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96
교랑의경 696화
“나리, 어젯밤에 갑자기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하인 한 명이 겁먹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하자, 장수가 그의 말을 끊고 호통쳤다.
“불이 나? 그런 우연이 있단 말이냐? 하필 어젯밤에 불이 났다고?”
장수가 눈을 부릅뜨고 하인을 향해 윽박질렀다.
“바른대로 고하거라! 네놈들이 일부러 불을 지른 게 아니더냐!”
하인들은 억울하다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엄히 조사하라! 하필 어젯밤에 불이 났다는 것이 참으로 수상쩍구나!”
장수가 병졸들을 향해 소리치자, 하인이 놀란 눈으로 장수를 쳐다보았다.
“나리, 나리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하인이 감격스러워하면서 눈치도 없이 말을 덧붙였다.
“저희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분명 며칠 전에 큰비가 내려서 건조한 날씨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왜 갑자기 불이 났을까요?”
하인은 장수를 향해 연신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부디 나리께서 잘 좀 조사해 주십시오. 방 두 개가 불에 타버렸고, 귀중한 물건들을 두었던 고방도 다 타 버렸습니다.”
“조사하기는 개뿔!”
따귀를 후려치는 소리가 대청 안에 울려 퍼졌다. 한 사내가 장수의 얼굴을 매섭게 내리쳤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따귀를 맞은 장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썩 꺼지거라!”
장수는 아픈 뺨을 매만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서둘러 밖으로 물러났다. 대청 안에 서 있던 사내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냐?”
“예. 화약이나 탄약을 만든 흔적 따위는 일절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대답했다.
“대인, 군감에서도 분실된 물품이 전혀 없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정 낭자가 직접 만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범강림이나 이무 모두, 다 정 낭자의 가르침으로 그 무기들을 만들어 낸 거잖습니까.”
다른 사람이 말했다.
“나도 안다. 범강림과 이무가 정 낭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건 잘 알고 있어. 내가 알고 싶은 건, 지금 정 낭자의 손에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이며, 그게 얼마나 더 있는지다.
보아하니 경성에서는 조사할 만한 게 없는 것 같군. 너희들은 청원 역참을 더욱 예의주시하거라.”
사내의 말에 다들 알겠다고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대인, 그럼 고 관인의 일은 일단 조사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한 사람이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
“당분간만이다. 지금은 내일모레 거행될 태자의 국혼이 무엇보다 중요해.”
사내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고 대인이 경성에 오래도록 머무를 구실이 만들어진 셈이군요. 고 노부인께서 앓아누우신 데다가, 이젠 본인까지 병들었으니, 더더욱 경성을 떠나기가 힘들겠습니다.”
진(陳)씨 저택 안에서 한 막료가 말했다. 그러나 진소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했다.
진소는 내일모레 있을 국혼 준비를 마치고, 오후에 궁에서 돌아온 뒤로 계속 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내일모레 있을 태자의 국혼이 무엇 때문에 성사되었는지, 무슨 의미를 내포하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어쨌거나 딸자식이 출가하게 되었으니 대인께서도 마음이 심란하시겠지.
“대인, 시간이 늦었으니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막료들이 말했다. 진소가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가는 막료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진소는 몸을 일으켜 후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당에는 국혼을 위한 화려한 장식들이 하나둘씩 걸리기 시작했다. 경사스러운 장식품 때문에 어스름한 초저녁의 마당이 한층 더 알록달록해 보였다.
진소가 나오자, 하인들이 서둘러 예를 표하면서 길을 비켰다. 진소는 안팎으로 등불이 환하게 밝혀진 후원의 문 앞까지 다가갔다가, 돌연 걸음을 멈췄다.
진단랑의 혼사를 결정한 뒤로, 진소 부인은 진소가 후원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 어머니, 이렇게 입는 건 어때요? 예뻐요?”
진단랑의 맑은 목소리가 후원에서 들려왔다.
진소가 정신을 퍼뜩 차리고 안쪽을 들여다보자, 대청 안에서 붉은 혼례복을 입은 진단랑이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런데 제가 입으니까, 정 언니가 입었을 때처럼 예쁘진 않은 거 같아요.”
