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213
아무나 신이 될 수 있다면 세상 누구나가 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신이란 좋은 것이다. 영원불멸한, 필멸자의 한계를 뛰어넘은 존재. 그것이 신이니까.
강함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신이 되고자 할 것이며,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신이 되고자 할 것이다. 필멸자인 채로는 어느새 한계를 맞이하고 말 테니까.
수명이라는 존재의 종말을 맞이하든, 단순히 성장의 한계를 맞이하든, 어느 쪽으로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모두가 신이 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아무나 신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성을 모아들이는 건 천사라도 가능하다. 그리고 권능을 얻는 것도 신성만 있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신이 되는 건 다르다. 신이 되기 위해서는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신이 되고자 하는데, 신이 되려면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하다니. 이것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적어도 혼자 힘으로는.
결국 신성을 충분히 쌓아 신위에 오를 자격을 갖춘 이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다른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신이 될 수밖에 없다.
“누가 이 새로운 신의 스승이지?”
그렇기에 에르메스는 새로운 신의 스승을 찾았다. 그는 모든 신들의 목록을 갖고 있기에, 새로운 신의 스승이 누군지도 금방 찾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새로운 신과 함께한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게 가능한가?”
에르메스가 아는 바로는 불가능했다.
애초에 처음부터 하급 신으로 나타나는 것 자체가 가능한 일인가? 필멸자의 한계에 가깝게 신성을 모은 후 스승을 모시고, 간신히 필멸자에서 불멸자로의 상승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그 도달점은 일개 잡신이 될 뿐이다.
스승 아래에서 잡일, 그러니까 퀘스트를 여럿 수행하고 적절한 자격을 갖춘 후에나 독자적으로 움직일 하급 신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아니, 사실 그마저도 보통은 아니다. 스승인 신이 더없이 선량하고 자애로워 자신의 신성을 나눠줘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 하급신으로의 초월이다.
현 시대에 선량하고 자애로운 신들은 이제는 아무도 없다. 엄혹한 시기에 가장 먼저 스스로를 희생하는 이들이 그러한 이들이고, 지금의 만신전은 바로 그러한 시기를 한창 겪어내고 있는 중이었으니. 그들은 이미 스스로를 희생했고, 그래서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수상하군.”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겼던 에르메스는 그런 혼잣말을 토해내었다.
잘 생각해 보니, ‘신성을 충분히 모은다’라는 기본 전제부터 만족시키기 어려운 세상이다.
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숭배해줄 신도들이 필요하다. 홀로 완전할 수 있는 상급신이나 악신 정도가 아니고서야, 신앙의 안정적인 수급수단이 없으면 신으로서의 존재를 유지하기도 버겁다.
한데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인류종의 태반은 만마전의 악마들에게 잡아먹히고, 소수의 엘리트들이 교단으로 가 천사가 되었다. 그 외의 토착세력 또한 거의 다 멸망했을 터. 신앙을 모은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 환경이다.
만신전이 세상의 주류세력에서 끌려 내려온 것도 이런 환경 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애초에 만신전의 적, 교단과 만마전이 이를 노리고 인류종을 마구잡이로 잡아먹거나 교단으로 귀의시켜 천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니.
그러한 그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기존의 신들조차 존재를 지탱할 신앙을 벌어들이는 데 고생하는 마당에, 새로운 신이 태어날 토양은 이미 사멸되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신이 태어나다니.
그것도 잡신을 건너뛰고 바로 하급신이 된 신.
“역시 수상해.”
에르메스가 누군가의 의도적인 개입을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안 그래도 만신전에 불온한 분위기가 만연한 상태다. 급진세력이 독버섯처럼 자라나 신들의 리그를 장악하고 약소세력인 인류연맹에 쳐들어가자고 하질 않나.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신?
누군가의 음모를 떠올리는 게 차라리 당연할 지경이다.
“교단 놈들의 짓인가?”
