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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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크루세이더들의 전멸을 잊지 못하고,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에는 속물적인 이유가 있었다.
야코프 체렌코프의 특성과 그와 함께했던 특성 오디션 때문이었다. 야코프의 [나 혼자 두 배로]도 아쉽지만, 잘 모르는 중대장의 [별 하나 더]와 이름 모를 병사의 [관심중독증]도 꽤 아쉬운 특성이었다.
만약 야코프 체렌코프의 시체라도 찾아낼 수 있었다면 나는 그 하나만이라도 되살려냈으리라. 그러나 악마 전함의 자폭은 지형을 바꿔 버릴 정도로 거대했기에 크루세이더들은 문자 그대로 뼈도 못 추리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전함의 텃밭을 가꾸는 데에 필요한 흙을 퍼오는 김에 그들을 향한 작은 위령탑을 세워준 건 단순한 나의 자기만족을 위해서였다. 미련을 끊기 위해서는 각자 나름의 의식이란 게 필요한 법이다. 그게 내게 있어선 위령탑 건설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만 생각하며 살 수는 없다. 산 사람은 살아가야 하는 법이다. 늘 그랬듯 말이다. 게다가 어쩌면 12군단의 크루세이더들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게 군인이다. 부활수단을 마련해 놨을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교단의 배후에 도사린 브뤼스만의 존재를 생각하면 크루세이더 12군단의 면면들이 멀쩡히 살아 있을 가능성은 쭉 떨어지고 말지만, 일부러 부정적인 생각으로 기분을 망칠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들의 생사가 나의 안위에 직결되어 있다면 모를까. 만약 그랬다면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죽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죽은 크루세이더들 생각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새로 합류한 루시피엘라와 비토리야나를 위해 술자리를 마련했다. 당연히 테스카의 특성인 [즐거운 회식]으로 새로운 두 멤버의 특성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뽑아먹을 건 뽑아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
결과.
[미모가 힘이다(Beauty=Power)] : 매력과 위엄 능력치로부터 뷰티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특정 스킬이나 아이템 등으로 더 아름다워지거나 위엄 있게 보인다면 추가로 뷰티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얻은 뷰티 포인트는 근력, 마력, 내공, 마기, 신성에 배분하거나 스킬 포인트 대신 소모할 수 있다.비토리야나는 굉장히 독특한 고유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어째 자기를 꾸미는 것에 시간과 정성을 아까워하지 않더니만 이 특성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꾸미기만 해도 강해질 수 있으면 나라도 손톱 정리에 신경을 쓰겠다.
강력한 특성이긴 하지만 한계 또한 있었는데, 뷰티 포인트를 한 번 정산받으면 매력과 위엄의 변동치, 정확히는 상승치로만 추가 뷰티 포인트를 얻게 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매력과 위엄 능력치를 따로 사다가 미배분 능력치를 매력에 몰아준다면 추가적인 성장을 노릴 수 있게 되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나라도 시스템 한계 상 배분할 수 있는 능력치에는 255라는 상한이 존재하니까. 물론 [한계돌파]를 지닌 나는 추가로 성장이 가능하긴 하지만, 미배분 능력치의 투자는 나도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뷰티 파워는 무한 성장용으로는 그리 좋지 않은 특성이라 할 수 있겠다. 비토리야나 본인도 별로 높게 평가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뷰티 포인트 정산이 처음인 나를 비롯한 다른 회식 멤버들에게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중에선 내가 가장 큰 혜택을 입었다. 이미 모든 능력치가 255라는 한계에 달한 상태라 일단 쌓아놓기만 했던 미배분 능력치의 사용처가 정해진 덕이었다.
인류연맹의 상점에서 빈 능력치 슬롯과 매력, 위엄을 사다 꽂고 미배분 능력치를 퍼부은 후, 그동안 받은 훈장들을 가슴에 걸기만 하면 됐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막대한 뷰티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이걸 어디다 쓸 건지는 술에서 깬 뒤에 조금 고민해 볼 것이다.
뭐, 이변이 없는 한 신성을 올리게 될 테지만 말이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Blessed Endurance)] : 쾌락, 욕망, 고통, 유혹 등의 자극을 좀 더 잘 견디게 해주고 견뎌낼 때마다 더 높은 저항성과 면역력을 얻게 된다. 특정 자극으로부터 일정 이상의 저항력과 면역력을 손에 넣을 때마다 인내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일정 이상 인내 포인트를 얻을 때마다 영혼의 격이 상승한다. 또한 인내 포인트를 일시적으로 소모해 본래 버틸 수 없는 자극으로부터 저항하는 것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이건 루시피엘라의 특성이었다.
