며 웃고 뒤따라 들어갔다. 곧이어 여인이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힘겹게 나왔어요. 낭자가 떠나 버린 줄도 모르고 있을까 봐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뭐래, 알아보면 되지. 어차피 진짜 떠났어도 어디로 갔는지 알아낼 거면서. 시녀는 입을 삐죽거렸다.
“당분간은 안 떠나요.”
정교랑의 말에 진안 군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떠날 거면 가기 전에 잊지 말고 나한테 인사해요.”
“네.”
“떠나면 좀 아쉬울 것 같네요.”
진안 군왕이 또 웃었다. 대청 안에 있던 시녀는 붓꽂이를 흔들며 흥흥 콧방귀를 두 번 뀌었다.
“아직은 안 떠나요.”
아직은 안 떠나니까 아쉬워하고 말 것도 없어요. 나중에 떠나더라도 아쉬워할지 안 할지는 모르는 일이죠. 그러니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진안 군왕은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담벼락 위에 팔을 걸쳤다.
“아, 방금 낭자의 오라비가 울며 뛰어가는 거 봤어요.”
진안 군왕은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는지 흥미로운 듯 입을 열었다.
오라비? 주육낭? 그래. 아씨의 신분과 내력에 대해 다 알아낸 자니, 주육낭이 누구인지도 당연히 알겠지.
근데 주육낭이 울었다고? 안에 있던 시녀와 반근이 눈을 마주쳤다.
울기까지…… 하다니……. 아씨의 입은 참으로…….
“때린 거예요? 아니면 욕이라도 했나? 너무 가엾더라.”
진안 군왕이 웃었다.
“치욕을, 준 셈이죠.”
정교랑은 돌아서며 손을 올렸다.
“야박한 말과, 야박한 행동으로요. 누가 듣더라도, 날 야박한 사람이라 여길 거예요.”
진안 군왕이 하하 웃었다.
“그렇진 않아요. 낭자한테 야박한 말을 듣는다면, 좋은 일이겠죠.”
좋은 일이라고? 시녀와 반근은 정리 중이던 손을 멈추고 이해할 수 없다는 눈길로 서로를 쳐다봤다.
야박한 것도, 좋은 일일 수 있을까? 말만 번지르르해서는 점수 따려고 한 말이겠지? 시녀는 콧방귀를 뀌었다.
“무슨 뜻이죠?”
정교랑이 고개를 들고 진안 군왕을 보며 물었다. 진안 군왕은 빙긋 미소 지으며 손으로 턱을 괴고, 자신을 보는 소녀를 바라봤다.
“그때, 저 사람은 병이 깊어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지경이었어요. 곁에는 형제들뿐이고, 역참에서도 받아 주지 않아 쫓겨났죠. 그 어디에도 갈 곳이 없었어요. 7척 장신의 사내가 천명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는데, 내가, 그때, 왜 도와줬을 것 같아요?”
왠지 귀에 익은 말인데……. 시녀가 멈칫했다.
무슨 뜻이지? 반근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얼른 고개를 숙이고 침구와 자리 정리에 몰두했다.
“낭자는 말하는 게 야박해요.”
진안 군왕은 손을 바꿔 다른 손으로 아래턱을 괴었다.
“나한테는 더 야박했죠.”
시녀는 퍼뜩 깨달았다.
저 소년은 산골짜기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어깨를 쫙 벌리고 씩 웃었다.
“낭자, 나도 낭자가 구한 건데 그 일은 상쾌하지 않았습니까?”
“공자를 구한 건, 별로 상쾌하지 않았어요. 두 번은 구해야, 통쾌하다고 할 수 있죠.”
아침 햇살 속에서 그 소녀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두모를 벗었다.
“어쨌든 낭자의 야박함은 나한테 좋은 일이었어요. 낭자가 내 목숨을 구했으니까요.”
진안 군왕은 빙긋 웃으며 손을 내렸다.
그래? 반근은 손을 멈추고 뭔지 알겠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씨께서 저 소년의 목숨을 구하셨구나. 이번엔 시녀가 풉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
반근이 의아해하며 불렀다.
“일곱째 도련님이 있었다면 느끼는 게 좀 있었을 텐데.”
시녀는 나지막이 소곤대며 웃었다.
그 봉추라는 사람? 반근은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돈이 없는 게, 무슨 자랑스러운 일도 아닌데, 이렇게 당당할 건, 없잖아요.”
“아니, 돈이 있다고 사람을 업신여기면 되겠습니까.”
소녀는 무뚝뚝한 표정이었고, 냉랭하기까지 한 말투였다. 소녀의 말은 눈앞에 있는 사내를 구차하게 하고 속수무책으로 만들 뿐이었다.
“저들한테 돈이 없다니, 자네가, 저들에게 주게.”
하지만 소녀는 결국 그렇게 말했다. 소녀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시녀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담벼락 위의 소년은 또 뭐라 말하고 찬란한 웃음을 드러냈다.
“그 사람들이랑 무슨 관계예요?”
진안 군왕은 또 궁금한 듯 물었다.
저 자식은 왜 저렇게 질문을 해대? 알아내려고 마음먹으면 충분히 알 수 있잖아? 순진한 척하기는. 시녀는 투덜거리며 진안 군왕에게서 관심을 끄고, 서책을 옮기며 반근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시녀와 반근이 회랑 아래를 지날 무렵, 정교랑이 고개를 들어 담벼락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내 가족이에요.”
진안 군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이 정말 많네요.”
다소 부러운 눈치였다.
“북적북적하겠어요.”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아직 밥 안 먹었죠?”
정교랑이 처음으로 먼저 던진 질문이었기에 진안 군왕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네, 나올 기회 잡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라 밥 챙겨 먹을 겨를이 없었어요.”
“그럼 여기 와서 먹어요.”
진안 군왕은 이까지 드러내며 웃었다.
“그건, 낭자가 불편할 것 같은데.”
아이고, 고마워라. 저 자식이 아씨께서 불편하신 걸 알긴 아는구나! 서책을 정리 중이던 시녀는 콧방귀를 뀌면서도 귀를 쫑긋 세워 둘의 대화에 집중했다.
정교랑이 미소를 지었다.
“아무도 없고, 별일도 없는데, 불편하긴요.”
무심한 표정에 거칠고 갈라진 목소리를 가진 작고 여린 여자였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더없이 작고 약해 보였다. 그런데 귓가로 들어오는 그 말에는, 엄청난 기운이 느껴졌다. 그날 자신 쪽으로 몸을 기대며 두모를 벗던 그 모습과 같았다.
“공자를 구한 건, 별로 상쾌하지 않았어요. 두 번은 구해야, 통쾌하다고 할 수 있죠.”
그런 자신감에 그런 담담함이라니. 진안 군왕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근데, 내가 불편해서요.”
진안 군왕은 미안한 듯 말하고는 곧 무언가 떠오른 듯 말을 덧붙였다.
“이렇게 하죠. 음식을 이쪽으로 올려 줘요.”
그 말에 시녀는 서책을 내려놓고 옆에 있던 반근을 쳐다봤다.
“반근, 여긴 내가 정리할게. 넌 나가서 저 상전을 모셔.”
반근이 입을 오므리며 웃었다.
“알았어. 그럼 반근 언니, 수고해.”
시녀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