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3
12장. 학교에 가다
부우우웅. 끼이익.
버스가 내 앞에 멈췄다.
6시 40분 이른 아침에 마을 앞에 멈추는 버스는 학교까지 나를 데려다 줄 버스다.
시간은 약 1시간.
자가용을 타면 20분 거리가 1시간으로 늘어난다.
깨끗한 회색 바지에 푸른색 남방의 교복이 낯설었다.
명찰도 달렸다.
하얀색 명찰에는 장태산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무려 십 몇 년 만의 등교였다.
기분이 묘했다.
사회생활로 힘들 때 고등학교 시절이 그립기도 했었다.
이제 인생을 제대로 접하는 사춘기 친구들과 나눴던 감정적인 여러 이야기들.
지금 생각하면 소꿉놀이 같았지만 그때는 정말 좋았다.
“훗……, 진짜 고삐리가 됐네.”
정신은 30대지만 몸뚱이와 현실은 고등학생이었다.
교복 빨은 생각보다 잘 받았다.
문제는 정신이 받아들이기가 살짝 힘들었다.
과거와 달리 내 신상 교복은 깔끔했다.
푸른색 나이키 운동화도 신상이었다.
쌍둥이들의 교복도 새로 구입했다. 키가 커버려 녀석들의 교복도 작았기 때문이다.
곧 졸업이라 괜찮다는 걸 블라우스 두 벌까지 맞춰 사줬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1학년 때 구입한 교복은 작아서 이제 들어가지도 않았다.
회귀하기 전에는 몸이 말라 그럭저럭 입을 만했지만 근육이 발달한 지금은 옷이 꽉 껴 터질 것 같았다.
치이익.
버스 문이 열렸다.
빵빵하게 충전된 교통카드를 찍었다.
아……. 또 한 번 눈물이 앞을 가리려 했다.
한때 차비가 떨어질까 봐 숨이 막힌 적도 있었다.
용돈은 정해져 있지만 부모님이 월급쟁이가 아니었기에 불규칙적으로 지급되었다.
차비와 간식비, 그리고 책 읽는 유흥비로 나갔기에 언제나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금수저 부르주아가 됐다.
쌍둥이들은 아빠 차를 타고 통학했다.
시내가 아닌 가까운 읍내였기에 시간에 부담도 없었다.
아버지는 새 차를 대단히 만족해 하셨다.
내가 준 통장으로 빚을 깔끔하게 털고 오신 그날, 아버지는 나에게 술을 따라주셨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대신 나를 한 사람의 성인으로 대접해 주셨다.
가장의 무게를 나눠간 아들에 대한 예의였다.
그날 아버지께 소맥을 가르쳐 드렸다.
아직 소맥은 선풍적인 인기는 끌지 못했다.
이 시절부터 소맥 이야기가 슬슬 나왔다.
아직 먹고 살만할 때여서 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대세였다.
소주를 따라주시는 아버지를 말렸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시원한 맥주를 꺼내 맥주잔에 소주를 붓고 환상비율 소맥을 제조해 드렸다.
저녁 만찬 중에 가족들 모두 얼어붙었다.
술도 마시지 않는 내가 유흥업소 종업원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현란한 스킬로 소맥을 만들자 기겁한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웨이터 아르바이트를 했던 선배에게서 배웠던 기술이다.
이 비법으로 선배들에게 이쁨받았던 나였다.
그렇게 재조한 소맥을 드신 아버지는 감탄하셨다.
맥주가 이렇게 맛있냐며 몇 잔을 원샷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바로 마루에 쓰러져 기절하셨다.
소맥의 무서움을 몰랐던, 막걸리와 소주로만 수련한 순진한 농부의 말로였다.
“오랜만이다. 내 자리.”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는 자리가 많이 남았다.
아침 버스 출발점이 동네와 가까웠다.
그리고 항상 여유 있게 앉았던 내 자리.
운전석 뒤쪽 네 번째 좌석에 항상 앉았다.
버스 좌석은 양쪽 방향으로 한 줄씩 밖에 없었다.
엄청 크게 느껴졌던 공간이 이제는 작게 보였다.
의식이 성장하자 공간이 작아진 것이다.
‘예전 그대로네.’
아침 버스 안 손님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연세 드신 어른들도 탔지만 학생들의 통학 버스처럼 이용되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핸드폰에 다운 받은 MP3에 낯익은 임문세 형님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선곡이었다.
죽기 전 어느 날 잔잔하게 들리던 감성 가득한 목소리에 난 빠져들었다.