아무래도 루시피엘라는 취기를 견디며 이 특성을 활성화시킨 모양인데, 어쨌든 이 또한 긍정적인 효과로 판정되어 즐거운 회식으로 인해 모두에게 공유된 듯했다.
이 고유 특성 덕에 루시피엘라는 브뤼스만의 [지배의 권능]이나 비토리야나의 [유혹의 권능]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으리라.
“흥, 쳇. 술맛 떨어지게.”
비토리야나가 투덜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루시피엘라의 특성이 발동하면서 나도 취기가 확 깨버리는 걸 느꼈으니까. 그나마 술이 깼다고 [즐거운 회식]의 효과가 꺼져 버리지 않는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미안해요, 비토리야나. 저도 모르게 그만.”
루시피엘라도 자신이 특성을 발동시킴으로써 일행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된 건지 뒤늦게 알게 된 듯, 비토리야나에게 사과했다.
“그보다 비토리야나.”
뭐라고 더 쏘아붙이려던 비토리야나를 제지하고,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네, 서방님!”
짜증에 가득 찬 표정과 목소리는 어딜 간 건지, 비토리야나는 내게 꿀 떨어지는 시선을 흘렸다.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세 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나한테 [유혹의 권능]을 써라.”
“네, 서방님!”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한 번은 망설일 줄 알았는데! 아니면 왜 그러는지 이유라도 묻거나. 하지만 비토리야나는 단호했다. 즉시 스킬을 사용했다.
뭐, 내 속셈을 알아차렸기에 이렇게 반응한 거겠지만 말이다.
내 속셈은 간단했다. 루시피엘라의 특성을 이용해 인내 포인트를 번다. 그리고 또 하나, [불굴의 권능] 수련치를 채운다. 일석이조였다.
지금 내 [불굴의 권능]은 F랭크. 오로블주가 대리로 발현한 [지배의 권능]에 딱 한 번 저항했을 뿐이었다. 그걸로 수련치는 충분해서 랭크를 올려두긴 했지만, F랭크로는 아직 좀 불안했다. 더 올릴 필요가 있다.
비토리야나의 [유혹의 권능]은 이미 한 번 맞아본 적이 있지만 그 달콤함은 여전했다. 당하는 자로 하여금 반항의 의지를 꺾게 만드는 그 달콤함이야말로 이 권능의 진짜 무서운 점이다.
하지만 F랭크에 불과하다 한들 [불굴의 권능]을 지니고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특성 효과까지 얻고 있는 내가 저항 못할 리 만무했다. 그저 수련치와 인내 포인트를 벌어다 주는 적당히 강한 자극에 불과했다.
“음흠흠, 우후후후······.”
비토리야나가 기분 나쁘게 웃고 있지만 저건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그냥 내 [기아스] 때문에 저러는 거니까.
“앞으로 술자리마다 같은 부탁을 할지도 모르겠군.”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서방님!”
비토리야나는 향후 자신이 얻게 될 쾌락에 기대를 가득담은 음란한 눈빛을 내게 보내며 행복하게 웃었다.
***
크루세이더 12군단의 전멸은 교단 전체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원래 교단의 영토라고 받아들여졌던 ‘신 가나안’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라 충격은 한 단계 더 크게 다가왔다. 침략자들의 기습을 받아 아군의 군단이 소멸 당했다. 전후관계는 뒤집어졌고, 진실은 일부만 가려졌다.
그렇게 조작된 진실을 받아들인 여파는 그야말로 파괴적이었다.
며칠 후 열린 교단의 결의대회에서는 인류연맹과 만마전에 대한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매파의 목소리는 회의장 밖 회랑까지 쩌렁쩌렁 울렸으며, 본래 비둘기파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던 당파는 그저 입을 다물고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을 뿐이었다.
물론 약간의 반대의견은 존재했다. 만신전과의 전쟁을 장기화시킨 이전의 정보공작과 유사하다는 의견 또한 나왔다. 그러나 그런 의견은 의도적으로 묵살당했다.
‘안전한 전쟁’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너무나도 유효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누군가는 항상 돈을 번다. 언론은 언제나 그랬듯 돈과 권력을 쫓았다.