교단과 만신전은 상호불가침 조약이 맺어진 상태다. 이 조약을 깨뜨리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그 명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새로운 신을 창조해 낸다? 그게 고작 천사들에게 가능할 법 싶지만, 어쩌면 놈들은 방법을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교단의 배후에 유령처럼 드리워진 놈들 가운데는 만신전에 신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자, 에르메스가 존재함을 아는 놈이 있었다. 에르메스는 이를 갈며 놈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그 브뤼스만 라이언폴드라면 떠올릴 법도 한 계략이지.”
이미 그놈은 만신전과 교단을 대상으로 한 번 악독한 모략을 펼쳤던 바가 있었다.
브뤼스만이 펼친 그 모략 탓에 적절한 때의 평화협상은 물 건너가고, 교단과 만신전은 무의미한 전쟁을 계속해 서로를 소모시키기만 해야 했다.
그 혼란 와중에 대부분의 고대 악마들을 잃어 쇠락해 가던 만마전은 다시금 세력을 키울 기회를 얻었고, 브뤼스만의 파벌 또한 교단 내부를 파먹으며 성장했다.
“만약 이 또한 브뤼스만의 모략이라면, 그 모략의 대상은 내가 되겠군.”
에르메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군이 되어줄지도 모르는 새로운 신이 나타났다. 이보다 더 가슴 뛰는 일이 있을까? 에르메스조차 처음에는 기대감을 품은 채 두루마리를 풀었지 않은가?
에르메스는 그가 섬기는 왕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실로 손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르메스 님······.”
에르메스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동안 굳게 입을 다물고 있던 올빼미, 패트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 나도 알고 있어. ······이건 피해가기 힘든 함정이로군.”
에르메스는 패트록의 말을 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끝을 향해 나아갈 뿐인 이 갑갑하고 답답한 상황을 바수어낼 희망이 있다면, 그 희망이 아무리 희박할지라도 신들의 왕은 결국 그것에 매달리고 말리라.
······설령 그것이 함정임을 알게 되더라도.
***
내가 위화감을 처음 느낀 건, 하급신으로의 초월을 이루고도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동안 나는 축제, 축제, 축제를 벌였다. 일주일 밤낮으로 신도들에게 온갖 음식을 뿌리고 신앙을 모아들였다.
이진혁 시티의 모든 주민들이 나와 내게 절을 하며 음식을 받아먹곤 나를 경배했다. 소식을 들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모여들어, 축제 막바지엔 안 그래도 메트로폴리스인 이진혁 시티가 인산인해를 이루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신으로의 초월은 그만큼 제정신을 차리기가 힘든 이벤트였다.
신도들의 신앙은 뿌리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이었으며, 안 그래도 초월을 겪느라 바닥까지 떨어져 있던 신성 또한 어차피 채워야 했다. 초월 후에 나는 식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몸이 되었지만 대신 신성의 결여를 배고픔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축제를 벌인 것이기도 했다.
다행인 건 초월로 인해 신앙을 신성으로 변환할 때 효율이 올라가 신성 회복이 전에 비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배고픔이 어느 정도 잦아들고 흥분도 조금 식은 후에나 나는 제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되었고, 돌이켜 보니 그동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시간을 오래 잡아먹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내 스스로도 들지만 지금 와서 자학해 봐야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뭐, 딱히 손해 본 것도 없으니 다행이지. ······없겠지? 없을 거다, 아마.
아, 위화감. 위화감의 원인은 바로 이거였다.
[기적적으로 축복받은 반격의 봉화] – 분류 : 방어구(Armor)– 등급 : 신(God)
– 내구도 :10,000/10,000
– 옵션 : 방어력 +30,000.
– 33레벨 내열/내한/내압/내산/방진/방수/방독/방호 기능 지원. [프리 사이즈].
– 투구 기능 : 상시 [안정된 호흡] 제공. 심해/우주 활동 가능.
– 갑옷 기능 : [투명화]/[기척 차단]/[감지 회피] 활성화 가능.
