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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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악마의 마계가 있는 방향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기운이 날 노리고 똑바로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앞의 악마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여기에 적이 더 늘어나다니! 아니, 그보다······. 악마가 둘이라고?!
이상하다. 내 직감이 틀린 건가?
하긴 이 정도로 강력한 상대라면 내 직감을 속이고 잠복해 있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것이 만약 내 방심을 유도한 적들의 계책이라면 정확하게 맞아든 셈이 되고 만다.
“아니, 아니로군.”
다가오는 기운이 가까워질수록 확실해졌다. 눈앞의 적이 풍기는 마기보단 지금 막 마계에서 나온 악마의 마기가 훨씬 더 컸다. 눈앞의 적, 내가 악마라고 생각했던 상대는 사실 진짜 악마가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아마도 내 눈앞의 적은 그냥 악마의 하수인이거나 권속일 뿐일 터였다.
상황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절망적이었다.
그나마 내가 완전히 절망하거나 전의를 잃지 않은 건 오로지 [천자총통]의 [필사즉생] 덕이었다. 상황은 그 정도로 최악이었다.
어쨌든 맞서 싸워야 했다.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놈! 어딜 다른 데 신경을 파느냐!! 죽어라!!”
눈앞의 적이 내게 불꽃 주먹을 휘둘러왔다. 이건 피할 수 없다!
“체엣!”
나는 [반환의 권능]을 이용해 그 불꽃을 적에게 되돌리려고 했다. 이제까지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반환의 권능]으로 무효화하고 비축하고 반환할 수 있는 공격은 오직 스킬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안 통할 건 예상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시도를 한 까닭은 그냥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내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화르륵.
내 몸을 마기로 이뤄진 불꽃이 휘감았다.
“크으윽!”
불꽃의 열기는 지옥의 그것과도 같았다. 신경마저도 태워 버릴 것 같은 극염!
“하하하! 불타 죽어라!!”
악마의 권속은 통쾌한 듯 소리 질렀다. 그러나 내게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온몸을 마기로 이뤄진 불꽃이 태우는 그 순간, 나는 어떠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 나는······! 나아느은······!!”
황무지의 오크와 드워프, 그리고 코볼트는 나를 가리키는 심볼로 불꽃 문양을 택했다. 그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내 신성을 이루고 있는 건 그들의 신앙이고, 그들이 나의 불꽃을 숭배한다는 건 나 또한 불꽃이라는 뜻이다.
내가 미친 건가? 고통 끝에 이상한 상상에 빠져들고 만 건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이미 불꽃에 타죽었을 거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으으으읍! 크아아악!!”
“멍청한, 어리석은! 미약한 벌레야,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하고 재가 되어라!!”
악마의 권속은 내가 마기의 불꽃에 저항하는 기색을 보이자 당황한 건지, 입에서 불을 토해내었다. 불꽃 주먹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압도적인 불꽃의 양에 나는 전의가 꺾일 것 같았으나, 나는 방금 전에 잡은 깨달음의 실마리를 아직 놓지 않은 채였다.
스킬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힘의 전부는 아니다. 눈앞의 적이 그러하다. 나 또한 그러하다. 나는 스킬의 힘이 없이도 마력을 불꽃과 뇌전으로 변환시키는 법을 깨달았고 지금도 사용할 수 있다.
이 불꽃이 너의 마기로 이뤄진 것이라고? 너 자신이나 마찬가지라고?
“나의 신성은!!”
화르륵!
불이 타올랐다. 단순한 불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이 방법을 진작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 감각은 진리의 검을 불태우기 위해 신성을 일으켰을 때와 같았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불꽃이다!!”
드디어 나는 자각했다.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진짜 악마도 아닌, 그저 악마의 권속에 불과한 존재가 토해낸 불을 내가 지배하지 못할 리가 없다!!
나는 내 몸을 휘감아 불태우고 있던 불에 나의 신성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불은 더 이상 나를 태우지 못한다. 그야 그렇다. 이 불은 나의 지배하에 놓였으니까.
쉬운 일이었다. 이렇게 쉬운 걸 왜 이제야 깨달은 걸까?
“뭣?!”
