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44
교랑의경 544화
별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정교랑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빠졌다.
주 낭자는 화괴니까 자신을 두고 다투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처럼 울고불고할 게 아니라 그것에 대해 기뻐해야 한다. 고 관인이 자신을 좋아해서 쫓아다니는 것에 대해 기뻐하고, 웃으며 그를 맞이해야 한다. 그게 바로 교방사 화괴가 지켜야 할 본분이리라.
그런데······.
주 낭자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참아왔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본분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으니, 난 화괴라는 신분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이겠지.
“고 관인, 저 화괴를 두고 계속 다툴 건가요?”
정교랑은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고 관인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기루에서 기녀를 부르고 화괴를 두고 다투는 일은 분명 방탕한 짓이었다. 하지만 지금 정교랑의 표정을 보며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별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쩐지 숙연해졌다. 화괴를 두고 다투는 일이 몹시 장엄하고 진지한 일이 된 것만 같았다.
그랬다. 이 일은 아주 장엄하고 진지한 일이 되어 있었다.
고 관인은 자신 앞에 앉은 정교랑을 쳐다보며 웃음기를 거두었다.
내가 지금 화괴 다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물러날 생각이 없는 것도 알면서 저런 말을 내뱉다니. 지금 내게 도전장을 내민 건가?
아니, 저 여인이 지금 우리 고씨 가문에 도전장을 내민 건가?
말로만 듣던 그 정 낭자가, 이젠 아예 우리 고씨 가문에 공공연하게 도전장을 내밀 정도로 거만해졌구나!
고 관인은 정교랑을 오늘 처음 봤지만, 정교랑이라는 사람이 낯설지는 않았다. 고 관인의 부친인 고능준이 집에서 자주 언급하기도 했고, 밖에도 그녀에 관한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었다.
고 관인은 정교랑에게 대단한 스승이 있었고, 그 스승이 정교랑에게 신기한 기술과 비방을 물려주어 정교랑이 민간에 위신을 떨치고, 조정에 흉명(凶名)을 떨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저 여인의 지혜와 담력은 보통 사람에게서 쉬이 찾아볼 수 없는 정도라고 하셨어. 그러니 우리 고씨 가문에 득이 될 것 같지 않다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사람이라고 하셨지.
하지만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 고씨 가문에서 직접 나서서 저 여인을 처리할 필요는 없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워낙 많기도 하고, 저 어린 낭자가 제아무리 날고 긴다 한들, 우리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위협적인 인물은 아니기 때문이지.
굳이 정 낭자를 건드리지 않는 이유는, 무슨 일이든 꼭 우선순위를 정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하신 아버지의 말씀 때문이기도 했고, 또······.
– 우매한 백성들의 말은 믿을 게 못 된다지만, 저 여인에게서는 정말로 불길한 기운이 풍긴다. 누구든 저 여인과 엮였다 하면, 말로가 좋았던 적이 없었지.
고 관인은 고능준이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예를 들자면 유 교리나 강문원 그리고 풍림이 그랬지.
다른 이는 망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어. 고씨 가문과 별 관계가 없기도 했거니와 나와는 더더욱 관련이 없었지. 단 한 사람, 강문원만 빼고.
강문원은 서북 군정 문제로 아버지께 큰 도움이 됐던 사람이고, 우리 가문이 암암리에 하는 사업에도 큰 보탬이 됐었던 사람이야. 그런 강문원이 쓰러지자, 아버지께서는 살덩이 하나를 떼어내신 것처럼 아까워하셨지.
그런데 그 정 낭자가 나를 피해 가기는커녕, 친히 내 앞으로 와 도전장을 내밀다니.
정말로 뭐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눈에 뵈는 것이 없는 건가? 우리 고씨 가문이 저를 건드리기 무서웠던 게 아니라, 건드리지 않았던 것뿐이라는 걸 몰라서 저래?
저 여인이 자세를 바짝 낮추어 나한테 죄송하다고 사과하면 내가 관대하게 웃어넘기고 끝날 일이었는데. 그나마 체면을 챙겨 주려고 했던 내 호의도 몰라주고, 저리 버르장머리 없는 태도로 나오다니!
화괴를 다퉈? 나랑 화괴를 다투겠다고?
“그럼, 정 낭자는 계속 다투겠다는 말입니까?”
고 관인이 느긋하게 말했다.
“물론이죠.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이왕 시작한 거, 결과가 나올 때까지 끝을 봐야 하지 않겠어요?”
정교랑이 말했다.
“뭘 한다고?”
