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zy but the strongest in the dimension RAW novel - Chapter 60
게을러서 차원최강 060화
060 적진의 백성들(1)
초장거리 도약 텔레포트 게이트 앞에서 우리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우선, 사람들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사력을 다했다.
신성 기사단장 카르엔마저도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곱씹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바탕 대전투가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투가 있기는 했지.”
“하지만 데스 나이트가 각하께 그리 쉽게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놈은 무려 마신이 만들어 낸 병기가 아니겠습니까.”
신들이 전쟁을 벌였던 신화의 시대.
데스 나이트는 그 위압적인 시대가 만들어 낸 산물이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일행들은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데스 나이트는 강력한 지진 마법을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했고, 언데드 군단을 만들 수 있는 사령술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그 한 마리가 군단 급의 전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지금까지 이곳에 도전하였던 수많은 모험가들이 죽음을 맞이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육포를 질근 씹으며 답했다.
“그래 봤자 개인적인 무력은 별로 시답지 않던데?”
“그건 각하니까 그런 겁니다.”
일행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쫄깃했을지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우리들은 하나둘 육포를 씹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짐은 최대한 간소화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육포는 식량 중에서 무게가 가장 작게 나가고 포만감은 채워 주는 훌륭한 대체품이다. 다만 조금 비리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나는 육포를 약간 조미했다.
일반적으로 제국에서 만드는 육포는 생고기에 소금을 약간 쳐서 말린 후에 휴대하지만 살짝 익힌 후에 소금과 후추를 쳐서 말렸다. 그러자 풍미가 살아났다.
베르체가 육포의 맛을 음미하며 말했다.
“정말 훌륭한 맛입니다. 이 정도라면 단시간 육포를 먹으면서 여행하는 것 정도는 감수할 수 있겠습니다.”
“곧 질릴 거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한 가지만 반복해서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다.
모닥불에 육포를 약간 구워서 먹었다. 스튜라도 끓였으면 좋겠지만, 재료가 마땅치 않았다. 그냥 이렇게 먹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
베르체가 지도를 폈다.
“가랑가 평원에 도착하면 곧바로 가랑가 숲으로 향해야 합니다. 숲 입구에 저희 세작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숲까지의 거리는?”
“지도가 정확하다면 반나절이면 충분하지만, 이게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죠.”
“반나절이면 그냥 부랑자로 위장해서 가면 되는 것 아니야?”
“문제는 라크몬 백작령에서 도망친 상인이라고 보기에는 힘들다는 겁니다.”
“여긴 마도 연합의 영토지. 돈만 많으면 몇 명의 사람들 정도는 텔레포트 게이트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어.”
“그래도 한계는 있을 겁니다. 관료들의 의심은 피해 갈 수 없죠.”
“산속으로만 이동을 하면 되지.”
“언젠가는 보급을 하러 들러야 할 겁니다.”
“그때에는 완벽하게 상인으로 위장하여 거듭나야 하겠지.”
나도 어느 정도의 계획은 세우고 있었다.
북쪽으로 접근하다가 도시에 들러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고 제대로 상단으로 위장을 하는 것이다.
현지에서 용병을 고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었다.
“그보다 문제는 얼마나 편하게 여행을 하느냐 하는 건데.”
“편한 여행이라니요?”
“말 그대로다. 오래 걸으면 내 발에도 물집이 잡히겠지.”
“…….”
그러니까 내가 편하고자 뭔가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행들은 일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안락함을 추구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내 의지는 확고했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아식스가 살짝 인상을 구겼다.
실비아가 아식스 남작을 쏘아봤다.
“감히 누구의 말에 반박하는 건가요?”
일행들이 식은땀을 흘렸지만 여기서 더 가관인 것은 베르체 추기경의 태도였다.
“그건 성녀님의 말씀이 맞네.”
“예?”
“사령관님의 발에 물집이 잡히는 것보다 큰일은 없지. 암, 그렇고말고.”
“내가 교육 하나는 잘 시켰군.”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아식스와 카르엔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쿨렁!
“크윽!”
“우웨웨웩!”
초장거리 이동.
그야말로 초장거리 게이트로 한 번에 이동하는 것은 신화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도 텔레포트가 되기는 하였지만, 인원에 제한이 있었고 후유증이 꽤 있었다.
일행들은 괴로워했지만 나에게는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원래 신들은 밥 먹듯이 공간을 이동하였다.
어떤 후유증이라도 있었다면 텔레포트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일행들이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동안 주변을 둘러봤다.
휘이잉!
“춥군.”
남방의 제국보다 황량한 기분이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들판에는 그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흔한 잡풀도 없었으며, 동물의 흔적도 없었다.
“마도 연합이 이렇게 황폐한 곳이었나?”
“그 때문에 비옥한 제국을 노리고 여러 차례 침략을 하기도 했죠.”
실비아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교단의 사람들은 오히려 제국에 속한 사람들보다 마도 연합을 오랫동안 겪어 왔다. 실비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직접 전투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끊임없이 전투를 이어 왔을 것이다.
우리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베르체 추기경은 젊은 시절을 제국 북방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렇기에 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성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단순히 종교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란 말인가.”
“물론 종교적인 이유가 크기는 합니다. 천신과 마신이 대립하는 것은 사람이 숨을 쉬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일일 테지요. 종교 내 종파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선과 악의 대립이기에 타협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다만, 종교 내 갈등과 더불어 북쪽이 척박하다는 것도 잦은 침략의 이유였습니다.”