악마의 권속은 놀라 물러났다. 놈도 내가 어떤 이적을 행했는지 깨달은 눈치였다. 그렇다, 이적. 불꽃을, 어떤 에너지를 나의 힘으로 한다는 것은 이적이라는 단어를 쓰기에 합당한 행위였다.
“이제 더 이상 네 불꽃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나는 내 몸을 휘감고 있던 불꽃을 오른손에 든 진리의 검에 집중시켜 보였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지. 이제 이 불꽃은 내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의 신성으로써 지배해낸 불꽃을 악마의 권속을 향해 쏘아냈다. 막대한 열량과 함께 신성을 담은 불꽃이 악마의 권속을 향해 날았다.
퍼어억!
신성한 불꽃이 악마의 권속에게 짐승처럼 달려들어, 오른손의 손가락 두 개를 물어뜯었다.
“크아아아악!!”
악마의 권속이 고통스러운 듯 울부짖었다. 그걸 보는 내 입장에선 허탈할 따름이었다. 이 반격으로 팔 하나는 날릴 셈이었지만, 손가락 두 개가 고작이었으니. 그리고 저 권속은 고작 손가락 두 개 가지고 저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니.
당연하지만 이 정도로 역전을 논하기엔 부족하다.
악마는 불꽃에 휩싸이는 동시에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이 불꽃을 지배해 피해를 줄였다. 그것이 완전하지 못해 손가락 두 개를 날리긴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진짜 악마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상황은 조금 나아졌지만 결정적으로 바뀐 건 없었다.
“발사!”
그렇다고 여기서 싸우는 걸 그만둘 순 없지! 손가락 두 개를 뜯어낸 틈을 타 거리를 벌리고, 나는 다시 한번 천자총통 포격을 실행했다.
“에이이! 벌레가, 벌레 주제에!!”
악마의 권속은 포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내게 주먹을 휘저어댔다. 불꽃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후로 단순한 몸싸움으로 전술을 바꾼 모양이었다. 그리고 무려 18m에 달하는 거체의 그런 공격은 내게도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큭!!”
놈이 날 두고 벌레, 벌레거리니 나도 벌레처럼 상대해 줘야겠다.
나는 [에이스의 곡예비행]을 통해 놈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며 불꽃의 검으로 놈을 마구 베어대었다. 방금 전의 경험으로 신성한 불꽃을 좀 더 잘 다룰 수 있게 되었기에, 나는 단순히 [불꽃의 검]이 아닌 내 마력을 전환해 만든 불꽃에 신성을 입혀서 뿜어대었다.
“끄아아아악!!”
그러자 놈이 더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승기를 잡은 건가 싶었지만, 나도 더 이상 놈을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악마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
악마의 모습은 그 권속과 닮았으나 훨씬 더 크고 강해 보였다. 마치 어른과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겉보기뿐만 아니라, 그 존재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마기의 크기는 그야말로 비견조차 되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강하구나, 지구인.”
악마가 내게 말했다.
“그러나 네 저항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얌전히 네 혼을 내게 바쳐라!”
그 목소리는 웅혼했고 위엄이 깃들어 있어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그 말대로 따르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정신을 놓지 않았다. 그 말에 따를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아까부터 이상했다.
악마가 그의 권속보다 강력한 존재인 건 굳이 확인해 볼 필요도 없이 명백한 사실이다. 단순 피지컬 면에서부터 그 몸에 깃든 힘까지 볼 때, 악마가 그의 권속을 손가락 하나로 짓눌러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상했다.
“왜 악마 쪽이 훨씬 만만해 보이지?”
나는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어 버리고 말았다.
“뭣?!”
게다가 그 혼잣말은 악마에게 들리고 만 것 같았다.
“네놈, 지구인······! 감히 날 얕보다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걸로도 보이지 않는데, 대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을 얻었느냐? 아무런 근거도 없는 자신감은 스스로를 망칠 뿐이다.”
악마는 날 어여삐 여기기라도 하듯 조언마저 건넸다. 너무 어이없는 말을 들은 나머지 분노보다 먼저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라도 한 모양이다.
나는 그런 악마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으니까. 내 모든 오감을 동원해 본 결과, 악마가 엄청난 강자라는 건 쉬이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어째서 내 직감은 이렇게 외치고 있는 걸까?
이 악마가 만만한 상대라고.
