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of th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40
139장.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법대생
“수업은 왜 안 들어온 거야? 설마 뺀 거야?”
손유리는 연락 없는 핸드폰을 보며 의문에 빠졌다.
월요일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던 장태산은 연락이 없었다.
오전 수업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교수님도 별말이 없었다.
이미 교수 수준을 뛰어넘는 학생이라는 걸 알기에 장태산의 학점은 보장됐다.
“점심시간 다 됐는데…….”
손유리는 강의실 복도를 나오며 계속 핸드폰을 뚫어져라 봤다.
일주일에 한 번 보기도 바빴다.
연인은 아니지만 깊게 썸 타는 정도는 됐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야?”
그렇게 약속을 쉽게 어기는 스타일이 아닌데 이상했다.
뭔지 모르지만 바쁜 사람 같았다.
대학교 1학년이 사업도 했다.
학교에 오는 날 빼고는 연락도 잘 안 됐다.
손유리는 바쁘게 미대 강의실 건물 밖으로 나왔다.
치리링~♫ 띠리리~♬.
그때 귀에 들려오는 부드러운 바이올린 선율.
“아직 추운데 밖에서……?”
음대 건물과 같이 붙어 있는 예술대 특성상 음대생들이 가끔 밖에서 악기 연습을 했다.
“응?”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예술대 중앙에 설치된 조그만 무대.
가끔 음대생들이 연주하는 장소다.
키가 큰 한 남자가 일반인이 소화하기 힘든 블루 롱 코트를 입고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를 하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코트가 가볍게 날렸다.
따뜻한 봄날 햇살이 만들어 내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키리링 치리리~♪.
작은 바이올린 소리가 예술관에 깊게 퍼졌다.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이었다.
다들 바쁘게 밥을 먹고 오후 수업에 들어가야 할 타이밍인데 거짓말처럼 청중이 모였다.
그 숫자는 수백 명.
미대와 음대 학생들 상당수가 무대 주변을 둘러싸고 움직이지 않았다.
“진짜 죽인다…….”
“음대생이지?”
“바이올린 소리가 이렇게 감미로워?”
“나 닭살 돋은 거 알아?”
“그런데 처음 들어보는 곡이야.”
“…… 황홀해.”
손유리도 깜짝 놀랐다.
바이올린 울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멀리 퍼졌다.
실내도 아니고 실외에서 이렇게 명확하게 소리가 들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것도 협주곡이 아니라 독주다.
전자 바이올린처럼 듣는 이의 귀에 정확히 꽂혔다.
소리의 마약처럼 청중들을 사정없이 빨아들였다.
손유리도 소리에 홀려 무대로 향했다.
‘뭐, 뭐야! 장태산!’
손유리는 깜짝 놀랐다.
수업을 빼먹은 장태산이 무대 위에서 눈을 감고 연주에 몰입하고 있었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손유리도 처음 듣는 바이올린 소나타였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라 불리는 비탈리의 샤콘느보다 더 애절한 소리가 울렸다.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집시의 노래라 불리는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의 애수와 낭만으로 탈바꿈되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자칫 어색할 수도 있는 음계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계절의 순환처럼 이끌어 내더니 기복이 심한 생상의 하바네라 같은 음을 연주했다.
변화무쌍!
이별이 슬픈 봄날, 갑자기 마주한 돌개바람을 맞은 것처럼 폭풍 같은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예술관에 퍼졌다.
소리에 놀라 창문을 열고 보는 이들도 있었다.
차 시동을 켜지도 못한 이들도 많았다.
얼굴을 아는 몇몇 교수들도 다가와 멍하니 바라봤다.
1인 독주회 같은 무대가 연출되고 있었다.
그러나 장태산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바이올린 활대에서 연기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모두 다 숨을 죽였다.
악보도 없는 장태산의 폭풍 질주.
활대가 격정적으로 움직이며 장태산도 춤을 추듯 바이올린을 켰다.
숨도 못 쉴 것 같은 격한 열정이 폭발했다.
치리링 띵~♬.
마지막으로 들리는 경쾌한 음 하나.
“…….”
시간이 정지한 듯 무대 주변은 고요한 침묵이 휩쓸었다.
감히 누구도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의 쾌락을 끊고 싶지 않았다.
