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12
교랑의경 212화
오후가 되자, 태평거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계산하고 나가는 손님들은 전부 기분 좋게 배가 부르고 취기가 올라 있었다. 몇몇은 손에 찬합을 들고 있기도 했다. 태평거에서만 특별히 판매하는 다과였다. 다과가 입맛에 맞는 이들은 태평거에 들를 때마다 몇 개씩 포장해 집에서 차와 함께 곁들여 먹었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잡담을 나누던 사람들은 다급한 말발굽 소리에 동작을 멈추고 뽀얀 먼지가 이는 큰길로 시선을 돌렸다.
“저렇게 많은 사람이 여기로 밥을 먹으러 온다고?”
손님들이 놀라 떠드는 사이, 열댓 마리 말과 마차 한 대가 태평거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말과 마차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하지 않고 태평거 뒷마당 앞에 멈춰 섰다.
손님들은 먼지가 다 걷힌 후에야, 말을 타고 온 사람들이 뒷마당의 문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무슨 일이 난 건가?
“걱정할 거 없다네. 여긴 부처님이 지켜 주시잖던가.”
놀라 불안에 떠는 손님들 사이에서 단골 하나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그는 남들보다 무언가를 더 알고 있다는 듯이 득의양양하게 덧붙였다.
“아무리 큰일이 일어나도 여기서는 다 해결된다니까.”
진소 상공 댁 자제들이 급히 말에서 내리고 진소 부인도 여종의 부축 없이 마차에서 내렸다. 뒷마당 문가를 지키는 주육낭의 모습이 진소 부인의 눈에 들어왔다.
주육낭 앞에 서 있던 진(秦) 부인이 말했다.
“주육낭, 난 은혜와 원한을 확실히 구분하는 사람이야. 지금 비켜서면 이 일은 주씨 가문과 무관한 일로 해 둘게.”
“부인, 지금은 치료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럼 네가 대답해 봐. 우리 십삼이, 정말 죽었느냐?”
진 부인이 물었다.
죽었냐고? 진 공자의 호흡은 내가 직접 확인했는데. 주육낭은 침묵을 지키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육낭, 난 네가 거짓말을 하는 거 한 번도 못 봤다. 네가 뭐라고 하든 다 믿어 줄게.”
“정교랑은, 죽을 사람이 아니면, 고치지 않습니다.”
진 부인은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네 말은 일단 내 아들을 죽여 놓고 다시 목숨을 구하고 있다는 게야? 그럼 난 살려 줘서 고맙다며 무릎 꿇고 빌어야겠네?”
주육낭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문 앞을 지켰다.
“십삼한테 혹여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제 목숨으로 갚겠습니다.”
주육낭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하자 진 부인은 혀를 찼다.
“네깟 목숨이 뭐라고! 네 집안 모든 사람의 목숨을 바친다 해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러고는 주육낭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놈을 매우 쳐라!”
진 부인은 서둘러 오느라 사환과 호위를 두세 명밖에 데리고 오지 않았다. 나머지는 전부 여종들과 몸종들이었지만, 진 부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 주육낭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육낭은 비처럼 쏟아지는 주먹질을 견디며 문 앞을 굳건히 지켜냈다.
“그만 때려라. 할 말이 있으면 말로 해야지!”
진소 부인이 뒤에서 외치면서 잰걸음으로 다가갔다. 진소 상공 댁의 두 아들도 데려온 이들과 함께 문 쪽으로 다가섰다. 진소 상공 댁에서 데려온 이들이 더 많다 보니 진 부인의 사람들은 금세 밀려났다.
“부인.”
진 부인은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진소 부인을 노려봤다.
“저 악인을 도우려고 아주 작정을 했네요!”
“십일랑, 정 낭자는 정말 그럴 사람이 아니야. 이번 일에는 분명 오해가 있을 거야.”