악마의 권속은 아까부터 조용했다. 내 실언으로 인한 불똥이라도 튈까봐, 최대한 존재감을 숨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기선 잘 생각해야 한다. 괜히 나대다가 손해를 본 게 이제까지 몇 번인지 이젠 한 손으로 셀 수도 없다. 신중함이야말로 진짜 미덕이다. 나는 과거로부터 그렇게 교훈을 얻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직감을 믿어서 손해 본 적이 있었던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내 몸에 주렁주렁 매달린 항마력 옵션 장신구들을 내려다보았다. 이것들도 직감으로 고른 것들이었고, 지금 내 상대는 악마였다.
그리고 지금의 내 직업은 악마 사냥꾼이었다.
자, 어쩐다?
“지구인, 나쁜 말은 하지 않겠다. 얌전히 항복하고 네 혼을 내놔라.”
내 생각이 길어진 탓인지, 악마는 타이르는 말투로 내게 명령했다. 절대로 따를 수 없는 지시였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어차피 내게 선택권 따윈 없었다.
싸운다!
악마에 대한 증오심 : 100%
그렇게 전의를 다져먹자마자, [악마에 대한 증오]로 인해 쌓여 있던 증오심이 끓어올랐다. 더 생각할 것도 없다. 당장 개시한다!
“발사!!”
악마의 권속과 싸우느라 내 위치는 [천자총통]들을 방열해 놨던 곳에서부터 꽤 떨어져 있었고, 공교롭게도 그 위치는 악마의 등 뒤였다. 빛의 마력을 잔뜩 끌어 올려 불어넣은 데다 [격마의 탄환]까지 걸린 [강화 마법포탄]이 악마를 기습적으로 덮쳤다!
쿠콰콰콰쾅!!
“우어어어아아아악!”
기습을 당한 악마는 매우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러댔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스킬이 굉장히 잘 먹힌 것 같다.
“발사!!”
기분 탓인지 아닌지는 다시 한번 해보면 알겠지. 난 그런 생각에 [자동 재장전]으로 쿨타임이 취소된 [마법포 사격]을 재개했다.
쿠콰콰콰콰쾅!!
“아악, 으아악! 꺄아아아악!!”
악마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포탄을 피하려고 난리를 쳐대고 있었다. 정말 아파하는 것 같은 반응이다. 그제야 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이거 허당이네!
이게 아니라······. 악마의 권속을 상대로는 스킬의 부가 효과가 하나도 안 먹혀서 내 스킬들이 제 효과를 못 냈었다.
반면 악마에게는 [악마를 향한 증오심]과 S랭크 보너스인 [특정 악마를 향한 증오심]이 겹쳐져 3배의 효과를 내고, 여기에 [격마의 탄환] 효과가 정말 잘 먹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답은 바로 상성이다! 내가 지닌 악마 대상 특화 공격으로 인해 본래 전투력과 상관없이 내게 승산이 돌아온 것 같았다!!
“발사!!”
어쨌든 승산은 승산이다. 나는 희희낙락하며 계속해서 마법포 사격을 감행했다.
“그만! 으악! 그만하라! 끄어억! 지구인!!”
이렇게 스킬 효과가 잘 먹힘에도 악마에게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역시 포격만으로 악마를 잡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진리의 검]에 신성을 불어넣었다. 불꽃이 솟구친다!
“야아아아아압!!”
나는 악마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시야 전부가 악마의 몸으로 가려졌다. 이렇게까지 거대하다니! 그렇다고 여기서 쫄아 붙을 수는 없지!! 나는 진리의 검을 마구 휘둘러 악마의 피부를 찢어놓았다. 악마종에게 100% 추가 피해를 주는 옵션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거다!!
“끄읍! 이이익!!”
악마는 모기를 내려치듯 손바닥으로 날 후려치려 들었다.
[에이스의 곡예비행] – [불가해한 기동]“발사!”
나는 스킬을 써서 악마의 품에서 빠져나와 포격을 지시했다.
쿠콰콰콰쾅!
내게 신경 쓰느라 회피나 방어 행동을 취하지 못한 탓에, 이번에야말로 포격이 정통으로 악마에게 꽂혔다!
“꺼어어어어!!”
악마는 비명을 내지르더니, 이내 행동을 개시했다. 그 행동이란······.
“히아아아악!!”
바로 도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