“어머, 아씨, 농담하시는 거죠? 아씨께서 입으신 건 태자비의 옷과 장신구들이에요. 정 낭자가 입은 건 군왕비의······.”
대청 안에서 여종들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진소가 돌아서서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 왜 우시는 거예요?”
“이 어미는 기뻐서 그러지.”
등 뒤로 들려오는 대화를 더는 들을 수 없었던 진소는 재빨리 자리를 떴다.
황궁 안. 태후궁의 침전은 등불이 환하게 밝혀지고 시끌벅적했다.
“육가아, 육가아. 이리 와서 앉아 보렴, 어서.”
태후가 말했다. 하지만 태자는 태후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해맑게 웃는 얼굴로 괴성을 내지르며 기둥을 붙잡고 있었다.
“마마, 그만 부르시지요. 전하께서는 알아듣지 못하십니다.”
태후의 측근 내시가 말하고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 손을 들었다.
“어서 가서 태자 전하를 앉혀 드리거라. 밤새 뛰어다니셨으니 조금 쉬셔야지.”
내시들이 서둘러 알겠다고 대답한 뒤, 태자에게 우르르 몰려가 그를 힘으로 눌러 자리에 앉혔다. 전각 안에 태자의 짜증 섞인 괴성이 울려 퍼졌다.
태후가 손으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태자의 국혼이니 어찌 됐든 태자가 직접 나서긴 해야 할 텐데, 지금 저 꼴 좀 봐라. 저래서야 태자를 어찌 붙잡고 있겠느냐?”
태후의 말에 내시가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전하께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저렇게 난리를 피우신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태자의 괴성에 심란해진 태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심신을 안정시키는 탕약을 먹이지 않았더냐? 그 탕약이나 좀 가져다 먹이거라.”
태후의 물음에 내시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태의가 그 탕약은 너무 많이 쓰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태후가 언짢은 기색으로 내시를 노려보았다.
“딱 요 며칠만 쓰자는 거지. 국혼을 치르는데 체통은 지켜야 할 것 아니냐.”
태후의 말에 내시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서둘러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럼, 오늘 밤에도 시침을 명할까요?”
내시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내시 서너 명이 붙었는데도 태자 하나를 제대로 붙잡고 있지 못하자, 태후가 태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 넘치는 힘을 뒀다 어디에 쓰려고?”
내시가 태후의 뜻을 이해하고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만 가 보거라. 하루 종일 저렇게 난리를 피웠는데, 일찍 재워야지.”
태후가 성가시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전각 안에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예를 표하고 태자를 질질 끌며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밤이었다. 태자의 궁에서 여인의 짤막한 신음이 들려오더니, 곧 다시 조용해졌다.
바깥에 서 있던 내시가 하품을 했다.
“오늘은 그래도 좀 길었네.”
맞은편에 서 있던 내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잡담을 나누는 사이,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여인이 옷을 반쯤 걸치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우(于) 낭자, 보아하니 장차 황태손의 생모가 될 사람은 바로 낭자겠습니다.”
내시들이 예를 표하면서 웃었다. 여인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치도 않습니다. 황태손의 모친은 황후마마신걸요.”
“우 낭자도 피곤할 텐데, 그냥 여기서 쉬는 건 어떻겠습니까? 귀찮게 왔다 갔다 할 필요도 없고요.”
내시들이 말했다.
여인의 눈가에 경멸의 눈빛이 스쳤다.
저런 바보랑 같이 자고 싶은 사람이 어딨어? 저리 더러운 냄새까지 풍기는데.
“아니에요. 소인이 어찌 감히 태자 전하와 한 침상을 쓸 수 있겠습니까.”
여인이 나풀거리는 걸음걸이로 자리를 떠났다.
내시들이 막 잠을 자러 들어가려던 그때, 안쪽에서 태자의 괴성이 다시 들려왔다.
“아이고, 왜 또 저러시는지.”
한 내시가 말했다.
“그냥 탕약을 먹여 버리자고.”
다른 내시가 말했다.
내시들이 탕약을 먹이자, 태자는 금세 조용해졌다. 내시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지러운 침상 위를 바라보던 내시가 침상을 정리하려고 손을 뻗자, 다른 내시가 그를 제지했다.