진소 부인이 간곡하게 부탁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지금 치료하고 있다잖아. 목숨을 살리는 게 제일 중요하지. 만약 네가 막무가내로 들어갔다가 마지막 기회조차 잃어버리면……. 십일랑, 설령 저들 열댓 명을 다 죽인다 해도 십삼 하나만 못하지 않은가.”
진 시강이 손을 떨며 관청에서 뛰쳐나왔다. 진 시강을 모시던 사환은 종종걸음으로 간신히 뒤쫓아왔다.
“대인, 대인, 말은 여기 있습니다.”
수발을 드는 하인들이 곧장 문을 나서려는 진 시강을 보며 외쳤다. 진 시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말 쪽으로 뛰어갔다.
우리 십삼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우리 십삼한테?
떨리는 손으로 말고삐를 쥔 진 시강은 말에 올라타는 데 몇 번이나 실패했다. 사환들이 진 시강을 도와 말을 잡고 부축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올라탈 수 있었다.
어렵사리 올라탄 말인데, 누군가가 진 시강의 말고삐를 휙 낚아챘다.
“진 대인, 내 말 좀 들어보십시오.”
진소는 초조한 얼굴로 소리쳤지만 진 시강은 단호하게 말고삐를 낚아챘다.
“어서 길을 안내해라, 어서.”
진 시강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듯 같은 말만 읊조렸다. 진소는 말고삐를 빼앗아 꽉 잡고 놓지 않으며 더욱 다급해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진 대인, 제발 내 말 좀 들으십시오.”
문 뒤에 있던 하급 관리들이 이런 구경거리를 놓칠 리 없었다.
“대인 말을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진 시강이 이내 진소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내 아들이, 아직, 내가 보러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소이다. 늦으면, 못 봅니다. 못 본다고.”
떨리는 목소리를 쥐어 짜내는 진 시강의 모습에 다들 코끝이 찡해졌다. 그런데도 진소는 고집스레 말고삐를 놓지 않으며 도리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듣기로는, 분을 못 이겨서라고 합니다. 진 대인, 정 낭자는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더군다나 십삼이 정 낭자를 도와준 게 있으니, 절대로 그 사람을 해칠 리 없습니다.”
진 시강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리 십삼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얼마나 가엾은 아이인데, 누가 그 애를 해친단 말입니까!”
진 시강이 진소를 내려다보았다.
“정 낭자가 어떤 사람이든 내 알 바 아닙니다. 고의든 아니든, 신선이든 요괴든 상관없어요. 십삼을 해친 자라면, 내 기필코 그 낭자를 죽이고 말 겁니다!”
진 시강이 말고삐를 다시 가져가려 하자 진소는 안간힘을 써서 고삐를 더욱 세게 쥐었다.
“대인, 기억하십니까. 전국 시대에 지극한 충심으로 인해 죽은 문지(文摯)의 이야기를요?”
진소가 한 글자씩 또박또박 내뱉자 진 시강이 멈칫했다.
말 여러 필이 태평거를 향해 달려오자, 뒷마당 문 앞에서 대치하고 있던 진소 부인과 진 부인은 이들을 맞이하러 나갔다. 진 부인은 말 대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진소 부인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진소가 문 앞을 내다보자 족히 열댓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아들 둘과 사환들, 그리고 주씨 가문의 철부지인 주육낭과 누군지 모를 사내들 몇 명이었다.
저 사내들이 정교랑의 의남매인가 보군. 진소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날 말릴 셈이에요? 저 사람들의 말을 들으라고요?”
한쪽에서 진 부인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진소 부부가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진 부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진 시강을 쏘아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뜸을 들이던 진 시강이 입을 열었다.
“어쩌면, 정말 오해일지도…….”
“오해고 뭐고 다 필요 없어요! 우리 십삼이 죽었다고요!”
진 부인이 울며불며 외쳤다. 진 부인은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지 진 시강의 옷깃을 힘껏 잡았다.
“우리 십삼이 죽었다는데…….”