권력자들과 자산가들은 욕망으로 자제심을 잃었으며 그들의 나팔수인 언론의 과장된 선동으로 인해 대중은 분노로 이성을 잃었다. 그러니 의회에서 선전포고를 의제로 올리는 것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수순이라 할 만했다.
승인은 시간문제였다. 전쟁을 바라는 세력은 이미 의회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으니. 그 수단과 방식은 각기 달랐으나 그들이 선전포고에 표를 던질 것은 이미 확실시된 바였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 남자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드디어 때가 왔군.”
브뤼스만 라이언폴드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꾸민 장본인이었다. 막후에서 의회를 움직이고 언론을 주물럭거리고 정부 조직을 장악했다. 그런 그도 교단의 전부를 장악한 건 아니라 이렇게 음모를 꾸며야 했지만 말이다.
“전쟁, 전쟁, 전쟁의 때가 왔다. 아하하하. 하하하하하!!”
하지만 이 전쟁을 끝내고 그가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된다면 이제는 이런 음모조차도 불필요한 것이 되리라.
“경하드립니다.”
그 곁에 시립하고 선 남자, 카자크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이번엔 네 역할이 컸다. 괜히 인스펙터 출신이 아니더군.”
“과찬의 말씀. 영광입니다.”
완전히 브뤼스만의 인형이 되어버린 것 같은 모습. 그 모습을 여자가 바라보고 있었다. 본래 브뤼스만의 제1비서였던 여자가.
‘브뤼스만은 내가 저 남자를 숨기고 있던 걸 알고 있었어······.’
여자를 불러놓고 카자크의 모습을 보여주는 브뤼스만의 속내가 잡힐 듯 보였다. 아니, 이것은 그가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카자크.
‘너마저 나를 배신하다니.’
사실 그건 웃긴 이야기였다. 여자는 카자크를 감금하고 고문하고 쾌락에 몸부림치며 사랑을 속삭였다. 그것은 여자의 주관에서나 사랑하는 이들의 관계였지, 카자크의 입장에서 보든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든 그저 여자가 카자크에게 자신의 감정을 몰아붙였을 뿐인 관계였다.
그렇기에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여자의 감정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배신욕의 남자는 그마저도 달콤하다 여긴다.
제 주인의 눈을 피해, 카자크는 여자에게 웃어 보였다. 그것은 연인의 달콤한 미소가 아니라 승리자의 희열이 자아낸 호선에 불과했으나, 여자는 그 미소를 보며 얼굴을 붉혔다.
‘그는 나를 아직 사랑하고 있어.’
그런 여자의 착각을 카자크는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한 번 더 배신할 수 있겠군.’
그의 배신욕이 으르렁거리며 아직도 배가 고픔을 어필했으니.
저 여자의 연심을 다시 한번 물어뜯고 그 심장의 출혈을 핥아먹을 욕망을 참아내느라 손가락 끝을 떠는 것을 여자가 어찌 알겠는가. 그것은 카자크 본인을 제외하고선 누구도 모를 일이다.
카자크는 이번에는 자신에게 걸린 기아스를 브뤼스만에게 들키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터였다. 그래서 나름의 조치를 취해둔 바였다. 물론 그것 또한 존경하는 브뤼스만에 대한 배신행위였으나 카자크는 그 행위에서마저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셋 중 가장 큰 희열에 빠진 이는 브뤼스만이었다.
“교단이 모든 차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자리를 굳힌 뒤, 지루하고 별 볼일 없는 평화가 얼마나 길었는가. 그것은 실로 무익했다.”
치익. 냉장고에서 싸구려 맥주 캔을 따는 소리가 낡은 오두막의 작은 공간에 울려 퍼졌다.
“모든 존재는 무한한 전쟁 속에 살아야 하는 운명인 것을! 약육강식의 생태를 벗어나 평화라는 이름의 나태에 젖어 삶의 소중함도 잃은 자들은 얼마나 보기에 추한가!”
꿀꺽, 꿀꺽!
딴 맥주 캔을 단번에 비워 버리고 다음 맥주 캔을 손에 집어 올리며, 브뤼스만은 크흐흣 하고 낮게 웃었다.
“모든 문명의 발전은 전쟁으로 인해 빚어지나니! 비로소 교단이 다시 일어설 동력을 얻는구나! 이 어찌 아니 기뻐할 수 있겠는가!”
그의 낮은 웃음이 높아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전쟁이다! 전쟁이로다!! 하하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