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75
교랑의경 575화
나 방백종이 정방과 혼인하고 싶다고요.
반근은 멍한 채로 뭔가 헷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인의 혼사가 이런 식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한창 꽃다운 나이에 그 행렬이 가히 십 리에 이를 정도로 풍성한 혼수. 여인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가 바로 그때였다. 혼사에 대해 얘기할 때는 수줍어서 자리를 피하는 여인도 있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혼사 준비를 하는 여인도 있었다. 신랑감을 고르느라 머리를 쥐어짜는 부모도 있고, 이 사람 저 사람 꼼꼼하게 재고 따지는 부모도 있고, 애지중지 키운 딸을 시집보내려니 어쩐지 섭섭한 마음이 드는 부모도 있고, 딸이 드디어 좋은 배필을 찾아 혼사를 치르는 기쁨을 느끼는 부모도 있었다.
물론 반근은 정교랑이 이 중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여태껏 정교랑의 혼담은 모두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위해, 놀이를 위해, 곤경을 헤쳐나가기 위해 이용되었다. 심지어 지금까지 혼담을 넣으러 온 사람들 또한, 아마 지금 혹은 나중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충분히 계산한 뒤 혼담을 넣으러 온 것일 터였다.
기쁨이나 행복, 아쉬움은 없고, 정교랑의 혼사에는 언제나 두려움이나 계략, 암투만이 존재했다.
내가, 정방과 혼인하고 싶다고요. 나 때문입니다. 내가 그것을 원하니까요.
반근은 이상하게도 코끝이 찡해져 왔다.
“정방, 당신의 혼사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어떤 결정을 내리고 싶다던가.”
진안 군왕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반근이 고개를 들고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정교랑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사소한 일은 정말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당신의 눈에는 혼사가 사소한 일이에요?”
진안 군왕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안 군왕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정말 다행이네요!”
다행이라고? 이 사람도 참 웃긴 사람이네.
반근이 진안 군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씨께서 혼사를 사소한 일이라고 말씀하신 건 수없이 많지만, 보통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거나,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거나, 아쉽지만 어찌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었는데, 저 말을 이렇게 좋아하는 경우는 또 처음 보네.
진안 군왕은 말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표정에서도 진심 어린 기쁨이 묻어났다.
정교랑도 어쩐지 조금 놀란 눈치였다.
“뭐가 다행이라는 거예요?”
정교랑의 물음에 진안 군왕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에게 혼인은 일생일대에 아주,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자유를 빼앗겼는데, 혼사라는 건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보내는 일이니 꼭 내 손으로 직접 결정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정방, 나는 당신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요.”
진안 군왕이 환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당신에게는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 나에게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인데, 당신이 사소하게 여기는 일로, 내 한평생 가장 중요한 일을 이뤄 줄 수 있나요?”
당신의 사소하게 여기는 일로, 내 한평생 가장 중요한 일을 이뤄 줄 수 있나요?
반근이 더욱 놀란 표정으로 진안 군왕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정교랑이 진안 군왕을 잠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좋다고?
반근이 고개를 돌리고 눈을 휘둥그레 뜨며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정말 이렇게 해도, 된다고?
이, 이게 뭐람?
“뭐긴 뭐야. 낭군과의 약속이라는 거지.”
방 안에 환하게 켜진 등불 아래에서 시녀가 중얼거렸다.
“언니.”
반근이 당황한 기색으로 시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렇게 혼사가 성사된다고?”
“청혼했어?”
시녀가 반근을 쳐다보면서 묻자, 반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안 군왕은 한참 전에 저택을 떠났다. 반근은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시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연하지. 아씨와 혼인하고 싶다고 했어.”
반근이 대답했다.
“아씨는 대답하셨고?”
시녀가 물었다. 반근이 또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아씨께서 좋다고 하셨어.”
시녀가 어깨를 으쓱하고 손바닥을 보이면서 말했다.
“그럼 끝난 건데, 뭘 또 묻는 거야?”