그 모습을 본 진소 부인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모습으로 위태롭게 서 있기는 진소 부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 낭자가 꼭 고칠 수 있을 거야. 꼭 고칠 수 있을 거라고.”
진소 부인이 진 부인에게 몇 걸음 다가가 진 부인의 어깨를 쓸어주며 흐느꼈다. 진 부인이 갑자기 홱 밀쳐내며 문 앞으로 달려들었다.
“십삼을 봐야겠다. 내가 아들을 죽음으로 몬 게야. 내가 그 아이를 해쳤어. 죄는 나한테 있는데 왜 우리 십삼한테 벌을 내리는 거야! 관음보살님, 눈이 멀고 절름발이가 될 사람은 전데, 왜 우리 십삼을 해치신 겁니까!”
갑자기 달려온 진 부인 때문에 문 앞의 대오가 살짝 무너졌지만, 사내들은 금방 중심을 되찾았다. 여종들은 윗전이 사내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것을 막기 위해 서둘러 진 부인을 부축하며 말렸다.
연달아 이어지는 소란에 태평거를 찾은 손님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예리한 몇몇은 진소와 진 시강을 대번에 알아봤다. 뒷마당에 점점 더 많은 구경꾼이 모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죠.”
진소가 목소리를 낮춰 말하자 서무수는 재빨리 나서서 길을 안내했다.
“대인, 이쪽으로 오십시오. 저희가 평소에 쓰는 방입니다.”
진 시강은 여럿이 에워싸고 있는 문과 웅성거리는 구경꾼을 차례로 쳐다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손짓을 했다. 여종들이 거의 혼절 직전인 진 부인을 부축해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진소가 초조하게 물었지만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환과 나머지 사람들은 아직 뒷마당에 갇혀 있었고, 중간에 빠져나온 사환은 진 공자가 죽었다는 말만 들었지,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방 안에서 사건의 전말을 알 법한 사람은 주육낭이 유일했다.
하지만 방 안으로 불려온 주육낭은 시종일관 침묵을 지켰다.
“얘야, 어서 무슨 일인지 말 좀 해. 그래야 진 부인도 마음을 놓지.”
진소 부인이 주육낭을 재촉했다.
“말을 해도, 하지 않아도 똑같습니다.”
드디어 입을 연 주육낭은 고개를 들어 방 안의 사람들을 죽 훑어보았다.
“무슨 말을 한다 해도 다 소용없습니다.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요.”
맞아. 말을 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정말 오해라고 한들, 이 일을 이대로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방 안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설령 목숨을 도로 살려낸다 해도, 이 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다만…….
고개를 들던 진 시강이 무심코 진소를 쳐다봤다. 진소 또한 진 시강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주 보는 두 사람의 표정이 복잡했다.
그 일이, 가능할까?
정말로 가능할까?
주씨 가문에서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주육낭이 집에 안 들어오자, 주 부인은 사람을 보내 알아보던 중 주육낭이 태평거에 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태평거는 그 애가 운영한다고 했지. 마음이 불안해진 주 부인은 다시 태평거로 사람을 보냈고, 결국 주육낭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됐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주 부인은 거의 혼절 직전이었다.
“또, 또 한 명을 죽였어.”
주 부인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 떨리는 목소리로 주 노야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그, 그 애는 도대체 어디서 온 요괴기에…….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는 아니겠죠?”
주 노야는 어이가 없는 듯 주 부인의 팔을 뿌리치고 나무랐다.
“허튼소리 마시오! 치료 중이라고 하지 않소!”
“세상에 그렇게 치료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주 부인은 온몸을 벌벌 떨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노야, 노야. 우리 얼른 도망쳐요. 섬주로 돌아가자고요.”
흐느끼던 주 부인은 주육낭이 떠올리고 통곡했다.
“우리 아들이 아직 그 요괴 손에 있는데…….”
주 노야는 부아가 치밀었지만 딱히 도리가 없어 여종들에게 부인을 잘 보살피라 당부하고는 급히 마차를 준비해 성 밖의 태평거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