다들 눈만 뜨고 멍하니 연주자를 볼 뿐이다.
“브라보!!! 태산!”
음대 교수 한 명이 격하게 브라보를 외쳤다.
짝짝짝짝짝짝짝.
그리고 손이 터져라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게 신호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앵콜! 애애애앵 코오오올!!!”
“휘이이잇~. 휘이이이이잇!”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가 내한 공연이라도 벌인 듯 함성과 박수, 휘파람이 격하게 터졌다.
그때 눈을 감고 있던 장태산이 눈을 떴다.
그리고 연주자처럼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장중한 태도였다.
“다시 들려주세요!”
“앵콜! 앵콜!”
열화와 같은 바이올린 연주에 빠졌던 이들이 앵콜을 외쳤다.
혼을 쏙 빼놓는 강렬한 연주.
오페라 하우스에서 수십만 원을 주고 들었던 연주회보다 훌륭했다.
손유리도 격하게 다시 듣고 싶었다.
이런 경험 난생 처음이었다.
“부족한 솜씨 감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저기 계시는 분과 점심 약속이 있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태산은 이런 자리가 어색하지 않은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손유리를 바라봤다.
모든 시선이 손유리에게 향했다.
“손유리?”
“뭐야? 손 선배 남친이야?”
“유리가 음대생 만났어?”
미대 동기, 선후배들이 손유리를 보고 수군거렸다.
손유리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동안 조신하게 학교 생활했던 평판이 우르르 무너져버렸다.
“연주가 마음에 들었다면 이곳에 마음껏 기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연주를 공짜로 듣는다면 음악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말과 함께 장태산은 활짝 열린 바이올린 케이스를 가리켰다.
“그럼 다음에 또 들려주실 거죠?”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여대생들이 우르르 달려가 지폐를 사정없이 투척했다.
악기 케이스를 들고 있던 음대 여학생들이 장태산에게 하트 뿅뿅을 날렸다.
잘생긴 데다가 전율의 바이올린 솜씨를 보이는 장태산은 우상이 됐다.
“몇 학번이세요? 음대생 맞아요?”
“악보 있어요? 새로 소나타 발표하시는 거죠?”
“합주 한 번 부탁해도 돼요?”
콧대 높기로 소문만 음대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교수들의 실력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걸 그들은 알았다.
지난주에 미대생들이 받았던 충격과 환희를 음대생들도 느꼈다.
‘도대체 장태산…… 정체가 뭐야!’
수북하게 쌓여가는 기부금 앞에서 고개를 살짝 숙이는 장태산.
단숨에 예술대의 히어로로 등극해버렸다.
***
“배고프죠?”
바이올린과 현금이 가득 담긴 케이스를 차 뒷좌석에 실었다.
역시 돈 많은 한국대 예술대생들이다.
만 원짜리가 대부분이었다.
대충 봐도 100만 원이 넘었다.
6월에나 발행되는 5만 원권이 있었다면 그게 쌓였을 것이다.
이 돈 안 받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날 조종하는 음악의 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의 가난함이 돈 몇 푼도 소중하게 만들었다.
“뭐예요? 수업은 빠지고 갑작스럽게 바이올린 연주는 뭐죠?”
물어봐도 나도 잘 모른다.
미술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에 가는 중이었다.
예술대에 차를 파킹하고 전면 유리창 너머로 하늘을 보는 순간 갑자기 격렬한 감정이 날 휘어잡았다.
바이올린을 켜고 싶은 감정이 미친 듯 요동쳤다.
음악의 신들에게 재능을 받았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황진이 누님 개업식 날까지 아주 찐하게 춤추고 놀았다.
음악의 신들을 최신 유행곡 작곡가로 개조하는 작업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가락이 있던 양반들이라 금방 적응했다.
수시로 체크해서 알바비 정산한다 했다.
엄청난 신의 에너지를 감당하느라 인간계로 돌아와서 녹초가 됐다.
새벽부터 일어나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를 보자 피가 끓었다.
천상에서는 포인트가 딸려 피아노도 없던 남신들의 한을 풀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바이올린이 뒷좌석에 타고(?) 있었다.
그 순간 떠오르는 수많은 바이올린 소나타들의 악상.