순식간에 벌어진 난리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기생 어미 막씨는 점원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화괴 다툼을 계속하겠다 합니다.”
점원이 말했다.
계속 다투겠다고?
기생 어미 막씨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점원의 말을 들었다.
“정 낭자가 좀 전에는 고 관인 쪽의 머릿수가 많아 자기 오라비가 불리했던 거라며, 지금은 자기가 사람을 데려왔으니 계속 이대로 싸울지 다른 것으로 다툴지 묻고 있소이다.”
점원이 이어서 말했다. 몹시 보기 드문 일이라 그런지, 흥분한 점원은 눈을 크게 뜨고 설명했다.
어린 누이가 자기 오라비를 위해 사람을 끌고 와서 화괴 다툼에 뛰어들다니. 정말이지, 내가 말하고도 믿기 힘든 일이야!
“화괴 다툼은 무슨!”
기생 어미 막씨가 손을 들어 점원의 머리를 후려치자, 점원의 모자가 삐딱하게 벗겨졌다.
“멍청한 것. 지금 이 상황이 단순한 화괴 다툼으로 보이더냐? 고씨 가문과 정씨 가문이 맞서 싸우겠단 거잖아!”
드디어, 드디어 맞서 싸우는구나!
무릎을 꿇어앉고 울먹이던 춘령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입가에 설핏 미소가 번졌지만, 춘령은 얼른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대성통곡했다.
“불쌍한 우리 언니.”
어떻게 다투려나? 계속 싸워?
주 낭자가 멍한 표정으로 주위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화괴 다툼이라!
주 낭자는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인생에서 풍류를 즐기기 가장 좋을 때는 바로 소년 시절이라지. 나 따위가 무슨 대수겠어. 저들이 다투는 건 사내의 풍류고, 체면일 텐데, 나 같은 화괴 나부랭이가 무슨 상관이라고. 난 보잘것없는 물건에 불과할 뿐인데.
“싸울 필요까지는 없어요.”
주 낭자가 먼저 운을 뗐다. 그러자 별실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주 낭자를 쳐다보았다.
“자고로 화괴를 다투는 일이란 본디 풍류를 아는 자들의 고상한 놀이온데, 과격하게 주먹다짐을 해서 되겠습니까. 그리고 소인이 교방사의 관기라고는 하나, 오늘은 관부에서 초청한 연회에 온 것이 아니니 여러분께서 신분과 지위를 비교할 필요도 없겠지요.”
주 낭자가 고개를 들고 말을 이어갔다.
“오늘 이 자리는 밤놀이이고, 소인은 기녀입니다. 기루의 기녀는 돈으로 살 수 있으니, 차라리 값을 부르시지요.”
주 낭자가 입꼬리를 올리고 고 관인과 정교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이 주형은 값을 더 크게 부르는 분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고 관인이 시선을 거두고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정교랑도 고개를 돌려 고 관인에게 시선을 옮겼다.
“좋소이다.”
고 관인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좋아요.”
정교랑도 입꼬리를 올리고 대답했다.
말을 탄 주육낭이 덕승루를 뚫어버릴 기세로 달려 들어왔다. 안 그래도 소란스러웠던 대청이 주육낭 때문에 또 한 번 왁자지껄해졌다.
하지만 뜻밖에도 주육낭에게 손가락질을 하거나 욕하는 이는 없었다. 갑작스레 돌진해 들어온 말 때문에 놀랐던 사람들은 금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육낭이 덕승루에 처음 와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대개 낮에만 덕승루를 방문했기 때문에, 밤에 덕승루를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육낭의 코끝에 여인들의 진한 분향 냄새가 훅 끼치더니, 눈앞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빛깔이 펼쳐졌다. 아직 여름이 오지 않았지만, 덕승루 안의 여인들은 모두 뽀얀 속살이 비치는 여름옷을 입고 있었다.
진한 냄새와 눈앞의 광경 때문에 주육낭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좀 이상한데. 사람을 데리고 가서 난리를 피운다고 하지 않았나? 대청 분위기를 봐서는 전혀 그런 게 아닌 것 같은데?
칼과 화살을 겨누면서 대치하는 시종들도, 싸움을 피해 사방으로 도망치는 사람들도, 난장판이 된 덕승루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만이 보였는데, 다들 흥분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여기가 아닌가?
바짝 긴장한 주육낭이 다소 경직된 채로 말에서 내려 허리춤에 있는 칼자루에 손을 올렸다.
“어떻게 됐나? 뭐라고 하던가?”
“시작하자마자 일천 관이야.”
“세상에, 일천 관?”
“자네들은 누구한테 걸 텐가?”
