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429
교랑의경 429화
좌천되어 외직으로 나가던 노사안이 경성을 떠나면서 천자께 탄핵 상소를 올려 천자의 분노를 자아낸 일은 한나절도 안 되어 온 황성과 관청에 소문이 퍼졌다. 여기저기서 의론이 분분하고 인심도 흉흉했다. 이번 일로 또 얼마나 많은 이가 재수 없는 일을 당할지, 또 누가 이번 일 덕에 이득을 볼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노사안은 이번 일이 일으킬 풍파를 예상했지만, 그 광경을 직접 볼 순 없었다. 황제가 노사안의 상소를 확인하던 무렵, 어사대는 그를 체포하여 하옥했다.
심문을 받으러 공당으로 나온 노사안을 보고 있노라니, 높은 자리에 앉아 있던 어사들은 울컥 분노가 치밀었다.
같은 조정 관료로서 수없이 마주친 사이였지만, 어사들은 조금도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노사안이 가슴을 쫙 펴고 고개를 꼿꼿이 들며 당당하게 나오는 게 몹시 아니꼬울 따름이었다.
이곳이 관료들이라면 듣기만 해도 벌벌 떠는 어사대라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노사안 저놈은 평소에도 고개 한번 제대로 든 적이 없는데.
늘 진소의 뒤에서 고분고분 순종하며 약삭빠르게 움직이던 노사안이었다. 담력도 작고 줏대도 없던 노사안이 어찌 저리 강직하고 정의로운 태도로 나온단 말인가.
“노정(盧正), 네 죄를 알렷다!”
어사 한 명이 경당목을 탁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
“이 사람은 분에 넘치는 언사를 행한 죄를 지었소이다.”
노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핵심을 빼놓고 부수적인 걸 이야기하는군.”
어사가 냉소를 보였다.
“조정 관료를 중상모략한 죄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
어사의 냉소에 노사안이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중상모략을 했다고요? 대인, 절 너무 띄워주십니다그려. 제게는 그만한 수완이 없습니다. 민정을 살펴 보고했을 뿐이지요.”
노사안이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말했다.
“민정을 살피는 것도 죄가 된다면, 이 노정이 죄를 인정하겠소이다.”
어사는 속으로 침을 뱉으면서도, 다시 표정을 바꾸어 물었다.
“노정, 이럴 것까지 있소? 외직으로 나가게 되어 울분이 쌓인 건 알지만······.”
어사가 무언가를 유도하려는 듯 입을 열었지만, 노사안이 말을 잘랐다.
“그건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 마음속엔 울분이 없습니다. 백성을 대신해 울분을 토했을 뿐이지요.”
노사안이 하도 당당하게 나오자 도리어 어사가 할 말을 잃었다.
“노정, 죽을 길을 찾아가려고 작정한 거요?”
어사의 물음에 노사안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어찌 죽을 길이란 말입니까. 천자를 대신해 민정을 살피고, 권신들이 성총을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막은 것인데요. 이는 신하의 사명이자 신하의 도리이기도 합니다.”
노사안이 목청을 높였다.
어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만 끌어내라는 손짓을 했다. 어쨌든 첫 심문에 무언가를 받아내기란 힘든 것이었다. 어사대에서 사대부에게 고문을 가하긴 힘들지만, 다른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며칠 고초를 겪고 나면 정신을 차릴 것이다.
노사안은 조금도 두렵지 않은 듯 뒤돌아 가슴을 쫙 펴고 고개를 꼿꼿이 든 채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걸어나가던 노사안은 문 앞에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는 어사중승을 봤다.
“노정.”
어사중승과 스쳐 지나가는데, 어사중승이 노사안을 불러 세웠다. 노사안이 담담한 표정으로 어사중승을 쳐다봤다.
“이번에 진소가 그대를 지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어사중승이 나지막이 물었다. 노사안이 어사중승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제 자신감은 어느 한 사람에게서 오는 게 아닙니다. 만백성에게서 오지요.”
저놈이 정신줄을 놓았나? 좌천되어 남주로 가게 되었으니 남은 인생에 가망이 없다 여겨 광증에 사로잡혔군.