– 버스 창가에 기대어 서서~♪
버스가 출발했다.
기분이 참 묘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낮은 산과 논밭, 그리고 집들이 정겨웠다.
세월을 건너 뛰어 다시 앉은 자리에서 맛보는 감정은 고요한 흥분이었다.
‘오늘은 서당 온라인이 오후장에 오르는 날이다.’
학교에 가고 있지만 투자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 순수 자본금이 10억이 넘었다.
미수금의 마술은 현금 천국으로 인도하는 급행 열차였다.
미래와 정보를 아는 자에게 세력의 헛발질은 통하지 않았다.
오늘 매입할 서당 온라인도 그랬다.
어제까지 잔잔한 잔파도 모양으로 그래프들이 횡보합이 길었다.
주봉과 월봉 모두 5일부터 120일 이평선이 모두 바닥을 기게 만들어 그것도 2년 동안 수면에서 잠을 잤다.
개미들이 모두 지쳐 떨어졌다.
큰 그림을 그리는 세력과 눈앞의 먹이만 생각하는 개미가 같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개미들은 변화 없는 주가에 투자하지 않는다.
개미들은 급등주에 목숨 걸고 파도 타는 걸 즐겼다.
흥 많은 민족다웠다.
개미들은 한판 도박을 사랑했다.
세력들은 그런 개미들의 본성을 철저히 이용한다.
나도 그런 개미들 중 하나였다.
과거 난 작전세력들의 밥인 멍청한 그래프 신봉자였다.
빨갛고 파란 수많은 기호들 속에 감춰진 인간들의 욕망에 나도 뛰어들었다.
과거 증권맨이 된 이후에 모든 거래소와 코스닥 그래프, 해외 대형주, 선물, 환율 그래프를 봤다.
많게는 하루에 수백 개씩 살폈다.
그래프 안에 감춰진 오묘한 신호들을 알아내기 위해 득도하듯 수련했다.
어느 정도 성과를 냈지만 그게 한계였다.
세력들 앞에 그래프는 무의미했다.
종목에 붙은 그 주식 안에서 신이었다.
가끔 신들끼리 배신을 때려서 문제였지 개미는 결코 그들을 이길 수 없었다.
다만 빌붙어 먹을 뿐이다.
학교에 가 수업을 받는 사이 자동 매매가 이뤄졌다.
철저하게 계산되고 분산됐다.
미수금까지 수십억이 움직였다.
세력들이 놀랄 수 있기에 여러 종목에 분산해서 투자가 됐다.
정교하게 세팅된 프로그램처럼 매수와 매도가 체결됐다.
컴퓨터도 두 대를 구입했다.
시내에서 최신형이라지만 성능이…….
그래픽 카드가 1G가 넘어가면 1백만 원이 훌쩍 넘었다.
램은 4기가 맥스를 찍었다.
CPU는 펜티엄이었다.
그래도 잘 굴러갔다.
게임이나 프로그램이 2006년도에는 아직 라이트 버전이었다.
끼이이익. 부우우웅.
버스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헐렁하던 버스에 학생들이 들어찼다.
그리고…….
“허무해. 방학이 다 갔어. 힝!”
“너 얼굴이 왜 이렇게 탔어? 고추 농사라도 도와준 거야?”
“아니. 가족끼리 광안리 해수욕장에 갔잖아~.”
“어머? 진짜? 부럽다…….”
여학생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훈훈해졌다.
앞자리는 주로 여학생들이 차지했다.
인구 약 30만의 시에는 열 개의 고등학교가 있었다.
내가 타고 있는 버스는 대부분 외곽 마을 코스로 돌았다.
재잘거리는 여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추억이 새록새록 기억났다.
지금 해수욕장을 떠들고 있는 활달한 여학생 이름은 미진이었다.
매일같이 얼굴을 봤지만 말을 섞지는 않았다.
그 옆의 부러워하는 이마에 여드름이 난 친구 이름은 나영이였다.
내가 다니는 장주 고등학교와 쌍벽을 이루는 장주여고 학생들이다.
“무거우면 가방 주세요.”
매너하면 장태산이다.
하복을 입은 여학생들은 버스의 출렁임에 흔들렸다.
그녀들이 풍겨내는 풋풋한 샴푸 냄새가 기분 좋았다.
화장기 없는 소녀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다.
이 맛에 회귀한 보람을 만끽하는 거다!
어깨에 멘 무거운 가방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과거처럼 부끄러움은 없다.
“네?”
소녀들이 내 친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방이 꽃밭이었다.
여학생들 틈에 앉아 있는 모양이 우습지만 뒷자리는 가지 않았다.
