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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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감으로 전함이 자폭하는 타이밍을 알았기에 스킬을 사용해 전함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며 방어막을 쳤지만, 비토리야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정면에서 전함의 자폭공격을 받아내야 했다.
그래도 괜히 여왕은 아닌지, 마기를 많이 소모하기는 했지만 다른 악마들처럼 단번에 소멸하는 일은 없었다.
“······끄으으으윽!”
당연히 큰 피해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전신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그 피해가 눈에 보일 정도였다.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반사적으로 생각해 버렸다. 아무리 [유혹의 권능]에 걸려서 저러는 거라고 한들 그래도 날 보호해 준 비토리야나에게 할 생각은 아니지만, 내 생존본능은 솔직하기 그지없었다.
“무사하시군요, 서방님.”
그러나 날 돌아보곤 안도한 듯 웃는 여왕의 모습에, 나는 잠시나마 그녀를 향했던 살의를 접어야 했다. 마음이 약해진 게 아니라, 마기를 끌어올려 순간적으로 완전히 회복해 버린 모습에 질린 탓이었다.
“그래, 너도. ······다행이군.”
나는 입 발린 소릴 했다. 아니, 실제로 다행이다. 근거리 자폭으로 인해 악마들도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쪽도 상황이 별로 좋은 편이라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저 빌어먹을 오로블주를 쳐 죽이려면 여왕의 힘이 필요한 게 내게 있어서의 현실이었다.
“······네!”
잠시 멍해져 있던 여왕은 확 밝아진 낯빛으로 내게 대답했다. 그 반응을 보고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낄 리 없지. 애초에······.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다. 나는 다른 곳으로 새려는 사고를 확 꺾고 정면에 시선을 던졌다.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오로블주의 목을 따는 것만 생각하자.
“전투, 준비해.”
“네, 서방님.”
내 말을 듣고 여왕도 정신을 차린 듯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
하늘이 깨끗해졌다. 여왕을 제외한 모든 악마들이 자폭에 휩쓸려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아까운 경험치를 다 날려 버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긴장 풀린 소릴 하기엔 상황이 별로 유리하질 못했다.
오로블주에겐 아직 세 척의 전함이 남아 있었다. 저걸 모조리 자폭시킨다면 아무리 비토리야나라 해도 버티고 있기는 힘들 터였다. 게다가 자폭에 휘말려 죽은 악마들도 지금쯤 전함에서 부활했을 테니 전황은 매우 불리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이로써 상황이 정리되었군. 여왕.”
그런데 오로블주가 갑자기 전함에서 나오더니 비토리야나에게 말을 거는 게 아닌가? 상황이 좀 요상하게 돌아가는데. 뭐지? 뭐 하자는 수작이지? 나는 놈에게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그 목을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냉정을 되찾으려 애썼다.
“이게 전부 당신이 그분의 명령에 따르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얌전히 명령에나 따랐으면 좋았을 것을.”
“······승리를 확신하는 모양이로군, 오로블주.”
비토리야나가 분한 듯 말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비토리야나는 전함의 자폭에서 살아남는 데 마기를 너무 많이 써서, 오로블주보다도 그 기운이 약해져 있으니까.
“승리?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저 그분께 쓰임 받을 뿐. 소용을 다하는 것만이 나의 기쁨. 작은 승리에 연연할 리가 없지.”
오로블주는 비토리야나를 비웃었다.
“내 귀한 전함을 두 대나 터트린 게 놈의 명령 때문이냐!”
가벼운 도발이었으나, 지금의 비토리야나를 격분시키는 데는 충분했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오로블주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그저 필요했기에 이용했을 따름이다. 이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뭐······?”
“그대의 패배감, 그리고 상실감. 조건은 만족되었다. 여왕!”
나는 직감적으로 즉각 [현묘한 간파]를 켰다. 그리고 오로블주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게 되었다. 오로블주는 지금 비토리야나에게 [지배의 권능]을 사용하려 하고 있었다.
[지배의 권능]은 브뤼스만의 권능 아니었어?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도 있는 거였나? 하지만 나는 곧 진상을 깨닫게 되었다. 시스템 메시지로 보이는 [지배의 권능]의 주체는 여전히 브뤼스만이었다.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성공, 성공했습니다! 주인님!! 이 오로블주가, 드디어어어억!?”
