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4
13장. 대청소하기 좋은 날 (1)
“와…… 방학 때 뭘 처먹었길래 그새 또 컸냐?”
“뭐지 이 위화감은? 태산이 오늘따라 더 잘생겨 보인다.”
“오올! 교복 맞췄냐? 새끼. 때깔 죽인다. 크크크.”
그래 난 고삐리다.
교실에 오자마자 친구들이 욕을 퍼부었다.
키가 커도 지랄.
잘 생겨도 지랄이었다.
첫사랑과의 애달픈 재회는 학교에 오자마자 산산이 부서졌다.
‘새끼들 보고 싶었다.’
남고만이 풍길 수 있는 진한 체취가 교실에 가득했다.
조그만 교실은 수컷들의 생존 경연장이었다.
친구들의 거친 말투에 실감이 제대로 났다.
축농증이 있어 언제나 코를 푸는 대선이.
성적은 바닥이지만 공부하겠다고 언제나 머리를 빡빡 밀고 다니는 열심 종석이.
벌써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이마 반짝 형철이.
먹는 거 앞에는 친구도 없는 도중이.
인생 다 산 것처럼 구는 셀프 시인 봉석이 등등.
방학이 끝난 친구들은 오랜만에 보는 나의 변화에 시파로 시작해서 개새끼로 우정을 표했다.
그리운 놈들이었다.
대학교 시절까지 간간이 만났지만 군대 제대 후에 하나둘씩 멀어졌다.
각자의 인생에서 치열하게 생존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갔다.
그런 친구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태산이 방학 때 아버지 보약이라도 처먹었냐? 왜 이렇게 키가 큰 거야?”
세상에 불만이 많은 시니컬한 희철이가 시비를 걸었다.
“야동 끊어 인마. 그럼 형처럼 쑥쑥 큰다.”
“뭘 끊어? 차라리 날 죽여, 인마.”
“그럼 차라리 뒈져. 새꺄.”
“와아! 태산이 이 새끼 간도 부었네~.”
툭툭 희철이가 나를 잽으로 건드렸다.
탄탄해진 몸으로 희철에게 헤드락을 강하게 걸었다.
“억! 으아아아아! 아파 새끼야!”
희철은 비명을 질렀지만 나를 물리치지 못했다.
몸의 근육이 한 달 전과 완전 달랐다.
“네가 간이 부은 거야 인마. 형아가 방학 때 헬스 과외 받았단다.”
“항복! 하아아앙복!”
희철의 항복에 헤드락을 풀었다.
교실은 어수선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보자 각자 썰을 풀기 바빴다.
보충수업과 야자가 폐지되기 전까지 한 교실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었다.
나 또한 세월을 건너 뛰어 꼬맹이처럼 놀았다.
결코 미래에서 왔다는 티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찌질한 인생은 다시 살지 않을 것이다.
돈 잘 버는 작가라는 타이틀 뒤에 숨어 있을 생각이다.
“와아아……, 이 새끼 근육이 왜 이렇게 탄탄한 거야? 진짜 헬스 다녔어?”
“곧 고3인데 수능 체력 좀 길러야 하지 않겠냐.”
“체대 간다고?”
“멍청한 새끼.”
친구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유쾌했다.
추억의 아재개그 놀이 같았다.
아침에 봤던 짝사랑 겸 첫사랑에 대한 추억은 잠시 잊었다.
헤헤, 하하, 후후 각종 웃음이 넘치는 교실에 마음을 빼앗겼다.
너무 그리웠던 친구들이었다.
“여어~ 새끼들 좃나 시끄럽네. 여기가 유치원도 아니고 아가리 좀 닥쳐줄래~.”
그때 교실 뒷문을 열고 빈 가방을 든 한 놈이 나타났다.
“…….”
순식간에 교실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하아, 저 새끼를 잊고 있었다.
내 소중하고 순수했던 고등학교 시절에 먹구름에 비를 뿌렸던 놈.
“홍성현.”
조용히 개새끼 이름을 불렀다.
들어서자마자 담배 냄새가 진하게 맡아졌다.
놈은 태권도와 유도를 배워 날렵한 몸에 눈동자는 짐승처럼 노랬다.