“그럼, 아씨께서는 정말로 진안 군왕한테 시집을 가시는 거야?”
반근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씨께서 아직까지 거짓말하신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시녀가 웃었다.
맞아. 아씨께서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하신 적이 없어.
반근이 자신의 두 손을 꼭 잡고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군왕이니까, 고 관인보다 대단한 사람이겠지?”
시녀가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반근의 이마를 쿡 찌르며 뒤로 밀었다.
“군왕이든, 천하에서 가장 센 사람이든, 공주부의 진 공자든, 죽마고우라는 주 공자든, 누가 더 대단한지는 아무 소용 없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씨께서 좋다고 하시는 사람이야.”
반근이 이마를 부여잡고 울상을 지으면서 언니, 하고 소리쳤다.
“꿈에서 그만 깨어나. 얼른 아씨의 혼례복을 준비하러 가야지.”
시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혼례복이라니, 정말 시집을 가시는구나.
아씨께서 정말로 혼례를 치르시는구나.
이마를 부여잡고 있던 반근이 갑자기 와락 울음을 터트렸다.
시녀는 그런 반근이 웃기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서럽게 우는 반근의 모습에 마음이 아려왔다.
“됐어, 그만 울어. 경사스러운 일인데, 왜 울고 그래.”
시녀가 반근을 다독였지만, 반근은 아예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밤사이 반근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밤바람에 실려 창가 너머의 마당을 맴돌았다.
해가 뜨자, 쿵쿵쿵 발걸음 소리가 고능준의 대청 안에 울려 퍼졌다.
“아버지, 아버지, 큰일 났습니다.”
고 관인이 다급한 걸음으로 걸어와 말했다. 시녀 두 명이 고능준의 옷을 갈아입혀 주고 있던 터라, 고능준은 고 관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제 진안 군왕이 그 천것의 집에 갔는데······.”
고 관인이 말하던 도중, 고능준이 몸을 돌렸다. 눈썹을 치켜세운 고능준이 고 관인의 말을 끊고 호통쳤다.
“첫째, 그건 큰일이 아니다. 둘째, 다시는 네 아내 될 사람을 천것이라고 부르지 말아라.”
고 관인이 깜짝 놀라 고개를 숙이고 움츠러들었다.
“잘못했습니다, 아버지. 소자가 실언을 하였습니다.”
사죄를 마친 고 관인은 얼른 재빨리 고개를 들고 말을 이어갔다.
“요 며칠 그 정, 정 낭자 댁에 진십삼도 갔는데, 진십삼은 저와 정 낭자 사이의 일을 좋게 풀어 보고자 애쓰는 사람이니 상관없다고 쳐도, 진안 군왕이 정 낭자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는······.”
“그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나 보지.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면 되느니라.”
고능준이 소매를 털고 말했다.
“마차를 준비하거라.”
마차?
“아버지, 정말로 정 낭자를 찾아가시려고요? 정 낭자를 이리로 부르면 되지 않습니까?”
고 관인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지금은 우리가 정 낭자에게 매달리는 거지, 정 낭자가 우리에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 낭자가 직접 찾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냐.”
고능준이 느긋하게 말했다.
이게 어딜 봐서 우리가 그 여인에게 매달리는 거야?
고 관인이 고능준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려던 찰나, 문밖에서 사환이 잰걸음으로 들어왔다.
“노야, 궁에서 온 겁니다.”
사환이 공손하게 고능준에게 서신 한 장을 건넸다. 그 자리에서 서신을 펼치고 내용을 본 고능준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아버지, 무슨 일입니까?”
고 관인이 물었다.
고능준은 소매를 털고 자리에 앉았다. 그가 천천히 서신을 접으며 입을 열었다.
“마차를 준비할 필요 없다.”
“네?”
고 관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또 갑자기 마차가 필요 없다고 하시는 거지? 가지 않으시려는 건가?
“갈 필요 없다.”
고능준이 금세 조금 전과 같은 평온함을 되찾고 천천히 말했다.