어사중승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이성적으로 봤을 때 그리 간단한 일은 결코 아닐 터였다. 노사안은 확실히 목숨을 건 도박을 하고 있었다. 진소가 구해 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지 않고, 목숨을 건 도박을 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핵심이었다.
만백성이라······.
이게 정말 그리 커질 일이란 말인가?
“여봐라, 거리에 나가 조사해 봐라. 노정의 그 그림이 대체 얼마나 과장됐고, 얼마나 사실적인 것인지.”
어사중승이 말단 관리를 불러 분부했다.
한편 같은 시각 경조부 관아의 관간우상공사(管幹右廂公事: 관직명) 유금천(劉錦泉)도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간악한 백성이 그런 일을 벌였는데, 네놈들은 전혀 몰랐단 말이냐? 네놈들은 전부 죽었어?”
유금천은 소식을 듣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분통을 터트렸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왔다.
그날의 일은 유금천도 나중에 소문을 들어 알게 됐지만, 그저 돈 많은 이가 장례를 치렀다는 정도였다. 돈을 펑펑 썼다는 둥, 돈 많은 태평거와 신선거가 어쨌다는 둥 하는 얘기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일을 노사안이 이용했을 줄이야!
유금천 앞에 선 수하들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죽음으로 내몰린 노사안이 이런 수를 쓸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사실 고위층 관료 누가 누굴 탄핵하는 등의 일은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그림이었다. 그림 속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그것도 경성에서, 동쪽과 서쪽을 가로지르면서. 그런데 그곳이 바로 이들의 관할이었다.
이 일이 천자의 앞으로 올라갔으니, 가볍게는 부윤(府尹)이 유금천을 용서하지 않을 테고, 무겁게는 황제가 유금천을 용서하지 않을 터였다. 어쨌든 노사안 때문에 죽게 생긴 건 분명했다.
“대인, 이번 일은 진 상공 쪽의 계획이 아닌 듯싶습니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쪽의 계획이 아니면, 그자들이 왜 튀어나온 건데? 왜 갑자기 그 수많은 사람이 장례를 보러 몰려나와?”
유 공사가 호통을 쳤다.
“장례를 치르던 사람들이 술을 나눠 줬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엄청 맛있는 술이었답니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독한 술이라던데요.”
“저희 집 사환은 한 사발 받아먹고 취해서, 이틀 만에 깨어났습니다!”
“정말 그리 독하다고?”
눈 깜짝할 사이에 화제가 바뀌었다. 유 공사는 무언가 깨달은 듯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탁자를 무겁게 내리쳤다.
“술이라!”
유 공사가 냉소를 지었다.
“술이었군. 술을 받아먹으려고 죄다 뛰쳐나온 거였어. 온 경성이 영령을 배웅하기는! 노사안이 개소리를 지껄였군!”
다들 그날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랬다.
“전부 그 술 때문에 일어난 사달입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다면 일이 쉬워지겠군.”
유 공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이를 갈며 소리쳤다.
“신선거와 태평거는 양조 허가를 받은 곳이 아니다. 전부 잡아들여라. 멋대로 술을 판 죄를 묻겠다!”
양심 없는 장사치가 술을 팔아먹으려고 술수를 부린 게지. 민정이니 원성이니 하는 건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어!
그래, 복잡할 것도 없는 일이야. 다른 일로 번지기 전에 눌러 버려야겠어. 노사안이 뭘 어쩔 수 있나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유 공사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부윤 대인과 고능준 대인께서 애쓰지 않으시도록 내가 앞장서서 일을 해결하면, 분명 큰 칭찬을 받을 게야.
“속히 가거라. 관졸을 여럿 데려가 점포를 폐쇄해 버려!”
서무수 등을 안장한 후, 벌써 닷새가 지났다. 범강림이 태평거로 오자 오 관리인이 직접 수행하며 새로 온 관리인을 소개해 주었다.
점원들의 공손하고 친절한 태도와 범강림의 담담한 표정을 보며, 범강림의 아내 황씨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주인어른들의 방은 그대로 남겨 두었습니다.”
오 관리인의 말에 황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범강림을 쳐다봤다.
집으로 돌아오자 형제들에 관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눈으로 보고 입으로 얘기할 때마다 괴로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범강림의 표정은 조금도 괴로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기운이 나는 듯 보여 이상할 정도였다.
