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63
교랑의경 563화
“아이고 세상에나, 우리 아가. 벌써 중매인이 되고 싶었던 게냐?”
황궁 안. 태후는 놀랍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한 표정으로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평왕을 쳐다보았다.
“마마, 이 일은 단순한 중매가 아니고, 진지한 일입니다.”
평왕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태후가 웃으면서 귀비를 쳐다보았다.
“이것 좀 보게나. 우리 평왕의 진지한 일부터 이야기해야 하겠는데?”
귀비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사가아, 괜한 소란 피우지 말아라. 너 같은 어린아이가 말할 일이 아니야. 그리고 정 낭자를 고 관인에게 시집보내겠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
“우스운 일을 미담으로 만들어야지요.”
평왕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스운 일을 미담으로 만든다고?
귀비와 태후가 멈칫했다.
“지금 고씨 가문은 덕승루 화괴 다툼 때문에 온 경성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일을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한다면, 고씨 가문은 영원히 웃음거리로 남겠지요. 이번 다툼을 계기로 백년가약을 맺게 된다면,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던 상대에서 애틋한 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는 낭만적인 미담이 남지 않겠습니까. 마마께서는 고씨 가문이 이대로 경성의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두고 보시기만 하실 겁니까? 정 낭자가 경성에 있는 한, 고씨 가문은 영원히 웃음거리로 남을 겁니다.”
태후와 귀비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은 당연히 고씨 가문이 경성의 웃음거리로 남지 않길 바랐다. 그렇게 된다면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 거라면, 이 혼사가 정말로 괜찮은 방법이로구나.”
고씨 가문이 더는 웃음거리로 소비되지 않고, 어딘가 불길하고 수상쩍은 정 낭자가 고씨 가문의 사람이 되는 셈이니. 정 낭자도 고씨 가문의 감시를 받게 된다면, 더는 황당한 일을 벌일 수 없겠지. 고씨 가문은 우리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집안이기도 하고.
참으로 일거양득이구나.
태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번 같은 터무니없는 일도 인제 그만 끝을 낼 때가 됐어.”
태후가 고개를 들고 문밖을 향해 말했다.
“여봐라. 정씨 가문 부인을 궁으로 불러오너라. 애가가 중매를 서야겠다.”
정 이노야가 경성으로 올라온 지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경성에서 보낸 반년이라는 시간이 그는 마치 꿈만 같았다. 짧은 반년 사이, 관직이 급격하게 바뀐 것도 모자라,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깜짝깜짝 놀랄 만한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어사대로 끌려가기도 했고,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풀려나기도 했다. 월 수익이 만 관에 달하는 재산을 손아귀에 넣은 적도 있고, 또 눈 깜짝할 새에 그 재산의 명의가 바뀌기도 했다.
여기 이 집도 그래.
정 이노야가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앉아 있는 대청은 저택의 본채였다. 대청 안은 여전히 넓고 깔끔했지만, 더는 정 이노야의 거처라고 할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정 대노야가 이곳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대노야께서 이걸 여기다 놔두라고 하셔······.”
“대노야께서 이것들은 치우라고 하시네. 괜히 사치스러워 보이기만 한다고.”
대청을 분주하게 드나드는 여종들의 대화가 정 이노야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여종들은 이 집의 주인이 정 대노야라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대화를 나눴다. 정 이노야는 지금의 상황이 강주에 있을 때와 다를 바가 없다고 느꼈다.
이게 강주에 있을 때와 다를 게 뭐야!
정 이노야가 분통을 터트리는 사이, 문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대노야, 오 관리인이 왔습니다.”
사환 두 명이 큰소리로 외쳤다.
오 관리인!
“들라 하여라.”
대청 안쪽에서는 정 대노야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문밖에서부터 두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목에 힘을 주고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걸어오는 오 관리인의 모습도 보였다.
4월 초에 오 관리인이 온다는 것은, 지난달 점포들의 장부를 정산한다는 뜻이었다.
장부 정산! 수익금!
정 이노야가 주먹을 세게 쥐었다.