– 장갑 기능 : [울트라 유틸리티 암]으로 변형 가능.
– 부츠 기능 : [울트라 터보 부스터] 기능 활성화 가능.
– 날개 기능 : [찰나 방향 전환] 기능 활성화 가능.
너무 오래 입고 있어서 이제는 피부처럼 느껴지는 내 방어구. 인류연맹에서 제공받아 지금까지 잘 써먹고 있는 우주복 대용 갑옷인데, 정신 차리고 보니 뭔가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왜 접두어가 하나 더 붙어 있지?”
사실 더 일찍 눈치채도 됐을 일이었다. 아이템 정보 확인을 한 번만 해봤어도 바로 알아챌 수 있었을 텐데.
바뀐 건 새 접두어가 추가로 붙은 것뿐만이 아니었다. 본래 신화급이었던 아이템 등급이 신급으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등급이었으나, 방어력과 내구도가 세 배 정도 불어난 걸 보니 더 높은 등급이리란 건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더욱이 깎여 있던 내구도도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고, 다른 옵션도 더욱 상향조정되어 있었다.
“뭐지? 왜 이렇게 됐지?”
어쩌면 내가 하급신으로의 초월을 겪으면서 이 갑옷도 함께 변화를 겪은 걸려나? 그렇다면 아쉬운 일이다. [진리의 검]이나 다른 아이템도 몸에 두르거나 손에 들고 있었다면 같이 변화를 겪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내 가설은 곧 거짓으로 바뀌었다.
“오오, 신이시여! 축복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드워프 두프르프가 웬 도끼를 들고 휘두르며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저건 또 왜 저러나 싶어서 물어봤더니 두프르프는 이런 대답을 했다.
“이 도끼를 신께서 맛있게 만들어주시겠다면서 신의 불에 넣어주셨잖습니까?”
“미친.”
나는 나도 모르게 두프르프의 말을 끊어버렸다.
내가 그런 짓을 했었단 말이야? 내가? ······아, 기억이 나는 것도 같다. 빈속에 신앙을 마구 퍼먹어 취한 김에 그런 미친 행각을 벌인 기억이······.
아냐, 그냥 기억 안 나는 걸로 해두자. 도끼를 맛있게 만들어주겠다는 미친 발언을 내가 했을 리가 없다. 그런 일은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신이시여?”
“아냐, 계속 말해봐.”
“그런데 맛있어지지는 않고 대신 더 좋아졌습니다!”
호오?
“줘봐.”
나는 두프르프에게서 도끼를 받아서 아이템 정보를 확인해 봤다.
[기적적인 강철 도끼]그리고 그 도끼엔 어디서 본 적 있는 접두어가 붙어 있었다.
“미친.”
“예?”
“아냐.”
나는 도끼를 두프르프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곤 짐짓 위엄 있는 말투로 말했다.
“이 도끼는 내가 기적을 부여한 도끼니 앞으로 잘 다루도록 해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가보로 삼고 두고두고 잘 모시겠습니다!”
두프르프는 환희에 차서 외쳤으나, 나는 그 외침의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아니, 쓰라고.”
“외람한 말씀이오나 신이시여, 이런 성물을 제가 어찌 감히 쓰겠습니까!?”
“뭐? 성물?”
“예!”
차라리 억울해하는 두프르프의 태도에, 나는 하는 수 없이 강철 도끼를 다시 집어 그 등급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자······.
– 등급 : 성물(Relic)
정말이었다. 평범했을 터인 강철 도끼는 이진혁교의 성물로 지정되어 버렸다.
“미친.”
“예?”
“아무것도 아니야.”
하긴 신화급 갑옷도 신급으로 바꿔놓는데, 일반 아이템을 성물로 바꾸는 거야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 하필 성물이냐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래, 너 알아서 해.”
“가보로 삼겠습니다!”
“그래, 그래.”
나는 그렇게 두프르프를 보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