“너무 걱정 마시오.”
범강림이 방에 앉아 웃으며 이야기했다.
“모두 내 형제들이 아니오. 형제들을 잃었지만, 난 두렵지 않소. 굳이 그들을 잊으려 애쓸 필요도 없고.”
부부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주인어른, 관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오 관리인이 달려와 소리쳤다.
관부?
황씨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지만, 범강림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도리어 웃음을 짓기까지 했다.
“예상대로군. 누이의 말은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어.”
범강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은 여기서 기다리시오. 내가 가 보리다.”
“주인어른, 저들을 안으로 들이시지요.”
오 관리인이 머뭇거리며 말하자, 범강림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린 사람들 앞에서 말 못 할 일을 한 적 없소.”
범강림이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태평거 안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손님들은 먹고 마시던 일을 멈추고, 대청에 선 관졸들을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나리.”
뒤쪽에서 나온 범강림이 예를 표했다.
“댁이 여기 주인이오? 점포를 닫고 우리랑 함께 갑시다.”
관졸의 말에 왁자지껄했던 주변이 단번에 조용해졌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점포를 폐쇄하겠다고요?”
같은 시각 경성의 신선거. 시녀가 관졸의 말에 실소를 터트리며 물었다.
“이유는요?”
“허가도 없이 술을 빚었기 때문이다.”
관졸이 말했다.
대청에서 수군거리며 구경하던 이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이들이 오늘 신선거에 모인 건 사실 며칠 전 그 술 때문이었다.
자리에 있는 손님 중 대부분은 그 술을 맛보지 못했지만, 그 술이 얼마나 맛있을지 상상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경성에서 술을 빚을 자격은 정식 허가를 받은 점포와 관가의 양조장, 세금을 내고 운영하는 개인 양조장에게만 주어졌다. 그 외의 곳에서 술을 빚으면 중죄에 해당한다는 건 모두가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평민 백성에게 적용되는 것이고, 고관대작이나 권세가의 집에서는 사사로이 술을 빚는 일이 흔했다. 관부도 뻔히 알면서 못 본 척 눈감아주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허가도 없이 술을 빚었다는 죄는 트집을 잡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고,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 어느 벼슬아치에게 뒷돈을 챙겨 주지 않았거나, 어느 벼슬아치의 먹잇감이 되었거나.
그리 맛좋은 술이라면 분명 떼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눈독을 들이는 벼슬아치가 생겼겠지. 흔히 있는 일이긴 한데,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이야.
시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리, 오해예요. 우리는 허가 없이 술을 빚은 적도 없고, 판매한 적은 더더욱 없어요. 성 밖에 있는 노씨의 양조장에서 술을 사다가 살짝 개량했을 뿐이죠. 장례 때만 썼고 돈도 안 받았어요. 이젠 다 나눠 주고 없는데, 허가도 없이 술을 빚어 팔았다니요?”
그래? 노씨의 양조장에서 사 온 거였군!
자리에 있던 손님들이 눈빛을 반짝거렸다. 당장이라도 일어나 달려가려는데, 옆에 있던 이들이 붙잡았다.
“자네 바보인가? 개량했다는 말 못 들었어? 노씨가 빚은 술이 그리 맛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어쨌거나 어디서 나온 술인지 알았잖아. 일단 가서 실컷 마시며 속을 좀 달래야겠어.”
손님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자, 관졸들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증인이 있다.”
관졸 중 우두머리가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시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맹세코 판 적 없거든요. 우리 쪽에도 증인이 있어요.”
시녀가 대청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여러분 중에 우리 집에서 술 사신 분 있으세요?”
“없소.”
“누구든 산 사람이 있으면 나한테 파시오. 돈은 얼마든지 드리리다.”
대청에서 왁자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청이 소란스러워질수록 관졸들은 불안하고 짜증이 나는 기색이 역력했다.
“됐다. 시끄럽고, 어서 문 닫고 같이 좀 가자.”
관졸들이 소리를 버럭 지르는데도, 시녀는 냉랭하게 웃을 뿐이었다.
“나리, 이유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유야 확실하지. 술을 빌미로 백성을 선동해 소란을 피웠잖아.”
관졸 하나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백성을 선동하지 않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