원래대로면 오늘 이 시간에 오 관리인을 맞이할 사람은 바로 나였는데!
곁채에서 하얀 수건을 이마에 올리고 침상에 누워 있던 정 이부인은 오 관리인이 정산하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노야, 내 돈은 어떡해요.”
“울긴 왜 우는 거요! 형님이 경성을 떠나지 않고 아예 정씨 집안을 통째로 경성에 옮겨 놓으면, 그때 가서 울고불고하시구려.”
정 이노야가 성가시다는 투로 말했다.
“대노야는 그 애한테 들러붙은 거예요. 그러니 절대로 쉽게 그 재산을 내려놓지 않을 거라고요.”
정 이부인이 말했다.
“부인, 반근 낭자도 같이 왔어요. 대노야께서 장부를 바로 반근 낭자한테 주시더라고요.”
여종이 방 안으로 들어와 조용히 말했다. 정 이부인이 정 이노야를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로 그 애한테 들러붙은 거라니까요.”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또 다른 여종이 황급하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노야, 부인, 황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황궁?
정 이노야 내외가 놀란 기색으로 여종을 쳐다보았다.
“태후마마께서 부인을 뵙고자 하셨습니다.”
여종이 이어서 말했다.
정 이부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이마에 올려져 있던 수건이 떨어졌다.
“태후마마께서 나를 보자고 하셨다고?”
“태후마마께서 정 이부인을 불러오라고 했단 말이오?”
자연스럽게 정씨 가문의 가장인 정 대노야가 직접 황궁의 내시를 만났다. 내시가 찾아온 이유를 들은 정 대노야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예, 대노야. 그러니 정 이부인의 입궁 채비를 서둘러 주십시오.”
내시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정 대노야가 알겠다고 대답한 뒤, 내시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공손하게 손짓했다. 정 대노야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대인, 혹시 무슨 일 때문인지?”
정 대노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시가 눈썹을 치켜뜨고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어찌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마마께서 어떤 일로 부르시는지, 저희 같은 아랫것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정 대노야가 서둘러 사과했다. 그의 이마에 순식간에 식은땀이 맺혔다. 정 대노야가 몸을 돌리고 대청을 나가려던 찰나, 내시가 마른기침을 하며 덧붙였다.
“경사스러운 일이긴 합니다. 그러니 정 이부인께도 경사스럽게 입고 오라고 전해 주십시오.”
경사스러운 일!
정 대노야는 심장이 터질 듯했지만, 조용히 알겠다고 한 뒤 침착하게 예를 표하고 대청 밖으로 물러났다.
오 관리인과 시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후당에 서 있었다.
“교랑은 알고 있는 일이더냐?”
정 대노야가 목소리를 낮추고 묻자, 시녀가 고개를 저었다.
“전혀 모르는 일이에요.”
“그렇다면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정 대노야가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녀는 태후가 정교랑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정교랑을 싫어하는 사람이 만들어 준 경사스러운 일이라는 것은, 실은 경사스러운 것과 거리가 먼 일이 분명했다.
“당장 아씨께 알리러 갈게요.”
시녀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태후께서도 아씨를 싫어하시고, 정 이부인도 아씨를 싫어해요. 그러니까, 절대로 그 두 사람이 아씨의 일에 관여하게 둬서는 안 돼요.”
시녀가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본 정 대노야의 표정이 비장해졌다.
맞아. 절대로 그럴 순 없지. 절대로 제수가 궁으로 들어가게 해선 안 돼.
그런데 어떻게 막는담?
정 대노야가 고개를 돌리고 밖을 내다보았다. 대청 안에 앉아 있는 내시의 표정을 보아하니 시간을 오래 지체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다른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정 이부인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어떻게든 설득해야 하나?
아니야. 당초 아우가 경성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도, 내가 그렇게 설득했건만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어.
정 대노야의 호흡이 가빠졌다.
절대로 제수가 입궁하게 둬서는 안 돼. 절대로!
“여봐라!”
정 대노야가 문밖을 향해 손짓하고는 조용히 사람을 불렀다. 여종 한 명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와 정 대노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노야, 분부하시지요.”