다들 뭐라는 거야?
주육낭이 미간을 찌푸렸다.
덕승루가 언제부터 도박장이 된 거지? 하나같이 도박꾼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뭐 하는 거요?”
주육낭이 물었다.
한 사람이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위층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기서 어떤 사내와 어떤 낭자가 화괴 주 낭자를 두고 다투고 있소.”
어떤 사내와 어떤 낭자가 화괴를 다투고 있다고?
덕승루, 화괴, 고 관인······.
사환이 했던 말을 떠올린 주육낭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 낭자가 설마!
주육낭이 곧장 이 층을 향해 달려갔다.
별실 안에는 기생 어미 막씨가 넋이 나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내 여섯 살에 교방사에 들어와서 벌써 서른이 되었는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보네.
“삼천 관.”
여인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천 관에 하룻밤이라고?”
사내가 물었다.
삼천 관에 하룻밤이라니. 그렇게 며칠 밤만 보내면 자유의 몸이 될 돈도 금방 벌겠네.
기생 어미 막씨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고 두 남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화괴 다툼을 처음 보는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거액이 오가는 화괴 다툼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누이가 오라버니를 위해 나서서 화괴 다툼을 하는 경우는 더더욱 본 적이 없고.
“일만 관에 한 달.”
고 관인이 만 관은 거뜬히 감당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옆에 앉은 집사를 힐끔 쳐다보았다.
“당장은 가지고 나온 돈이 그리 많지 않으니, 차용증을 쓰겠습니다.”
집사가 말했다. 기생 어미 막씨는 마다할 생각 없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차용증까지 쓸 필요 있나요. 고 관인의 말씀 한마디면 충분한걸요.”
“나는 화대를 외상으로 내는 망신스러운 일을 한 적이 없소.”
고 관인이 코웃음을 치면서 집사에게 말했다.
“차용증을 써서, 결과가 나오는 대로 집에 가서 돈을 가져오게. 반드시 오늘이 지나기 전에 갖다줘야 한다네.”
집사가 알겠다고 대답한 후, 곧바로 붓을 들어 차용증을 쓰고 고 관인의 지장을 찍어 별실 중앙으로 던졌다.
별실 중앙에는 주 낭자가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양옆으로 고 관인과 정교랑이 내민 비전 증서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이만 관에 한 달.”
정교랑이 말했다. 시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비전 증서 두 장을 중앙에 던졌다.
고 관인의 입가에 걸려있던 여유로운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
저 여인이, 지금 일만 관씩이나 더 부르는 거야? 이러는 법이 어딨어!
심지어 저 여인이 던지는 건 현찰 비전 증서야. 몸에 소지하고 다니는 돈이 저렇게나 많다고?
“관인, 조심하십시오.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집사가 나지막이 아뢰었다.
이런 수작은 많이 봤지. 터무니없이 높은 액수를 부르다가, 내가 더 높은 액수를 부르는 즉시 발을 쏙 빼서 나만 덤터기를 쓰게 만드는 수작.
삼만 관 정도 부르면, 바로 자기가 졌다며 고개를 숙이려나?
삼만 관으로 화괴를 한 달 빌리는 정도의 일은, 풍류를 아는 나 고십사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
고 관인이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이만 오천.”
고 관인이 말했다. 집사가 서둘러 차용증을 한 장 더 써서 별실 중앙으로 던졌다.
“삼만 오천.”
정교랑이 말했다. 시녀는 정교랑만큼 담담한 모습으로 비전 증서를 중앙으로 던졌다.
이런 빌어먹을!
화괴를 한 달 빌리는 데 삼만 오천을 쓴다고? 그 정도 액수면 경성 여인들의 혼수값에 버금가는데!
게다가 왜 아무도 저 여인을 말리는 사람이 없어? 한낱 여인네가 저렇게 돈을 종이 쪼가리처럼 여겨도 되는 거야?
고 관인의 얼굴에 차츰 웃음기가 걷히고,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욕 말고는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사만 관!”
고 관인이 말했다.
“십사공자님······.”
사만 관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집사가 고 관인의 뒤에서 조용히 그를 불렀다.
액수가 너무 커졌어!
고 관인이 고개를 돌리고 집사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집사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이를 악물고 차용증을 한 장 더 써서 중앙을 향해 던졌다.
“사만 관에 한 달이요?”
기생 어미 막씨가 놀란 눈으로 고 관인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벌써 몇 번이나 놀라 쓰러질 뻔했던 기생 어미 막씨는 아무래도 자신의 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확인차 물었다.
“오만 관에 한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