“진안 군왕이 폐하께 정교랑과의 혼인을 윤허해 달라고 했다는구나.”
뭐라고?
고 관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혼사를 논의하는 데 장장 이 년이 걸렸다는 죽마고우 주육낭으로 부족해서, 이제는 진안 군왕까지 합세했다고? 게다가 이번에는 이 일을 폐하의 앞으로 가져갔어?
내 체면을 밟으려고 안달이 난 놈들이 수두룩하구나. 도대체 내가 그놈들과 무슨 원수를 졌다고!
근정전의 창문과 문이 굳게 닫혔고, 전직(殿直)들이 주위를 경계하며 수위를 섰다. 근정전 안에서 시중을 들던 내시들이 모조리 회랑 아래로 나와 있는 것을 보니, 근정전 내부에서는 필시 극비 사안을 논의 중일 터였다.
하지만 근정전 내에서 논의 중인 내용은 나랏일이나 군사 기밀과 관련된 극비 사안이라고 보기 어려운, 지극히 사적인 황실의 가정사였다.
황제가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진안 군왕을 쳐다보았다.
“네가 바란다는 상이 짐에게는 몹시 의외로구나. 왜 갑자기 그런 마음이 든 게냐?”
진안 군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폐하. 갑작스레 생긴 마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래도록 그 마음을 잘도 꼭꼭 숨겨 두었구나.”
황제가 웃으면서 느긋하게 말했다.
“사실 예전에는 딱히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진안 군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낭자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게 전부였죠. 낭자와 뭘 어쩌려는 생각 같은 건 해 본 적 없습니다.”
진안 군왕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막상 그 여인이 다른 사람한테 시집간다는 소식을 들으니······.”
진안 군왕은 민망한지 말을 하다 말고 손을 올려 옷깃을 매만지며 말끝을 흐렸다.
“음, 그러니까 너는 그 여인이 시집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 여인을 위해서······.”
황제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주씨 가문 녀석처럼, 그 여인을 도와주기 위해서 나서는 게지. 그 여인을 곤경에서 구해 내려고.
진안 군왕이 고개를 저었다.
“폐하, 이건 신을 위한 겁니다.”
그가 한결 편안해진 눈빛으로 황제를 쳐다보았다.
“경왕을 위한 거기도 하고요.”
황제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여인이 너한테 시집오면, 경왕을 치료해 줄 거라고 생각하느냐?”
황제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다소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이건 그 여인이 꽤 오래전부터 꾸며왔던 계략일지도 모르겠군.
진안 군왕이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폐하, 그 여인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경왕의 병을 치료해 줄 일도 없지요.”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그럼 무엇을 위한 것이냐?”
“신이 그 여인을 마음에 품었기 때문입니다.”
진안 군왕이 곧바로 대답했다. 진안 군왕의 대답에 흠칫 놀란 황제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마음에 품었다라······.
그렇다면 좋아하게 된 이유가 있을 텐데. 미모나 지혜, 하다못해 신기한 비술이라든지.
“신이 그 여인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진안 군왕이 말을 덧붙였다.
믿는다고?
황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경왕의 병은 치료할 수 없겠지만, 그 여인은 의술에 통달한 사람이 아닙니까. 아니, 통달한 게 의술이 아니라 그 어떤 술법이라 해도 좋습니다. 정 낭자가 준 차를 경왕에게 우려 줬더니, 신기하게도 경왕의 짜증과 초조함이 덜해지고 편안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낭자의 옆에 있는 한, 경왕은 칠현금 소리도 들을 수 있겠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가끔은 정 낭자가 죽을병에 걸린 이를 살려내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진안 군왕이 이어서 말하다가 고개를 들고 황제를 쳐다보았다. 황제 또한 진안 군왕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침묵을 지키자, 근정전 안에는 적막감이 흘렀다.
“위낭, 그럼 네가 믿지 않는 사람은 누구더냐?”
황제가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폐하, 신은 귀비마마를 믿지 않습니다.”
황제는 마치 진안 군왕의 대답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평왕 전하도 믿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