곁채 안, 정 이노야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서성였다.
정말로 요즘은 매일매일이 꿈을 꾸는 것 같단 말이지. 아주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해!
“노야, 노야. 태후마마께서 나를 보시겠다는데, 내, 내가 가서 뭐라고 해야 하죠?”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정 이부인은 거의 혼절 직전인 사람처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마시오.”
정 이노야가 깊게 심호흡을 한 뒤,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 말했다.
“당신은 무조건 태후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되오.”
정 이부인은 아직도 얼떨떨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태후를 뵙는 날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태후가 당신을 보겠다고 한 건 분명히 그 바보 때문일 거요.”
정 이노야는 흥분하면 할수록 정신은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경성에 올라온 후로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항상 그 바보와 연관되어 있었어.
“우리가 이번에 판을 뒤집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두 태후의 손에 달렸소.”
정 이노야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정 이부인이 더욱 긴장했다.
“당신 돈을 생각하시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정 이부인이 답답했는지, 정 이노야가 호통을 쳤다.
내 돈! 그놈들이 사기 친 내 돈!
정 이부인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이고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여봐라, 옷을 갈아입어야겠다.”
문밖의 여종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방 안으로 들어와 정 이부인의 옷을 골라 주었다. 단장하느라 한창 분주할 때, 아낙 하나가 방 안으로 들어오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아이고, 정 이부인, 대노야께서 저도 부인의 시중을 들라고 하셔서요.”
정 이노야 내외가 아낙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방 안으로 들어온 아낙은 대노야의 사람이었다. 정 대노야가 오기 전까지 정 이부인이 관리하던 것들을 모조리 도맡아 관리하게 된 사람이기도 했다. 이 아낙은 평소에는 정 이노야 내외를 보아도 콧구멍이 다 보일 정도로 턱을 높이 치켜들고 다녔지만, 어째서인지 오늘은 환한 미소를 보이며 정 이노야 내외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대노야께서 조심히 물어보셨는데······.”
아낙이 좌우를 살피면서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말했다.
“궁에서 온 사람 말로는, 경사스러운 일로 부인을 뵙자고 하시는 거래요.”
경사스러운 일!
정 이노야가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랬군. 그래서 형님은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 이렇게 사람을 붙인 건가? 이미 늦었어! 서로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놨는데, 지금 와서 아부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야!
정 이노야가 콧방귀를 뀌었다.
“이부인, 경사스러운 일이니 옷도 화사하게 입으셔야죠.”
아낙이 이어서 말했다. 정 이부인이 정 이노야를 슬쩍 쳐다보자 정 이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가서 금색 비단옷을 꺼내 오거라.”
정 이부인이 재촉했다. 방 안에 있던 여종과 몸종들이 다시 분주해졌다.
뒤늦게 들어온 아낙도 이부인을 돕겠다며 주위를 서성였지만, 정 이부인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아낙에게 눈치를 줬다. 하지만 아낙은 그런 정 이부인의 냉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첨의 미소를 보이며 서 있었다.
옷을 다 입은 정 이부인은 단출한 옷 장식과 머리에 꽂은 장신구를 보고, 자신이 몹시 볼품없고 추레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정 이부인은 이를 부득 갈며 분을 삭였다.
내 돈, 내 장신구들!
“가자.”
정 이부인이 열의에 가득 찬 모습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여종들이 서둘러 정 이부인의 뒤를 따라나서자, 아낙도 재빨리 무리를 뒤따라 방을 나섰다. 아낙은 정 이부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듯 여종들 사이를 마구잡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앞다투어 가겠다는 아낙과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여종들 때문에 문 앞이 소란스러워졌다.
“아, 좀 비켜요!”
한 여종이 짜증을 내면서 아낙을 확 밀쳤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낙은 무리 밖으로 밀려난 게 아니라 무리의 앞쪽으로 밀쳐졌다. 아이고, 하는 소리를 내며 휘청거리던 아낙은 공교롭게도 층계를 내려가고 있던 정 이부인의 등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곧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정 이부인이 층계 아래로 굴러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