피가 들끓어 올랐다.
호흡을 하며 진정시키려 했지만…….
날이 겁나게 좋았다.
눈물이 날 정도로 심장이 요동치고 감정이 격해졌다.
천상에서 100년 이상 비루하게 살던 신들의 영혼 잔재가 날 뒤덮었다.
빙의라고나 할까.
신들과 계약을 끝마친 그 뒷날은 꼭 이랬다.
강렬한 신들의 한이 가슴에서 울컥 치솟아 올랐다.
화선이 형님에게 재능을 넘겨받고도 그랬다.
그림 한 폭 쫙 그리고 손유리와 함께 막걸리를 마셨다.
그때 친구들을 술집에서 만나지 못했다면 손유리와 난 그 강을 건너고 말았으리라.
이번에도 나름 대처했지만 바이올린을 보는 순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바이올린을 빼들고 예술대 중심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무아지경에 빠져 천상에서 신들이 작곡했던 바이올린 소나타들을 연주했다.
눈을 떴더니 어느새 수백 명의 예술대생들이 모여 있었다.
“피아노 말고도 바이올린은 언제부터 그렇게 연주했어요? 정말 사람 맞아요?”
침묵하던 손유리가 다다다 입을 열었다.
“다방면에 능력 있는 분들은 세상에 많습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림 실력 하나 습득하기에도 벅찬 건 아시죠? 피아노도 콩쿠르에 나갈 수준급인데 바이올린은…… 혹시 그것 말고 다른 재능은 없어요?”
손유리가 이제 뭔가 눈치챈 것 같다.
돈 버는 능력은 이것보다 월등히 높다는 걸 밝힐 수 없었다.
“오늘은 학식으로 하죠.”
“학식요? 돈 벌어서 빌딩 세울 건가요?”
대충 100만 원을 넘게 벌고 학식 먹자는 말에 손유리는 날 수전노 보듯 봤다.
“저 돈은 기부할 생각입니다.”
“기, 기부요?”
“네. 꼭 기부해야 합니다.”
연주를 끝마치고 환호성을 받을 때 엄청난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만큼 나에게는 포인트가 쌓였다.
감동으로 바꾼 돈에 기가 짱짱했다.
그 돈을 어려운 곳에 기부함으로써 얻게 될 포인트를 음악 남신들에게 배분할 생각이다.
난 계산 정직한 도적놈이다.
“갑시다.”
날 외계인 보듯 하는 손유리를 향해 웃었다.
“…….”
손유리와 캠퍼스를 걸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봄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풍경을 봤다.
손유리는 말이 없었다.
법과대학과 예술관 뒤쪽에 위치한 자하연 식당으로 향했다.
굳이 대화가 없어도 됐다.
대기에 가득 찬 봄기운에 가슴이 시원해졌다.
초록 초록 피어나는 새싹과 나무의 움틈은 절로 빙그레 미소 짓게 만들었다.
지난 생에 맛봤던 캠퍼스 라이프와 확연히 달랐다.
그 당시 1학년 때는 선배들에게 밥 사달라고 조르기만 했다.
가난한 대학 신입생은 언제나 술과 배가 고팠다.
“무슨 생각해요?”
“그냥 다 좋습니다. 이 순간과 유리 씨까지.”
“피이~.”
손유리는 피 소리는 냈지만 얼굴을 붉혔다.
“안 좋습니까? 이 젊음이?”
“왜 그래요. 그쪽은 누누이 말하지만 신입생이라니까요! 그런 말은 저나 할 수 있답니다. 3학년은 돼야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 모르세요?”
사회 나가봐라 대학생도 애다.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미녀와 점심 먹을 복을 허락받은 이생이 좋습니다.”
“와아…… 진짜 말투가 한참 오빠 같아요!”
오빠 맞다.
그것도 죽다 살아서 돌아온 회귀 오빠.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자하연 식당.
1층과 2층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식당과 매점이었다.
3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교직원들이나 대학원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가격 좀 나가는 곳이다.
손유리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학식 맛있어요?”
손유리 대학 생활 3년 동안 일반 학식 한 번도 안 먹어 봤다에 500원 걸 수 있다.
그렇게 막 3층 문을 여는 순간.
“장태산!”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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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의 전설