“그럴 만하군.”
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무리 겨울이라고 해도 들판에는 농사를 지은 흔적이라도 있어야 한다. 밀이나 쌀을 수확하고 남은 잔여물이라도 있어야 했고, 규격에 맞춰 농토를 이루어야 했는데, 이곳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원래부터 농사가 되지 않는 땅이라는 뜻이다.
바닥에 손을 짚어 언 땅을 부수고 흙을 확인하자 모두가 검은 흙이었다.
“화산재가 굳어져서 이렇게 된 건가.”
“마기를 머금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러니 농사가 되는 땅은 한정이 되어 있지요.”
“그것 참 아이러니한 일이로군.”
“칼도나 여신님은 풍요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에 비하여 마신은 기근을 상징하지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것은 어마어마한 영토 때문인가.”
“농사가 아니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까요.”
사실 우리들은 이곳에 넘어오자마자 적들과 맞닥뜨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넘어오는 순간 추격이 시작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막상 초장거리 도약을 하고 보니 전방의 경계에 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국과의 경계 지역은 최전방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농사가 잘 되었다. 카렌 영지만 해도 그렇다. 전쟁만 아니라면 꽤 비옥한 지역이다.
마도 연합 국경선의 영주들은 비옥한 토지에 농사를 지여 자금력을 확보했고, 동시에 군사력을 과시했다.
그러니 경계가 삼엄했다.
하지만 마도 연합의 안쪽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숲으로 이동하자.”
“네!”
나는 데스 나이트의 등에 마련된 지게에 올라탔다.
지게에는 의자가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번 이동을 위하여 특별하게 제작된 것이었다.
걸어가는 와중에도 게으름 수치는 깎여 나갈 테니 내가 굳이 걸어갈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짐꾼이 없으면 모르겠지만 데스 나이트라는 훌륭한 짐꾼이 있었다.
우리들은 반나절을 걸어 숲 입구에 도착했다.
마도 연합의 숲은 숲의 모습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앙상하고 검은 가지들만 남은 나무들이 드문드문 펼쳐져 있었다. 그나마 이곳에 엄폐가 가능한 것은 기형적으로 돋아나 있는 바위들 덕분이었다.
이 정도면 숲이 아니라 바위산이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
핑!
퍼억!
눈앞에 화살이 틀어박혔다.
“정체를 밝혀라.”
그나마 굵은 나무 위에서 한 남자가 석궁을 겨누고 있었다.
베르체가 앞으로 나왔다.
“혹시 크루트인가?”
“추기경 성하이십니까?”
“그렇다네.”
탓!
나무 위에서 남자가 뛰어내렸다.
매우 가벼운 몸놀림이다. 이 정도라면 세작의 실력이 꽤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베르체와 안면이 있었다.
“카르엔 단장님도 오셨군요.”
“크루트.”
카르엔 단장은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그와 포옹을 나누었다.
그렇다면 크루트라는 남자는 신성 기사단이었다는 뜻일까.
“사령관님. 이자는 신성 기사단의 일원이었습니다.”
“오, 그래?”
“인사하게. 여신께서 선택하신 성인일세.”
크루트의 눈동자가 커졌다.
성인의 칭호를 받았다는 것은 성녀와 동격의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어떻게 보면 베르체 추기경보다 교단 내에서 신분이 더 높았다.
베르체가 여기에 공인을 하나 더 해주었다.
“곧 교황군 사령관이 되실 분이네.”
“정말입니까?”
“나는 잘 모르는 이야기인데.”
나는 볼을 긁적거렸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교황군 사령관으로 내정이 되었다니?
추기경이 웃으며 말했다.
“교황 성하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계시고, 여신께서 강림하셔서 직접 축복까지 해 주셨는데 각하가 교황군 사령관이 되지 않으면 대체 누가 사령관이 된다는 말입니까?”
“허어,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크루트라고 합니다.”
“발렌이다.”
우리들 역시 악수를 나누었다.
크루트는 반가움을 뒤로하고 데스 나이트를 바라봤다.
전신이 갑주로 둘러싸인 것은 그렇다고 쳐도 등짐처럼 메고 있는 지게의 용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저건.”
“내가 타는 의자다.”
“의자요? 산길을 가는데 의자가 필요합니까?”
“문제 있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크루트는 의문을 품었다.
여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사람이 고생을 마다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여길 오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할 거다.
하지만 나 역시 좋아서 온 길은 아니었다.
게으름 수치에 대해 그에게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베르체가 설명했다.
“사정이 있으니 많이 알려고 하지 말게. 여신께서 선택하신 분이야.”
“아, 예.”
크루트는 의심을 거두었다.
베르체 추기경이 내 신분을 보증하고 있었다. 여기에 성녀와 카르엔 단장까지 있었다. 그들이 단체로 미치지 않고서야 거짓으로 내 신분을 보증할 이유는 없었다.
아식스와도 인사를 했는데, 크루트는 데스 나이트 앞에서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도대체가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분은……?”
“데스 나이트다.”
“네에!?”
“목소리가 크군.”
“어찌하여……?”
“신마대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지. 전투에 승리해서 복속했다.”
“이거 대단하신 분들이 오신 것 같습니다. 그럼 산채로 가시죠.”
“산채라니?”
“아직 보고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지금까지 국경에서 발생한 유민들이 산으로 스며들어 산적이 되었습니다.”
“허어, 유민들이 산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베르체 추기경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