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430
교랑의경 430화
시녀는 멈칫하는가 싶더니 곧 손을 들어 입을 가리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시녀의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대청은 차츰 조용해졌다. 그 웃음소리에 관졸들은 소름이 돋았다.
“뭘 웃어?”
부아가 치민 관졸들이 소리를 질렀다.
“고마워서요.”
시녀가 관졸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고맙다고?
관졸들이 멈칫하며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시녀가 웃음을 거두고 정색을 하며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우리가 술을 나눠 주자 백성들이 제 발로 달려왔어요. 근데 그게 어떻게 우리가 백성을 부추겨 소란을 피운 게 되죠?”
시녀가 바깥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럼 지금 밖에 몰려든 저 사람들은 뭐예요? 댁들이 여기 와서 소란을 피우니까 구경하러 온 건데, 그럼 이번엔 댁들이 백성을 부추겨 소란을 피운 거겠네요?”
관졸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 앞은 어느 틈에 구경하러 온 백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금이라도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오려는 이들로 거리도 인파로 북적였다.
관졸들은 순간 안색이 싹 변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말이 길어진 거지?
“아무튼 할 말이 있으면 관아에 가서 하고, 일단 가자.”
관졸 중 우두머리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쇠사슬을 내밀었다. 그가 앞으로 다가서기도 전에 시녀가 다시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섰다.
“날 잡아가겠다고요? 우리 점포를 폐쇄하겠다고요? 우리가 주인어른을 안장하고 길에서 술을 나눠 주며 노제를 지낸 게 백성을 선동한 거예요? 우리 주인어른께선 분명 돌아가셨는데, 우리가 유언비어를 퍼뜨렸다고요? 우리 주인어른께서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고 안장한 게, 백성을 선동한 거예요? 나리, 뭐가 유언비어인데요? 우리 주인어른께서 안 돌아가셨어요? 아니면 우리 주인어른께서 전사한 게 거짓이에요?”
나이도 어린 여자애가 똑 부러지는 말로 다다다다 쏘아붙이니 관졸들은 머리가 어질어질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어안이 벙벙하기까지 했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지?
“허튼소리······.”
관졸 중 우두머리가 목청을 높이며 시녀의 목소리를 덮으려 했지만, 시녀는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받아쳤다.
“허튼소리라고요? 무슨 허튼소릴 했는데요? 우리가 무슨 공을 바라길 했어요? 상을 달라고 했어요? 주인어른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얘기하면 안 돼요? 말하면 그게 유언비어가 되고요?”
시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따지며 자신의 옷섶을 쥐어뜯었다. 어느새 촉촉해진 눈시울이 반짝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경우예요? 왜 우릴 잡아가고 점포를 폐쇄하겠단 건데요? 우린 다 필요 없고, 원하는 것도 없는데, 대체 왜요? 떳떳하게 안장하는 것조차 안 돼요? 우리 주인어른께선 전사하셨어요. 떳떳하고 부끄러울 게 없는 일이라 아무도 몰래 슬그머니 안장하지 않았더니, 그게 죄가 된다는 거예요? 좋아요. 그게 죄라면, 잡아가요! 잡아가라고요!”
계속해서 뒷걸음질 치던 관졸들은 문턱에 부딪히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고,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쳐다봤다.
어떻게 된 거지? 그 얘기가 왜 나와? 우린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관졸들은 고개를 돌려 문밖에 있는 인파를 쳐다봤다. 몰려든 인파는 어느새 침묵을 지키며 울분에 찬 표정으로 관졸들을 보고 있었다. 다시 안쪽을 쳐다보자, 대청에 있는 이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한편 범강림은 관졸들 앞으로 나서며 활을 집어 들었다. 관졸들은 귀신이라도 본 듯 놀라 뒷걸음질을 치며, 허리에 찬 칼을 빼 들었다.
비록 한참 전 일이고, 지금 눈앞에 선 사내는 일곱 명이 아니라 단 한 명뿐이었지만, 당초 태평거에 난입했던 무뢰배들이 문 앞에서 화살에 맞아 죽은 일은 모두의 기억에 생생했다. 태평거는 금강이 지켜 주는 곳이라는 소문이 여전히 관아에 퍼져 있었다.
“범강림, 무슨 짓이냐? 체포에 불응해 살인을 하겠단 거냐?”