입가에 건들거리는 비웃음이 걸렸다.
지역 명문 고등학교였지만 쓰레기는 존재했다.
놈은 공부도 잘했다.
형이 고영대 법학과에 다녔다.
집도 부자다.
아버지가 지역의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지역 유지다.
현재는 시의원이지만 국회의원에 출마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홍성현은 학교 폭력 행위가 있었지만 유아무야 넘어갔다.
시내에 아직 남아 있는 스콜피온이라는 3류 조직 소속이었다.
놈은 우리 반을 넘어 학년 짱이었다.
머리 좋은 놈들이 망가지면 더 악독하다는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철저하게 약자만을 괴롭혔다.
반 아이들 중에서도 공부 잘하거나 집안이 잘 사는 애들은 건들지 않았다.
교묘하게 아이들을 분리해서 관리했다.
그리고 놈은…….
“어라? 장태산. 너 못 보던 사이 많이 컸다?”
나도 놈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관리대상 중 하나였다.
대꾸 없이 조용히 놈을 봤다.
노란 살기가 놈에게서 풍겼다.
놈은 규칙 없는 개싸움을 잘했다.
또한 잔혹했다.
1학년 때 나무라는 3학년 선배 뒤통수를 반까지 쫒아가 의자로 내려쳤던 놈이다.
‘저 노란 독사 새끼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다니…….’
대학교 다닐 때까지 놈이 생각날 때마다 분노가 일었다.
유쾌하던 학창 시절의 한 줄기 어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나보다 작은 키였다.
당시에는 무서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왜? 부럽냐?”
툭 하고 한 마디가 나갔다.
“뭐, 부러워?”
언제나 자신의 말에 고개 숙이고 기가 죽던 내 모습이 아니자 홍성현이 당황했다.
낯선 반응일 것이다.
“!!!”
애들 시선이 나와 홍성현에게 쏠렸다.
이건 누가 봐도 사건이었다.
자존심 강한 놈이 가만있지 않을 게 확실했다.
“크크. 이래서 애 새끼들은 하루에 한 번씩 패줘야 한다니까. 방학 동안 못 봤다고 내가 껌으로 보이지?”
놈이 특유의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자식, 귀엽네.
“껌은 아니고……. 껌만도 못한 놈.”
어깨를 쫙 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었다.
“허얼…….”
“야, 태산이 미친 거 아냐?”
“저 자식이 왜 저래?”
애들이 수군거렸다.
놈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래 흥분해봐.
“너 이 새끼…….”
놈이 다가왔다.
폭력이 계속되어 권리인 줄 아는 놈이다.
이제는 바로 잡을 때였다.
나의 과거와 놈의 나쁜 손버릇을 말이다.
드르륵.
그때 교실 앞문이 열렸다.
그리고 등장하는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평범한 키에 이마가 훤칠한 담임 선생님이셨다.
깡통 로봇 찌빠를 닮았다고 선배들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별명을 소유하신 분이다.
“아이고 내 새끼들 공부하고 있었던 거야? 우리 반만 왜 이렇게 조용할까?”
교실이 조용하자 환하게 선생님이 웃으며 들어왔다.
그리고 이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며 나와 놈을 봤다.
“태산이하고 성현이는 뭐하냐? 둘이 눈싸움이라도 하는 거야?”
“아닙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워서 아는 체하는 중입니다.”
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 그런데 태산이 맞냐? 태산이가 맞는 것 같은데 묘하게 안 닮았다.”
“쌤~. 태산이 맞습니다. 서운합니다.”
“그렇지? 야! 너 몸 좋아졌다. 얼굴도 수술했냐? 포스가 연예인 저리가라다.”
“쌤도 방학 전보다 혈색이 좋아지셨습니다. 신혼도 아닌데 사모님께서 아직도 쌤을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하하. 태산이가 뭘 좀 아네.”
넉살이 좋아졌다.
과거 나는 이 시절에 내성적이고 말도 못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변했다.
“성현아. 점심 때 보자.”
먼저 손을 흔들며 선빵을 날렸다.
으드득.
놈의 이 가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상큼하게 무시하고 비어 있는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자자. 이제 방학 끝났다. 다들 알지? 이제 1년만 지나면 수능이다. 그때까지 퍼지지 말고 쭉 달려보자. 내 새끼들아.”