오로블주의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그의 몸이 거꾸로 뒤집어져 있었다. 휘릭휘릭. 아니, 돌고 있었다. 마치 수챗구멍에 빠지는 물처럼,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윽고 그 거대했던 악마 대공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과연, 그런 거로군.”
오로블주가 방금 했던 짓은 자신에게 걸려 있던 [지배의 권능]을 비토리야나에게 전이시킨 거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로블주의 존재를 희생물로 사용한 거고.
수법이 악독하기 그지없다. 괜히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자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다.
“윽! 으으윽······!”
오로블주를 희생물로 삼은 [지배의 권능]에 제대로 걸려든 비토리야나는 괴로운 듯 허공에서 비틀대고 있었다. 저거 본 적 있다. 나한테 [유혹의 권능] 맞았을 때도 저랬으니까. 아마 권능에 저항하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아마 그 저항은 무의미한 것으로 남을 터였다.
“서, 서방님······! 도망치세요!!”
비토리야나가 비통하게 외쳤다. 그게 아마 그녀의 마지막 저항일 터였다. 그런데 나더러 도망가라고? 브뤼스만이 무슨 명령을 내렸기에?
“알았다.”
자세한 걸 물어볼 여유 같은 건 없어 보였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즉시 스킬을 발동시켰다.
자, 도망치자!
***
그렇게 나는 도망왔다.
“어훅, 어후우.”
과거로 말이다.
“아슬아슬, 했군.”
아슬아슬했다는 건 [선험] 스킬을 거둬 시점을 되감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선험] 스킬의 쿨이 도는 게 아슬아슬했다는 의미였다.
쿨이 다 돈 게 딱 악마 전함이 두 번째로 자폭했을 때의 일이니.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쿨 돌았길래 스킬을 발동시킨 거였는데, 그게 신의 한 수가 될 줄이야.
그건 그렇고 어지럽다.
내가 [선험] 스킬로 시점을 되감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고작 두 번째로 시간멀미에 익숙해질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럼증이 조금도 덜어지지 않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조금은 내성이 붙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랭크도 올렸으니까.
하지만 랭크를 올림으로써 얻은 건 신성 소모가 조금 더 효율적이 된 것 외에는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연습 랭크에서 F랭크로 올린 건데 획기적인 변화가 있으면 그게 더 놀랄 일이긴 하지. 나는 뒤늦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아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어지럼증의 지속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아서, 타이밍이 그렇게까지 늦은 것 같지는 않았다.
오로블주는 지금 막 전함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내가 [선험] 스킬을 발동한 게 전함의 자폭이 끝난 직후이니, 시간멀미의 지속 시간은 1분 전후 정도라는 소리가 되는군.
나는 살금살금 전진해 비토리야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루시피엘라가 이채를 띤 시선으로 날 바라보았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다.
[선험] 때 들었던 대화가 그대로 이어졌다.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타이밍을 쟀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에이스의 곡예비행] S랭크 옵션을 사용해 비토리야나의 앞을 가로막는 형태로 순간이동했다.“······조건은 만족되었다. 여와아아앙?!”
자신의 존재를 제물로 [지배의 권능]을 발동시킨 오로블주가 갑작스럽게 끼어든 변수에 놀라 목소리를 뒤집는 게 흥미로웠다.
어쨌든 됐다. 타이밍이 맞았다. [지배의 권능]은 내가 대신 맞았다!
“크헉!”
과연, 이런 거로군. 이게 [지배의 권능]인가? 세상에, 너무나도 강력하다! 심지어 나는 권능의 발동조건인 패배감과 상실감, 둘 중 그 어느 것도 만족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 크루세이더의 권능이었던 스킬을 발동했다.
[불굴의 권능]권능의 힘에 의해 [지배의 권능]의 효과가 가시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다. 나는 완전히 브뤼스만의 지배력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내 [불굴의 권능]은 아직 연습 랭크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차단]나머지는 내 스스로 해결하면 될 일이니.
[유혹의 권능]보다 랭크가 높아서 [차단]도 여러 번 정도 사용해야 했지만, 사용할 때마다 랭크를 낮추는 [차단]의 강화 보너스 덕에 성공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으아아아압! 내, 내가아아아아악?!”