관졸들이 소리쳤다. 범강림은 관졸들을 보며 씩 웃더니 손에 든 활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난 이제 사람을 죽일 수 없소. 활시위도 못 당기고, 화살을 쏠 수도 없지. 사람을 죽이려면, 쇠뇌를 쓸 수밖에 없소.”
범강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으로 자신의 옷을 잡아 뜯어 확 풀었다. 범강림의 상반신이 그대로 드러났다.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미처 눈을 피하지도 못했다. 아낙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난 이제 사람을 죽일 수도 없거니와, 댁들을 죽이지도 않을 거요. 내 형제들은 서쪽 오랑캐 손에 죽었소. 나는 요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남은 힘은 서북 오랑캐를 죽이는 데 써야지 어찌 화살을 댁들한테 겨눌 수 있겠소. 내 형제들이 목숨을 바쳐 지킨 댁들한테.”
범강림이 웃음을 터트리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자, 와서 잡아가시오. 시키는 대로 하리다. 댁들이 죄가 있다고 하면, 죄가 있는 것이니, 잡아가시구려.”
관졸들은 멍한 표정이었고, 대청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상반신을 드러낸 사내의 몸 여기저기에 남은 무시무시한 흉터를 보노라니 몸서리가 쳐졌다.
그리 끔찍한 흉터는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루는 처참한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흉터 하나하나가 소름 끼칠 정도로 생생했고,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된 흔적이었다.
“잡······.”
“잡기는 개뿔!”
대청에 있던 누군가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접시 하나가 날아와 깨졌다.
“빌어먹을 네놈들 죄부터 물어라!”
일갈과 함께 기름 솥에 물을 부은 듯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철썩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 공사가 얼굴을 부여잡으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안에 있던 관료들은 못 본 척 시선을 피했지만, 보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유 공사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옆에 있는 부윤도 안색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부윤은 잡아먹을 듯한 눈길로 유 공사를 노려봤다.
부윤 본인은 사정을 몰랐다고 하나, 어쨌거나 수하가 벌인 일이었다. 그 일로 고능준 대인이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부윤 자리에 오른 건 이제 겨우 두 달이었다. 물론 이 자리는 그저 거쳐 가는 자리고, 최종 목표는 중서문하성 정사당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일에 연루되면서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고능준이 먼저 후려치지 않았다면, 부윤이 나서서 따귀를 쳤을 것이다.
“네놈이 나한테 원한이 있느냐?”
고능준이 유 공사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아니면 진소에게 무언가를 받은 것이더냐?”
유 공사는 치욕도 잊은 채 손사래를 치며 해명했다.
“대인, 대인, 전혀 아닙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저는 대인의 근심을 덜어 드리고자······.”
“근심을 덜어? 근심을 더하는 건 아니고?”
고능준이 유 공사의 말을 끊으며 일갈했다.
“불난 곳에 기름을 부은 격 아니냐! 일을 눌러 가라앉혀도 모자랄 판에, 멋대로 사람을 체포하겠다며 일을 이 지경으로 키워?”
“대인, 그 일은 백성이 분노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집의 술을 마시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벌어진 일이죠. 그래서 그 술을······.”
유 공사가 일그러진 얼굴로 말하자 고능준은 냉소를 지었다.
“유금천, 바보가 되었느냐? 사사로이 술을 빚어 파는 게 대죄라는 걸 너 혼자 알았느냔 말이다.”
그건 아니지. 모두가 아는 일인걸. 그러니 술을 팔지 않고 그냥 나눠 주며 백성을 끌어들인 거겠지. 국법을 어기면 성가신 일이 벌어지고 죄를 뒤집어쓴다는 것도 고려했을 테고.
“대인, 저는 그저 사람을 관아로 데려다 놓고 일이 잠잠해지게 하려던 겁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놈들이 글쎄······.”
유금천이 말을 더듬으며 해명하자, 고능준은 콧방귀를 뀌었다.
“뜻밖에도 그놈들이 관리를 겁내지 않고 관리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백성이었겠지. 어린 계집애한테 걸려들 줄은 몰랐을 거야. 술을 핑계로 체포할 생각만 떠오르고, 다른 생각은 안 떠올랐더냐?”
고능준이 유금천을 보며 말했다.