“네에에!”
담임의 말에 애들이 힘차게 답했다.
아직은 순수함이 남아 있는 고삐리들이었다.
“자! 오늘도 따라한다! 수능 점수가 높으면!”
선생님의 선창.
“수능 점수가 높으면!”
애들의 후창.
“마누라 얼굴이 달라진다!”
뭔가 한이 맺힌 듯한 선생님의 목소리.
“마누라 얼굴이 달라진다!!!”
“아자자자자자! 모두 파이팅!”
***
“태산아. 너 제대로 걸렸다. 성현이 그 개새끼가 똘마니들 모으고 다니는 것 같다.”
“야.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오늘 왜 그랬어!”
“휴우. 이 새끼 방학 때 본드만 처먹은 거 아니지?”
단짝들이 쉬는 시간 마다 몰려왔다.
개학 첫날이라 수업 시간은 교재설명이나 간단하게 수업을 하며 끝났다.
그리고 찾아 온 점심시간.
내 단짝들만 남고 다들 급식실로 달려갔다.
“초상났냐?”
“뭐 인마! 너 때문에 내가 제명에 못 죽을 것 같다 인마!”
“하아, 이 새끼. 방학 때 도대체 뭘 먹어 이렇게 간이 부은 거야? 야! 성현이 패밀리 무서운 거 몰라? 그 새끼들 존나 더럽게 때린다고!”
“에휴. 오늘 친구 잘 만난 죄로 같이 얻어터지게 생겼네.”
내 말에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됐으니까 밥 먹고 와라.”
“뭐가 돼 새끼야! 친구 맞는데 우리보고 밥이나 처먹으라고?”
“에라이. 똘아이 새끼.”
한마디 하면 우르르 집단 다구리를 깠다.
‘그래. 이 녀석들은 내 친구들이다.’
다들 그만그만한 집안 형편이었다.
없는 돈 몇 백 원씩 걷어 야자 시간에 순대를 간식으로 사먹던 놈들이다.
아버지 양주를 들고 와 소풍 때 마셨던 전우들이다.
가을에 자전거 타고 단풍을 즐기던 풍류객들이다.
점심에 컵라면만 먹어도 세상 다 얻은 것처럼 감사할 줄 아는 겸손한 이들이다.
잊고 있었던 추억이 떠올라 마음이 훈훈해졌다.
“클클. 쥐새끼들~ 모여 작전회의라도 짜냐?”
“개학날부터 차암 안됐다. 크크크.”
뒷문으로 놈을 앞세우고 다섯 명이 나타났다.
명문 고등학교라고 성품이 다 명문은 아니다.
싹수가 어린놈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담배 냄새와 비린내가 동시에 풍겨왔다.
생긴 것도 다들 야비했다.
딱 끼리끼리였다.
“똥개 새끼들이 겁나 시끄럽네.”
“뭐! 또, 똥개?”
“뭐야? 저 찌질이 새끼가 우리 보고 똥개라고 했어?”
“와아! 너 오늘 뒈졌어! 개새끼!”
발끈하는 홍성현 패밀리.
학교의 암적 존재들은 자신들이 끼치는 패악을 몰랐다.
“아가리 닥치고 따라와 새끼들아. 신성한 교실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섰다.
우리 학교는 낮은 산에 반쯤 둘러싸여 있었다.
담을 넘으면 선생님들도 어찌 할 수 없었다.
“태, 태산아!”
“아……, 미친.”
친구들이 긴장하고 날 불렀다.
“쉬고 있어. 학교 끝나면 오늘 피자 쏜다.”
친구들에게 윙크를 날렸다.
“뭘 쉬어, 새꺄!”
“에휴……, 그래 오늘 내 인생 최초로 일진하고 맞짱 한 번 뜬다!”
“피자 대신 코피나 처먹어 새끼야!”
친구들 여섯이 나를 따라 일어섰다.
“이, 이 새끼들이……, 야. 후배들 불러!”
놈이 인상을 쓰며 악을 썼다.
그래 다 불러라.
아직 무더위가 가시지 않는 8월의 어느 날.
대청소하기 딱 좋은 날이다.
# 14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