뒷자리에는 시내로 통학하는 남학생 무리들이 많았다.
다크 아우라가 그쪽에서 풍겼다.
버스 안에도 서열이 존재했다.
지역 차별도 아니고 학교에 의해 차별을 당했다.
각종 유색 인종같이 각 학교의 교복들이 곳곳에 뒤섞여 있었다.
묘하게 경계가 나눠졌다.
남학생들이 선호하는 가장 뒷자리는 농고 애들이 차지했다.
장주 정보화산업고로 학교 이름이 바뀐 덩치 큰 애들이 가장 뒤쪽 긴 의자에 앉았다.
그들은 버스 뒤편에서 거칠게 욕을 하거나 침을 뱉고 음담패설을 서슴없이 큰소리로 내뱉었다.
학교를 차별하는 건 아니지만 학교 분위기는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그 사이사이에 각 학교 애들이 뭉쳐서 포진했다.
내가 살던 읍내 학생들은 지역 명문 장주고에 몇 명 입학하지 못했다.
버스 안에서 장주고 학생은 기껏해야 둘을 넘지 않았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통학은 어려웠다.
가난한 나만 가장 긴 통학코스를 밟았다.
내 친구들은 시내에서 하숙을 하거나 학교 기숙사 생활을 했다.
여러 이유로 난 버스 뒤편 세계에 진입할 수 없었다.
중학교도 달랐고 자라온 동네도 달랐다.
“무거운데…….”
“괜찮습니다.”
미진이가 반달 웃음을 지며 말했다.
부끄럼 많은 나영이는 조심스럽게 가방을 내밀었다.
그녀들의 가방이 내 무릎 위에 놓였다.
앉아 있는 게 나았다.
여학생들이 대부분이라 서서 가다가는 치한으로 오해 받기 좋았다.
그렇게 가방 다섯 개를 무릎 위에 포갰다.
“쟤 누구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얼굴은 익숙했는데…….”
“어디서 많이 본 건 확실하지?”
내 주변에 있던 여러 학교 여학생들이 나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호기심 많은 소녀들의 시선이 나를 훑었다.
세상에, 도대체 내가 얼마나 변했다고 저렇게 못 알아볼까?
지난 1년 반 동안 이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것도 항상 이 주변 자리를 애용하던 나였다.
그런 나를 여학생들이 몰라봤다.
기쁨과 좌절감이 동시에 교차했다.
존재감 없던 과거의 내가 쪽팔렸다.
동시에 성형수술 급으로 변한 내가 대견했다.
“이 버스에 저런 훈남이 있었어? 어디서 많이 본 얼굴 같지 않니?”
“명찰이 가방에 가려서 안 보여?”
속닥거리지만 예민해진 귀로 목소리가 다 들렸다.
“내가 물어볼까?”
“미, 미쳤나봐…….”
아직 순수함이 남아 있는 소녀들이었다.
먼저 전화번호를 따내는 2020년 당당한 소녀들과는 달랐다.
얼굴은 예쁘지 않았지만 풋풋한 10대 후반 여학생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됐다.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풍기는 달콤한 샴푸 향기와 로션향이 달달하게 내 심장을 달궜다.
소녀들과 비슷한 나이지만 내 정신 상태는 서른두 살이었다.
아청법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입가에 피식 웃음이 맺혔다.
“어? 웃었다.”
“들킨 것 같은데 말 틀까?”
아침의 상상만으로도 소녀들은 즐거워했다.
이제 꽃 피기 시작한 청춘들만 누릴 수 있는 상상이었다.
어느새 미진과 나영이 옆으로 소녀들이 뭉쳤다.
그녀들의 조용한 웃음소리가 시처럼 울렸다.
내 시선은 창밖에 고정됐다.
그때 차가 멈췄다.
그곳이었다.
그리고 한 소녀가 조용히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여유가 있는 내 앞자리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내 시선이 그때 그 시절처럼 그녀에게 향했다.
심장이 두근 하고 나도 모르게 뛰었다.
그리고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임문세 노래…….
– 아침 해 떠오르는 창가에 앉아~♪
멀리 스쳐가는 구름을 보며~♬
찾고 있는 옛 추억들 마음에 그려요~♬
나 항상 그녀 곁에 머무르고 싶어요~♪♬
떠나지 못해요…….
그녀를 보는 내 눈이 뜨거워졌다.
다시 만나고 싶었던 그녀…….
평생 마음에만 그려보던…….
내 첫사랑이자…… 짝사랑이었다.
# 13
회귀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