“유금천, 중서문하성 비각에 있던 유장(劉璋)을 기억하느냐?”
생소한 이름이었다. 유금천은 관두고 옆에 있던 부윤조차도 멈칫했다가 한참 만에 기억을 떠올렸다.
그건 승진의 기쁨으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중풍을 얻고, 후에는 아들이 지은 죄에 연루되어 삭탈관직된 채 나귀가 끄는 달구지에 실려 고향으로 돌아가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르는 유 교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자 얘기는 왜?
“지금 자네의 지위가 병을 얻기 전 그자에 비하면 어떻다고 생각하나?”
고능준이 물었다.
진사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온 후로, 지방 지현(知縣)과 통판으로 임직한 게 벌써 십 년이었다. 뛰어난 치적 덕에 천거되어 경성으로 올라왔다고는 하나, 아직 중서문하성 비각 교리에 비할 위치는 아니었다.
한 오륙 년, 아니, 십 년쯤 지나면 조정 관리가 될 수도 있겠지. 물론, 이번 위기를 무사히 넘긴다는 전제하에.
유금천이 수심에 찬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소관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유장과 비교가 안 된다는 걸 알면서, 무슨 근거로 태평거와 신선거 사람들이 자네를 두려워할 거라고 생각하지?”
고능준이 냉소를 지었다.
뭐라고?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란 눈으로 고능준을 쳐다봤다.
들을수록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렇다면 당초 유 교리의 일이······.
“태평거와 신선거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 아느냐?”
고능준이 물었다.
“귀덕낭장 주씨 가문이라고······.”
유금천이 얼른 대답했다. 고능준이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웃던 고능준이 웃음을 멈추고 유금천을 노려보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쓸모없는 놈, 냉큼 꺼져라!”
고능준이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며 밖에 대고 손가락질을 했다.
공개적으로 그런 욕을 듣고 따귀까지 맞았으니, 이제 유금천은 경성에 발을 붙이지 못할 터였다. 유금천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다.
“저런 쓸모없는 놈을 봤나.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뭣도 모르면서 손을 써? 그 산이 어떤 산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호랑이를 때려잡겠다고 호언장담을 해? 여긴 어쩌자고 죄다 저런 쓸모없는 놈들뿐인 거야?”
대청에 고능준의 외침이 메아리쳤다. 관리들은 고개를 숙인 채 찍소리도 내지 못했다. 고능준은 한참 동안 호통을 치고 나서야 겨우 멈추었다.
“이제 어쩔 셈인가?”
고능준이 한숨을 토하며 물었다. 부윤이 눈치를 주자 관리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대인, 태평거와 신선거는 문을 닫고 휴업에 들어갔습니다만, 그건 저희 뜻이 아니옵고······.”
고능준은 냉랭하게 콧방귀를 뀌었다.
“자네들 뜻이 아니어도, 자네들 뜻이 되지 않았는가.”
관졸들이 태평거와 신선거에 와서 소란을 피우고 돌아간 건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장례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인 지금, 신의 낭자와 전사한 다섯 용사, 홀로 남겨진 아들의 슬픈 사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는 전기수들에게 더없이 좋은 이야깃거리가 됐다.
경성에서는 불과 하루도 안 되어 새로운 이야기가 퍼져 나갔다. 크고 작은 술집과 찻집에서, 거리와 골목에서, 대갓집 안채와 마당에서 무원산이 오르내렸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관부는 백성을 무시하고 핍박하는 대상이 되어 있었다.
태평거와 신선거는 문을 닫았다. 대외적으로는 집안에 일이 있어서라고 했지만,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관부의 행패 때문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에는 그저 술과 사람에 관한 잡담이 오가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조정과 관부까지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게 됐다. 백성은 바로 그 지점에서 분노하며 울분을 터트렸다.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수습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인, 이 일을 무마하긴 힘든 겁니까?”
부윤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사실 저희가 딱히 잘못한 건 아니잖습니까. 저들이 멋대로 술을 뿌렸으니, 관부에서 어찌 된 일인지 조사하는 건 당연합니다. 말이 오가는 과정에서 충돌이 있었을 뿐이니, 사정을 설명하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사실이 그러하니까?”
고능준이 냉소를 지었다.
“언제부터 정사에 사실이 중요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