자신의 존재를 걸고 시전한 권능이 그대로 묵살되어 버리는 것을 보며, 오로블주는 억울함과 비통함이 가득 담긴 비명을 내질렀다.
“네게는 칼침을 하나 박아주기로 했었지!”
나는 오로블주를 향해 [바즈라다라의 바즈라]를 던졌다.
꽈르릉!
뇌전의 궤적을 그리며 바즈라는 날아갔다. 그냥 던진 것도 아니고, [항마의 칼날]을 켠 채로 [항마의 뇌명]을 쓴 스페셜 버전이다! 어차피 소멸할 놈이지만, 마무리 한 발 정도는 먹여줘도 괜찮겠지!
퍼억!
뇌전을 띤 칼날이 놈의 이마를 꿰뚫었다.
“컥, 끼아악, 끄루러어어러러러럭!!”
이미 한 번 목격했던 것처럼, 오로블주는 화장실 변기 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것처럼 소용돌이치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휘리릭. 탁.
오로블주의 미간에 꽂혀 있던 [바즈라다라의 바즈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고 내 손으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 레벨 업!
– 레벨 업!
– 레벨 업!
– 레벨 업!
오, 경험치도 주네. 내가 처치한 걸로 처리해 주는 건가? 대공급씩이나 되어서 그런지 꽤 많은 경험치가 들어왔다. 선멸자는 히든 직업이라 그런지 3차 직업인 신살자보다도 레벨 업에 많은 경험치를 요구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4레벨이나 올랐다.
하지만 이상하게 별로 기쁘지는 않았다.
“후우······.”
아니, 기뻐해야 할 일이다.
본래대로라면 날 토벌하기 위해 찾아온 크루세이더 군단을 상대로도 살아남았고, 오로블주가 장악했던 악마 함대도 쿠데타의 수장을 살해함으로써 그 전력을 크게 깎았다. 그리고 악마 여왕은 내게 유혹당해 더 이상 내게 해를 끼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아남았다. 기뻐해야 할 일이다. 기뻐하자.
“와.”
그래서 나는 기뻐했다.
“······서, 서방님?”
한참 생각에 잠겨 있으려니, 비토리야나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비토리야나가 날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로군. 딱 잘라서 한마디 해줘야겠어.
“착각하지 마. 별로 널 위해 한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비토리야나의 눈이 그렁그렁한 게 지금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았다. 감격이라도 한 건가? 난 그저 내가 살아남고 싶어서 저질렀던 것뿐인데.
그거야 뭐,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그보다 저거, 어떻게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오로블주가 죽고 나니 악마 전함들이 균형을 잃고 천천히 지면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며 비토리야나는 비명을 한차례 꽥 지르더니 급하게 전함을 향해 날아갔다.
“서방님! 저 잠시만! 잠시만요!!”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내 안색을 살피며 그런 소릴 남겼다.
나는 그런 비토리야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흠.”
이 틈을 타서 도망치는 게 낫지 않을까? 아무리 비토리야나라도 안젤라의 고유 특성을 뚫고 날 찾진 못할 텐데.
방심해선 안 된다. 상대는 악마 여왕이다. 내가 경험치 쓸어먹고 레벨 업을 해서 좀 강해지긴 했어도, 저 여자가 여전히 나보다 강하다.
게다가 비토리야나는 지금 [유혹의 권능] 때문에 날 따르는 것뿐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우리 편이 된 게 아니다! 잘못해서 권능이 풀렸다간 당장 날 죽이려고 들겠지.
좋아, 도망가자.
“이진혁 님?”
그때, 루시피엘라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아, 맞다. 이 타천사도 있었지.
“쉿. 목소리 낮추고. 루시피엘라, 이쪽으로.”
“루시라고······.”
“쉿. 쉿.”
사실 루시피엘라의 목소리는 이미 충분히 낮아져 있었지만, 나는 굳이 그녀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전화기······ 가 아니라, 레벨 업 마스터를 꺼내 들었다. 안젤라의 고유 특성은 성능이 너무 좋아서, 나도 연락 없이 그녀를 찾아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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