“치우다가 괜히 잠에서 깨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더러워도 그냥 내버려 두게. 누가 이런 걸 신경이나 쓰겠어? 내일 아침에 한꺼번에 정리하면 되는걸.”
내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거뒀다. 내시들은 방을 나가기 전,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향을 피운 다음 휘장을 내리고 밖으로 나갔다.
야간 당직을 서는 내시를 제외한 나머지 내시들이 모두 태자궁을 빠져나왔다.
한 내시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내일은 날씨가 좋겠군.”
가을밤이 점점 더 어두워지자, 역참이 고요해졌다. 회랑 아래에 서 있던 진안 군왕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요 며칠은 날씨가 좋네요. 사천대가 쓸모 있을 때도 있다니 놀랍군요. 적어도 국혼을 치를 때만큼은 비가 내리지 않겠어요.”
진안 군왕의 말에 정교랑이 웃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다 각자의 재능이 있으니까요.”
“당신 같은 천재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이 다 평범해 보일 줄 알았는데요.”
진안 군왕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 또한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에 불과해요.”
정교랑이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 별빛에 비친 정교랑의 미소가 더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참, 잠깐만 기다려요.”
진안 군왕이 무언가 생각난 듯이 한마디를 남기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딜 가려고요?”
정교랑이 물었다.
진안 군왕은 정교랑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당직을 서던 내시들에게 뭐라고 귓속말을 했다. 내시들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어디론가 사라졌다.
“부인, 바람이 차요.”
반근이 두봉을 들고 나오며 말했다.
정교랑이 몸을 돌려서 반근이 들고 나온 두봉을 어깨에 걸쳤다. 정교랑이 다시 몸을 돌릴 때쯤, 진안 군왕이 마당 안에 서서 정교랑을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잘 봐요.”
진안 군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린 내시 두 명이 폭죽 두 개에 불을 붙였다.
하늘에서 펑펑 소리를 내며 불꽃이 터지더니, 오색빛깔의 구름 두 점이 역참의 하늘을 밝혔다. 앞쪽 마당에서 사람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 선생이 창가에서 시선을 거두고 입술을 삐죽였다.
“허구한 날 저런 것에만 신경 쓰시지.”
고 선생이 나지막이 투덜거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경성에서 전해 온 소식들을 읽었다.
반근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어때요? 예뻐요? 우리가 혼례를 올리던 날에 비하면요?”
진안 군왕이 웃으면서 정교랑을 향해 묻자, 정교랑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정교랑의 표정이 갑자기 변하더니 곧 온몸에 힘이 빠진 듯 난간을 붙잡았다.
정교랑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반근이 재빨리 다가가 정교랑을 부축했다.
“부인, 왜 그러세요?”
마당에 서 있던 진안 군왕도 이상한 낌새를 감지했는지, 의아하다는 얼굴로 위층으로 올라왔다.
불꽃이 사라지던 그 순간, 정교랑의 경악한 표정이 불빛에 비쳤다.
“오성취두우(五星聚斗牛: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다섯 개의 별이 북두성과 견우성 자리에 모이는 천상).”
정교랑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오성취두우라니.”
“정방?”
진안 군왕이 위층에 올라와서 정교랑을 부르자마자, 정교랑은 몸을 홱 돌려 진안 군왕을 향해 돌진했다. 진안 군왕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정교랑을 붙잡았다.
정교랑이 자신을 잡은 진안 군왕의 팔을 덥석 붙잡고 말했다.
“방백종, 지금, 당장, 경성으로 돌아가야 해요.”
지금 당장, 경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진안 군왕이 놀란 표정으로 정교랑의 진지한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꽈당 하는 소리가 야밤의 정적을 깨트렸다.
휘장을 걷고 침상 위로 시선을 옮기던 내시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옆에 있던 의자를 쓰러트렸다. 내시는 엉덩이가 아픈 줄도 모른 채, 몸을 덜덜 떨며 침상 위를 바라보았다.
침상 위에 누운 태자는 두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뜬 채,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내시가 소리를 내질렀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어서 사람을 불러오너라! 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